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Chapter 78 – 성대모사도 잘하는 김 대리!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정훈은 편의점에서 나오다가 만난 한예진과 반갑게 인사했다.
“뭐 사셨어요?”
담배를 사러 나왔지만, 왠지 그렇게 말하기엔 민망해서 대충 둘러댔다.
“이것저것요. 예진 씨는 들어가는 길이세요?”
“아뇨. 산책 좀 하고 가려고요.”
“아, 시간 되시면 같이 좀 걸어도 될까요? 물어볼 것도 조금 있고 해서요.”
“물어볼 거요?”
“네. 곤란한 건 아니에요.”
“그러죠, 뭐. 회사 뒤편에 안 가 보셨죠? 산책로 있는데.”
“아, 그래요?”
“네. 사내 복지 차원에서 만들어 둔 거예요.”
정훈이 예진을 따라 함께 건물의 뒤편에 있는 작은 문으로 나가자, 작은 산책로가 펼쳐졌다.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지만, 걸으면서 이야기하기에는 충분히 좋았다.
‘앞으로 소화시킬 때 종종 이용해도 되겠다.’
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정사랑과 단둘이 걷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정훈은 예진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뭐예요, 물어볼 거라는 게?”
“다른 건 아니고, 경영팀은 어떤지 궁금해서요. 뭐랄까, 들어 본 건 많은데, 실질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거든요.”
“아, 별거 없어요. 다른 곳이랑 똑같아요. 단지 업무가 저희 자체적인 것보다는 다른 부서가 하는 일을 검토하고 진행할지 말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거죠. 저는 아직 아니지만, 경영팀의 상사님들은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말씀하시죠.”
“그렇군요.”
“네. 작은 일은 각 부서에서 결정하지만 크고 중요한 업무가 모이는 곳이라 실수 한번 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어서 부담이 가긴 하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비중이 있는 부서라서 자부심은 있어요.”
역시 경영팀이다. 인턴이라서 정훈이 알고 있는 내용과 비교해도 큰 차이는 없었지만, 지금 말하는 내용과 표정만 보더라도 경영팀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더 말할 게 없나 고민하다가 예진은 정훈을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경영팀은 왜요? 혹시 아는 분이 경영팀이에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예진은 정훈을 빤히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알았다.”
“예?”
“혹시 경영팀으로 오시는 거예요?”
정곡을 찔린 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헙!” 소리를 내며 당황했다. 반응을 보고 확신한 예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였네요.”
“확실한 건 아니에요. 갈지 말지 정하지도 않았고요. 예진 씨, 혹시 이 이야기는….”
“걱정 마세요.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 해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딱 느낌이 왔어요. 이야기를 듣는데 굉장히 얼굴이 심각하시더라고요. 친한 지인이나 정훈 씨가 경영팀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한번 떠본 건데, 낚이셨네요.”
예진은 낚싯대를 끌어 올리는 시늉을 하며 정훈을 놀렸다. 들킨 줄 알았는데, 그저 던져 본 떡밥을 물어 버렸다는 사실에 허탈해졌지만,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작년에 단합회에 왔던 사람 정도면 지킬 건 지킬 줄 아는 사람일 테니까.
“가게 되면 잘 부탁드려요.”
“에이, 인턴 나부랭이한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둘은 웃으며 친근하게 악수를 했다.
추운 날씨여서 주머니에 손을 꼭 넣고 있었지만, 정훈이 잡은 예진의 손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차가웠다.
“손… 괜찮으세요? 많이 차가우신데.”
“제가 원래 손발이 차요. 수족 냉증.”
“아, 그러시구나.”
정훈은 바로 속주머니에 있던 핫팩 하나를 꺼내 예진에게 건넸다.
“이거 아직 안 쓴 거니까 쓰세요.”
“아니에요. 정훈 씨 쓰시려고 산 걸 텐데.”
“저는 사무실에 올라가면 몇 개 더 있어요. 받으세요.”
정훈은 거절하는 예진의 손에 핫팩을 꼭 쥐여 주었다. 이렇게 손발이 차가우면 고등학교 겨울에 만났던 첫사랑이 생각나서 잘해 주고 싶었다.
예진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받아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정훈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예진 씨는 입사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음, 얼마 안 됐어요. 정훈 씨는요?”
“저는 이제 3년 조금 넘었어요. 올해부터 4년 차네요.”
“꽤 되셨네. 출판부 쪽은 매일 책 만들고 그런 일을 하는 거예요?”
“저희는 종이책보다는 전자책 위주라서….”
산책로를 조금 더 걸으며 예진과 10분 정도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한 탓에 회사 건물로 돌아갔다.
원래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밑에서 피우고 가려고 했지만, 얼떨결에 같이 들어오는 바람에 정훈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세게 불던 바람은 옥상에 올라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잠해졌다. 덕분에 편하게 담뱃불을 붙이고 난간에 기대어 섰다.
