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44)
144 공간수납 갑옷기사
이대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정령 나비가 떼로 몰려다니며 시야를 방해했다.
어디론가 좀 가줬으면 좋겠는데 이 녀석들의 관심은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는 모양이다.
정령이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이 녀석들이 특별히 그런 성향인지, 오직 나한테만 달라붙어 다니면서, 나한테 다가오는 인간에게만 아주 조금 흥미를 보였다.
드물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정령인이고, 그 외에는 타티아나뿐이다.
그나마도 아주 잠깐 그들에게 붙어 있다 나와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다시 돌아왔다.
이놈들의 숫자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나는 나비 때문에 환한 시야를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 녀석들이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 밤에도 훤하다.
반딧불이처럼 개개의 빛은 크지 않지만 수가 엄청나니까.
게다가 얼굴 근처에 특히 많이 몰려와 있어서 굉장히 밝았다.
잘 수 없어.
밤에도 낮 같다.
덕분에 잠이 부족해 죽을 판이다.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벌써 몇 번째인지, 숨 쉬는 것보다 한숨이 더 많은 느낌이다.
빨리 뭔가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한숨으로 인생이 얼룩질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하지.’
나비 떼한테 말도 해보고 몸짓으로 가라고 표현도 했다.
화도 내봤어.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라, 가라, 하면서 소리치거나 화내는 시늉을 하면, 주변을 돌아다니며 저희들이 분노했다.
날개 떨리는 소리가 요란해지고 회오리바람이 분다.
내가 자기들 때문에 화났다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한 모양이다.
무리 지어 몰려다녀서 그런지 나비 떼가 지나간 곳마다 가구와 벽이 흔들리고 바닥이 진동했다.
그러다 잘못하면 다뷔토 백작가처럼 건물이 무너질 것 같아서 달래느라 진짜 힘들었다.
말로 해도 정령한테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바보처럼 하하 호호 웃으며 몸짓으로 전하느라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
어쩌면 내 일부분의 어딘가는 이미 죽은 걸지도 모른다… 하아….
깊은 밤, 나비 떼를 몰고 복도를 걷노라니 사용인들이 나를 만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처음에는 나비를 볼 때마다 깜짝 놀라던 저택 사람들도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눈이 휘둥그레지거나 겁내지 않는다.
나비가 종종 물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 오지는 않아도 미소 짓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그들을 지나쳐 가는데 사용인 한 명이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응?
나도 모르게 다리가 멈춘다.
거리는 제법 되지만 분명히 날 보고 평복한 것처럼 보였다.
옷차림을 보면 시종은 아니다.
주변에 걸레와 물든 양동이가 놓인 걸 보면 하급 사용인이 밤 시간을 이용해 일하는 것 같다.
사용인들이 다니는 통로는 귀족의 것과는 동선이 겹치지 않고, 낮에는 귀족이 없는 틈을 타 일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건 드물다.
나비 때문에 밤에 자지 못해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면 평생 얼굴 마주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용인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이마를 땅에 대고 있었다.
확실하게 내가 있는 방향을 콕 집어서.
이쪽으로는 나 말고는 장식품뿐이다.
평소에 따라다니는 시종이나 집사도 지금은 쫓아다니지 말라고 명령해, 지금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나비 떼가 시끄러워서 귀찮아진다.
그러니까 분명히 나한테 절하고 있는 것 같은데.
“….”
왜 그래.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비 떼 때문에 기괴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내 얼굴을 보고 겁을 먹은 건지 모르겠다.
처음 공작가에 왔을 때는 먼발치에서 날 보고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이 지는 종종 있었기 때문에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가급적 내 눈에 띄지 않게 조치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가끔 보여서 약간 의기소침했던 적이 있었다.
설마 또 그런 시기가 온 건가.
내가 우뚝 서 있는데, 언제 왔는지 아버지의 개인집사 로빈이 보였다.
나비 때문에 요즘은 종종 사람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시야가 가려지기도 하지만 나비 떼 소리가 요란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없어도 날갯짓 소리가 요란하고, 그래서인지 몰려다니는 방향마다 회오리바람이 작게 불었다.
작은 개미도 뭉치면 큰 집단이 되는 것처럼, 이 녀석들의 작은 바람도 떼가 되어 커지면 엄청나다.
주변 공기가 흔들리고 고막이 떨린다.
특히 나는 그런 감각에 예민하니까 더 괴롭다.
지금도 로빈이 몰래 다가온 건 아닐 텐데 가까이 올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이놈의 나비 떼!
원수가 덮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어깨가 축 늘어지는데, 로빈이 내 얼굴을 보더니 빙긋 웃었다.
아버지를 만나서 그런지, 로빈은 전에 만났을 때와 인상이 다르다.
전에는 삶에 찌든 집사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싱글벙글 잘 웃는 사람이다.
순수하고 착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미안하지만 조금 멍청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지금도 로빈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제인가부터 저런 사람이 한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로빈의 시선이 엎드려 있는 사용인을 향했다.
