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축기비경(築基祕境) (1)
날이 밝았다.
이제 곧 외당으로 향해 축기비경으로 간다.
어젯밤 노조 놈이 했던 이야기에 따르면 비경 내부엔 상급법기 이상의, 법보를 들여보낼 수 없다 하였다.
법보의 힘 정도면 내부에 설치된 봉인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기에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 팔대 종문 모두가 합의한 사항이라 했다.
각 종문의 후기지수는 분명 뒷배 또한 만만치 않은 이들일 터였고, 그리하여 나는 그들이 법보라도 들고 오지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상급법기가 허용되는 한계였기에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애초에 연기 10성의 힘으론 법보를 구동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래도 놈들은 동급의 수도자들보다 훨씬 강하겠지……. 천 공자 놈도 마찬가지일 테고. 방심해선 안 된다.’
* * *
이제 출발할 때가 되었다.
나는 허리춤에 자색보주(紫色寶珠)를 매달았고, 품속엔 노조 놈이 준 옥간도 챙겨 넣었다. 물론, 혹시 몰라 검은 빛깔의 단약 또한 저물대에 고이 담겨 있다.
지금 오씨 가문의 정문 앞에는 내가 처음 왔을 때처럼 수백의 인물들이 모여 나를 배웅해 주고 있었다.
노조가 나서며 말했다.
“그럼 다녀오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노조 놈은 나를 따라 비경까지 갈 생각인 듯했다.
‘미친…….’
십중팔구 모든 변수를 차단하려는 의도일 터.
노조가 비행법기를 꺼내 들었고, 그 위엔 나와 오현 놈, 그리고 노조까지 탑승한 채 외당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단문산 중턱에 위치한 외당에 도착했다.
그곳은 만약각과 달리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딱딱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외당에 소속된 수도자들 또한 분위기가 보통이 아니다.
외당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하나는 종문에 존재하는 외문을 산하에 두어 관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종문 외부에 나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번 축기비경 행사를 외당이 담당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
외당주(外堂主)로 보이는 결단기 수도자가 나와 노조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 장로. 오셨군. 다들 얼마나 극성인지 모르겠소. 비경에 참가할 자들은 모두 두 시진은 일찍 모였소이다. 하하하!”
나와 노조 또한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거의 2각(30분)은 일찍 왔다.
하지만 외당주의 말투는 약간 노조를 질책하는 듯했다.
노조 놈이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대꾸했다.
“하, 하하. 그랬습니까? 저희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당주님.”
“아니오. 괜찮소이다. 한데, 그 아이가 주 노조님께서 관심을 두신 아이라지? 나도 얼마 전 오 장로의 가문에 양자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소.”
“예……. 맞습니다.”
노조 놈이 쩔쩔매는 모습은 처음 본다.
같은 직급의 주요 단약사인 주 장로에겐 거침없는 언행을 보이더니,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난 듯했다.
장좌, 당주 등의 직급이 결단 후기를 넘어서야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오 장로도 참 극성이외다. 다른 후기지수들은 고작 호법을 인솔자로 대동했거늘……. 오 장로는 양자를 참 아끼는 것 같소. 가문의 가장 웃어른이 나설 줄이야. 하하핫!”
의심쩍어하는 외당주 놈의 추궁에 노조의 이마에 땀이 흐른다.
잠시 뒤.
외당주는 노조를 어느 정도 괴롭혔다 싶었는지 모두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럼 출발하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일찍 가는 것이 다들 원하는 바일 테지. 흠!”
말을 마친 외당주는 저물대에서 비행법기를 꺼내 들었는데, 그것은 거대한 규모의 군함이었다.
비록 지금 시대에 대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얼핏 보기에도 조각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용을 자랑했다.
외당주는 사람들의 놀란 표정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후 승선을 명했다. 모두가 그의 말에 따라 하나둘씩 올라탔다.
갑판의 길이만 족히 십 장(30m)을 넘어갔기에 아홉의 후기지수들과 그 인솔자들이 모두 넉넉히 자리할 수 있었다.
한쪽에선 천 공자 놈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는 것이 보인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그에 화답했다.
