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72
72화 Chapter 44 – 주식도 잘하는 김 대리! (2)
그동안 보냈던 원고는 자체적으로 세이브해 놓았던 원고라고 했다. 그러나 주식 상장폐지 이후에는 전혀 글을 쓰지 못했고, 차마 말하지 못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얼마나 날리신 거예요?”
“지금까지 번 돈 전부요. 이 집 전세금 7천 빼고 지금 통장에 15만 원 남았어요.”
“어우….”
지금까지 푸른 하늘에서 그에게 정산해 준 금액만 2억이 넘는다. 워낙 연재 중단을 자주 하긴 했지만, 꽤나 유명한 작가인 만큼 정산금도 컸다.
푸른 하늘 출판사 이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벌어들인 돈과 작가 생활 이전에 벌었던 돈까지 합치면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왜 그런 정리매매 주식에 뛰어들었냐고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분명 작은 별 작가는 멘탈이 터지거나 화를 낼 것이다.
“이제 어떡하죠?”
정훈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뒤에서 지켜볼 테니 글을 쓰라고 하지도 못할 노릇이다.
김세찬 작가의 물음은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정훈도 더 이상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오렌지 주스만 홀짝였다.
“빚 있어요?”
작은 별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빚까지 졌으면 아마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큰일이 되었을 테니까.
정훈은 일단 머릿속으로 생각해 두었던 앞으로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휴재 공지 올릴게요. 당분간 글 쓰시기 힘들 테니까, 장기 휴재로 가는 게 낫겠죠?”
침묵은 긍정의 표시.
“그렇게 진행하고, 지금까지 완결된 작품들 최대한 이벤트 들어가서 수익 올려 볼 테니까, 마음 좀 다스리세요.”
“죄송해요.”
작은 별 작가는 착잡하게 말했다. 그래도 작가 케어해 주는 게 편집자의 일이니 정훈은 화를 내지 않았다.
“괜찮아요. 천천히 멘탈 잡으세요.”
“이번에 휴재하면 여파가 크겠죠?”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지금까지 워낙 휴재와 연재 중단을 많이 하셔서…. 얼마나 걸리실 거 같아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노트북 앞에 앉으면 아예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 버리더라고요.”
“그렇군요. 사무실도 안 나오신다면서요.”
“아… 지금은 고민하고 있습니다.”
작은 별 작가는 여전히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본인도 잘못을 아는지, 미안함에 차마 정훈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사무실까지 안 나오시면 글 쓰는 게 많이 힘들지 않겠어요?”
“네,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지금 통장 잔고도 그렇고, 월세 내기도 빠듯한 상태라….”
정훈도 선뜻 내주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작은 돈이 아니다. 한 달에 300도 못 버는 처지에 언제 받을지도 모르는 사무실 비용과 월세를 합치면 무려 80만 원이다. 갑자기 80만 원을 쓰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았다.
“잠깐만 기다려 봐요.”
정훈은 휴대폰을 꺼내 바로 정산 사이트에 들어갔다. 작은 별 작가의 이번 달 정산 내역을 확인했다.
입금 예정액이 엄청나게 많지는 않더라도, 이 정도면 월세와 사무실 비용 정도는 충분했다.
“작가님. 사무실 비용이 언제까지죠?”
“이틀 남았어요. 솔직히 지금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도 그렇고, 잘나가는 작가라고 말해 놔서 친구들한테 손 벌리기도 쪽팔리고요. 당분간 쉬었다가 다시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가 일단 빌려 드릴게요.”
“정말요?”
그제야 김세찬 작가는 고개를 들어 정훈을 바라보았다.
“대신 이번 정산이 들어오면 바로 갚아 주셔야 돼요. 저도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알겠습니다. 저 정산금이 얼마죠?”
정훈은 정산 내역이 떠 있는 화면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이 정도면… 가능할 것 같네요.”
“더 이상 주식 하시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오늘 집에 가서 바로 보내 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세찬 작가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정훈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요?”
“네.”
정훈은 탁자 위에 있는 김세찬 작가의 휴대폰을 집어 들어 그에게 건넸다.
“주식 어차피 하나도 없으시죠?”
“네.”