그의 말투로 봐서 나쁜 건 아닌 모양이다.
적어도 내가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
“… 왜 저러는 건지 아나?”
내가 묻자 로빈이 다시 빙긋 웃었다.
“정령 때문이에요.”
“정령? 정령이 왜?”
다른 사람은 나비가 정령이라는 걸 알아도 저렇게 납작 엎드리지 않는다.
“정령 신앙을 가진 사람이 간혹 있거든요. 저 사람은 이 나비가 정령이라고 듣고 도련님과 정령에게 경의를 보이는 겁니다.”
“….”
안 돼.
이거 안 되는 놈이다.
처음에야 경의를 보인답시고 한두 명만 저렇게 엎드리겠지만, 나중에는 분명 정령을 신처럼 받드는 놈들이 나타나거나 정령을 빼앗으려는 놈이 등장해서 주변 사람 모두 끌어당겨 복잡하게 되는 거야.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쫘악 그려졌다.
뭐, 정령을 빼앗으려는 놈이 오면 당장 가져가라고 던져 주고 싶기는 한데, 준다고 갈 리 없잖아, 이놈들이.
이건 골칫거리밖에 안 되는 일의 시작이다.
‘빨리 싹을 자르지 않으면 진짜 크게 될 거야.’
지금도 원래는 공작령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이 나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고 계속 왕도 저택 안에만 콕 박혀 있는 중이다.
갑옷기사만으로도 이상해 보이는데 정령 나비까지 달고 다니면 정말 인간 이외의 취급을 당할 것 같아서 못 나가는 거다.
갑옷기사가 나타났을 때조차 웃고 있던 아버지도 이건 좀 곤란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비가 진정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이동금지령을 내렸다.
아버지가 그렇게 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거지.
공작가 연줄을 동원해 여기저기 방법을 수소문하는 모양이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지.’
나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나를 향해 넙적 엎드린 사용인은 내가 지나가도 여전히 그 자세였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저러고 있을 모양이다.
하아아아아아.
기껏 예쁜 신부 얻어서 행복한 날이 펼쳐졌다 싶으니 이게 무슨 꼴인지.
워낙 밤에도 환한 데다 나비가 자꾸만 날아다니며 방해해서, 타티아나와의 야릇한 밤도 이 녀석들 등장 이후에는 완전히 멈춰 버렸다.
타티아나는 환한 게 부끄럽고, 나비가 날아다니며 달라붙으면 간지럽다고 웃고, 나비의 커다란 눈이 보고 있는 것 같아 곤란하다고 하고, 그럴 무드가 생기지 않는다.
철그럭 철그럭, 내 마음도 모르고 갑옷기사가 기쁜 듯 쫓아왔다.
모든 것이 저 갑옷기사 탓이다.
나 혼자 왕궁에 갔을 때는 아무것도 붙어 오지 않았다.
한데 저 녀석이 왕궁에 가니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정령들이 나한테 철썩 달라붙어 온 거다.
씨앗은 만드라고라 거지만, 원인을 따져보면 모두 저놈들 탓인 것 같아.
“….”
원망스럽게 뒤쫓아오는 갑옷기사를 쳐다보는데, 나비 몇 마리가 갑옷기사의 투구에 부딪혔다.
눈구멍에 닿자 나비가 쏙 들어간다.
보통 때는 어디론가 들어가도 금방 다시 튀어나오거나 어떤 놈은 몸이 투명해서인지 막힌 공간을 그냥 통과하기도 하던데, 이번에는 들어간 놈이 나오지 않는다.
‘어라, 뭔가 이상한데.’
그냥 평범한 일일 수도 있다.
정령도 자거나 농땡이 치는 놈이 있는지, 드물게는 저렇게 어디엔가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녀석이 있었다.
워낙 수가 많으니 그런 놈들이 다시 나오는지 계속 거기에 있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이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직감은 나름대로 일을 잘한다.
아무래도 평범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속삭였다.
나는 주변에 있는 나비 몇 마리를 잡았다.
내가 손으로 몇 놈을 움켜잡자 순식간에 수천 마리가 내 손에 엉켜 들었다.
나한테 잡히고 싶은 모양이다.
내 손이 마치 벌 떼 달라붙은 기다란 벌통처럼 되었다.
아주 두툼하고 커다랗고 기다란, 벌 떼도 엄청나게 많이 붙은 놈으로.
내 몸에 붙어 있는 게 기쁜지 파르르 파르르 날개를 떨어서 진짜 벌 떼가 웅웅거리는 것 같다.
나는 손에 나비 떼를 잔뜩 매단 채 갑옷기사 앞으로 향했다.
처음 하는 내 행동에 갑옷기사가 어리둥절한 것처럼 투구를 약간 기울였다.
인간이 하는 행동을 흉내 내는 것 같다.
나는 녀석을 밑으로 끌어내려 서게 한 뒤 훌렁 투구를 벗겼다.
내 팔에 들린 투구의 눈가리개가 철커덩 철커덩 움직인다.
