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42
수련자는 살기와 광기가 뒤섞인 눈으로 입술을 핥더니 거칠게 외쳤다.
“허목, 나와 겨뤄보지 않을 텐가? 누가 더 많은 녀석들을 죽이는지!”
그는 다름 아닌 부뇌선(副雷仙) 허정이었다.
허나 한제는 그 말에 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
“겨뤄보는 것은 좋으나 개미 같은 자들을 죽여서 무얼 하겠나? 차라리 저 여인을 죽이는 자가 이기는 것으로 하지!”
한제가 연맹성역 수련자 중 청의의 여인을 가리키자 허정은 흠칫 놀랐다.
한제가 가리킨 여인은 신분과 지체가 상당히 높은 존재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커다란 전투를 주관하고 있을 리 없었다. 다만 파악된 바에 의하면 그 여인의 수준은 규열기 중기에 불과했다.
허정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받아들이겠다!”
한제는 속으로 냉소하며 먼저 청의의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허정 역시 곧장 뒤따랐고 두 사람은 맹렬히 돌진했다.
법보와 비검이 부딪히는 소리, 신통력을 발휘하는 소리에 날카로운 비명이 뒤섞여 울려 퍼지는 가운데 허정은 피에 굶주린 듯 날아들었고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돌진 속도는 약간 느려졌다.
한제는 허정의 속셈을 훤히 들여다보았으나 그렇다고 그처럼 일부러 시간을 끌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청의의 여인에게 돌진했다.
혼란한 전장 속, 그 여인은 맑고 또렷한 눈빛으로 단박에 한제와 허정의 거동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허정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냉랭하게 한제를 응시했다.
한제는 점점 속도를 높여 수련자 사이를 뚫고 달려들다가 여인과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매섭게 주먹을 날렸다.
콰르릉!
주먹은 허공을 가르며 거대한 소리와 함께 파문을 일으켰다. 이 파문은 폭풍이 되어 청의의 여인을 향해 퍼져나갔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곧장 그 폭풍을 따라 앞으로 돌진했다.
한편 그 무렵 가까운 거리에서 이를 지켜보던 허정은 냉소를 짓더니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옆으로 비켜섰다.
‘허목, 아직 치밀하지 못하구나. 저 여인은 수련자 연맹에서 특수한 지위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 큰 전투를 주관하는 것이겠지.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강력한 보호 능력을 갖추고 있을 터! 네가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하는지 지켜보겠다.’
그는 한제가 점점 여인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더욱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제의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의 주먹이 만들어낸 폭풍은 마치 천둥번개처럼 공간을 뒤흔들면서 청의의 여인으로부터 2백 척 거리에 이르렀다.
그때, 여인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그녀는 곁에 있는 거마족이 상대를 막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그녀는 왼손으로 허공을 지그시 눌렀다.
순간 그녀의 곁에 남은 마지막 거마족이 짊어지고 있던 수련성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붉은색 파문이 줄기줄기 피어나 사방으로 확산됐다. 파멸적인 기운이 깃든 파문이 퍼져나가면서 수련성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한제의 주먹이 만들어낸 폭풍은 그 파문에 휩쓸리면서 펑 하고 무너져 내렸다. 뒤이어 붉은 파문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한제를 향해 급속도로 뻗어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허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허목이 주제도 모르고 까불다가 이리됐다고 저자가 이곳에서 이렇게 죽는다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붉은 파문에 닿으려던 찰나, 한제가 곧장 몸을 돌리더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허정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 허정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불길하다!’
그때, 한제가 저물대에서 거대한 솥 하나를 꺼내더니 한 손으로 허정을 가리키며 낮게 외쳤다.
“환위(換位)!”
순간, 허정은 엄청난 힘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시간은 멈춘 듯하더니 마치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한제와 자리가 뒤바뀌었다.
그 순간, 시간의 흐름은 다시 원래의 속도를 회복했다. 사실 시간이 멈췄던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너무나 빠르게 발현된 한제의 신통력에 허정만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붉은 파문과 단 1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신을 차렸고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죽음의 위기가 코앞까지 닥쳐와 있었다.
“헛!”
그는 헛숨을 들이켜며 얼른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체내의 선원을 발산했다. 이에 그의 육신은 오그라들었고 눈 깜짝할 사이 1백 갈래가 넘는 보호막이 그의 몸을 감쌌다.
선원을 응집시켜 만들어낸 이 보호막은 동림성(東臨星) 허가에서 전해져 내려온 선술로 이때의 허정은 겹겹이 금색 빛으로 뒤덮여 있어 멀리서 보면 꼭 작은 태양 같았다. 뒤이어 붉은 파문이 그 금색 빛에 다다랐다.
펑! 펑! 펑!
붉은 파문은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들었고 그 순간 허정의 몸을 덮은 1백 개의 보호막 중 3할이 넘는 보호막이 무너져 내렸다.
이에 허정은 머리가 저릿했고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이후 붉은 파문이 다시 충격을 가해올 때마다 그의 몸을 두른 보호막은 열 개 이상 붕괴했다. 게다가 붉은 파문의 속도가 워낙 빨리 허정은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허목!”
허정은 원한이 가득한 고함을 내질렀다.
펑! 펑! 펑!
붉은 파문이 관통한 그 순간, 허정의 몸을 두른 모든 보호막은 전부 무너져 내렸고 심지어는 그의 육신마저도 붉은 파문에 잡아 뜯기듯 찢어졌다.
보호막이 무너져 내린 순간, 허정은 저물대에서 1백 개가 넘는 옥패를 꺼내 부수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 또 다시 1백 개가 넘는 각양각색의 보호막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저물대에서 튀어나온 대량의 법보들도 붉은 파문에 대항했다.
