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
#3화
잔잔한 수면 위로 한 청년이 비친다.
짙은 눈썹, 뚜렷한 이목구비. 입꼬리를 올리자 움푹 팬 보조개가 드러난다. 하지만 꾸며 낸 웃음은 다음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쨍그랑.
세숫물이 담긴 접시를 내던지자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시발, 시바알!”
잘생기면 뭐 해. 로그아웃이 안 되는데.
지난 사흘간 온갖 지랄 발광을 떨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 로그아웃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하다니. 미친놈들.’
쉬지 않고 욕설을 퍼부으며 주의 사항을 떠올렸다.
– 플레이어 임의로 로그아웃할 수 없습니다.
– 플레이 도중 사망 시, 부활할 수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나는 [무림]이라는 무협 장르 게임을 하는 중인데, 마음대로 로그아웃할 수 없고 캐릭터가 죽으면 나도 죽는단다.
허허허.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러나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로그아웃은 되지 않았고, 밖에서 구조해 주기를 기다리며 사흘을 버텼지만 아무 일도 없다. 죽음에 관해서는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정황상 사실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플레이어 임의로 로그아웃할 수 없다는 말은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로그아웃이 가능해진다는 말과 같다.
‘이를테면, 퀘스트나 레벨 업.’
이곳, [무림]이 게임이기 때문에 유추해 낸 답이다.
게임에서는 퀘스트를 깨고 레벨을 올릴 때마다 보상이 주어진다. 앞서 튜토리얼 1단계를 완료함으로써 증명된 사실이다.
‘우선 퀘스트와 레벨 업에 초점을 맞춘다.’
사흘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필수 요건이 존재했다. 바로 생존.
생명이 위협받지 않을 만한 장소에서 활동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까지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마침 딱 알맞은 곳이 하나 있지.’
그때 문밖에서 월화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진 공자, 마차 준비됐어요.”
F급 헌터 진태경이 아닌, 태원진가의 진태경을 집으로 데려다줄 마차다.
* * *
월화, 아니 홍화루에서 내준 사두마차는 크고 화려했다.
마부는 과묵한 사람이어서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었고, 내 입장에서도 그게 편했다.
지금은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퀘스트 확인.’
[튜토리얼 – 2단계]를 시작하시겠습니까?수락 / 거부
사흘간 수십 번도 넘게 열고, 끝내 닫았던 퀘스트창이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망설이지 않는다.
수락.
띠링.
퀘스트
[튜토리얼 – 2단계]앞서 당신은 기본적인 정보와 상황을 숙지했습니다.
그러나 무림은 예측할 수 없는 곳. 지금부터 당신만이 가진 유일한 힘인 ‘시스템’을 활용하십시오.
등급 : 튜토리얼 (연계 퀘스트)
제한 : 최초 접속자
임무 : 상태창 확인 및 분배 (미완료)
스킬창 확인 및 분배 (미완료)
인벤토리 확인 및 장착 (미완료)
보상 : 예리한 창
연계 퀘스트
……이런 거였으면 진작 끝냈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아무리 비정상적이어도 결국 본질은 게임이라 이건가.
나는 과거 가뭄에 콩 나듯 했던 온라인 게임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상태창 확인.’
상태창
LV.10 진태경
직업 : 삼류 무인
명성 : 0
칭호 : 명가의 자제 / 가문의 수치 (칭호 효과 적용 중)
근력 : 10체력 : 10
민첩 : 10 지력 : 10
매력 : 10 공력 : 10년
잔여 포인트 : 100
– 잔여 포인트를 분배하십시오.
– 명가의 자제 (모든 능력치 +5, 명성 +50)
– 가문의 수치 (모든 능력치 -5, 명성 -50)
‘뭐야, 이게.’
눈을 깜빡였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근방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태원진가. 그것도 무림세가 출신인 놈이…… 고작 레벨 10에 삼류 무인?
‘실화냐.’
특이 사항을 읽을 때는 뒷목이 다 뻐근했다.
[명가의 자제] 칭호 효과를 [가문의 수치]가 완벽하게 틀어막고 있었다.‘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무공 수련은 뒷전, 여자와 술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돈 많은 한량. 괜히 가문의 수치가 아니다.
‘엿 됐다.’
하지만 낙장불입이다. 침 한번 뱉고 넘겨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모든 능력치가 초기화되었다는 부분이다. 원하는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건 엄청난 장점이니까.
