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2087
마탄의 사수 외전 (736)
말문이 막히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하는 삐뜨르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저격수의 기본은 평정심과 인내심.
그 어느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하며, 어떤 요소가 방해되더라도 그것을 무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하 자신은 그러한 점에 대해서라면 타고난 기질 외에도 김 반장에게 가혹할 정도로 훈련을 받았다고 여겨 왔다.
지금까지는.
“삐뜨르, 이 미친―. 당신, 너! 지금 만약! 만에 하나라도 헛짓거리를 할 생각이면! 설령 가 뭔가 잘못되고 [절망의 미래]가, 그, 말이야! 어!? 내가 무슨 수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당신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
그런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나 뒤흔들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미들 어스를 통틀어 얼마나 될까.
키드나 루거 등의 는 어림도 없다. 그들은 설령 지금 이 시점에서 이하 자신을 향해 총을 쏘더라도 그들의 행위에 한 치의 의구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기정을 포함한 는?
과거 혜인의 경력이 있다곤 하지만 그 이후 의 인원들과 쌓아 올린 신뢰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사촌 동생인 기정은 말할 것도 없다.
라르크가 이렇게 했다면 더 큰 수가 있겠거니, 라고 생각해 버렸을 터. 그 점에 대해서라면 신나라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 이지원이라면? 심지어 미들 어스 세계를 떠난 알렉산더라면?
한때나마 대적했던 카렐린이나 아그롬니 이고르가 이런 행동을 해도 이하는 믿었을 것이다.
“뿌히히히히힛!”
그러나 눈앞에서 웃고 있는 미야우는 어떠한가.
랭킹으로 따지면 이제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어올 정도의 실력자건만.
그와 에서도 나름대로 협업을 해 왔건만.
“웃지 말고 답해!
한마디의 발언과 한 줌의 웃음 그리고 표정만으로도 이하 자신이 이렇게나 폭발적인 감정을 드러내게끔 만들다니!
“이거야말로 서프라────이즈로군, 결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천하의 하이하도 이 정도로 궁지가 몰리면 이렇게 되는 건가?”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삐뜨르가 기대하던 재미 포인트였다.
“으, 응……? 갑자기 무슨―.”
“적어도 하이하 당신의 머릿속의 [나]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내가 정확~하게 원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지금의 장난은 가치가 있겠어. 뿌히히히힛!”
타 랭커와 아웃사이더들과 삐뜨르 자신이 이하에게 완전히 되어 있기를 바란다는 점.
이하는 마치 뜬 눈으로 코를 베인 사람처럼 그저 멍하니 삐뜨르를 바라봐야만 했다.
타인에게 자신의 이미지가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물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에 가까울수록 만족하는 것도 인간인 이상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근데 그걸…… 지금? 이 타이밍에? 이게 무슨 상황인 줄은 알고―.’
이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둘러싼 결계는 이제 8.9m수준까지 줄어든 상황, 일각을 다툴 정도로 급박한 데다, 그 리스크로 걸려 있는 것은 단순히 이하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절망의 미래]를 막아 내는, 즉, 의 성패가 걸려 있는 와중에 이런 장난을 치다니!
“부흐흐흐, 하지만 조금 전에 한 말은 진심이야. 생각대로 모든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하이하?”
삐뜨르는 금세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이하가 원했던 것은 삐뜨르로 하여금 대천사들을 방해하여 결계를 해제하는 것.
[분명 준비 시간이 부족하여 인간 하이하에게만 적용되는 결계만 생성한 것은 한탄할 일.] [그러나 미야우 삐뜨르, 네가 우리를 건드릴 수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그러나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하가 무어라 답을 하기 전, 대천사는 불렀다.
[멜렉 타우스.]이곳, 정문 내 상급 천사들의 지휘관의 이름을.
공작의 화려한 꽁지깃 같은 날개를 가진 멜렉 타우스는 대천사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임무는 부디 저희에게……. 대천사님들께서 원하신 충분한 시간을 벌지 못한 죗값을 지금 충당토록 하겠습니다.”