“어, 천 공자! 이리 와!”
놈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짓는다.
하지만 발걸음을 놀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장철, 나를 왜 불렀나?”
“그냥, 가는 동안 이야기라도 하면 좋잖아?”
“내가 네놈 친구라도 되는 줄 알았나? 헛소리하지 마라.”
“친구?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친구가 되어 보는 게 어때? 너 친구 없잖아. 맞지?”
움찔.
내 물음에 천 공자는 정곡을 찔린 얼굴이 되었다.
대단한 가문의 장자로 태어나 누구와 친해졌겠는가?
주위에 추종자들이 많긴 했지만 그들과 편하게 지낼 수는 없었을 터.
천 공자 놈이 예상치 못한 내 제안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이 귀여운 놈을 한 번 더 놀려 줄 생각이었다.
“근데, 친구가 되려면 ‘친구비’를 내야 하는 것은 알고 있겠지?”
천 공자가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친구비라고……? 그게 뭐지?”
“간단히 말해서 서로의 우정을 증명할 증표라 할 수 있지! 어때, 난 친구비로 축기단 하나면 충분하다.”
내가 놈의 역린이나 다름없는 축기단을 언급하자, 놈의 안색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 개자식이 또 축기단을! 네놈은 축기단에 한(恨)이라도 맺힌 것이냐. 지독한 놈!”
“하하하!”
그렇게 나는 축기비경으로 향하는 동안 천 공자를 놀리며 시간을 보냈다.
* * *
외당주의 군함을 타고 거의 보름 동안이나 날아갔다.
하늘을 날아가며 아래를 바라보니, 무진장(無盡藏)의 속도로 풍경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결단 후기 수도자의 영력과 범상치 않은 비행법기가 조합되니 그 결과 또한 심상치 않았다.
얼마만큼 날아왔을까?
내 생각엔 세상의 전부라고 알려진 대륙마저 넘어서지 않았을까 싶었다. 며칠 전부턴 땅이 보이지 않고 온통 바다뿐이었다. 너울너울 파도치는 바다를 보며 5일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
그곳엔 하나의 섬이 자리해 있었다.
“다 왔군.”
섬을 발견한 오 장로가 말했다.
“저곳이 축기비경이 위치한 땅입니까?”
오 장로가 주변을 돌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렇다. 300년 전 내가 후기지수였을 시절에도 저곳으로 향했었다.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의천군이 수도자들에게 쫓기며 도망친 곳이자 결국 봉인당한 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군요…….”
섬을 바라보니, 그곳의 주위엔 네 명의 수도자가 있었다.
그들은 섬의 사방(四方)을 점한 채 공중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들은 최소 결단기 수도자로 보였는데, 눈을 감고 수행에 빠져들었는지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듯 압도적인 기파를 풀풀 풍겨 내는 중이었다.
“노조님, 저들은 누구입니까?”
내 물음에 오 장로가 턱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음……. 저분들은 사대 호법존자(護法尊者)분들이다. 비경에 의천군이 살아 있을지 모르니 누군가 함부로 침입해 결계를 망가뜨리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저렇듯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이지.”
“수천 년간 계속 저것을 이어 왔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들은 인생을 바쳐 저곳에만 머무른단 소리인가?
나는 약간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무리 그래도 죽을 때까지 저곳에서 지내라 한다면 누가 그 명에 따르겠느냐. 내가 알기론 백 년을 주기로 교대하는 것으로 들었다.”
“백 년…….”
결단기에 오르면 수명이 500년은 늘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축기까지 포함한다면 수명이 족히 7, 800년은 될 터.
그래도 사람이 백 년 동안이나 경계 근무를 선다는 소리에 나는 약간의 존경심마저 드는 것 같았다.
마침 우리가 온 것을 알아챈 호법존자들이 가부좌를 튼 상태 그대로 눈을 번쩍 떴고 이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외당주가 나서며 그들에게 말했다.
“네 분 모두 수고가 많소이다. 단문종에서 나왔소.”
존자들 중 하나가 외당주의 말에 답했다.
