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비록 허무한 결말로 끝나 버렸지만, 청야평에 남아 있는 군중들은 아직도 비무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비무였어.”
“화산파의 매화검법이 왜 강호에서 일절이라 불리는지 알았네.”
그들의 눈은 아직 몽롱했다.
하늘 가득 채우던 매화의 물결.
그리고 그러한 물결을 만들어 낸 청년 도장의 검법은 그들의 뇌리에 꽂혀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동시에 하나의 도호가 각인되었다.
천휘.
그전까지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도호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화산이 숨을 죽이고 있었구먼.”
“대단하군, 대단해. 몇 년이나 다른 문파나 무인들이 그토록 무시했건만 묵묵하게 잠룡(潛龍)을 키우고 있었던가.”
“그런 굴욕을 꾹 참다니.”
“에헤이! 도사님들이지 않은가? 그런 굴욕은 신경도 쓰지 않은 것일세.”
군중들은 소문을 좋아했다.
특히나 구주삼패세에 의해서 완전히 고착된 채로 있던 강호에 새로이 나타난 신성(新星)이다?
거기에 몰락의 길을 걷다가 이제야 겨우 위상을 회복하고 있는 화산파에서 등장했다?
사람들이 군침을 흘릴 이런 이야기를 호사가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나는 화산이 다시 비상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네! 화산신검 도장님은 물론이고, 현 무림맹에서 매화칠검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지 않나.”
“구파일방의 판도가 바뀌겠구먼!”
그들은 소문을 흘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주변에서 들은 얘기들로 시작한 소문은 살이 덕지덕지 덧붙어지며 그 몸집을 부풀려 갔다.
그리고 그 소문의 주를 이루는 천휘는…….
“여기 있습니다. 소도장님!”
금원보 두 개를 수령하고 있었다.
천휘는 장사꾼이 준 금원보를 소매에 넣으며,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비무까지 시간만 더 있었어도 돈을 최대한 긁어모아서, 하는 건데.’
물론 금원보 한 개면 웬만한 상인도 평생 손에 넣어 보지 못하는 거금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간단히 돈을 따고 받아 보니 부족해 보였다.
‘오 총관에게 더 받을 걸 그랬나.’
천휘가 아쉬움을 토로할 즈음.
“뭔 욕심이 그렇게 많은 거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사라는 놈이 그 정도면 만족할 줄 알아야지.”
어느새 다가온 천이개는 천휘에게 핀잔을 주더니, 장사꾼에게 말했다.
“내 것도 내놔라.”
“여기 있습니다.”
장사꾼은 조심스럽게 낭을 건넸다.
“흐흐. 묵직하니 좋네, 좋아.”
두둑한 낭을 받은 천이개는 자신도 모르게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가, 자신이 핀잔을 주었던 천휘와 눈이 마주치자 큼하고 헛기침을 연발했다.
“크흠, 큼. 그보다 일단 자리를 떠야겠다.”
말과 함께 시선을 돌린 천이개가 주변을 바라봤다. 천휘의 등장에 내기를 하던 이들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조차 모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 방금 비무에 나섰던 화산파의 소도장님이 맞지?”
“그런데 왜 여기에?”
“소, 소도장님!”
점점 빼곡해져 가는 사람들을 보던 천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탓.
둘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어?”
“사, 사라졌어?”
보법을 펼친 천이개와 천휘는 순식간에 청야평에서 거리를 벌렸다.
잠시 뒤 청야평을 지나서 한적한 숲에 도착한 두 사람이 멈춰 섰다.
“이 정도면 되겠지.”
천이개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 기름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네가 비무에 나선 덕분에 섭혼문의 배후는 확실하게 알아냈다.”
천휘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일부러 급하게 천이개를 부른 이유는 모두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아무리 정체를 숨기려고 한들, 비무에서는 실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평소와는 다른 식으로 무공을 펼치거나, 내력을 숨기려 할 터였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 상대가 강하면 자신도 모르게 몸에 익숙해진 버릇이 저절로 배어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개방의 정보력이라면 언뜻 보이는 버릇만으로도 알아냈을 터.’