나는 매의 눈으로 상태창을 훑었다.
‘이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생각하자, 생각, 생각…….’
이 공간을 단순한 게임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이건 목숨이 걸린 문제다. 학창 시절 했던 RPG게임처럼 힘에 몰빵, 민첩에 몰빵. 이런 거 했다가는 바로 골로 가는 거다.
그때 쉴 새 없이 굴러가던 눈동자가 멈칫했다.
‘공력에 투자할까?’
공력, 혹은 내공.
현실에서 상위 헌터들이 사용하는 마나, 오러 같은 기(氣)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대부분의 무협 소설에서는 오늘내일하는 노인네가 젊고 팔팔한 무림 고수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엄청난 공력의 소유자기 때문이다.
무협 하면 공력. 고수 하면 내가고수. 오죽하면 고수의 척도를 가르는 것이 공력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우선은 신중하게…… 공력에 1포인트 부여.’
삑!
– [공력]은 수련과 영약 등의 아이템을 통해서만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고 기대 하나도 안 했어.
……망할 놈의 시스템.
‘그럼 공력은 제외.’
공력을 빼면 남은 능력치는 다섯 개다.
근력, 체력, 민첩, 지력, 매력.
나는 그중 지력과 매력을 제외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움이 안 돼.’
목표는 생존과 로그아웃이지, 수능, 연애가 아니다.
다행히 나는 7년 경력의 직업 헌터였고, 살아남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근력, 체력에 각각 30. 민첩은 40.’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적당한 힘과 뛰어난 회피. 그리고 체력. 7년 동안 익숙해진 전투 스타일이기도 했다.
– 이대로 적용하시겠습니까?
‘그래.’
그 순간이었다.
띠링.
– [이류 무인]으로 전직하셨습니다!
총 100포인트.
잔여 포인트의 숫자가 증발함과 동시에 나는 몸의 변화를 느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하는 몸속 깊은 곳까지. 시스템이 부여한 힘이 스며든다. 잇는다. 뭉치고 풀어낸다.
순간 태양을 삼킨 것처럼 열기가 몸을 휩쓸었고, 그 여운이 가신 후에야 간신히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 이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낯선 감각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다. 오래전 단 한 번 느꼈던,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각이 이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7년 전 그날을.
‘각성……!’
예고 없이 찾아온 감각에 스무 살의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택받은 0.1%. 각성자가 된 것이다.
그날에 느꼈던 환희가 지금의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게 왜, 여기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나를 깨운 것은 시스템 알림이었다.
띠링.
– [상태창 확인 및 분배]를 완료했습니다.
어느새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생각했다.
그래, 우선 현재에 집중하자. 튜토리얼 2단계 완료까지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스킬창 확인.’
스킬창
LV.10 진태경
심법 : 진가심법 (사용 불가)
무공 : 진가창법 / 진가보법 (사용 불가)
근골 : 10
근맥 : 10
잔여 포인트 : 100
– 잔여 포인트를 분배하십시오.
– 무공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오랫동안 무공 수련을 하지 않아 구결을 잊은 상태입니다.
스킬창을 열어 보길 잘했다. 보는 순간 다른 잡념이 싹 사라지고 현자 타임이 찾아왔으니까.
‘하나, 둘, 셋.’
내가 숫자를 잘못 셌나? 아니면 글자가 너무 작아서 미처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눈을 부릅뜨고 스킬창을 응시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셋.
진가심법과 진가창법, 그리고 진가보법. 그것이 진태경이 가진, 내가 가진 스킬의 전부다. 심지어 다 까먹었단다.
‘돌겠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사인은 화병이다. 화병.
어느 정도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냉철하게 스킬창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래. 무공이야 앞으로 많이 배우면 되지.
‘잔여 포인트가 있는 게 어디냐.’
애써 자위하며 다시 스킬창을 바라봤다. 워낙 텅텅 비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금방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다.
‘근맥과 근골. 이거 무협 소설에서 많이 봤는데.’
근맥은 힘줄과 핏줄, 근골은 근육과 뼈대를 의미한다.
그 말인즉슨 내공 위주면 근맥, 외공 위주면 근골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중 근골에 조금 더 치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나마 익숙한 걸 골라야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
현실에서 나는 F급 헌터다. 무림으로 치자면 삼류 무사고, 어쩌면 그 이하일 수도 있다.
