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20
20화 Chapter 9 – 운전도 잘하는 김 대리! (3)
“혜리 씨, 다 왔어.”
정훈은 집 앞에 차를 세우고 혜리를 흔들어 깨웠다.
“으으음.”
혜리는 눈을 비비다가 “아!” 소리를 내며 번쩍 잠에서 깨어났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잠들었어요. 옆에서 자면 예의가 아닌데….”
“괜찮아. 얼른 들어가서 쉬어.”
“정말 죄송해요.”
혜리는 주섬주섬 머리를 정리하고 핸드백을 챙겼다.
“원래 차에서 잘 못 자는데….”
“그래? 코까지 골면서 잘 자던데?”
“헉, 정말요?”
“농담이야. 하하하하. 어서 가 봐.”
안전벨트를 푼 그녀는 차에서 내려 운전석 옆으로 돌아왔다. 정훈은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
“조심히 가.”
“오늘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푹 쉬어.”
“네. 미팅 파이팅하세요!”
손을 내민 혜리와 하이파이브를 한 뒤에 정훈은 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를 출발시켰다. 현재 시간은 9시 40분. 휴게소에서 놀았던 것치고 빨리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사거리에서 빨간불에 걸려 신호 대기를 할 때, 휴대폰에서 위이이잉 진동이 울렸다.
글만 읽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귀에서 그녀의 음성이 들리는 느낌이었다. 답장을 하기도 전에 그녀에게서 또 하나의 톡이 왔다.
[내일 벚꽃놀이는 제가 스케줄 짜서 연락드릴게요. 일단 점심 같이 먹는 걸로 해요. 어때요?] [좋지. 내일 봐.]짧게 답장을 마쳤지만, 여전히 빨간색 신호등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훈은 휴대폰을 핸즈프리로 연결해 두고 달빛검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작가님.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드렸던 김정훈 대리입니다. 한 1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저는 한 5분 정도 후면 도착할 것 같아요.
“네. 천천히 오시고, 저는 검은색 아디다스 레인 재킷 입고 있습니다.”
-예. 어… 저는 지금 정장 입고 있네요. 빨간색 넥타이요.
“네. 이따 뵐게요!”
-예.
달빛검 작가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낯을 가리는 작가가 많기에 이런 경우는 이제 평범하게 느껴진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두리번거렸지만, 죄다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라 작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꺼냈을 때, 한 남자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김정훈 대리님?”
165cm 정도의 왜소한 몸집의 사내가 정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검은색 정장에 빨간 넥타이. 조금 전에 전화로 말했던 그 옷차림이다.
“달빛검 작가님이시죠? 안녕하세요.”
***
“간을 본 게 아니라, 워낙 일이 바빠서요. 솔직히 이렇게 달려와 주실 수 있는 편집자님이라면 제 작품도 열심히 도와주실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다들 신중하게 선택하시는 거니까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예. 술 괜찮으시죠?”
“네.”
정훈은 점원에게 냉큼 소주를 받아 들어 공손하게 따라 주었다. 잔을 채운 뒤에는 달빛검 작가가 정훈의 잔을 채워 주었다.
“낮에는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아, 카페 운영하고 있습니다. 체인점 오픈 때문에 요즘 많이 바빴거든요. 내일은 바로 강원도로 가야 해서 부산에서 뵙자고 한 거고요.”
“와, 고생하시네요. 글 쓰시랴, 카페 운영하시랴, 정신없으시겠는데요?”
“하하, 아닙니다. 일이야 직원들이 하는 거고, 저는 구석에서 글만 쓰죠.”
“아아, 그렇군요. 글은 원래 써 오시던 건가요?”
한참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의 카페로 자리를 옮겨 계약서에 사인을 받아 낸 시간은 새벽 1시.
늦었지만, 생각보다 쿨한 작가여서 계약은 수월하게 진행되었기에 정훈의 마음도 시원했다.
‘오래 운전해서 부산까지 온 보람이 있어.’
정훈은 마무리로 달빛검 작가와 악수를 하고 그를 택시에 태웠다.
“대리님이 정말 말씀을 잘해 주셔서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푸른 하늘 출판사가 괜히 최고라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었네요. 감사합니다.”
“아뇨, 제가 더 감사하죠. 꼭 서울 올라오셔서 얼굴 한번 봬요.”
“예, 올라가실 때 연락 한번 주세요.”
“네!”
김 대리는 시야에서 택시가 벗어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근처 모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샤워를 마치고 난 정훈은 편하게 침대에 누워 TV를 켰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채널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아, 오늘 왕글이 작가 유료 전환 공지 띄운다고 했었는데.’
문스토피아 앱을 켜기 위해 휴대폰을 들자, 혜리에게서 커피톡이 와 있었다.
[내일 12시쯤에 제가 광안리 근처로 갈게요.] [약속대로 점심은 같이 먹어요!] [미팅 늦어지셔서 시간 맞추기 힘드시면 미리 톡 주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굿밤!] [이모티콘]이모티콘은 곰돌이 캐릭터가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드는 그림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한 10시쯤에는 일어나야겠다.’
혜리도 정훈이 달빛검 작가와 만났던 이곳이 광안리라는 걸 알고 장소를 배려해 주었기에,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더욱 들었다.
알았다는 답장을 하고 휴대폰을 바로 닫으려고 했는데, 대화 목록 위에 잘려 있는 사진이 보였다.
대화 목록을 위로 올리자, 금강휴게소에서 혜리와 둘이 찍힌 사진 두 장이 보였다.
