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6)
006 어머니의 원수를 만났다
높은 나무가 귀신처럼 서 있는 사이로 발을 옮기자, 발밑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며 나뭇잎이 부서졌다.
오두막은 울창한 나무 사이 작은 공터에 숨은 것처럼 놓여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한 장의 그림처럼 그럴싸했지만, 가까이 가자 오두막은 작고 초라했다.
벽으로 세운 나무는 제대로 이음새가 메워지지 않아 여기저기 구멍이 뚫렸고, 지붕은 단순히 나뭇가지를 대강 얽어둔 것이다.
비가 오면 안으로 빗물이 고스란히 떨어질 것 같다.
문은 아예 닫히지도 않아, 문틀에 못을 쳐 붙들어 매 두었다.
한 번도 집을 지어본 적 없는 사람이 만든 것 같다.
집 앞에는 장작 패는 커다란 나무 밑동이 있고, 옆으로는 작은 밭이 있었다.
어쨌든 문이 밖에서 묶인 걸 보면 집안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주변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계십니까!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여러 번 외쳐도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문틈으로 살짝 집안을 쳐다본다.
빈집은 아니었다.
제대로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숲에서 이웃집에 놀러 갔을 리는 없으니, 덫을 확인하거나 사냥하러 갔을 것이다.
나는 집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주저앉아 집주인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아, 왠지 긴장되네.’
이 세계에 태어난 뒤 계속 부모님과만 살아왔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득 말은 통하는 걸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는 이 나라 아레논 왕국 출생이지만 어머니는 에노르토스 대자치령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들었다.
에노르토스는 동쪽의 산맥 너머에 있는 나라로, 흔히 야만족 혹은 야만전사라 불리는 부족이 여럿 모여 나라를 이룬 곳이다.
출신 국가가 다르기 때문에 두 분은 모국어도 달랐다.
이 대륙에는 공용어가 있어서 의사는 통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같은 공용어로 말하는데도 억양이 많이 다르다.
그리고 공용어는 일부러 배워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용병으로 일하기 위해서 익힌 거라고 들었다.
오두막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평민이라면 공용어는 모를 수도 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쩌지.’
오두막 주인이 이 나라 사람이라면 아버지에게서 배운 언어는 통하려나.
‘그것도 조금 미심쩍은데.’
아버지는 상당히 고급 언어를 사용했다.
아마도 귀족의.
일반 평민이 쓰는 말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몸짓으로 대화하는 건가.
왠지 미지의 세계에 조우하는 기분이 들어 조금 두근거렸다.
기왕이면 오두막 주인이 예쁜 여성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가족 외에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중년 아저씨든 할아버지든 상관없이 굉장히 기대되었다.
두어 시간 정도 기다렸을 것이다.
머리 위에서는 아기새 렐라가 배고프다고 짹짹거리며 나를 쪼아대고, 나도 슬슬 허기가 졌다.
어쩌면 오두막 주인은 사냥하러 멀리 갔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사냥감을 쫓아 며칠 돌아다니는 일도 있을 테고, 한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조금 실망하면서 일단 뭐라도 먹어야 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숲속에서 나뭇가지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집주인이 돌아온 모양이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를 끼칠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 팔을 옆으로 늘어뜨린다.
그리고 입술 끝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나는 어머니를 닮아 약간 험악하게 생겼다.
적어도 미소로 그 험악함을 누그러뜨리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잖아.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막 숲에서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손에 커다란 잿빛 토끼를 한 마리 들고 있었다.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이었다.
나를 본 노인의 눈이 조금씩 커지더니, 손에서 토끼가 툭 떨어졌다.
*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의 인생은 특히나 그랬다.
겨우 뭔가 잡았다고 생각하면 스르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비록 가난한 남작가였지만, 그는 귀족 가문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알고 보니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부정한 일을 해 그가 태어났던 모양이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기 때, 그는 가문에서 어머니와 함께 쫓겨났다.
어머니의 가문에서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열 살이 될 때까지 평민이 사는 거리에서 부랑아처럼 살아야 했다.
겨우 인생이 피었다고 생각한 건 열 살 때.
어머니의 불륜 상대였던 남자의 가문에서 그를 데리러 왔다.
친부의 아들 둘이 모두 죽어 후계자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러나 친모까지 함께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돈을 받고, 친모는 그를 아버지의 대리인에게 넘겼다.
그는 친부와 그 정부인의 아들이 되었다.
그때부터 오 년은 힘들었다.