마법을 쓰고, 오라를 일으키고…… 눈으로 본 적은 있어도 내 능력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지.’
내공도 써 본 놈이 써 보는 거다. 지난 7년간 내가 해 왔던 전투 방식은 외공 수련자의 그것에 가깝다.
‘근골에 60. 근맥에 40.’
– 이대로 적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적용.’
그 순간, 상태창 때와는 다른 쾌감이 나를 휩쓸었다. 어쩌면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몸 깊은 곳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큭.’
몇 초? 몇 분? 모르겠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는 헐떡이는 숨소리와 인내에 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격이…….’
달라졌다. 양쪽 어깨가 반 뼘은 벌어졌고 앞뒤로 근육이 단단하다. 조금은 넉넉했던 비단옷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주먹을 쥐자 아까까지만 해도 느낄 수 없었던 힘과 탄력이 느껴진다. 강해졌다. 현실에서는 느껴 보지 못했던 경험이다.
‘시스템이 없으니까.’
훈련을 통해 근력을, 체력을, 유연성을 기를 수는 있지만 측정 전까지는 어렴풋이 기분으로 느낄 뿐이다.
그러나 이곳, 무림은 다르다.
상태창을 통해 능력을 볼 수 있고 필요한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
‘더 강해진다. 그리고 살아남는다.’
지난 7년간 수많은 몬스터와 싸웠다.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온 날도, 죽을 고비를 넘긴 날도 있었다.
F급 헌터 진태경에게는 무림의 진태경에게 없는 것이 있다. 경험. 그리고 욕망.
더, 더, 더, 강해진다. 그리고 살아남는다.
그렇게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알림이 울렸다.
띠링.
– [스킬창 확인 및 재분배]를 완료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인벤토리 확인.’
띠링.
인벤토리
[단단한 무복 세트]등급 : 삼류
제한 : 없음
효과 : 없음
설명 : 가볍고 질긴 천으로 만들어졌다. 초심자가 쓸 만하다.
기본 아이템인 만큼 설명도 심플하다.
‘아이템 착용.’
순간 전신이 시원해진다 싶더니 어느새 검은 무복을 걸친 나를 발견했다.
바뀐 건 상, 하의뿐만이 아니다. 무협 소설에서 흔히 영웅건이라고 불리는 두건이 이마에 단단히 묶여 있고 비단 신발 대신 가죽신을 신었다.
이제 그럭저럭 무사1 정도로는 보이려나?
‘아이템 보관.’
벗겨진 비단옷을 손에 쥐고 생각하자 순식간에 사라진다.
인벤토리. 이거 엄청 편리한데?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투에 응용할 수도 있겠다.
‘인벤토리 하나 있으면 레이드 뛸 때 진짜 편할 텐데.’
이거 하나면 몬스터와 싸울 필요도 없이 뒤에서 마정석만 챙겨도 연봉으로 빌딩을 세우겠다.
‘근데 안 될 거야.’
게임이니까. 로그아웃하면 끝이니까.
……살아서 로그아웃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띠링.
– [인벤토리 확인 및 장착]을 완료했습니다.
– [튜토리얼 – 2단계]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 연계 퀘스트, [튜토리얼 – 3단계]가 생성되었습니다.
새로운 보상!
나는 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새 아이템을 확인했다.
인벤토리
[예리한 창]등급 : 이류
제한 : 없음
효과 : 명중 시 5% 확률로 [출혈] 발동
설명 : 그럭저럭 쓸 만한 창. 예리하니 손질 시 주의할 것.
“…….”
상태창이랑 스킬창이 개판이면 아이템이라도 좋은 거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긴 앞서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다.
‘아이템 착용.’
손아귀에 창자루가 잡힌 순간이었다.
띠링.
– [튜토리얼 – 3단계]를 시작합니다. 준비하십시오.
“……어?”
준비? 뭘?
아직 퀘스트창 열어 보지도 않았는데?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과묵한 마부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공자님.”
“네?”
“사소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띠링.
퀘스트
[튜토리얼 – 3단계]당신은 시스템을 통해 강해지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배움에는 결과가 있어야 하는 법.
갑작스럽게 출현한 산적들을 물리치십시오!
등급 : 튜토리얼 (연계 퀘스트)
제한 : 최초 접속자
임무 : 산적 퇴치 (미완료)
보상 : 모든 부상 회복
연계 퀘스트
실패 : 사망
……사소한 문제는 개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