그러나 방어막들은 생겨나자마자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심지어 법보들도 순식간에 모두 파괴됐다. 그럼에도 허정이 끊임없이 저항하자 붉은 파문은 점차 약해져 갔다. 파문은 직선이 아니라 고리 형태로 퍼져나가다 보니 그 위력이 적지 않게 분산된 탓도 있었다.
그렇다고 허정이 그에 대항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엄청난 선원과 수많은 법보를 소진한 상태였다.
오행금시(五行金尸)
허정은 선원이 포함된 피를 토해내 온몸을 핏빛으로 뒤덮었고 순식간에 뒤로 질주하여 파문에서 벗어났다.
제아무리 혈둔술(血遁術)을 발휘했다 해도 파문이 처음에 보였던 극강의 위력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허정은 거기서 벗어나지는 못했을 터였다. 허나 파문은 계속해서 약해져 가고 있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혈둔술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정에게 방금의 그 짧은 순간이 일선천(一線天)에서 벌인 한제와의 혈투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이에 한제에 대한 그의 한은 극에 달했고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허목, 네놈이!”
허나 그가 입을 연 순간, 한제가 곧장 붉은 파문을 향해 달려들면서 외쳤다.
“허 도우는 정말 믿음직하군. 덕분에 저 파문이 약해졌으니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내가 저 여인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허 도우의 공일세!”
그 말을 끝으로 한제는 빠르게 나아갔다.
붉은 파문은 허정과의 충돌로 기세가 한층 약해진 상태였다. 두 손가락을 펼친 한제는 고신의 육신이 가진 강함과 체내의 원력을 섞고 음양의 도안까지 소환해 붉은 파문을 향해 뻗었다.
펑!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한제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 붉은 파문을 뚫고 들어갔다.
이를 본 허정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분노로 마음이 흔들린 탓에 몸을 뒤덮었던 붉은 빛은 무너져 내렸고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분노 때문에 내상이 심해져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이를 갈며 애써 정신을 차린 그는 분노를 억누르고 곧장 뒤로 달아났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허정은 분명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분명 금세 원상태를 회복할 터였다. 차라리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그가 죽게 만드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더구나 허정의 체내에 적으나마 본원의 힘이 존재한다. 일선천에서 죽인 것은 그의 분신일 뿐, 본원의 힘 중 반은 아직 본체 내에 남아 있을 터였다.
허나 지금은 허정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제는 곧장 청의의 여인을 향해 달려들며 결인을 그린 손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순간 검은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사방을 선회하며 검은 회오리를 이루었다.
이 강력한 회오리가 주위를 휩쓰는 사이 그 안에서 두 마리 흑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흑룡은 거대한 머리를 들어 곧장 청의의 여인을 집어삼키려는 듯 목을 뻗었다.
여인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으나 한제를 보는 눈빛은 어딘가 복잡했다.
“군께서는 소첩을 알아보시지 못하시지만 소첩은 군을 압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녀는 오른손에 쥔, 여덟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을 바라보다가 왼손으로 그중 하나를 떼어내 살짝 던졌다.
그 연꽃잎은 이리저리 춤을 추듯 휘날리며 옅은 향을 풍기다가 순식간에 수백 척 크기로 불어나 한제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쾅!
격렬한 진동이 한제를 중심으로 반경 수천 척 범위에서 전해져왔다. 한제는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고 그 순간 1백 척 내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제가 선 우주에도 쩌적 소리와 함께 균열이 나타났고 균열은 한제에게로 뻗어왔다.
“이해하지 못하는 군께서는 사라져주세요!”
청의의 여인이 왼손을 아래로 눌렀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복잡한 기색이 점차 사라져갔다.
한제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위압감에 체내의 원력이 가로막히는 것을 느꼈다.
한제의 몸을 두른 검은 회오리바람 안의 두 마리 흑룡은 포효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연꽃잎을 향해 달려들었다. 음산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하지만 그 연꽃잎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빠른 속도로 하강해왔다. 한제의 발아래에서는 공간의 균열이 점점 더 많아졌고 그 안에서는 강력한 한기가 발산됐다.
그때, 두 마리 흑룡이 흘러넘치는 듯 강력한 바람을 이끈 채 곧장 연꽃잎을 향해 돌진했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렸고 흑룡 중 한 마리가 온몸을 바르르 떨다가 곧장 무너져 내려 수많은 검은 기운으로 흩어졌다.
남은 흑룡은 포효하며 연꽃잎을 향해 음산한 바람을 뿜어냈지만 연꽃잎은 오히려 그 바람을 모두 흡수하며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위압감은 더욱 막강해졌고 검은 회오리바람 역시 그대로 흩어지면서 수많은 검은 기운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저게 대체 뭐지?’
한제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득이며 두 팔을 벌린 뒤 가볍게 외쳤다.
“환우(喚雨)!”
그 외침이 터져 나오자마자 사방에 존재하는 원력이 응집됐고 이내 한제 곁에 옅은 물안개가 나타났다.
물안개는 한제의 두 손을 따라 사방에 가득한 검은 기운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었고 순간 형성된 소용돌이가 한제를 둘러싼 채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 속에서 모든 빗방울에 원력이 녹아들면서 끊임없이 응집됐고 한제 체내에서는 선원(仙元)의 힘도 분출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한제 주위에는 검은 기운의 소용돌이 속에 1만 개가 넘는 빗방울이 응집됐다.
그 안에 함유된 원력 덕분에 각각의 빗방울은 엄청난 위력을 가졌고 사방의 소용돌이 안에는 한 줄기 선기(仙氣)가 맴돌았다.
두 팔을 펼친 한제는 우주로 떠올랐고 그의 사방에서는 1천 척 길이의 소용돌이가 회전하며 빗물들을 허공으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