그제서야 이하는 알 수 있었다.
삐뜨르는 이하 자신이 말하지 않더라도 처음부터 자신이 움직일 것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그 경우 반드시 자신을 저지할 세력이 움직일 거라는 것까지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는― 나보다 훨씬 냉철하게 전장의 상황을 읽고 있었던 건가.’
그 지점까지 가서야 이하는 삐뜨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이해했다.
육백이 넘는 상급 천사 따위, 이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삐뜨르에게도 과연 그럴까.
어느새 모든 체력을 회복한 상급 천사 육백을 상대하며 대천사 중 최소 하나, 가급적 둘 이상의 집중을 끊어 낼 수 있을까.
“도비엘, 사하퀴엘, 아브락사스, 각 이백을 이끌고 미야우 삐뜨르를 포위한다. 나머지 육십이의 상급 천사는 나와 함께 간다.”
삐뜨르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기에 [생각대로 모든 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미리 말을 한 것일 터.
“후우우우…….”
이하는 그 시점에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는 유저라면.
거기까지 내다볼 수 있는 유저라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장난을 칠 정도의 성격이라면.
“하아아아…….”
오히려 믿음이 가는 게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펄럭─ 펄럭── 펄럭──!
666명의 상급 천사들이 펄럭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온 세상을 덮을 것처럼 크게 울릴 때, 이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삐뜨르를 보았다.
“삐뜨르 씨, 분명 생각대로 모든 일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부힛?”
“그래도 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새삼스럽게 생각할 것도 없다.
자신은 저격수다. 저격수가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은 평정심과 인내심.
“믿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믿음, 그 신뢰로 이루어지니까.
삐뜨르는 이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천천히 씨익,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가 귀에 닿을 정도로 늘어지는 순간, 삐뜨르의 모습은 사라졌다.
“모두 대비―.”
“부히──────히히힛! 해 보자고, 미들 어스의 명운을 건 숨바꼭질을, 의 천막 안에서 말이야! !”
───────────……!!!!
펄럭거리는 소리는 날갯짓으로만 나는 게 아니었다.
허공에 떠오른 삐뜨르의 몸에서부터 사방으로 펼쳐져 나가는 어둠, 그것이 빛을 가린 초대형 서커스 천막임을 알았을 때, 이미 이하와 대천사는 물론 666명의 상급 천사들까지 모두 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 * *
통합 운영 관리실의 운영팀장은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 이제 됐나? 그치? 됐겠지?”
“확실히…… 삐뜨르가 이 시점에 배신이라도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요. 그 고비는 넘은 것 같고―.”
“상급 천사 제압 수 실시간 카운팅 중, 무난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니, 고비만 넘은 게 아니네요. 상급 천사들도 만만치 않은 전력인데 벌써 백 기가 넘는 유닛 제압이라니, 단순히 시간만 따지면 하이하보다 더 빠른 속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데요.”
“흐흐흐, 그렇지? 아직 저 사항을 모르는데도 주가가 반응한다는 건, 지상에 있는 유저들에게 확실히 클리어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그렇습니다. 미들 어스 내 에 비추는 영상들 대부분은 와이튜브 실시간 송출도 담당하고 있긴 한데, 현재 해당 영상 채팅창 상황으로 보나, 일반 인터넷 커뮤니티로 보나,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직원들의 보고를 받으며 운영팀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는 이미 관리실장과 개발 총괄 이사를 향해 있었다.
“이제 된 거 아니겠습니까, 관리실장님? 개발 총괄 이사님?”
“……운영팀장님.”
“예, 관리실장님!”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관리실장은 우선 운영팀장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자사주를 얼마나 매입하셨는지, 아니면 스톡옵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잉 반응은 조금……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티가 날 정도로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주변 직원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
운영팀장은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있었으나 관리실장은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도록 곧장 말을 이어 나갔다.
“크흠! 그리고 개발 총괄 이사님이나 제가 걱정하던 건 삐뜨르의 배반 또는 돌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유저 삐뜨르의 행동 패턴 분석 데이터로 보자면, 이 시점에서 그럴 확률은 적었으니까요.”