“지금 바로 그 계좌 닫아 주세요.”
“계좌를요?”
김 작가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정훈의 태도는 단호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주식 해 봐서 그 심정 잘 알아요. 너무 억울하고, 잃은 거 복구하고 싶고, 다시 하면 잘될 것 같잖아요.”
“…네.”
“그러지 마세요. 저도 잃어 봤어요. 잃은 건 아쉽지만, 여기서 끝내셔야 돼요. 더 하시면 정말로 빚지고 인생 금방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정훈은 잡고 있는 김세찬 작가의 손 위에 다른 손까지 포개어 꼬옥 잡았다.
“작가님 능력 충분해요. 『재능의 소드마스터』만 열심히 쓰시면 잃으신 돈은 1년이면 다시 벌어들일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김세찬 작가도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정훈의 말이 맞다는 건 그도 알고 있다. 더 주식을 하면 이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독이라는 게 쉽지 않다. 담배를 끊기 어렵고, 마약을 끊기 어려운 것처럼 주식도 한번 손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처음부터 잃었으면 모를까, 계속 벌고, 벌고, 또 벌다가 한순간에 잃기에 그 중독이 더욱 컸다.
“어머니 생각 하셔야죠.”
정훈의 마지막 한마디가 김세찬 작가의 심장에 꽂혔다. 어머니한테 꼭 돈을 많이 벌어서 집을 사 드리겠다고 했었다.
마음이 뭉클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더 마음만 아파질 것 같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글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해 보도록 할게요. 오늘은 이만….”
정훈도 김세찬 작가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좌 번호는 커피톡으로 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에 직접 찾아오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작가님이 제일 우선이니까요. 그러면 실례했습니다.”
“예. 조심히 가세요.”
작은 별 작가는 현관에서 더 나오지는 않았지만, 정훈은 서운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다시 글을 쓰기만 바랄 뿐.
주식 계좌 닫는 걸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그가 머지않아 원고를 보내올 것 같았다.
‘잘되겠지.’
정훈은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
“아, 이번에 삼별 말고 수성 전자로 갈까?”
“거기도 나쁘지 않아요. 이번에 에어컨 신기술 냈다고 판매량이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박 과장과 최 대리의 이야기를 듣던 정훈은 작성 중이던 파일을 뒤로하고 무심코 주식 차트를 보고 있었다.
“선배도 주식 하세요?”
어느새 다가온 나희가 정훈의 앞으로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아, 아니. 그냥 들어와 본 거야. 근데 무슨 일이야?”
“택배 왔어요. 혜리 선배가 보낸 것 같던데요?”
“혜리가?”
나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훈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보낸 주소가 혜리가 이직한 회사, 보낸 이에는 임혜리라는 이름이 떡하니 적혀 있었다.
‘갑자기 무슨 택배를 보낸 거야? 나한테 아무 말도 없이.’
궁금함에 지금 확인하고 싶었지만, 정훈의 생각에는 아마도 연애와 관련된 물품일 것이다. 택배를 뜯다가 상사 중에 누군가가 보기라도 했다가는 분명 ‘회사에서 업무나 할 것이지.’라며 잔소리를 들을 테니, 우선은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아, 그리고 다음 주에 건강검진 있잖아요.”
“건강검진?”
“네. 사원들 1년마다 받는 거라고 하던데요?”
“아, 정기 검진 말하는 거구나. 벌써 그거 할 때가 됐나?”
달력을 보니 다음 주 수요일에 큼지막하게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러네. 근데 건강검진이 왜?”
“그거 한다고는 들었는데 어떻게 뭘 해야 되는지 전해 들은 게 없어서요.”
“별거 없어. 그냥 전날 저녁부터 굶고 오전에 같이 모여서 병원 가면 돼.”
“다 같이 가요?”
“아니. 절반은 수요일에 가고, 나머지는 목요일에 갈 거야.”
“막 허리둘레 재거나, 몸 사이즈 재거나 그런 건 없죠?”
걱정 가득한 그녀의 표정에 정훈은 피식 웃음이 났다.
“무슨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런 걸 검사하겠어. 그냥 일반 건강검진이랑 똑같아. 나희 씨 몸에 병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거야. 걱정할 거 없어.”