다시 귀족이 되기는 했어도 환영받는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인은 아들이 된 그를 증오했고, 친부는 무관심했다.
하루 종일 엄한 가정교사에게 매 맞으며 공부하고 검을 휘둘렀다.
겨우 귀족으로 볼 수 있을 만큼의 태도를 익히자, 갑자기 약혼녀가 생겼다.
작위가 낮은 가문의 여성이었지만 굉장히 아름다웠다.
정식으로 계약서를 나눈 약혼은 아니었지만 별다른 일이 없다면 삼 년 뒤에는 정식으로 혼인 계약서를 쓴다고 들었다.
약혼녀는 그를 싫어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여자만 얻을 수 있다면 냉대받는 집안에서의 처지도 얼마든지 참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약혼을 맺기 전, 그녀는 이 나라에서 가장 힘 있는 발테르 공작가 후계자의 애인이 되었다.
공작의 아들 클라우스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남자였다.
날아가는 새가 그를 보고 날갯짓하는 걸 잊어버려 떨어졌다는 말도 떠돈다.
먼발치로 그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아름다운 남자였다.
공작가와 왕가에서만 나타난다는 보라색 눈동자와 백금발은 그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 어쩌면 인간이 아니라 악마나 천사가 지상에 내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소문조차 떠돌았다.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에는 그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만큼 아름다우면 그런 의심도 태어날만하지.
클라우스를 보지 못했다면 공작가에서 약혼녀를 원한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약혼녀는 아름다운 여성이니까.
하지만 약혼녀보다 공작가의 클라우스가 몇십 배는 아름다웠다.
공작가의 후광을 얻기 위해 약혼녀 혹은 약혼녀 집안에서 클라우스에 교묘한 덫을 놓았을 것이다.
귀족에게는 가문의 번영이 우선이다.
배신감에 가슴이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울면서 사랑을 포기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전 약혼녀는 은밀하게 그를 찾아왔다.
클라우스는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한다.
클라우스에게는 이미 정부인이 있고, 전 약혼녀보다 아름다운 애인도 수십 명이었다.
울면서 외롭고 슬퍼서 죽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그녀를 위로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 안이었다.
원래 사랑하던 여자다.
한 번 접촉한 뒤로는 쉬웠다.
여러 번 밀회를 거듭하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문도,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것도, 모두 버리기로 했다.
그녀와 아이만 있으면 된다.
함께 도망치자고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녀는 오히려 앞으로는 다시 만나서는 안 된다고, 우연히 보더라도 못 본 체하라고 요구했다.
그제야 겨우 눈치챘다.
그의 머리카락은 퍼석퍼석하고 흐린 노란색이다.
얼핏 보면 흰색에 가까웠다.
전 약혼녀는 태어나는 아이가 백금발과 비슷한 머리색을 하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나와 관계를 맺었다.
눈동자 색은 상관없었겠지.
보라색 눈동자는 공작가 안에서도 드물다고 들었으니까.
실제로 발테르 공작과 클라우스 외에는 공작가에도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한다.
클라우스에게는 여러 형제가 있었지만 보라색 눈은 그 혼자뿐이었다.
그 뒤 전 약혼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녀와의 일을 공작가에서 눈치챈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그의 가문은 순식간에 몰락해 버렸다.
그래도 사랑하는 여자와 친자식이 잘살고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려고 했었다.
어차피 가문에는 정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그녀마저….
‘헬가….’
손에 쥐고 있던 토끼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허리춤에 달려있던 검을 빼 들었다.
마의 숲에 야만전사 헬가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뒤따라 숲으로 왔다.
숲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살면서, 언젠가는 그 빌어먹을 야만전사를 죽이기 위해 검을 지니고 다녔다.
자면서도 검을 놓은 적은 없다.
꿈속에서조차, 그는 검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 번도 잊지 않았던 헬가의 얼굴이 눈앞에 있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을 쥐고 앞으로 내달렸다.
“헬가아아아아아아!”
모두 헬가 저 야만인이 클라우스에게 반했기 때문이다.
헬가는 그 남자 하나를 얻겠다고 공작가의 호위 병사는 물론 정부인과 애인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리고 납치했다.
그때 그녀도 죽었다.
“죽어라, 헬가!”
이날을 위해 비루한 목숨을 이어왔다.
단 며칠 사이에 머리가 모조리 희어지고 폭삭 늙을 만큼 절망했어도, 저 계집을 죽이겠다는 집념 하나로 살아왔어.