‘왜 이렇게 어색하고 웃고 있어?’
억지로 올라간 자신의 입꼬리가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사진의 정 가운데에서 혜리의 팔과 자신의 팔이 교차한 모습으로 향했다. 덕분에 그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전구로 덮여 있는 하트 조형물에서 빛까지 나는데, 이런 포즈까지 취하고 있으니 정말 커플 같았다.
게다가 몇 시간 후에는 벚꽃 데이트까지 있다. 그녀가 시간이 남아 얼떨결에 하는 벚꽃놀이지만, 남녀가 둘이 놀면 데이트는 데이트니까.
그는 내일을 기대하며 TV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왠지 오늘은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
“다행이다. 벚꽃이 그렇게 많이 지지는 않았네요.”
혜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정훈의 옆에 서서 걷기 시작했다.
“사람 없어서 좋네. 북적북적한 거 딱 질색이거든.”
“저도요. 김 대리님이랑은 잘 통해서 좋아.”
혜리가 웃으며 손을 높이 들었다. 정훈은 반사적으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제 계약은 잘 끝났어요?”
“응. 전화할 때는 되게 까탈스러우실 것 같았는데, 직접 만나 보니까 화끈하고 시원시원하시더라고.”
“엄청 고생하실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정훈은 싱긋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혜리는 손바닥을 들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벚꽃 잎이 손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손에 잘 떨어지지 않자, 그녀는 바람에 일렁이는 벚꽃 잎 하나를 잡아 꼭 쥔 뒤, 가슴에 얹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눈을 뜬 뒤에야 정훈이 물었다.
“소원 빌었어?”
“네. 벚꽃놀이 가서 꽃잎 잡은 뒤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 대리님도 소원 하나 비세요.”
“에이, 됐어.”
“아, 하나 해요! 여기까지 와 놓고 그냥 가면 재미없잖아요.”
혜리의 성화에 정훈은 흩날리는 벚꽃 잎 하나를 잡았다.
“눈 감고!”
“허헛.”
정훈은 혜리의 말대로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30초간, 짧지 않은 소원을 빌고 나서 눈을 뜨자 혜리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무슨 소원 빌었어요?”
“비밀.”
“아, 알려 줘요!”
“혜리 씨는 무슨 소원 빌었는데?”
“제가 먼저 물었거든요.”
“몰라. 그러면 비밀이지. 서로 알려 주는 거 아니면 둘 다 비밀이지.”
정훈은 혜리를 놀리듯 말하고 먼저 걸어갔다. 혜리는 정훈의 소원이 정말 궁금했지만, 차마 자신의 소원을 말할 순 없었다.
“같이 가요!”
***
“아, 비 온다.”
혜리는 손을 뻗어 손바닥에 비가 떨어지는지 확인했다. 주르륵 쏟아지는 건 아니었지만, 이따금 한 방울씩 떨어져 머리카락과 손바닥을 적셨다.
“우산 안 챙겨 왔지?”
“네. 얼른 가야겠네요.”
“그러게.”
“올라갈 때 비 오면 한참 고생하실 텐데.”
“아니야. 지금 확인해 보니까 부산 지역만 아주 조금 오고, 나머지는 맑대.”
“다행이다.”
비가 올 듯 말 듯 오고 있었기에, 둘은 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차로 돌아갔다.
“그나마 보슬비라서 다행이네요.”
“응. 거의 먼지잼으로 오고 있어서 우산까지는 필요 없겠다.”
“먼지잼요?”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혜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훈은 그녀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가르치는 느낌이 들지 않게 설명했다.
“비가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 오는 형태일 때 쓰는 말이야. 지금은 비가 먼지잼으로 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아, 그렇구나. 진짜 생애 처음으로 들어 봤어요.”
“나도 얼마 전에 알았어. 산기영 작가님 원고 교정하다가 배웠다니까?”
“역시 산기영 작가님이네. 괜히 대박 작가님이 아니셔요.”
“맞아. 하하핫.”
차에 올라탄 정훈은 능숙하게 차를 몰아 혜리의 집으로 향했다. 신호등에 걸려 서 있을 때, 혜리가 물었다.
“대리님.”
“응?”
“차 없으시다고 했죠?”
“응.”
“그러면 예전에도 없으셨어요?”
“그렇지. 중고차도 사 본 적 없어. 나중에 돈 모아서 집부터 사고 나서 사려고.”
“그렇구나. 근데 어떻게 운전을 이렇게 잘해요?”
“어?”
때마침 신호가 바뀌어 정훈은 부드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혜리는 정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도 봐요. 차가 막 고급 외제차도 아닌데, 출발할 때 완전 부드럽게 가잖아요. 멈출 때도 그렇고.”
“에이, 다 이 정도 해.”
“아니에요. 제가 타 본 차들 중에 이렇게 잘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제가 어제 차에서 잤잖아요. 원래는 흔들려서 잘 못 자거든요. 근데 저 재우신 거 보면 엄청난 거예요.”
“하하하하하하하. 오늘 칭찬이 과한데?”
“아, 진짠데….”
“고마워. 나중에 차 사면 드라이브시켜 줄게.”
“진짜죠?”
혜리가 반색하며 말했다.
정훈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로. 대신, 한 10년 정도 기다려야 될 수도 있다.”
“아, 그때 되면 제가 먼저 차를 살 것 같네요.”
“그런가? 하하하하!”
크게 웃으면서도 좌회전을 하는 차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택시 기사가 운전하는 것보다 더 부드러운 코너링. 마치 흔들리지 않는 시몬즈 침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