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09
짙은 사기 또한 아래로 내려갈수록 포악해졌고 그 한기가 체내로 뚫고 들어왔다.
보통 수련자였다면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숨이 끊어질 위기에 처할 터였으나, 한제는 수련의 첫 번째 단계에서 생사윤회의 경지를 얻은 데다가 황천승규결(黄泉升窍决)까지 익힌 덕에 이런 사기에는 무척 익숙했다.
지금 그의 체내에서는 원력이 맴돌고 있었고 바깥쪽에는 음양의 문양이 나타나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덕분에 짙은 죽음의 기운도 그의 앞에서 밀려났고 한제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고랑은 끝이 없는 것처럼 깊어 빠른 속도로 1각을 내려갔는데도 바닥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한제는 묵묵히 체내의 원력을 가동해 인과의 도를 사방에 녹여 넣었다.
한참 후, 사기가 점점 짙어짐에 따라 음양의 도안도 더 이상은 그 사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 회전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몸을 부르르 떤 한제의 발이 지면에 닿았다.
눈앞에는 통로 하나가 있었다. 등불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통로는 한제의 수준으로도 꿰뚫어볼 수 없었고 그저 흐릿하게 대략적으로만 파악이 가능할 뿐이었다.
“이리로 와라!”
노련한 목소리가 고요한 통로 안에서 울려 퍼졌다.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심한 듯 걸어 나갔다.
통로는 길지 않아 1각 정도 걷자 그 끝에 이르렀다. 허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한제의 두 눈동자는 바짝 졸아들었다.
‘사람의 머리?’
한도 끝도 없이 사람의 머리로 사방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통로 끝에는 거대한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멀리서 봐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그 안에 가득 들어찬 두개골들만이 음산한 한기를 발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두개골로 이루어진 바다 같았다.
극도로 짙은 사기가 폭풍을 이루어 빽빽하게 쌓인 두개골의 중심에서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이 사기의 충격에 한제는 질식할 것만 같았고 머리가 저릿해지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놀란 표정도 감출 길이 없었다.
그 두개골로 이루어진 바다 중심의 폭풍 안에는 두개골로 이루어진 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황토색 관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관은 약간 썩은 상태였지만 광기 어린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노련한 목소리가 그 관 안에서 흘러나와 울려 퍼졌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떨리는 마음과 사기에 질식당할 것 같은 느낌을 애써 억누른 뒤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후배 허목, 선배님을 뵙습니다!”
“네가 내게 칠석술을 요구한 자냐?”
노련한 목소리에서는 기쁨도 분노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저 짙은 위압감을 품은 채 사방으로 퍼져나갈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한제는 마음을 다잡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난 분명 너를 도울 수 있다. 그러나 향가에 조건을 제시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네가 가진 생기의 반을 내놓아라!”
노련한 목소리가 퍼져 나온 순간, 사방의 사기는 더욱 짙어졌다.
사방을 채운 두개골도 순간 두 눈으로 어스름한 빛을 번득였다.
한제에게는 전방의 모든 두개골이 순간 두 눈을 번쩍 뜬 것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마치 영성(靈性)을 가진 듯 어스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개골들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한제 체내의 생기는 무너져 내려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의 검은 머리 중 절반이 새하얀 눈처럼 백발이 되어버렸다. 또한 청년이었던 그의 얼굴도 빠르게 노쇠하여 중년 사내의 모습이 됐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허약함이 느껴졌다. 수준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으나 그 허약감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네가 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을 내놓아봐라!”
향가 선조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모완의 원영을 감싼 금제의 공을 꺼냈다. 그러나 그 빛으로 감싸인 공은 한제의 손에 떨어지자마자 거친 죽음의 기운에 의해 폭풍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 순간, 자신과 상대의 뛰어넘을 수 없는 수준 차이도 잊은 듯 미간의 세 번째 눈에서 붉은 빛을 번득이며 거칠게 외쳤다.
“뭐하는 거냐!”
그는 포효를 내지르며 곧장 모완을 앗아간 사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흥! 건방진 놈이로군.”
관 안에서 흘러나온 냉소와 함께 한 줄기 사기가 한제를 휘감았다. 그 순간, 한제는 세 번째 눈을 번쩍 떴다.
붉은 빛이 부채꼴로 발산되어 그를 휘감은 사기를 곧장 무너뜨린 순간, 한제는 번개처럼 모완을 봉인한 금제의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끄럽다! 네 생기의 반을 취했으니 칠석술을 발휘하려는 것 아니냐!”
노련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한제는 우뚝 멈춰 서서 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한기 어린 빛이 뿜어져 나왔다.
모완을 봉인한 금제는 사기에 휘감긴 채 펑 하고 무너져 내렸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은 한제의 눈앞에서 모완의 원영은 조금도 다치지 않은 상태로 얌전하게 하늘로 떠올랐다.
“생기가 조금도 없는 것을 이 세상에 억지로 남겨놓았구나! 과연 칠석술이 필요한 상태로군.”
한제는 말없이 관을 바라보기만 했다.
“허나 나의 실력과 수준이 절정에 달했을 당시라 해도 이런 원영을 회복시키고 살려내려면 벅찼을 터. 지금으로서는 3할 정도밖에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겠구나!”