‘경영팀….’
잠깐의 고민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라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모든 조건을 생각하면 가는 게 맞다. 남자라면, 지금의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기보다는 실패하더라도 큰물로 나아가 보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가겠다고 생각하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부서로 스카우트받아서 이동하는 것은 출판부나 장 부장을 배신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계속 마음 한편에 무언가가 턱턱 걸리는 느낌이었다.
‘머리는 가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키워 준 출판부를 쉽게 버릴 수 없는 느낌.’
“후우.”
정훈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이렇게 고민 많고 복잡할 때는 담배만큼 도움 되는 친구도 없다.
난간 밖에는 화려한 건물들이 속속들이 펼쳐져 있다. 이전 사무실의 옥상과 달리, 이곳은 눈에 보이는 건물들이 전부 샘숭, 우대, 금별, 스크 등의 대기업 건물이다. 이미 자신도 그들의 일원이긴 하지만, 경영팀의 과장이 되면 더욱더 그런 자부심과 명예는 커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생각이 정리될 줄 알았지만, 사장에게 제안을 받은 이후부터 고민은 계속해서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쉽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장과의 미팅 이후에 한지혜에게 따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연락하기는 부담이 된달까….’
다시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탓인지, 치지지직 하고 담배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이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정훈은 더 이상의 고민을 멈추고 먼발치를 바라보며 담배를 모두 태우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히터의 따뜻한 바람과 함께 침울한 분위기가 정훈의 몸을 덮쳤다.
‘왜 이러지?’
정훈은 자리에 앉으며 옆에 앉은 현우에게 팔꿈치로 쿡 찌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현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커피톡 못 보셨어요?”
“아, 휴대폰 두고 갔어. 담배 한 대 피우다가 아는 사람이랑 이야기 좀 하느라고.”
“이따가 회식한대요.”
“회식? 어제도 회식했는데 또 해?”
“예. 얼마 전에 팀장님이 작가 지원비 관련해서 예산 기획서 올렸잖아요. 그거 조금 전에 통과됐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부장님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시고 그만….”
“읍.”
정훈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단체톡방을 보니 현우가 말한 대로 심의에서 통과되어서 기념으로 회식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작가들에게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해 줄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오늘 회식을 한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하기에는 마음이 쓰라렸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 오늘 회식만 빼면 어쨌든 좋은 성과가 생긴 거니까.’
***
갑자기 정해진 회식이라서 중요한 약속이 있다는 몇 명을 제외하고 7명만이 참석했다.
어제 회식부터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빠진 걸 보면 당분간은 다시 편집자끼리만 회식을 할 것 같았다.
평소에 삼겹살과 같은 고기를 구워 먹는다거나 생선이 주요리였던 회식과 달리, 오늘의 회식 장소는 특별했다.
마포에서 제일 잘나가는 레스토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펍&레스토랑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술도 한잔 할 수 있는 식당.
“이런 데도 괜찮지?”
부장의 물음에 박 과장이 딸랑딸랑 맞장구를 쳤다.
“최고입니다. 역시 부장님이십니다. 세련되게 우리 젊은 사원들을 위해서 손수 이런 레스토랑으로 회식 장소를 정하셨다는 게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박 과장의 말을 들은 정훈과 사원들은 속으로 ‘그러면 너도 제발 후배들 좀 생각해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키는 게 부하 직원들의 숙명이었다.
“다들 먹고 싶은 거 주문해. 오늘은 백 차장도 그렇고 몇 명 빠졌으니까 우리라도 비싼 거 먹어야지. 안 그래?”
“맞습니다. 하하하핫!”
정훈도 박 과장에게 지지 않고 엄지를 치켜들며 장 부장을 치켜세웠다.
그는 메뉴판을 대충 훑어보고 옆에 있는 은혜에게 넘겨주었다. 볼 필요가 없다. 웬만하면 음식을 잘 가리지 않는 정훈이었기에 이렇게 1인 1메뉴일 때는 장 부장과 같은 메뉴를 하는 게 제일 무난하고 좋았다.
고급진 분위기였지만, 음식의 가격은 만 원대였기에 무엇을 골라도 부담되지 않아 다들 편하게 주문을 마쳤다.
정훈은 장 부장과 똑같은 연어 스테이크. 1만 2천 원짜리로 삼겹살 1인분과 같은 가격이라서 전혀 눈치 보이지 않았다.
점원은 사원들의 메뉴를 받아 적고, 가기 전에 추가로 물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마실 거는 어떤 걸 준비해 드릴까요?”
“술은 내가 주문할게.”
장 부장은 사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당연히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점원에게 주문했다.
“모히토 일곱 잔 주세요.”
당연히 소주, 비싸 봤자 와인 정도로 생각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메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정훈은 그가 모히토와 같은 칵테일을 마신 걸 본 적이 없었다.
이럴 때는 원래 시킨 장본인이 이유를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릴 게 분명하기에 정훈은 웃으며 장 부장에게 물었다.
