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108
108. 108. 올드 스쿨 (3)
“여기는 이양선 알지?”
유희성이 옆에 앉은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누군가 한 사람을 데리고 올 수도 있다고 하더니 그 사람인 것 같았다. 누군지 생각하다가 박재선은 그리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박재선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쌈빡한 쌈꾼’이나 ‘쌈꾼’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것입니다.”
“종종 보기도 했고 한두 번 인사도 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할지 모르지만요.”
샤이닝로드 시절에 몇 번 만나 인사를 했던 사람이었다. 나이는 박재선보다 네댓 살 정도 더 많은 사람이었다. 데뷔는 비슷한 시기에 했는데 이양선은 군대 갔다 온 후에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얼마 전까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돌 그룹은 누가 누군지 기억도 못했고 래퍼이기에 스웨그를 중시하기도 했고.”
여전히 아이돌은 가수나 뮤지션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샤이닝로드를 해체할 시점에 어느 예능엔가 출연하여 아이돌 그룹의 래퍼는 래퍼도 아니라는 독설을 뱉기도 했다. 또한 아이돌은 가수도 아니라면서 뮤지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내뱉어서 이후에는 아이돌 멤버들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이 친구가 너를 좀 소개해 달라고 해서 같이 나왔어.”
“저를요? 왜요? 선후배들과 같이 크루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으로 압니다. 요즘 잘나간다고 들었는데요.”
데드스팟이라는 크루 겸 레이블을 만들어서 주로 힙합뮤지션들끼리 어울려 다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러 방송국과 ‘킬 미 더 랩’이니 ‘쇼 미 유어 랩’ 같은 힙합경연 오디션을 기획하여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독선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기에 항상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가요계 선배에게 중지를 드는 것은 애교 수준이었다.
‘학교 다닐 때 이양선은 침몰시켜야 한다고 놀림을 당해서 이름을 바꾼 것인가?’
대화를 하다가 잠시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얼굴에 힘을 주기도 했다.
“같이 작업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힙합도 잘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아이돌 음악에 양념처럼 들어가는 것은 감질나지 않아요? 본격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아뇨. 저는 힙합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올드스쿨인지 모르지만 예술의 영속성을 중시합니다. 그렇기에 정형화되지 않은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순간의 퍼포먼스로 끝이 나는 경우도 많고요. 지금은 영상으로 남지만 그게 전부죠.”
박재선은 단호한 어조로 거절을 했다. 뮤지션이 흥이 나서 랩을 하고 현란한 퍼포먼스를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하면 되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종종 들려오는 소문을 보면 같이 어울리다 패가망신하기 딱 적당했다.
“하하, 애는 미술도 그림과 조각만 좋아하지 행위예술은 싫어해. 그런 면에서 힙합은 그리 좋아하지 않을 거야. 힙합의 형식을 차용해도 아이돌 수준의 싱잉랩 정도가 전부일 거야.”
유희성의 부연설명에 이양선의 표정이 그리 좋지가 않게 변했다. 박재선이 힙합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올드스쿨에 속한 사람은 힙합은 음악도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마치 아이돌은 가수도 아니라는 것과 비슷했다.
“물론 힙합도 음악의 영역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저 제 취향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왠지 따라 부르기 어려운 노래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 굳이 제가 만들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올드스쿨이 아니라 그건 일종의 편견 같군요. 그런 마인드라면 트렌드에 뒤쳐져 미국에 진출하더라도 성공하기 쉽지 않겠군요. 거긴 힙합이 대세 아닌가요?”
“힙합도 여러 종류가 있고 K-POP도 힙합과 통하는 면이 많죠. 제가 관심을 두지 않는 힙합은 갱스터랩 계열을 말하는 것입니다. 쌈꾼님이나 데드스팟이 추구하는 음악은 그쪽이고요. 미국의 경우 동부에서 이스턴스트럭션 레이블이 그런 계열이죠.”
박재선의 말에 쌈꾼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져갔다. 유독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만 기피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마저 부정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뭐랄까 7080세대들 같은 이야기를 하는군요. KM 천경식 사장님이 좋아할 이야기군요. 유독 골든 메이트와 작업하는 것도 이유가 있군요.”