“그렇죠? 아, 제가 고등학교 이후로 건강검진을 한 번도 안 해 봐서 걱정이 되어 가지고요. 헤헷.”
정훈은 피식 웃으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나희는 무언가 말을 더 걸까 하다가, 자신의 볼을 긁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희와 이야기하는 사이, 커피톡이 와 있었다.
[작은 별 작가 : 우선 한 편만 써 봤어요. 메일로 보냈으니 한번 확인해 주세요.]“허허헛.”
조금 전까지 휴재 공지를 쓰면서 뭐라고 변명해야 욕을 덜 먹을지 고민하고 있던 정훈에게는 한 줄기 빛 같은 소식이었다.
‘이 작가가 이렇게 빨리 정신을 차릴 작가가 아닌데?’
[정훈 : 네. 바로 확인할게요.]곧바로 정훈은 메일에 들어가 작은 별 작가가 보낸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원고를 주욱 읽어 가던 정훈은 자연스레 얼굴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지금까지 재능을 바탕으로 갑질을 하던 소드마스터가 우연히 잃어버린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였다.
글을 쉰 지 2주나 지났지만, 글이 모나거나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연중과 휴재가 잦더라도 역시 프로 작가는 작가.
어머니의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전개인 점은 있지만, 그렇게 어색하거나 흠이 잡힐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어머니 생각 하면서 썼구나.’
깊은 건 모르지만, 예전에 작은 별 작가와 술을 한잔 하면서 애달픈 가족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이번 원고는 작은 별 작가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글이 아닌가 싶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정훈은 곧바로 커피톡으로 답장을 보냈다.
[정훈 : 특별히 손볼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다음 화는 언제쯤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작은 별 작가 : 지금 쓰고 있어요. 주말에 펑크 안 내고 업로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리님이 쉬셔야 돼서 일단 주말만 휴재 공지 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이렇게 기특할 수가!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정훈이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못해도 한 달 정도는 쉬지 않을까 싶었는데, 한 편만 쓴 게 아니라 휴재 없이 갈 수 있다니.
[정훈 : 주말이라도 괜찮습니다. 펑크 내지만 말고 원고 쭉쭉 보내 주세요. 제가 그날그날 바로 교정해서 보내겠습니다.] [작은 별 작가 : 괜찮으시겠어요?] [정훈 : 예. 걱정 마세요. 그러면 휴재 공지 없이 갈 테니까 펑크 내시면 안 됩니다.] [작은 별 작가 : 네. 오랜만에 사무실 왔더니 원고가 잘 써져서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아요.]‘고생하시고 파이팅하세요!’라고 답장을 보내려는 찰나, 작은 별 작가에게 추가적으로 메시지가 왔다.
[작은 별 작가 : 제 주변에 대리님처럼 저 생각 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까 인생을 헛되이 산 것 같진 않더라고요. 감사합니다.]정훈은 괜히 부끄러워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작은 별 작가가 워낙 펑크도 잘 내고, 잠수도 잘 타서 인간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저 업무적으로 필요하니까, 문제 생기지 않으려고 그를 챙겨 주고 케어해 주었다. 업무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김세찬 작가는 그 모습을 인간적으로 느꼈고, 진지하게 대해 주었다.
새삼 지금까지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되었다.
그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작은 별 작가의 이름을 변경했다.
[김세찬 작가 : 참, 저 주식 계좌도 닫았어요. 진짜 이제 주식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작가는 글을 써야지, 돈놀이를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하하.] [정훈 : 잘하셨어요. 그러면 이번 원고는 제가 바로 업로드 예약해 두고, 다음 원고 잘 기다리겠습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늘 파이팅하세요!]그의 말대로 작가는 돈놀이를 할 게 아니라, 글을 써야 하고 편집자는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주식은 하면 할수록 돈에 집착하고 피폐해진다. 정훈은 모니터에 켜 두었던 주식 차트와 주식 사이트를 모두 닫았다.
주식을 제일 잘하는 건 주식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주식 때문에 한탄하고 있는 박 과장을 보며 완전히 주식에 대한 미련을 떨쳐 낸 정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원고 교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