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597
#596화
단지 해가 지고, 시계 초침이 자정을 넘었다고 해서 하루가 끝난 것은 아니다.
잠들지 않은 사람들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그들의 시간은 계속된다.
바로 그날이 그랬다.
유난히도 춥고, 찬바람이 불던 1월 중순의 어느 오후.
[긴급 속보] S급 헌터 진태경, 아레스 길드 본사 단독 습격갑작스러운 속보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아니, 전 세계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그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각 사이트에서는 무수히 많은 게시글과 댓글이 쏟아지고 있었다.
야. 이거 뭐냐?
└ 뭐가.
└ 갑자기 알림 뜨길래 뭔가 하고 봤는데…… 시벌좌 지금 혼자서 아레스 길드 쳐들어갔다는데?
└ ???
└ ??????
└ 헛소리 작작 좀ㅋㅋㅋ 나 방금 전까지 뉴스 보고 있었는데 평창서 시벌좌 없어져서 찾고 있더라. 근데 갑자기 왜 아레스 길드 본사에 쳐들
└ ㅅㅂ진짜네. 뭐냐 이거.
?? 뭐임. 트루먼 쇼인가. 나 같은 뉴비들 속이려고 이러는 거 아니지?
└ 트루먼 쇼면 시청률이라도 잘 나오겠지. 우리가 너 같은 뉴비 속여서 뭐 하려고; 진짜니까 WBS 틀어 봐라. 단독 보도 중임. 지금 수방사 긴급 출동하고 난리 남;
└ 소방서가 왜?
└ 소방서가 아니라 수방사; 수도방위사령부라고;
근데 시부럴좌가 아레스 길드 본사 찾아간 건 알겠는데, 쳐들어갔다고 표현하는 건 오바 아님? 석고준이랑 차 한잔하러 갔을 수도 있잖아.
└ 아닐걸. 현장에 있던 목격자만 천 명이 넘는데, 진태경이 아레스 본사 건물에 명치빵 한 대 갈기고 들어갔다고 함. 차 한잔하려고 해도 건물 안에 있는 찻잔 죄다 박살 났을 듯.
└ 윗 댓글 증거 있음? 천 명이 넘게 봤다며. 그럼 영상이라도 찍었을 것 같은데 링크 좀 올려 봐.
└ 목격자 천 명은 팩트 맞는데, 영상이건 사진이건 아무도 찍은 사람이 없다더라. 시벌좌 건물 들어간 후부터 정신 차렸대. 그전까지는 걍 다들 뭐에 씐 것처럼 지켜봤다고 함.
└ ?? ㅋㅋㅋㅋ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증거 하나 없다고? 그럼 오보일 가능성이 높겠네.
└ ㅇㅇ애초에 잠깐 사라졌던 시벌좌가 거길 왜 가냐. 간 것까지는 사실이어도 나머지는 찌라시 같은데. 언론이 찌라시 장작 삼아서 불 피우는 느낌임.
처음 언론이 대대적으로 뉴스 속보를 내보낸 직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충격적인 소식을 믿지 않았다.
두 번의 몬스터 웨이브를 연달아 진압하고 모습을 감춘 영웅이 다른 곳도 아닌 바로 그 아레스 길드에 단신으로 쳐들어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불과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종로 일대가 임시 재난 구역으로 지정되고, 수도방위사령부의 헌터와 군 병력이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동시에 방어선을 구축하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이거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은데.
└ 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 왜 갑자기…….
└ 미국 거주 중입니다. 지금 현지에서도 속보 내보내고 있네요. CNN, FOX 포함 유력 뉴스 프로그램이 전부 상황 주시 중입니다.
└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인 듯. 국내도 그렇고 외신에서도 난리 났다;
국내, 해외. 가릴 것 없이 뉴스를 접한 모두가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느꼈다.
백한성 대통령은 현 사태에 관한 긴급 서한을 언론에 전달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상황과 원인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완전한 해답이 나오기도 전에, 모든 일의 중심이자 시작인 한 사람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 진태경 헌터.
측근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앞으로 나선 백한성 대통령과, 그의 부름에 고개를 든 청년의 얼굴은 카메라를 타고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진태경. 바로 그였다.
인간과 몬스터의 붉고 푸른 핏물을 전신에 뒤집어쓴 그는 지쳐 보였고, 눈동자는 알 수 없는 슬픔에 젖어 있었다.
바싹 마르고 갈라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황량했다.
– 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화면을 바라보던 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거기까지였다.
직후 청와대의 요청에 의하여 생중계는 중단되었고, 현장에 있던 세계 각국의 언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그날의 끝에 남은 것은 거대한 의문이었다.
진태경과 아레스 길드, 아레스 길드와 진태경.
개인과 단체가 격돌한 사상 초유의 사태.
저 안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약 한 시간 남짓 이어진 전투의 여파는 종로 일대를 휩쓸었고 진태경은 두 발로 걸어 나와 모두의 앞에 섰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두 개의 이름이 모종의 이유로 맞부딪쳤으며, 마침내 개인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상대가 아레스 길드였기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상황.
하지만 모든 이들이 무엇보다 궁금해하고, 주목한 것은 바로 그 ‘이유’였다.
새로운 강자이자 젊은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이십 대의 청년이 단신으로 아레스 길드로 향한 이유.
그리고 그날 밤, 한 대형 언론사가 사전에 약속된 지침을 어기고 화약고에 불을 붙였다.
[단독 보도] 석고준 헌터(現아레스 부 길드장) 외 25명 사망 확인, 총 사상자 500여 명 [이강희 주필 – 진태경. 영웅의 뒷면. 악마의 앞면.]그것은 거대한 폭탄이었다.