그리고 그 생각대로 천이개는 비무를 통해서 그들이 익힌 무공의 원천이자, 원류를 읽어 낸 듯 보였다.
“어딘데요?”
“살막(殺幕)이다.”
“살막이라면, 그 살수들의 문파를 말하는 거죠?”
천이개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 그 잔칠이란 놈이 내력을 숨긴다고 숨겼지만 중간중간 펼치던 무공과 움직임은 예전에 본 적이 있었던 살막의 것과 판박이였어.”
그때를 회상하는 것인지, 허공을 보는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살막이라…… 머리가 돌았네요.”
천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살수란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을 꺼리고, 숨기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수면 위에 드러나다니.
“뭐 노리는 거라도 있나 보죠?”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놈들이 그냥 움직였을 리는 없을 테지.”
천이개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살막의 정보력은 본 방이나 하오문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으니까.”
살수는 그 누구보다 정보가 필요한 자들이었다.
죽이는 대상을 잘 아는 만큼 출혈 없이 암살을 할 수 있으니.
“뭐, 그럼 더 얻을 건 없겠네요.”
천휘는 시원하게 넘겼다.
괜히 없는 것을 추궁해 봤자, 시간만 낭비될 뿐이었다.
“다른 곳의 배후는요?”
“무공을 못 봐서 아직 확신은 못 하지만, 금휘부주가 데려온 놈은 아마 혈귀궁(血鬼宮)에서 온 거겠지.”
“그놈들도 대단하네요. 지금 해남파(海南派)와 전쟁을 벌이는 중인데도, 꾸역꾸역 섬서까지 노리다니.”
혈귀궁은 광서와 광동, 그 큰 일대를 모두 지배하는 거대 문파로 최근에는 아예 해남도까지 지배하기 위해서 그 손길을 뻗은 상태였다.
그런데 거기다 섬서까지 노리니.
욕심도 이런 욕심이 없었다.
“……그놈들이라면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하고도 남을 것들이긴 하지.”
천이개가 혀를 차며 말했다.
혈귀궁은 미친놈들의 소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혈귀궁에 속한 문도들은 본래의 이름과 강호에서 얻은 명성을 모두 버리고, 한 명의 혈귀가 되기를 선택한 자들이니.
뭔 짓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둘은 그렇고.”
천이개가 고개를 흔들었다.
“사귀방주를 대신하던 여인도 알아보려고 했지만, 대체 무슨 무공인지 아예 짐작도 안 간단 말이지. 비무 때 펼쳤던 빙공을 봐서는 북해빙궁에서 온 것 같긴 한데…….”
초련이 펼치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빙공을 떠올린 천이개는 머리가 복잡한지, 머리를 세게 긁적거렸다.
“그놈들이 그렇게 성히 중원에 들어왔을 리는 만무할 테고.”
복잡했다.
새외에 있는 북해빙궁이 중원에 들어오려면, 꽤나 힘든 여정을 거쳐야 했다.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비천회를 뚫고 들어와야 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문파를 꼽자니, 북해빙궁 말고 다른 곳에서 이만한 빙공을 보여 주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천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쩐지 마음껏 무공을 펼치더니.
옥영신마기공과 소수마공은 마기가 없는 빙공이라지만, 위력은 신교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했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들 만큼.
‘신교라면 치를 떠는 개방도 모를 정도면, 삼백 년 동안 중원에서 펼쳐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단 건데.’
천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중원에 나온 적이 없던 그녀의 후예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리라.
‘진짜 중원정복이라도 노리나?’
골똘히 생각하던 천휘는 피식 웃으며, 머리에서 지웠다.
‘뭐,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잠시 동안의 생각을 마친 천휘는 천이개에게 물었다.
“다른 정보는요?”
“그게 전부다.”
“별로 없네요.”
천이개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거기서 뭘 더 얻겠냐? 어차피 지껄이는 말의 대부분은 쓸데없거나 부풀려진 것들인데.”
“뭐, 그것도 그렇죠.”
천휘가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그러다가 ‘아차’하며 고개를 돌리더니, 천이개에게 손을 쭉 내밀었다.
“이제 주시죠?”
“……뭘 말이냐?”