삐뜨르가 비춰지고 있는 대형 모니터 옆, 작은 모니터에는 삐뜨르를 시스템적으로 분석한, 그가 퀘스트 또는 NPC와의 대화에서 주로 선택했던 답안과 해당 답안과 별개로 달성한 목표 등의 결괏값이 육각형 그래프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관리실장과 개발 총괄 이사가 걱정했던 건 삐뜨르의 배반 따위가 아니었다는 뜻.
“……그렇습니다. 하이하가 성급했다고, 이번만큼은 성급했다고 했던 이유는 아마 이제부터 나오겠지요.”
개발 총괄 이사는 삐뜨르의 전투 결과 데이터를 보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이제부터 나온다는 말씀은……”
멍하니 있다 정신을 차린 운영팀장은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답변은 개발 총괄 이사가 직접 할 필요도 없었다.
“누적 제압 상급 천사의 상승세가 멈췄―. 아니, 꺾였습니다. 삐뜨르가 제압한 상급 천사 누적 247기, 아직도 400기 이상의 상급 천사가 남은 가운데 멜렉 타우스를 비롯한 특수 개체들도 멀쩡한 상태라…….”
“뭐, 뭣!? 다시, 다시 데이터 확인해 봐! 아직 스킬도 많이 남지 않았나? 벌써 그걸―.”
“그걸 다 써서 그나마 250기에 가까운 상급 천사라도 제압한 게 아닐까요, 운영팀장님?”
“아……?”
“그렇습니다.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기에―. 대천사 NPC들의 결계를 막아 내는 게 최선이었지만 끝끝내 그것에 당해 버렸기에…… 하이하는 다른 영령들을, 미드나잇 서커스의 전대 단장을, 보틀넥을, 카일을 지상으로 내려보냈으면 안 되었건만…….”
개발 총괄 이사는 전에 없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천사 NPC들의 결계라면 모니터링 데이터만으로도 알 수 있다. 게임 내에서 대천사들이 이하에게 말한 것처럼, 이미 결계 안에 갇힌 자라면 그 어떤 수를 써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는 것.
그렇다면 외부에서부터의 충격만이 답이 되므로 그것까지 미리 준비하는 수를 썼어야 했지만 이하는 목걸이를 풀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즉, 이런 상황에서 이하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들을 모두 지상으로 내려보내 버리지 않았던가!
“그, 그래도 하이하라면―.”
“불가능합니다, 운영팀장님. 완전한 절대 판정, 내부의 데이터 트랙 자체를 격리시켜 버리므로 마탄도 통하지 않으니까요.”
관리실장의 말을 들으며 운영팀장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하이하라면…….”
그래도 하이하라면 무언가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사실상 자신의 소망이 담긴 말이었으나 관리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네. 그래도 하이하니까, 그것에 저도, 개발 총괄 이사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었지만……. 시스템적으로 자동 생성되어, 저희가 분석했던 시나리오도 솔로와 듀오 플레이 기준으로는 대천사들을 뚫고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해결 불가의 난도로, 클리어 확률 0.03% 미만으로 결과가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세 명 이상의 파티가 있어야만 했다.
로 갈 때부터 통합 운영 관리실의 주요 인사들은 그 점을 염려했으나, 에서 해제된 NPC들을 만나는 천운이자, 그들과의 친밀도 관리를 철저히 해 왔던 유저들이 로 온 덕에 무난히 잘 풀리고 있다고, 어쩌면 시나리오를 클리어할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했던 것이었다.
“조여드는 결계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하이하는 그 안에서 압사당하겠지요. 캐릭터 삭제가 되지 않는 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이제는 모든 기대를 접어야 했다.
이하를 비추는 모니터에 표기된 상세 데이터, 이하를 둘러싸고 있는 결계는 이제 5.1m까지 줄어든 상태였다.
“결국 이대로면…… 끝입니다.”
관리실장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