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ness: Top Star of Crazy Talent RAW novel - Chapter 61
짙은 어둠 속.
강림은 깊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아련한 눈빛으로 한 곳을 바라봤다.
그곳은 그가 있는 곳과 다르게 환한 빛이 가득했다. 그 빛 속에 새하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있었다.
청초한 자태의 여인.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마치 이별을 앞두고 연인을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코앞에 있는 강림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좀처럼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어둠 너머에 그가 있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림은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칼을 들고 그 속을 헤집고 있는 것 같았다.
저승으로 향했던 강림.
그는 맡은 바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이 저승에 불법 침입했다. 그런 그를 염라가 그냥 놓아줄 리 없었다. 그 결과 강림은 염라와 함께 다시 저승으로 가야 했다. 그게 저승의 지엄한 법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떠날 수는 없었다.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로 그의 연인인 설빈 때문이었다.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그였다. 모든 것이 과양생이와 얽힌 운명 때문이었다.
“저 강림! 소원이 있습니다.”
어둠 속을 바라보며 외쳤다.
염라 대왕에게 하는 절박한 그의 하소연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흩어졌다. 과연 이 외침이 염라까지 닿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외침은 끊어지지 않았다. 강림의 눈은 붉게 물들었다. 그 순간 염라가 나타났다.
“제안했던 저승사자의 임무를 맡을 텐가?”
“네!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렇다면 하루를 주지. 내일 동틀 녘 전에 삼도천을 건너야 하네.”
“감사합니다.”
“만약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와르르!
어둠을 꿰뚫는 번개.
그것은 강림을 위협하듯 주변에 넘실거렸다. 마치 악마가 번쩍이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강림은 이를 악물었다. 염라의 징벌이 내린다는 위협이었다. 어쩌면 설빈마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염라는 곧바로 사라
졌다.
“설빈!”
강림은 그제야 어둠을 찢고 나왔다.
그리고 그의 연인 설빈을 덥석 안았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설빈은 도르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을 닦으며 강림은 서서히 그녀의 입술을 향해 다가섰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기 직전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컷!!!”
“다음 장면 준비할게요. 혜리 씨의 오버더숄더 샷입니다.”
“조명 온도 다시 한번만 체크해줘요.”
성우는 그제야 숨을 쉬었다.
첫 촬영부터 키스씬이라니!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상대 배역인 손혜리와 친해질 틈조차 없었다. 아직 서먹한 사이이기 때문에 성우는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그에 비하면 손혜리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로코퀸이라 불리는 그녀.
당연히 다양한 종류의 키스…
아니 여러 촬영 경험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성우는 이게 첫 경험이었다.
물론 키스를 처음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도 첫 키스만큼 떨리는 것 같았다. 적어도 그때는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입을 맞춘 것은 아니었다. 그때 손혜리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봐요!”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 포즈로 그녀는 성우를 째려보고 있었다.
마치 나 이제부터 너한테 따지려고 하니 조심하라는 의미 같았다. 그 포즈는 제법 앙칼져 보였지만, 또 상당히 귀엽기도 했다. 왜 남자들이 손혜리라면 뻑가는지 이해가 되었다. 성우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녀는 그에게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도망가면 저는 어떻게 해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설마 나한테 입 냄새나는 건 아니죠? 양치랑 다 했단 말이에요.”
“그럴 리가요.”
성우는 손바닥을 흔들며 부정했다.
사실 그가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입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자신 역시 여러 차례 양치와 가글까지 한 상태였다. 더구나 그녀가 다가올 무렵 맡아지던 향은 무척 좋았다. 상큼한 봄날의 향은 그녀의 이미지와 무척 잘 어울렸다.
“부끄러움은 여배우 몫이에요. 아시겠어요?”
“네!”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존댓말 할래요? 동갑이라면서요.”
“그래도 선배님인걸요.”
“내가 무슨 원로 배우도 아니고 그냥 말 놔요.”
데뷔 4년 차 여배우 손혜리.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연예계에 데뷔했다. 다른 배우와 비슷하게 길거리에서 캐스팅된 그녀였다. 그렇다고 아예 무명 시절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단역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그녀가 확 뜬 것은 ‘여우비’라는 단편 드라마 덕분이었다.
귀여운 얼굴.
청초한 분위기.
예상외의 몸매까지 남자들이 좋아할 요소는 모두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녀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런 외적인 요소보다 그녀는 연기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오히려 외모가 그것을 가리고 있다는 평도 많았다. 물론 그런 평가는 이제는 많이 사라진 상태
였다.
지난 영화 ‘오빠야’ 때문이었다.
그녀로서는 다시 멜로를 찍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고 또 어떻게든 다시 재기해야 하는 작품이었다.
“말 놓는 거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할게요.”
“뭐 맘대로 해요. 나는 말 놓을 거니까.”
“그렇게 하세요.”
“부으으으”
한껏 뺨을 부풀린 혜리.
그녀는 그렇게 자리를 비켰다.
맘처럼 대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스태프 몇 명이 키득거렸다. 마치 막 연애를 시작한 풋풋한 연인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둘은 굉장히 잘 어울렸다.
멜로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키가 제법 큰 성우와 아담한 혜리는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외모였다. 그때 마침 촬영을 재개하는 신호가 들렸다.
“다시 갈게요. 슛!”
하 PD의 신호가 떨어졌다.
성우는 다시 천천히 다가섰다.
입술이 바로 코앞에 보였고 그 위로 살포시 다가섰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당연히 있어야 할 숨결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혜리는 아예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뭐지?’
-너보다 얘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
‘왜?’