천휘는 뒤늦게 떠올렸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천이개를 보며, 씩 웃었다.
“모른 척 말고, 얼른 주시죠.”
“에라이! 그걸 기억하고 있냐?”
천이개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낭을 꺼내더니 투덜대며, 은자 한 개를 손에 올렸다.
“자, 받고 썩 꺼져라.”
천이개가 다시 낭을 넣으려 할 때.
“두 개 아닌가요?”
“그게 무슨 말……”
천휘는 말없이 가만히 바라봤다.
은은한 압박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천이개는 결국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은자를 하나 더 꺼냈다.
“자! 받아라, 받아! 이 벼룩의 간도 빼먹을 놈 같으니! 늙은 거지의 돈을 그리 뺏어 가서 만족하냐?”
“네. 아주 만족스러운데요,”
“이, 이……”
천이개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전 이만 가 볼게요.”
치를 떨던 천이개는 갑자기 몸을 돌리는 천휘를 보며, 입을 달싹였다.
“……또 어디 가려는 거냐?”
“이제 알아낼 것도 알아냈으니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하지 않겠어요?”
* * *
비무에서 패배한 신주사패가 되돌아가는 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특히 맨 앞에서 걸어가는 금휘부주와 섭혼문주의 표정은 어두웠다.
“……젠장할.”
섭혼문주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하나 그것은 처참하게 무너져 버려서, 한 줌의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동안 쌓아 온 명성도, 돈도.
그때 금휘부주가 다가왔다.
“섭혼문주께서는 이제 어찌할 것이오?”
해탈한 듯 조용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섭혼문주가 이를 악물었다.
“어쩔 도리가 있나? 그들이 말한 대로 잠자코 봉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비무가 끝나고, 종남과 화산의 장문인이 찾아와 통보하듯이 건넨 말은 봉문이었다.
그리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섬서에서 아예 쫓아내지 않은 건가.”
금휘부주가 중얼거릴 무렵.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금휘부주가 데려온 사내가 둘 사이에 불쑥 얼굴을 내밀며, 웃었다.
“저희가 지원해 준 돈과 병력이 이리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다니요.”
금휘부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었소. 상대에 우리보다 강한 고수가 있었으니, 어쩌겠소?”
“부주의 말씀은 저 말고 다른 고수가 와야 했다는 말입니까?”
사내가 얼굴을 바싹 내밀었다.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금휘부주와 얼굴을 마주한 사내가 더욱 진하게 미소를 그렸다.
“이상하군요. 제가 보기에는 당신이 욕심을 부려서 이 지경까지 온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순간 눈이 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갑작스러운 빛에 옆에 있던 섭혼문주가 놀라 쳐다본 그때.
핏―
금휘부주의 목에 혈흔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윽고.
푸슈슉―
사방으로 피가 솟구치며, 금휘부주의 머리통이 아래로 뚝 하고 떨어졌다.
“으, 으아아악!”
“부주님!”
금휘부의 무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몇몇은 도망을 치려고 했으나.
“여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떼면 죽을 줄 아시지요.”
사내의 서늘한 경고가 그것을 막았다.
그 소리에 금휘부는 물론이고 관련이 없는 섭혼문도들마저 숨 쉬는 것을 잊은 채 석상처럼 굳어 있을 때.
“허, 헙!”
섭혼문주가 헛숨을 삼켰다.
발끝에 무언가 닿는다 싶어서 내려다봤더니, 데구루루 굴러온 금휘부주의 머리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죽은 것을 전혀 모르는 눈빛으로.
꿀꺽―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동시에 그는 홱 고개를 들어서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사내를 바라봤다.
“시킨 일만 하면 될 것을.”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사내는 진득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괜히 일을 벌여서 망치다니.”
사내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핏방울이 손가락을 따라 길게 이어지며,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겼다.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다.
섭혼문주가 숨도 쉬지 못하고 등에서 식은땀을 흘릴 때.
탁.
잔칠이 그의 앞에 섰다.
사내는 잔칠을 보더니, 씩 웃었다.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
“입이 무거우신가 보군요. 아니. 살수들은 원래 그러하다고 들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군요.”
“사, 살수! 헙!?!”