“부장님, 오늘은 메뉴가 조금 특이합니다.”
장 부장은 이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내가 어제 영화 한 편을 봤거든. ‘안사람들’이라는 영화였는데 거기서 모히토 이야기가 나오더라고. 그래서 확 당겨서 회식 전에 조금 찾아봤지.”
“아, IP TV로 보셨어요?”
“응. 재밌더라고. 회식 끝나고 집에 가서 자려 했는데, 아들이 보고 있길래 잠깐 보다가 들어가려고 했는데, 워낙 재미있어서 끝날 때까지 보다가 3시 넘어서 잤어.”
“그거 재밌죠. 영화관에서 봤는데 몰입감이 아주….”
이현우 사원이 말하는 틈을 타서 정훈은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 “크흠.” 하고 목을 풀고는 대화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입을 열었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해야제?”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이병현의 목소리는 물론, 전라도 사투리까지 완벽하게 구사했다.
“오!”
장 부장은 박수까지 치며 크게 감탄했고, 순식간에 다른 사원들의 시선이 정훈에게 집중되었다.
이현우는 입을 쩌억 벌리며 정훈을 칭찬했다.
“대리님, 이런 성대모사를 다 하실 줄 아셨던 거예요?”
“김 대리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네! 순간적으로 영화를 틀어 놓은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하핫!”
“감사합니다. 연습해 봤는데, 좀 괜찮더라고요. 하하핫!”
그사이, 모히토가 서빙되었고, 장 부장은 모히토를 높이 들어 올리며 건배사를 외쳤다.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 잔 하자!”
“한잔하자!”
사원들과 잔을 부딪치며 즐겁게 모히토를 한 잔 마셨다. 라임과 알코올의 향이 적절하게 섞여 술보다는 상큼한 음료 같은 느낌이었다.
모히토는 처음 먹어 보지만, 상당히 취향을 저격하는 칵테일이었다.
장 부장은 잔을 내려놓자마자 다시 정훈을 보며 물었다.
“김 대리, 혹시 안사람들 말고 더 있나?”
“음, 혹시 영화 숙련자 보셨습니까?”
“봤지. 그건 우리 아들이 영화관 데려가서 다 같이 봤어. 그것도 할 줄 아나?”
“잘하는 건 아니고, 한번 해 보겠습니다. 크흠!”
정훈은 다시 목을 풀고 음을 맞춘 뒤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하아… 어이가 없네?”
“으하하하하핫!”
“와, 대박!”
“진짜 지금 주태오인 줄 알았어요.”
박 과장을 제외한 사원 전원이 정훈의 성대모사를 칭찬했다. 의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 부장은 박수를 치며 또 다른 성대모사를 요구했다.
“다른 거 더 없나? 김 대리, 정말 재능이 한두 개가 아니구먼! 하핫.”
“어, 그러면 딱 하나만 더 해 보겠습니다. 혹시 범죄와의 승부 보셨습니까?”
범죄와의 승부라는 말에 장 부장은 물론 남자 사원들은 전부 “크으.” 소리를 내며 감탄했다.
“당연히 봤지. 남자의 상징과도 같은 영화 아니겠어?”
다시 정훈은 목을 풀며 톤을 맞추고 이번에는 진지하게 눈빛까지 바꾼 뒤 대사를 시작했다.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인마! 어저께도! 으이! 같이 밥도 묵고! 으이! 술도 묵고, 으이! 사우나도 가고! 으이! 마, 개새꺄! 다 했어, 마! 이 새키들이 말이야, 개새끼들이!”
정훈은 영화의 주인공에 빙의한 것처럼 신이 들린 듯이 연기를 했고, 그의 목소리는 다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에게마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이야, 멋진데요?”
“잘하시네!”
다른 테이블에서도 정훈을 향해 박수를 쳤고, 장 부장은 눈까지 감고 계속해서 박수를 쳤다.
칭찬에 인색한 박 과장도 자신의 인생 영화라고 생각하는 범죄와의 승부에서 제일 좋아하는 명대사까지 나온 데다가 완벽하게 목소리까지 재연하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 김 대리! 장난 아니네.”
여기서 정훈은 멈추지 않고 몸을 일으켜 손을 쭉 뻗어 장 부장의 칼라를 사악 만지며 말했다.
“부장님, 살아 있네!”
화룡점정! 함께 회식 중이던 사원들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정훈을 칭찬했다.
“역시 우리 김 대리야!”
“대리님, 최고입니다!”
“멋져요!”
처음부터 이 상황을 지켜보던 레스토랑의 사장도 웃으며 마른안주 한 세트를 가져왔다.
“카운터에 있다가 의도치 않게 들었는데, 너무 잘하셔서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
“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장 부장은 만족스럽게 다시 모히토 잔을 들어 올렸다.
“김 대리의 성대모사를 위하여 건배 한번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