그가 말을 마친 순간, 사방의 두개골이 어스름한 눈빛을 번득였다. 그러자 한 줄기 한 줄기 사기가 한제를 맴돌았다.
한제는 저항하지 않았다. 사기는 그를 맴돌며 체내로부터 조금씩 생기를 앗아갔다. 그 생기는 곧 한제의 수명이었다.
생기가 뽑혀나감에 따라 한제의 머리카락은 완전한 백발이 됐고 더러는 빠지기도 했다. 그의 몸 역시 점차 마르고 허약해졌으며 피부에도 주름이 가득 생겨났다. 그의 모습은 어느덧 완연한 노인이 됐고 그 노인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청년이었던 당시 한제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두 눈이 탁해졌고 허약감은 몇 배로 늘어났다. 그는 허공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어떤 힘이 그를 부르면서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날 것 같았다.
1천 년이 넘는 수련을 해온 그로서 그 힘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었다. 이 힘은 천도 윤회의 힘이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윤회의 굴레로 되돌아오라고 알리는 소리였다.
당시의 모완이 수명이 다했을 때처럼 부여받은 수명이 다하는 순간 한제는 죽게 될 터였다.
주위를 맴도는 죽음의 기운은 한제가 가지고 있던 생기 대부분을 흡수한 뒤 느릿하게 흩어지더니 곧장 모완의 원영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그 주위를 맴돌며 한제의 체내에서 뽑아낸 생기를 모완의 원영에 녹여냈다.
“소위 칠석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7일 동안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원영이 7일 동안 버틴다면 자연히 회복하고 깨어날 것이다.”
향가의 선조가 느릿하게 말했다.
한제는 침묵한 채 멍하니 모완의 원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 원망이나 후회 따위는 없었다.
모완은 마치 이 모든 것을 다 느끼고 있는 듯 몸을 가볍게 떨었다.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원영의 몸으로 그녀는 소리 없이 슬퍼했다.
주위를 맴도는 사기가 끊임없이 생기를 불어넣음에 따라 모완의 원영은 점차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 ★ ★
하루, 이틀⋯⋯.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하지만 사흘째 되던 날, 점차 실체화되던 모완의 원영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한제로부터 뽑아온 생기를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구나. 칠석술은 상고 시대에도 천명을 거스르는 술법으로 손꼽혔지. 이 술법으로 죽은 자를 살아 돌아오게 하려면 무엇보다 충분한 생기가 필요하다! 칠석 중 하루가 늘어날 때마다 필요한 생기는 그 전날의 1백 배에 달하지. 일곱째 날 필요한 생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내가 네게서 생기의 반을 앗아가지 않았더라도 이 원영은 사흘을 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 생기를 증폭시킬 물건을 가지고 있느냐?”
향가의 선조가 느릿하게 물었다.
모완의 원영은 더 이상 생기를 공급받지 못해 다시금 흩어지고 있었다. 그 흩어지는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거침이 없었다. 마치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흩어지고 흩어지다 이내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계속해서 제 생기를 가져가십시오.”
모완을 향한 한제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그녀는 단 하나의 약속 때문에 자신을 수백 년이나 기다리지 않았던가.
한제는 자신이 그녀에게 가진 감정이 그런 고마움과 동정심이라 여겼다.
허나 모완이 떠난 뒤에야 끝없는 고독을 느끼고 이전의 기억과 추억을 통해 차차 알게 됐다.
사실은 자신도 그녀를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청수의 선물
한제는 삶과 죽음, 집과 가족을 잃은 고통 등을 생각하며 그저 모완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그저 그 사이에 강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강은 1천 년 동안 끊이지 않는 상처와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허나 이 상처와 고통의 강이 아무리 용솟음치고 거칠게 흐른다 해도 굳건한 기다림까지 씻어버리지는 못했다.
귓가에는 다시금 그 슬픈 가야금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 소리는 한제와 모완 사이에 다리를 하나 놓고 두 사람으로 하여금 상대의 존재를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죽음의 기운은 모완의 원영을 맴돌다가 한쪽은 모완의 곁에 둔 채 다른 한쪽만 뻗어 나와 한제의 주위를 맴돌았다.
한제의 체내에서 흐르는 생기는 그 죽음의 기운에 뽑혀 나와 다시 모완의 원영으로 흘러 들어갔다.
모완을 살리는 데 1백 배, 1천 배의 생기가 필요하다면 한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모완을 바라보는 가운데 한제의 얼굴은 다시금 늙어가기 시작했다.
대량의 생기가 흘러나오면서 그는 순간 1천 년의 세월을 빠르게 지나보낸 것 같은 모습이 됐다.
한제의 체내에 남은 생기는 이제 얼마 되지 않았다. 생기가 빠르게 뽑혀나가면서 한제는 점차 자신을 부르는 천명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때, 짙은 생기 한 줄기가 순간 그의 체내에서 폭발했다.
그 폭발은 생기의 폭풍이 되어 사방을 휩쓸었고 주위의 수많은 두개골들은 다시금 어스름한 눈빛을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