섭혼문주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다가, 황급히 입을 손으로 막았다.
“나에 대해 아나?”
“하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쪽만 저희를 알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잔칠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사내는 그런 그를 보며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입을 달싹였다.
“하하.”
돌연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껏 부풀었던 공기를 웃음으로 해소한 그가 잔칠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피차 서로의 정체도 알고 있는데, 손을 잡지 않겠습니까?”
내밀어진 그의 손을 내려다보던 방립 밑 잔칠의 눈이 번뜩였다.
“무슨 말이지?”
“괜히 힘을 낭비할 게 아니라 하나에 집중해 나누면 좋지 않겠습니까. 괜히 이놈들처럼 생각하는 놈이 나타나면 곤란하니 말입니다.”
“……그건 맞는 말이지.”
잔칠이 싸늘한 어조로 동조했다.
그 또한 섭혼문주가 제멋대로 행동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을 만큼.
“하나 이미 비무는 패배했다. 여기에 더 힘을 쏟는 건 낭비지.”
“아니, 아직입니다.”
사내가 입술을 비틀었다.
“비무의 패배로 화산과 종남이 원한 것은 신주사패의 봉문입니다.”
사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은은한 살기는 지켜보는 자들의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몇몇은 가슴이 너무 뛰어서, 곧 터질 것만 같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즉 신주사패만 봉문하면 다른 것들은 신경 안 쓴다는 말이지요.”
“또 시간과 돈을 들이란 거냐?”
“하하하,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사내가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새로이 태어날 병력과 돈은 여기에 충분히 있습니다.”
잔칠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런 말이었나.”
속닥이던 그가 몸을 돌렸다.
“대, 대인?”
섭혼문주는 갑자기 자신을 내려다보는 잔칠의 눈빛에 당황했다.
무심한 눈동자 속 언뜻 보인 살기.
그것은 너무도 차갑고 싸늘해 가슴을 바늘처럼 쑤시고 있었다.
“네놈의 피를 보고 싶던 참이지.”
“네……?”
푹!
서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섭혼문주의 가슴팍에 날카로운 검이 꽂혀서, 등에 삐져나왔다.
“쿠, 쿨럭! 이, 이…….”
섭혼문주가 가슴팍에 검을 찔러 넣은 잔칠을 향해서 양손을 뻗었지만.
툭.
이내 손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쓸모없는 놈이었어.”
잔칠은 검을 뽑았다.
섭혼문주의 몸이 아래로 무너지고, 곧 검신이 피를 묻히며 빠져나왔다.
짝! 짝!
사내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손을 잡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잔칠이 검신에 묻은 피를 털며 중얼대듯 말했다.
“이 방법밖에 없겠지.”
“하하하, 그렇지요.”
사내가 호탕하게 웃었다.
방금 전 냉정한 얼굴로 피를 뒤집어쓴 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호방한 모습에 뒤에서 지켜보던 금휘부와 섭혼문의 무인들은 한기가 몸을 뚫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운도 좋네요. 이왕이면 당신이랑만 손을 잡고 싶었는데, 마침 딱 좋게 그녀가 사라져 버렸으니.”
사내는 초련을 떠올렸다.
사방에서 정보를 습득하고 산 그였지만, 여인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 또한 이곳에 그녀도 있었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지.”
잔칠 또한 동조하듯 말했다.
살수에게 정보란 생명이었다.
그런 만큼 정보도 없는 초련이라는 여인과는 손을 잡고 싶지 않았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잔칠은 그 손과 사내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잠시의 협력 관계일 뿐, 친밀하게 지낼 생각은 없다.”
“하하하.”
사내는 멋쩍게 웃더니 내밀었던 손을 거두며, 말했다.
“그래도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속한 곳과 우리라면 꽤 오래 함께할 터인데.”
“아니. 그건 힘들지 않을까?”
갑자기 중간에 끼어든 목소리에 사내와 잔칠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나뭇가지 위에는 천휘가 있었다.
“너, 너는?”
“언제 거기에……!”
화들짝 놀라는 둘을 내려다보던 천휘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여기서 모두 다 죽을 텐데, 어떻게 오래 할 수 있겠어.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