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47
#746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안정을 뜻한다.
그러나 베일에 싸인 지크프리트 바스만의 죽음 직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우리는 숨 가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강원도 속초의 C급 게이트에서 마력 분포도가 빠르게 증가 중입니다. 현재 2단계…… 3단계 진입! 변이 게이트 상황입니다!”
“현재 지원 가능한 인원은?”
“강원도 지부에 4개 팀이 대기 중이고, 속초시청과 연결된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면 5분 내로 현장 투입 가능합니다.”
“바로 출동시키도록 하세요. 자칫하면 몬스터 웨이브로 이어질 수 있으니, 생존자 구출과 빠른 진압을 최우선 목표로 합니다.”
복귀 이후의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달에 한 번을 넘지 않던 변이 게이트가 하루에도 서너 건씩 발생했고, 이마저도 국내에 한정된 수치였다.
주가 대신 단 하루도 빠짐없이 상향선을 찍는 마력 분포도.
모든 방송국은 예능 프로그램 방영을 축소했으며, 새롭게 신설된 재난 속보 채널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치열한 토론을 펼쳤다.
– 사실 많은 분들이 간과하시는 것이, 마력 분포도 상승은 매년 꾸준히 있었던 일입니다. 오히려 대격변 직후에 비교하면 현재의 수치는 낮은 편에 속하죠. 이번 사태만 마무리되면 금방 진정 될 테니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걱정 마시고…….
– 금방 진정된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리고 대격변 직후랑 지금을 비교하면 어떡합니까? 막말로 ‘승리의 날’에 마왕 잡고 나서, 인류가 무기 내려놓고 다 같이 강강수월래라도 돌았어요? 그때만 해도 한강 공원에 나가 보면 리자드맨이 있었어요. 남아 있던 몬스터 군단 처리하는 데만 일 년 가까이 걸린 거 모릅니까?
– 나는 일산 살아서 한강 공원에 리자드맨 있는 거 못 봤습니다. 내 말이 맞아요.
– 뭐 이런 병신…….
– 어허, 이 사람이. 나보다 나이도 한 살 어리던데 욕은 하지 말지.
– 한 살 어리긴 이 씨발럼아. 부모님이 출생 신고 늦게 했다. 됐냐?
– 사회자 양반. 이거 이대로 보고 있을 거요?
이제는 백발 성성한 학계의 권위자들이 TV에서 얼굴을 붉히고, 서로의 주장을 건 타이틀 매치를 펼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축에 들지 못했다.
그들이 서로의 멱살을 잡는 그 순간에도, 옆 채널 뉴스에서는 세계 어딘가에서 발생한 변이 게이트나 몬스터 웨이브 속보를 알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참혹한 현장 속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했다.
서걱!
백염(白炎)의 창날이 갑옷보다 단단한 가죽과 뼈를 부드럽게 가른다.
몇 놈째 인지 모를 거대한 괴물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서더니, 이내 천천히 돌아섬과 동시에 세로로 갈라졌다.
스륵, 쿵!
3m에 달하던 거체가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어 쓰러진 그 순간. 나는 몇 발자국 앞에서 넘어져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간발의 차로 목숨을 건진 그의 손에는, 붉은 페인트로 쓰여진 플라스틱 피켓이 들려 있었다.
[국제범죄자 진태경을 체포하라!!!]음.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씁쓸하게 웃어 버렸다.
아무리 싫어도 느낌표를 세 개나 쓰는 건 좀 너무한데, 하는 시답잖은 생각과 함께.
“괜찮아요?”
“……아.”
“약간 긁힌 것 빼고는 무사해 보이기는 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계속 앉아 계세요. 어차피 다 끝났으니까 곧바로 구조팀 올 겁니다.”
나는 입술만 달싹이는 남자를 두고 돌아섰다.
불과 삼십 분 남짓한 시간 만에 초토화된 거리에는 죽은 몬스터들의 사체와 사람들의 시신이 뒤섞여 있었다.
감각을 곤두세워 주위를 탐색했지만, 더 이상의 생기(生氣)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피해가 커질 일은 아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 평화로운 소도시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것도.
그리고…… 나를 지탄하기 위해 모인 수백 명의 시위대가 이 거리를 집회 장소로 선택한 것도.
철벅. 철벅.
나는 붉고 푸른 핏물이 뒤섞인 웅덩이를 밟으며 거리를 가로질렀다.
그새 냄새를 맡고 모여든 하이에나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해서 몬스터 웨이브를 진압하셨습니다! 우선 저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깊은 감사를 표하고…….”
“저들은 당신을 지탄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였습니다. 혹시 이 몬스터 웨이브가 당신을 지지하는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은…….”
“미스터 스카이는 왜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겁니까! 얼마 전 사망한 지크프리트 바스만의 죽음과 당신은 어떤 연관이 있죠?”
“진, 한마디 해 주시죠!”
마치 사방에서 오물이 쏟아지는 듯한 기분.
나를 옹호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내는 것에 혈안이 된 기자들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아마도 저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러한 질문을 하는 대가로 다른 누군가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고 있을 터였다.
예를 들자면…….
‘오딘 길드라든지.’
익히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다. 처음 최 팀장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크게 놀랍진 않았다.
언론 장악을 통한 여론 악화.
여론의 막강한 지지를 받고 있던 나와 아레스 길드를 노골적으로 흙탕물에 처박는 건 어지간해서는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카엘 실베르트는 충분히 그럴 만한 권력과 명분을 갖춘 놈이었다.
문제는, 최소한 언론에 한해서만큼은 그의 시도가 상상 이상으로 잘 먹혀 들고 있다는 점이고.
