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43
반짝이는 빗방울들은 위협적이면서도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었다.
순간, 한제가 두 손을 앞으로 떠밀었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사방의 소용돌이가 진동하더니 갑자기 반대로 돌면서 위로 솟아올랐다. 마치 1천 척에 달하는 소용돌이가 하늘과 하나로 이어지려는 모양새였다.
콰르릉!
굉음을 울리며 소용돌이는 빠르게 솟아올랐다. 그러자 그 안에 함유된 1만 개의 빗방울도 아래에서 위로 튀어 올랐다. 땅에서 하늘로 비가 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 눈에 전광 어린 빛이 번득였지만 한제는 애써 억눌렀다. 자신의 진정한 수준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싶었다.
이때 솟구쳐 오른 소용돌이와 수많은 빗방울이 연꽃잎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가 제대로 발휘하는 첫 번째 환우였다.
먼저 연꽃잎 근처에 이른 소용돌이는 그것을 진동하게 했고 뒤이어 1만 개가 넘는 빗방울이 폭발음을 울리며 진동하는 연꽃잎을 순간 붕괴시켰다.
연꽃잎이 붕괴하며 발생한 충격은 수많은 빗방울과 소용돌이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제는 온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약해지자마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청의의 여인을 가리켰다. 그러자 환우의 신통력으로 응집된 소용돌이와 빗방울이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 ★ ★
한편 그 무렵,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혈신자와 나부로 응집된 혈인과 교전하던 흑살마존은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다가 갑자기 한제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한제는 곧장 뒤로 물러났다. 그가 청의의 여인을 지목한 것은 정말 그녀를 죽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 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큰 공훈을 세운 바 있으므로 이제 목숨을 걸고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었다.
그가 뒤로 물러나자 청의의 여인이 서늘한 눈빛으로 한손에 들고 있던 연꽃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허상의 연꽃 한 송이가 날아오르며 환우의 신통력을 저지했다.
그녀는 지금 연맹성역 측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진정한 대전은 아직 벌어지지도 않았고 지금의 전투는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인은 손으로 결인을 그려 허공을 가리키며 가볍게 외쳤다.
“도와주십시오, 해옥계(骸獄界)!”
그 말에 전방 허공에 1백 리 반경을 뒤덮는 거대한 진이 하나 나타났다.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형태의 진은 빠르게 회전하면서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기운을 발산했고 한 가닥 보라색 쇠사슬이 그 안에서 나타났다.
이 쇠사슬은 갑자기 떨어져 내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나천성역 수련자 하나는 육신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원신은 그 쇠사슬에 감겨버렸다.
또 한 가닥의 쇠사슬이 진 안에서 뻗어 나와 흔들거리며 떨어졌고 뒤를 이어 1백 개가 넘는 쇠사슬이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때, 진 안에서 음울한 포효가 울렸고 원신을 찢어놓을 듯 매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진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가 나타난 순간 시체가 썩는 듯한 악취가 사방으로 퍼졌다. 키가 약 1백 척에 달하는 그의 온몸은 보라색을 띤 푸른색이었다. 그는 분명 시체였다.
그 시체의 온몸은 쇠사슬로 뒤얽혀 있었는데 방금 진 안에서 떨어져 내린 쇠사슬은 바로 이 시체의 온몸에 감겨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수련자 연맹에서는 연시(煉尸)라 부르는 것으로 시음종에서 제공한 시체를 해옥계에서 제련하여 만든 것이었으며, 수만 년간 일고여덟 구가 제련된 상태였다. 또한 각 연시는 최소한 규열기 후기 이상의 수준이었다.
“캬오오!”
첫 번째로 나타난 연시는 몸에 얽힌 쇠사슬을 흔들며 포효를 내질렀다. 그 포효는 육신을 뚫고 수련자들의 원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어서 연시는 수련자들 사이로 달려들며 온몸을 휘적거렸다. 그 몸에 얽힌 쇠사슬들은 날카로운 법보가 되어 사방을 휩쓸었다. 이에 수많은 수련자들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두 번째 연시가 전송진에서 걸어 나오더니 똑같이 포효를 내지르며 전장으로 달려들었다.
연시들이 나타나면서 전세(戰勢)는 순식간에 역전됐다.