이양선이 약간 빈정거리는 어투로 한 마디를 던졌다. 싸움을 거는 것일 수도 있었다. 더구나 표정마저 디스랩을 하는 것처럼 혐오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각자 좋아하는 음악이 다를 수 있고 저와 성향이 맞는 사람과 어울릴 수밖에 없죠. 저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예술보다 차라리 일러스트가 더 예술적이라 생각하는 편이니 말입니다.”
박재선의 말에 유희성이 난감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이양선을 데리고 나오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논쟁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괜찮은 뮤지션이라 생각했는데 반쪽짜리이군요. 알겠습니다.”
이양선은 박재선이 싸우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물러나지도 않으니 폭발하지도 못하고 그저 빈정거리기만 했다. 그런 말에도 박재선은 분노하지 않고 태연한 기색을 보였고 그것이 그를 더 짜증스럽게 만드는지 표정만 더 험악해졌다.
더구나 185㎝가 넘는 박재선이기에 고작 170㎝이 조금 넘는 그라 대들지는 못했다. 표정만 보면 한 대 치고도 남을 것 같지만 달려들지는 않았다.
결국은 그 자리에 있기 그런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나가고 말았다. 박재선은 그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기에 굳이 자리를 파할 이유도 없었고 유희성도 잠시 따라서 나갔다가 들어왔다.
박재선은 유희성이 들어오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식당 종업원이 방안으로 들어오자 식사를 주문했다.
“쟤가 왜 온 것인지 아는 것 같군.”
“최근에 미국 진출한다고 난리를 치는데 모를 수가 없죠. 저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서 미국에 같이 가자는 것 아닙니까? 같이 가지 않더라도 은근슬쩍 같이 움직일 의도 같은데요.”
박재선의 말에 유희성은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도 그런 것을 알면서도 데리고 온 것은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어 보였다. 그렇기에 탓을 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다 욕할 때 그나마 쟤네들이 편을 들어 주었어. 그 때문에 저들과도 종종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물론 음악적인 견해가 달라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압니다. 어지간한 뮤지션은 저들과 같이 작업하지 않죠. 아이돌 그룹은 아예 인사도 하지 않기로 했고요. 더구나 저들 주변은 항상 논란이 끊이지를 않지요. 재미로 애꿎은 사람에게 디스랩을 해서 싸움을 거는 사람들 아닙니까?”
상대에게 감정은 없다면서 디스랩을 날리는 사람들이었다.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유명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법적조치를 취하면 장난을 하면 장난으로 받아야지 죽자 살자 달려든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법정소송에 가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재미없게 산다는 비난을 했다. 그 정도는 표현의 자유라는, 그런 언론플레이로 소송마저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너라면 질색할 스타일이긴 하지. 매사에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타입이야. 너처럼 대놓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문데 용감하구나.”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피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요. 저들이 하는 스타일의 힙합은 하고 싶지 않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인데, 어정쩡하게 말할 필요는 없죠.”
“그건 그렇지. 물론 네가 하려고 하면 못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재미가 없어요. 그러니 못할 겁니다.”
박재선은 단호한 어조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특히 범죄마저 옹호하는 태도를 보면 더욱 거부감이 컸다.
“그래, 알았다. 널 어리버리한 얼간이로 알고 속여 넘기려고 하는 것 같아 걱정을 했는데 눈치가 빤하구나. 몇 년 전에 BTU를 만든 안성진 선배에게도 접근했다 실패했지.”
“그분도 올드스쿨이죠? 음악은 트렌드를 따르지만 행동은 상당히 보수적인 면이 있죠. 상당히 원리원칙을 따지는 분으로 압니다. 그 덕분에 BTU가 롱런할 수 있었죠.”
“그건 그렇지. 물론 합리적이기도 하고. 요즘 피곤하지? 여기저기서 연락도 많이 오고. 너를 이용하려는 자들 태반이고.”