“선지자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선지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레스 길드가 일일 평균 3.6회의 상황을 진압할 때, 오딘 길드는 6.5회를 해결한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진태경 씨. 진태경 씨!”
“거기 당신! 질문 수준이 왜 그 따위야! 당신들이 그러고도 기자야!”
“모두 뒤로 물러나십시오. 당장!”
혼돈 그 자체였다.
더 많은 기삿거리와 사례금을 받기 위해 달려드는 기자들. 그리고 그런 기자들을 막아서는 경찰과 헌터들.
나는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 너희 인간들은…… 참으로 개판이군.
몬스터에게 이런 말을 들을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뭐라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피켓을 본 그 순간부터 힘이 빠져서였을 수도 있겠다.
“입 다물어. 시끄럽다.”
그리 많은 공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정신적 피로는 상당하다.
인벤토리에 넣어 둔 스켈레톤 킹을 향해 짤막하게 대답한 나는 챙겨 두었던 매직 스크롤을 꺼내어 찢었다.
찌익. 파아앗!
텔레포트 마법의 발현과 동시에 특유의 감각이 전신을 휩쓴다.
순식간에 뒤바뀌는 주위의 풍경. 빠르게 회복되는 시야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빨리 왔네? 조금 전에 너 복귀한다고 연락받았었는데.”
짙은 피로가 배어 있는 목소리. 눈가에는 전에 없던 다크서클을 드리운 송송이는 불쑥 손수건부터 꺼내 내밀었다.
“우선 얼굴부터 닦아. 피 묻었어.”
손수건과 송송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입맛을 다셨다.
“궁금해서 묻는 건데, 클린 마법은 뒀다가 국 끓여 먹냐?”
“마법을 무슨 동전 넣어서 쓰는 줄 알아? 포션 빨아서 마나는 채울 수 있어도 소모된 정신력은 못 채워. 요즘 가뜩이나 잠 부족한데 입 닥치고 손수건 쓰자.”
수면 부족의 결정적인 원인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잠자코 피를 닦은 뒤 손수건을 건네자, 더러워진 그것을 받아 든 송송이가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클린(Clean).”
“……?”
솨아악.
먼지와 핏물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깨끗해진 손수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를 향해, 송송이가 천연덕스럽게 눈을 깜빡였다.
“왜? 이거 명품이야.”
그 당당한 한 마디에, 그리고 분명 이 상황을 노렸을 송송이의 모습에 나는 참지 못하고 실소를 흘렸다.
“허.”
“이제야 좀 웃네. 조금 전까지 TV에서는 아주 죽을상을 하고 있더니.”
“보고 있었어?”
“실시간 중계로 다 봤지. 미친 기자 새끼들이 개소리하는 것도 들었고.”
“……뭐, 그러려니 해야지. 따지고 보면 이 사단이 벌어진 것에 대해 내 책임도 어느 정도는 있으니까.”
송송이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너까지 개소리할래?”
“…….”
“멀쩡해진다 싶더니 또 왜 이러실까. 그렇게 자책하고 싶으면 그놈들이나 죽이고 나서 실컷 해.”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당장 스위스에 다녀온 이후로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매직 존슨의 조사는 아직 결과를 내지 못하는 중이었고, 선지자의 종적은 온갖 마법과 위성 감시로도 잡아낼 수 없었으며, 미카엘 실베르트가 이끄는 오딘 길드는 나날이 상한가를 치고 있었으니까.
“너무 자책하지도, 걱정하지도 마. 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야. 특히 꺽정 아저씨는 어제도 당장 파리로 가서 미카엘 목을 따 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더라.”
“그.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긴 한데, 그랬다간 꺽정 아저씨 목이 따일걸.”
“어, 안 그래도 그대로 얘기해 줬지.”
“……이걸 그대로?”
“응, 사실이니까. 아무튼, 얘기 듣더니 좀 시무룩해하긴 했는데, 금방 납득하더라고.”
그래,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나는 송송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걸었다.
그리고 저택에서 철통같은 경호를 받으며 머무르고 있는 어머니와 하연이에 대한 소식을 끝까지 들었을 때쯤, 최 팀장이 기다리고 있던 집무실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송송이 이상으로 피곤에 찌든 모습.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집무실 내부는 어지러웠고, 책상 위에는 빈 커피잔이 가득했다.
“먼 길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와 송송이를 번갈아 본 최 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다른 한 분은?”
“걱정마세요. 같이 왔으니까.”
– 여기 있다.
너무 오랫동안 처박아 뒀나.
나는 목소리만 들어도 뿔이 잔뜩 나 있는 녀석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정확히는 허리에 찬 아공간 주머니를 뒤지는 척하면서, 명령어를 읊었다.
‘인벤토리 오픈. 소환.’
그리고 다음 순간 뿅 하고 나타난 건장한 백인 청년의 모습에, 송송이가 중얼거렸다.
“와, 순산했네.”
“입 다물어라. 아름답지만 버릇없는 인간 계집아. 감히 이 몸을 그런 것에 비유하…….”
“고마워. 기분 확 좋아진다.”
“이런 빌어먹을.”
퉁명스럽게 욕설을 내뱉는 스켈레톤 킹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이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정체가 밝혀졌다고는 해도, 최대한 숨겨야 하니까.’
과거와 신분을 세탁했지만, 이 세상에 완벽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보안을 갖추었다고 알려진 펜타곤 역시 같은 방식으로 뚫렸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역시 녀석의 노출을 최대한 막을 수밖에.
하지만 다음 순간 들려온 최 팀장의 한 마디에, 나는 스켈레톤 킹이라는 패를 꺼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으로부터 삼 분 전, 도쿄만이 무너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