마지막에 나타난 연시 중 둘은 은빛을 하나는 금빛을 발산했다.
은빛을 발산하는 두 연시 중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였다, 체구는 일반인과 거의 비슷했고 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도 쇠사슬이 얽혀있긴 했지만 단 두 가닥뿐으로 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들이 전송진에서 나타난 순간, 정열기 초기 수준의 위압감이 사방을 압도했다.
마지막 연시는 시체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할 정도였다.
중년 사내처럼 보이는 이 시체는 용포를 입고 머리에는 높은 관을 쓰고 있어 꼭 일반인 세상의 황제 같았다. 그의 몸에는 쇠사슬도 얽혀 있지 않았고 정수리 위에서 다섯 장의 노란 부적이 맴돌 뿐이었다. 그 부적에서는 전광이 흐르면서 하나로 이어진 상태였다.
그 용포를 입은 사내의 몸에서는 오행(五行)의 힘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에 한제는 홍접을 떠올렸다.
‘오행의 영체(靈體)!’
한제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수준으로는 두 성역 사이의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을 세우면 얻는 것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안전하게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했다.
‘청수 사형이 어디쯤 계실지 모르겠군. 이 부근에 계실 것 같긴 한데…’
한제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지만 청의의 여인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연시 하나가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며 추격해오기 시작했다.
은빛이나 금빛을 발하는 연시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규열기 중기 수준까지라면 고신의 육신과 신통력으로 붙어볼 수 있겠지만 저 연시의 수준은 규열기 후기에 해당했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이길 가능성도 있긴 했으나, 변수가 너무 많았다. 또한 그렇게 승리한다 해도 큰 부상을 피하기란 힘들어질 것이고 자칫하면 곤경에 처하게 될 수도 있었다.
한제는 사실 혼란한 틈에 망월의 체내로 들어가 고신의 아이가 가진 힘을 전수받을 생각이었다.
그때, 그를 뒤쫓던 연시의 몸에 얽힌 쇠사슬들이 뻗어왔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더욱 빠르게 뒤로 물러나 봉인되어 있는 망월 쪽으로 향했다. 망월은 끊임없이 음울하게 포효했다.
한제는 망월이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분노에 찬 망월은 모든 것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지금의 진도 영원히 망월을 가둬놓을 수는 없을 터였다.
이내 한제는 망월이 갇힌 거대한 검은 구 근처에 이르렀다. 신공가의 선조와 그가 이끄는 수련자들이 그 구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열중한 나머지 한제가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한제의 물건
연시는 점점 다가오며 한제를 향해 쇠사슬을 휘둘렀다. 쇠사슬의 맹렬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한제는 쇠사슬이 닥쳐드는 순간 빠르게 뒤로 물러나 망월을 가둔 검은 구체의 표면에 부딪혔다. 한제 체내에서 고신의 기운이 발현되면서 그 검은 구체로 섞여 들어갔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고신의 기운을 느낀 망월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크오오오!”
발광한 망월의 포효는 그야말로 온 세상을 뒤흔들 법했다.
망월의 분노는 고신의 손짓과 같다고 했다. 녀석이 분노할수록 발휘할 수 있는 신통력은 강력해졌다.
콰쾅!
결국 망월을 봉인한 검은 구체의 표면에는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그 안에서 폭발한 듯 이내 무너져 내려 사라졌다.
그때, 두꺼운 고신의 손가락 하나가 쑥 뻗어 나왔다.
망월은 두 성역의 전쟁이 시작된 후로 가장 강력한 신통력을 발휘했다. 분노가 담긴 포효에 주위의 수련자들은 상상 초월하는 힘을 느꼈고 지금까지 망월을 얕잡아봤거나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사람들도 지금은 심신이 떨려왔다.
무너져 내린 구체의 부스러기에도 강력한 충격력이 깃들어 있어, 미처 피하지 못한 수련자들은 피를 토해내며 육신과 원신이 모두 사라졌다.
전장 한복판임에도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크아아아!”
다시 한 번 망월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 포효는 고신의 그것과 비슷했고 세월을 관통하여 영원히 울려 퍼질 듯한 그 소리는 끝없는 충격이 됐다.
그런 상황에서 고신의 손가락이 뻗어 나오자 수련자들은 그 손가락으로부터 온 세상을 뭉개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느꼈다. 세상 어떤 힘도 그 손가락에는 저항할 수 없을 듯했다.