대격변 이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던 연속된 몬스터 웨이브.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들이닥친 폭발은 사방을 뒤흔들었다.
숯불 위 아궁이처럼 대한민국 전체가 끓어오르고 열기가 전 세계로 번졌다.
자정이 넘고, 새벽이 깊어도 그 막대한 여파는 가라앉지 않았다.
한번 열린 포문(砲門)은 영원히 닫히지 않을 것처럼 불을 내뿜었다.
누군가는 진태경을 악마라 비판했고, 누군가는 그를 대상으로 사형 집행 제도를 실행해야 한다며 정식 청원을 올렸다.
하지만 모두가 진태경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 마음속에 뒤섞인 믿음과 의심을 품고 있었다.
숱한 업적을 쌓은 진태경이 그럴 리가 없다는 믿음. 공식 발표 없는 언론의 보도는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故석고준 헌터 최측근, 고 모씨 자수.] [오전 10시 청와대 공식 기자회견. 전 세계의 주목.]거세게 타오르던 비난의 불길을 잠재울 빗줄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언론에서, 하늘에서 장장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내리던 빗줄기 속에서…… 마침내 한 사람이 깨어났다.
* * *
투둑. 투두두둑.
문득 들려오는 빗소리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서서히 또렷해지는 시야 속에서 화려하고도 웅장한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천장, 익숙한 그림이었다. 몇 번이나 들었던 것이라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하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제야 내가 지금 누워 있는 이곳이 최 팀장의 저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 벽면을 통째로 차지한 유리창을 빗방울이 두드리고 있었다.
‘설마?’
텅 비어 있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자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혹시, 만에 하나 이 모든 것들이 악몽은 아니었을까.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이제 막 하남을 벗어나 로그아웃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희망은, 다음 순간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일어나셨군요. 마침 상태가 어떤가 살피러 왔던 참인데, 다행입니다.”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
김 집사의 그것보다 훨씬 젊고, 속을 알 수 없는 음성.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다.
깊은 상념을 깨트리고 다가온 불청객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백한성 대통령.’
바로 그였다.
그리고 일국의 대통령인 그가 청와대가 아닌 이곳에 있다는 건,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현실이었음을 의미했다.
“……아.”
“진태경 헌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나는 백한성 대통령의 부름에 대답하는 대신, 반쯤 일으켜 세웠던 몸을 다시 침대에 파묻었다.
침대 옆으로 의자를 바짝 끌어당긴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몸이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곧 닥터가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
의사든, 치료사든 필요 없었다. 깊은 휴식을 취한 덕분인지 몸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고 지금 중요한 건 내 몸 상태가 아니다.
“얼마나, 얼마나 지난 겁니까?”
“음.”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멈칫한 백한성 대통령이 손에 든 신문을 내밀었다.
“오늘 자 조간신문입니다. 직접 보시는 게 빠르겠군요.”
신문을 건네받자마자 날짜부터 확인했다.
기억 속 그날로부터 벌써 이틀이 지나 있었고, 1면에는 대문짝만하게 내 얼굴이 박혀 있었다.
굵은 헤드라이트와 함께.
[수많은 오해로 더럽혀졌던 그 날의 진실. 깨어나지 않은 영웅.]제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난 이틀간 언론이 얼마나 나에 대해,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에 관하여 떠들어 댔는지.
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짜증과 분노 대신 먹먹한 슬픔이었다.
‘사실이었구나. 정말 사실이었어.’
김 집사가, 김화종이 죽었다.
그 무거운 현실에 짓눌린 채 그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던 내게, 백한성 대통령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지침을 어긴 언론사 하나가 섣부르게 나서는 바람에 초반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이번 사태에 관한 오해는 풀렸습니다. 특히 고세원, 그자가 제때 나서 준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가 됐어요.”
“고세원?”
뜻밖의 이름에 유리창에서 시선을 뗐다. 눈이 마주친 백한성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태경 헌터가 알고 있는 그 고세원이 맞습니다. 석 부길드장, 아니지. 죽은 석고준의 경호팀장 직을 맡았던 최측근 말입니다.”
“…….”
“먼저 자수해 왔더군요.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석고준 계파 중역들도 그자가 제압해 둔 상황이었고. 증언도 아주 확실했습니다.”
이건 그를 살려 줄 때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도움이다.
문득 신문을 다시 살펴보니, 1면에는 내 얼굴만 실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유의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세원이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찍은 사진이 1면 중단에 실려 있었다.
이틀 전, 두 번의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것이 석고준이라는 증언과 함께.
“결정적인 증언이었습니다. 게다가…….”
말꼬리를 흐린 백한성 대통령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앞서 발견된 석고준의 시신에 대한 근거도 됐고요.”
인간과 몬스터가 뒤섞인, 끔찍한 괴물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석고준이다. 시신 그 자체만으로도 명확한 물증이 될 수 있었다.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기라도 했는지 몸서리를 친 그가 말했다.
“고세원, 그 친구가 아주 큰 역할을 해 줬어요. 덕분에 진태경 헌터가 쓴 혐의 대부분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무감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혐의, 법의 심판. 모두가 두려워하는 단어지만 지금은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네. 현재는 우선 특별 구치소에 수감 중인데…… 최대한 빠르게 진태경 헌터와 만남을 바라고 있다더군요.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갚아야 할 빚이라.
내심 중얼거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고세원을 만나는 것은 나로서도 꺼릴 만한 일이 아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김 집사. 그리고 최 팀장.’
노집사의 장례는 시작되었는지, 최 팀장은 의식을 회복했는지. 그것이 가장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마른 입술을 떼려던 그때였다.
벌컥.
노크도 없이 열린 문. 백한성 대통령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한 금발의 외국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인간. 아니, 그가 깨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