사는 게 지옥일 만큼의 절망 속에서, 그래도 죽지 않고 억지로 살았다.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
처음에는 미친 사람이거나 노망이 든 거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검을 들고 덤비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전생의 죽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순간은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제길, 놀랐어.
하지만 그가 헬가라고,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덤비는 순간 알아차렸다.
이 남자, 어머니의 원수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숲에서 살고 있는 것도 어머니를 죽이기 위한 걸 거다.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도끼를 빼 들었다.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누군가 너한테 덤비면 죽여라.
살려두지 마.
한 번 얕보이면 그때까지 엎드려있던 적이 모두 덮쳐온다.
나는 그것이 전투할 때의 마음가짐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순한 사실을 말했던 게 아니었을까.
적이 한둘이 아니고 원수가 세상에 수두룩하다면, 내가 약해졌다고 판단하는 순간 끊임없이 덮쳐올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강한 사람도 결국엔 죽고 만다.
붕, 소리를 내며 노인의 무거운 검이 어깨를 향해 떨어진다.
나는 몸을 기울여 검을 피하면서 도끼를 단단히 잡았다.
검은 곧바로 나를 향해 다시 방향을 바꾸어 달려들었다.
노인은 검을 제대로 배운 사람인 것 같다.
동작에 낭비가 없다.
머리 위에 앉아 있던 렐라가 날개를 퍼덕이며 지지배배 난리를 피웠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내 머리카락을 발톱으로 꽉 잡고 있어 조금 아프다.
나는 머리에 손을 올려 렐라를 살짝 잡으며 도끼를 위로 쳐올렸다.
부웅.
나를 향해 내려오는 검을 도끼가 막는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숲으로 퍼졌다.
“읔!”
노인의 억눌린 비명과 함께 검이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마 노인의 손목뼈가 아작났을 거다.
노인은 검을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나를 노려보았다.
“헬가아아!”
원한 가득한 목소리로 노인이 울부짖는다.
나는 도끼로 허공을 그으며 짧게 말했다.
“헬가는 내 어머니다.”
“!”
노인의 눈동자가 커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도끼가 노인의 목을 쳤다.
노인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자, 나는 잠시 그것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움직이고 말하던 인간의 얼굴인데, 몸에서 분리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왠지 인간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밀가루로 빚은 인형처럼 보였다.
왠지 현실감이 없다.
“….”
사람을 죽인 건 처음이었다.
조금은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별다른 감정은 일지 않았다.
나는 길게 한숨 쉰 뒤, 오두막을 뒤져 쓸만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지구인의 눈으로 보면 도둑질이겠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일 것이다.
이 오두막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 상관없겠지.
하지만 이 사람은 우리 집보다도 가난했던 것 같다.
비축된 고기도, 장작도 거의 없었다.
검은 상당히 쓸만해 보였지만, 내 무기는 검이 아니라 도끼다.
쓸모없다.
여분인지 신발이 있었지만 크기가 맞지 않았다.
그건 조금 아쉽다.
그래도 밀가루 약간과 은화, 구리 동전이 몇 개 있었다.
어쩌면 토끼나 짐승 가죽을 누군가에게 팔아 돈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어딘가에 마을이 있다는 말일 거다.
‘그렇다면 진짜로 숲은 이제 거의 끝난 거겠지.’
돈과 밀가루를 챙긴 뒤, 나는 오두막을 떠났다.
한참 걸어 하늘이 붉게 물들었을 무렵 너른 들판이 나왔다.
사방이 툭 트여 있어 야영하기에 딱 좋다.
“삐비비비비!”
머리 위에 앉아있던 렐라가 날개를 퍼덕이며 요란하게 소리쳤다.
들판이 좋다는 건지, 배가 고프다는 건지 모르겠다.
아직 아기라 그런지 렐라는 시도때도 없이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린다.
어쩌면 둘 다인가.
“알았다. 조금만 참아.”
렐라를 달래며 모닥불 피울 준비를 하다 나는 문득 동작을 멈췄다.
“어라, 혹시.”
내가 십사 년이나 전사 인증을 받지 못하고 어머니한테 훈련받았던 건, 사실은 어미곰한테 죽을 뻔했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거 아닌가?
단순히 어머니에게 적이 많아서, 그러니까 집 떠날 아들한테 최대한 가르쳐 보내고 싶었던 거 아니야?
생각하면 할수록 그런 것 같다.
“하아….”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해주지.
어머니, 정말 원망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