“그런가……. 자네들이 왔다는 것은 비경을 개방할 시기가 되었다는 뜻일 테지. 벌써 100년이 지났단 말인가……. 이제 곧 후임자들이 오겠군. 흐, 흐흐, 흐하하핫!!”
놈이 중얼거리더니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린다.
아무래도 기나긴 경계 근무가 끝나서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후임자들이 겪어야 될 고생길을 상상해서 기쁜 것이든지.
“다른 종문은 아직 안 왔단 말이오? 우리 단문종이 가장 빨리 온 것인가?”
“그렇네. 우리야 뭐, 항상 수행에만 빠져 있으니 날짜를 파악할 겨를이 있겠소? 이제 보니 당신은……. 단문종의 외당주이셨구려.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 하하.”
호법존자는 말을 하던 와중 외당주를 알아보았는지 하대를 하던 어조가 점점 변해 갔다. 백 년 동안이나 한자리에 머무른 탓에 정신이 약간 오락가락한 듯했다.
외당주는 그의 우스운 반응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결단 후기쯤 되니 어딜 가더라도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었다. 단 한 걸음만 내디디면 원영의 경지에 올라 이 세상에서 허락된 최고 경지에 오르는 셈.
외당주는 짧게 대화를 마치고는 다시금 비행법기로 돌아와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을 때.
다른 팔대 종문 또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콰아아아─!!
사방에서 비행법기들이 날아들며 비경이 위치한 섬 근처로 접근하고 있었다.
유난히 기세가 흉흉한 것들은 마도 종문으로 보였고, 그렇지 않은 쪽은 단문종과 마찬가지의 정도 종문일 터였다.
정도 종문으로 예상되는 비행법기 둘이 우리 근처에 다가와 멈춰 섰고, 마도 종문은 그들끼리 모여 대오를 갖추었다.
이것만 보아도 암묵적으로 수도자들 간에도 더 가깝고 먼 사이가 있음이 확실했다.
모든 종문이 모였다고 판단되자, 외당주가 옆에 시립해 있던 호법을 불렀다.
“사마풍(司魔風).”
호명된 호법이 후기지수들 앞으로 다가와 옥간을 하나씩 내밀었다. 후기지수들이 그것을 받아 들자, 외당주가 덧붙였다.
“각 종문에서 유의해야 할 후기지수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모두 비경에 들어가기 전 숙지하도록 해라. 그것은 극비 사항이니 외부에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다. 그래서 지금에서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종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후기지수들이 모두 눈을 반짝이며 외당주의 말을 경청했다.
어찌 보면 지금 외당주가 해 주는 조언에 따라 비경 내부에서 사느냐 죽느냐가 갈릴 수도 있기에 모두가 진지한 모습이었다.
“30년 전엔 지맥축기를 이루려면 여덟 갈래의 지맥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른다. 지난 수천 년간 계속해서 지맥을 이용해 왔기에 그곳의 기운도 결국 쇠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되도록 많은 지맥을 확보하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후기지수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곧 비경에 들어갈 문을 개방할 것이다. 하지만 비경 자체는 이곳이 아닌 외부의 하늘 즉, 성천(星天)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통과하게 되면 모두 무작위의 공간에 흩어지게 될 것이다.”
흩어진다.
대다수의 후기지수들이 처음 듣는 정보에 제각각 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천조위 삼 형제만은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안색에 변함이 없었다.
“명심해라.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방패의 역할을 해야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헛된 욕심을 품지 말고! 자질이 부족한 녀석들은 그저 안계를 넓힌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나는 너희들이 되도록 살아 돌아왔으면 하는구나.”
헛된 욕심이라는 대목에선 잠시 눈을 돌려 몇몇 제자들에게 눈치를 준다.
필시 일전에 들은 그 ‘임무’를 수행하라는 압박으로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모두가 공정한 경쟁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 한 명의 후기지수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명은 그를 위한 호위병이자 희생양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팔대 종문은 지나친 희생을 막기 위해 지맥의 수에 맞게 제자들을 들여보내기로 하였고, 호위병 여덟 명을 이용해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축기단이라는 보상을 미끼로 그들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