“작년 연말에도 그랬죠. 어쨌든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많고요. 그런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제게 뭔가 이용할 거리라도 있으니 접근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아무 것도 없다면 사람들이 거들떠보기라도 하겠어요?”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지.
박재선은 데드스팟을 보면서 지뢰밭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런 자들과 어울리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정말 힙합은 싫은 거냐? 그쪽도 감각이 있어 보이는데. 굳이 그렇게 벽을 쌓을 필요는 없지 않아? 더구나 힙합이라는 것은 젊었을 때 하지, 나이를 먹으면 감각이 사라지는데.”
유희성은 박재선이 너무 편향적인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어떤 편견일 수가 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갱스터랩처럼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성향의 랩을 하기 싫은 것이죠. 그런 면에서 저도 올드스쿨인 것이죠.”
“외국어로 고상하게 말하는 것 같은데 결국 꼰대라는 말이지. 어린 녀석이 너무 반듯하게 살려고만 하고 있어.”
“아무리 잘 나가는 슈퍼스타도 사생활이 엉망이면 오래 못가 무너지고 맙니다. 미국의 나보다 두세 살 어린 한 녀석을 보면 그 정도 명성을 가지고도 결국 감방에 가지 않습니까? 국내도 그런 식으로 무너진 선배 뮤지션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광기라고 하는 예술혼을 불태울 때는 불태워야 해. 나야 그렇지를 못해 조로를 하고 말았지만.”
유희성은 좋은 음악가이지만 대단한 음악가는 아니었다. 뭔가 한 끗 부족한 느낌이었고 그것이 바로 열정이라고 했다.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광기가 없었다.
“저도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난 후에 앨범 제작에 매진하여 명반을 한 번 만들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도 작업을 하고 있고요.”
“앨범 언제 내려는데?”
“8월까지, 늦어도 9월 초에는 완성을 하고 9월말이나 10월 초에 발매를 할 계획입니다. 유동적인 것은 칼리 크리슨의 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편곡하는 작업을 같이 하기 위해 미국을 보름 정도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정규앨범 작업을 마치고 미국에 가서 작업한다는 말이지?”
“그럴 예정인데 유동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쪽 작업이 길어지면 못할 수도 있고요.”
“드라마 촬영은 5월 정도에 끝날 예정이라는데 그 기간 동안 작업을 마칠 수 있어? 너무나 시간이 촉박한 것 같은데.”
“노래는 이미 다 만들어 두었어요. 지금은 가다듬으면서 혹시라도 한두 곡 더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으면 교체할 예정입니다.”
“하긴 너야 작업이 빠르니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MR도 대부분 다 만들었겠구나.”
“세션 녹음도 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기타가 가능하니 시간이 나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실력이 좋아지면 파일을 교체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면서 편곡도 가다듬을 수 있고요.”
“너처럼 하면 다른 세션맨들은 굶어 죽겠다. 너야 좋지만 음악계 전체를 보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금도 가상악기 때문에 그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어 문제인데.”
유희성의 말에 박재선은 틀린 말이 아니기에 머쓱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직접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이지만 다들 박재선처럼 한다면 유능한 연주자가 나올 수가 없었다.
“고민을 해봐. 혼자 잘 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야. 좋은 공연을 하려면 뛰어난 세션들도 있어야 하니. 그리고 세션들 특유의 영감도 있어. 작품에 그들만의 느낌을 추가할 수도 있고.”
박재선은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한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자각하자 고개를 흔들었다.
“참, 어렵네요. 한 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한 번 불러서 연주를 들어봐. 각 세션들마다 그들만의 독특한 느낌이 있어. 그러다보면 너도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나도 기타나 건반은 자신 있지만 세션을 불러서 녹음을 하는 경우도 많아. 연주자 특유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야. 비용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거기에 매몰되지는 마. 필요하다면 과감히 써야 할 때도 있어. 이제 형편도 나아져 궁상을 떨 때는 지났잖아.”
박재선은 무슨 말인지 알기에 그런 시도를 하기로 했다. 그런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음악적인 지평을 넓히는 길이 될 것도 같았다. 혼자 모든 것을 하다보면 결국 편협해질 수 있었다.
109. 올드 스쿨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