-여자의 마음을 네가 알기나 하겠냐. 내가 말이지 한참 잘 나갈 때는 동네 아낙네들…
더 이상 두부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둘의 입술은 이미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기분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키스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격정적인 딥키스는 아닌 게 정말 다행이라 여겼다.
물론 모두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연기자가 로봇은 아니었다. 그 느낌이 전혀 없을 리가 없었다. 잠시 그가 해롱거리고 있을 무렵 다시 컷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정지되어 있던 촬영장.
그 소리와 함께 현장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에 마법의 힘이라도 담겨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같이 서둘러 물러서지 않았다. 혜리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도 안 마주치고 등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에 성우는 무척 난감했다.
차라리 때리고 부수는 액션 영화가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멜로의 섬세함은 그에게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성우가 했던 사랑은 항상 힘들고 아팠기에 그럴 수도 있었다. 그래도 모두 경험이라 여겼다. 아직 다양한 장르를 경험해보지 못한 성우이니
어쩔 수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할게요.”
“담요 어서 가져와요.”
날씨는 벌써 제법 차가워졌다.
특히 혜리가 첫 촬영부터 고생했다.
모두 그녀가 입고 있는 얇은 의상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담요를 돌돌 말고 서둘러 차 안으로 향했다. 성우는 그런 그녀를 흘깃 보고 그 역시 밴으로 향했다.
어서 다음 촬영 장소로 향해야 했다.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여기서 딜레이가 생기면 한 장면 때문에 또 수십 명이 밤을 새워야 했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성우는 잠시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자신이 찍을 것은 거의 다 끝내고 마지막 몇 컷을 위해 대기하는 중이었다. 아마 두어 시간 정도만 더 지나면 끝날 것으로 보였다. 뭐 그래 봐야 몇 시간도 자지 못하고 다시 나와야 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성우는 자신의 의자에 앉아 뭔가를 보고 있었다.
유부를 위한 책이었다.
아무래도 반려동물은 처음인 그였다.
특히 고양이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책까지 사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성우는 고개가 꺾였다. 밤을 꼬박 새운 촬영 일정 때문에 밀려오는 피로 때문이었다.
그렇게 꾸벅이며 있을 무렵.
누군가 그에게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왔다.
그리고는 무릎 위에 위태롭게 걸쳐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그 느낌에 성우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혜리가 그의 옆에 쭈그려 앉아 책의 표지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 고양이 키워?”
“응?”
“으응? 그게 긍정이야 의문이야? 그리고 말 놓기로 한 건가?”
성우는 고개를 흔들며 잠을 쫓았다.
그리고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그 질문에 답했다.
“얼마 전에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 유부 때문에 읽는 거야.”
“유부?”
“유부초밥이랑 색이 비슷하거든. 이름이 이상한가?”
“아~ 치즈태비라서 유부구나.”
“치즈태비?”
처음 듣는 단어였다.
책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다.
혜리는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지 치즈태비에 대해 가볍게 설명했다. 그녀가 말을 꺼낸 치즈태비는 고양이 캐릭터이자 유부처럼 노란 치즈 색의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라 했다.
집사들이 사용하는 언어.
그것은 확실히 뭔가 특별했고 또 애정이 가득했다. 특히 자신을 집사라 칭하는 것이 무척 독특했다. 성우는 그쪽을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있게 느껴졌다. 아마 ‘돌팔이’ 무사귀의 지적 호기심 때문인 것 같았다.
“고양이 좋아하나 보네?”
“물론이지!”
“혹시 집에서 키워?”
“아니···”
혜리는 갑자기 시무룩했다.
부모님의 알레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독립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라 말했다. 그 정도로 그녀의 고양이 사랑은 대단해 보였다. 아마 그녀가 데려오는 고양이는 엄청난 사랑을 받을 것 같았다.
“혹시 말이야. 내일 촬영에 데려올 수 있어?”
“우리 유부를?”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유부가 나오기 싫다면 괜히 무리하지는 마.”
“뭐 한 번 시도는 해볼게.”
그 말에 혜리는 활짝 웃었다.
누가 배우가 아니랄까 봐 표정의 변화가 무척 다양했다. 마치 얼굴로 말하는 것 같았다. 둘은 그렇게 고양이라는 주제로 제법 오래 이야기했다. 처음 그녀에게 느꼈던 도도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녀의 미모는 열일을 하고 있었다. 눈웃음
짓는 혜리는 무척 아름다웠다.
-정신 차려라.
‘나도 알고 있다고.’
-알긴 뭘 알아? 아주 영혼까지 내줄 거 같은데.
그때 조연출이 다가왔다.
때마침 그가 왔기에 성우는 안도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두부의 말처럼 홀딱 빠져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둘을 향해 온 그는 다음 촬영을 준비해달란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에이··· 5분도 못 쉬게.”
“벌써 20분은 된 거 같은데.”
“정말? 시간 빨리 간다.”
하지만 성우는 그편이 더 좋았다.
마침내 첫 촬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서 마치고 집에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특히 집에서 혼자 있을 유부가 엄청 걱정되었다. 차라리 혜리의 말처럼 촬영장에 같이 오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오늘 마지막 컷입니다.”
“슛!”
카메라 앞에 선 성우.
그는 잠이 든 설빈을 바라봤다.
이제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염라대왕에게 했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마지막 발걸음을 떼며 성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어느 사이에 동이 틀 시간이 다가왔다. 멀리서 닭이 홰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삼도천을 건너야 했다.
성우는 혜리의 이마를 살짝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다사다난하던 이번 생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나요. 내 사랑.”
끝
ⓒ l살별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