심지어 한제를 추격해오던 연시(煉尸) 역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섰다. 허나 이 시체는 이내 정신이 든 듯 갑자기 고신의 손가락을 향해 달려갔다.
쾅!
고신의 손가락과 연시의 몸이 닿은 순간, 굉음과 함께 연시의 몸에 얽혀있던 모든 쇠사슬이 마디마디 끊어졌다. 또한 연시의 몸도 무궁무진한 힘에 검은 핏덩어리로 터져 나갔다. 푸른 피부가 그 안의 근육이, 이어서 뼈까지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고신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뻗어 나왔다. 마치 그 뒤에 고신이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 고신은 거대한 팔을 휘두르며 전방의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파괴해 나갔다.
거대한 망월의 몸이 고신의 손가락을 따라 튀어나왔고 수많은 촉수를 하늘거렸다. 촉수로부터 짙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한데 망월의 두 눈과 마주한 순간, 한제는 불길함을 느꼈다.
망월은 또렷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봤고 눈이 마주친 순간 녀석도 한제가 자신을 마주보고 있음을 알아챈 듯했다.
망월이 봉인에서 벗어나자 나천성역 측은 전의를 불태웠다. 이번 전투에서 양측은 엎치락뒤치락하는 형세였다.
한편, 망월은 그 거대한 몸으로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며 온 우주를 뒤흔들었다. 특히 고신의 손가락은 더욱 빠르게 전방을 휩쓸었다. 그 앞의 수련자들은 그 고신에 닿기도 전에 육신이 무너져 내렸다.
한제는 일평생 살육을 자행하며 살아왔지만 지금 눈앞에서 죽어가는 수련자의 수는 그가 평생 죽인 사람들의 수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로서는 이렇게 거대한 전투는 처음이었다. 당시 주작성에서 일어난 선유족과 주작국 사이의 전쟁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무렵, 고신의 손가락은 곧장 흑살마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흑살마존은 굳은 얼굴로 이를 악물더니 입을 쩍 벌려 안개를 토해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용솟음 친 안개가 순간 한 마리의 검은 학이 됐다.
이 학의 입에는 검은색 잎 하나가 물려 있었는데 학이 입을 벌려 떨어뜨린 잎은 순식간에 1만 척 길이의 풀로 자라났다. 풀이 끊임없이 확산되면서 방어막을 형성했다.
고신의 손가락이 그 풀로 이루어진 방어막과 충돌했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풀이 휘청하더니 마디마디 부서져 검은색 기운으로 흩어졌다.
“크헉!”
얼굴이 하얗게 질린 흑살마존은 피를 한 움큼 토해내며 뒤로 밀려났고 재빨리 저물대에서 나무 조각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온몸이 식물로 뒤덮인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인간 형상의 조각상이었는데 얼굴 역시 식물로 뒤덮여 있어 또렷하지 않았다.
흑살마존은 곧장 그 조각상을 앞으로 내던졌다. 그러나 순간 일체의 빛을 집어삼킨 듯 어두운 빛이 그 나무 조각상에서 발산됐고 동시에 생명을 얻은 듯했다. 조각상의 인물을 뒤덮은 식물들은 기이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허상의 형태로 솟아올랐다.
그러는 사이 조각상 근처에서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기이한 기운의 검은 꽃 다섯 송이가 나타났다. 그중 마지막으로 나타난 꽃은 곧장 고신의 손가락을 향해 달려들면서 가운데가 입처럼 벌어지더니 극도로 서늘한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이어서 나머지 네 송이도 곧장 입을 벌려 대량의 검은 기운을 분출했다.
그와 동시에 팔짱을 끼고 있던 나무 조각상이 순간 정말 살아난 것처럼 붉은 두 눈을 떴다. 조각상은 팔을 뻗어 돌연 앞으로 달려들며 검은 기운 속에 녹아들더니 미세한 검은 실을 뿜어내어 고신의 손가락을 뒤덮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한제는 냉소했다. 고신의 손가락이 그렇게 쉽게 제압될 것이었다면 나천성역 수련자들이 갖은 힘을 들여 망월을 연맹성역으로 가져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망월은 나천성역이 이번 전쟁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