그 모습이 마치 눈을 껌벅껌벅하는 것 같아 조금 재미있었다.
“잠깐만 좀 참아 줘.”
투구 안을 들여다보자 둥근 머리 안쪽에 나비가 얌전히 앉아있다.
내 주변에 있을 때는 날 때나 앉아있을 때나 쉬지 않고 날개를 파르르 떨어 소리를 내지만, 투구 안에 있는 놈들은 아무 움직임도 없이 조용하다.
날개를 접은 채 자는 것처럼 보였다.
“….”
이건 쓸 수 있겠어.
나는 정령이 잔뜩 붙어 있는 팔을 갑옷기사의 목 안에 쑤셔 넣었다.
다행히 갑옷기사의 목이 내 팔뚝보다 굵다.
나비가 많이 붙어 있기는 했지만 갑옷에 부딪히지 않고 쑥 들어갔다.
갑옷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벌통에 달라붙은 벌 떼처럼 매달려 있던 놈들이 스르르 내게서 떨어졌다.
얌전히 날개를 접은 채 갑옷 안에 달라붙어 조용히 있는다.
덜컹거리며 당황한 듯 움직이는 건 갑옷기사의 팔뿐이었다.
좋았어, 너의 희생으로 내가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당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화려한 나비 떼가 나와 함께 뛰는 것처럼 한 무더기가 되어 난다.
캄캄한 밖으로 나가자, 내 주변만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오색찬란하게 반짝반짝 빛났다.
갑옷기사들은 평소처럼 말을 탄 채 조용히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나를 보자 반가운 듯 몇 발자국 다가온다.
나도 반갑다.
한 발짝 늦게 등 뒤에서 철커덕거리며 따라 나온 갑옷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목 없는 듀라한이다.
아, 미안.
머리를 내가 가지고 있었구나.
달리는 바람에 투구의 나비가 깨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녀석들은 여전히 안쪽에 붙은 채 자고 있었다.
‘좋았어!’
드디어 이 녀석들을 어딘가 넣어둘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이 많은 정령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조금 걱정됐지만, 어느 정도만 수납되어줘도 정말 기쁘다.
나는 손을 뻗어 정령이 달라붙으면 곧바로 갑옷기사 몸속에 팔을 넣었다.
신기하게도 나비는 갑옷 안에 들어가자마자 조용히 잠든다.
게다가 갑옷기사 몸이 꽉 차도 계속 들어갔다.
갑옷기사 몸속이든 정령나비든 둘 중 하나는 이 세상의 물리법칙에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어쩌면 둘이 합쳐져서 그런지도 모르고, 원래 이상한 생물이기 때문에 둘 모두 각자 물리법칙과 무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좋았다, 진짜로 좋았다.
갑옷기사를 한 놈씩 잡아 나비 떼를 넣다 보니 어느새 몇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어느새 하늘이 허예지고 있었다.
“….”
눈이 부시지 않는다.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의 희뿌연 어둠이 돌아왔다.
“도련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연 우리 주인님의 아드님이시네요.”
약간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던 로빈이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동은 나도 하고 있지만, 아버지 아들인 것과 이건 상관없을 것이다.
뭐든 아버지랑 연결하는 건 그만둬.
로빈은 좋은 사람이고 나름대로는 유능한 모양이지만, 아버지에 너무 심취했다.
아버지 신봉자라고 해야 할지 의존증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인간으로서 조금 망가진 것 같다.
원래 개인집사는 그런 거라고 설명 들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해가 안 된다.
인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조금은 이상해 보였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갑옷기사들은 나 때문에 모두 목 없는 듀라한이 되어 있었다.
나는 갑옷기사의 머리에 투구를 하나씩 올려 씌워준 뒤, 드디어 며칠 만에 편히 잠자러 방으로 돌아갔다.
이번 일로 절실하게 깨달았다.
평범한 일상은 소중한 것이다.
평범이야말로 좋은 거야.
푹 자고 일어나자, 저택은 공작령으로 돌아갈 준비로 한창이었다.
나한테서 나비가 없어지자 겨우 공작령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왕이 머지않아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만일 왕이나 왕세자 중 한 명이 죽거나 둘이 연달아 사망하면 왕도에 할아버지가 있는 편이 낫다.
그 사이 아버지는 공작령으로 돌아가 봉신 가문의 주요 인물들과 만날 거라고 들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아버지를 지지하는 자와 다른 형제를 미는 사람들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다고 한다.
왕가에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그것부터 완전히 정리해 둬야 하는 모양이다.
어머니가 의욕적으로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도끼날도 번쩍번쩍 잘 닦은 것 같다.
평소에도 무기 손질은 어머니 취미 같은 거지만 광택이 다른 때와 다르다.
엄청나게 날이 잘 서 있었다.
엄마, 후계자 장악이라는 게 사람 죽인다는 말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다 죽이면 장악은커녕 반발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나 댕강댕강 목 자르면 안 돼요.
“….”
내가 잘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