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장난이었다?”
“네.”
“그게 여장하고 내 속 이야기를 캐낸 이유야?”
“그, 먼저 말씀하시던데요.”
유은혜는 웃었다.
평소답지 않게 싸늘한 모습에, 소심하게 반항하던 이서준이 입을 닫았다.
악의는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은혜를 속인 건 사실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유은혜가 이서준을 쳐다봤다.
“네가 애야?”
“잘못했습니다.”
“뭐? 새언니?”
“그, 목소리가 종달새처럼 예쁘셔서.”
“그래서?”
“그래서, ‘새’언니……. 아니요. 죄송합니다.”
이서준은 조심스레 무마를 시도하다가, 깨갱 움츠러들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유은혜는 표정을 풀었다.
“휴. 그래서, 그 팔찌 때문에 여자가 됐다는 거지?”
“응. 원래는 처분하려고 했는데, 하이람 씨가 신분을 감출 때 쓰라고 해서.”
유은혜는 고민했다.
이서준이 아자누스 사냥꾼이라는 밝히기만 하면, 아마 일약 스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서준은 큰 명예나 유명세를 간단하게 내던져 버렸다.
신분을 감추고자 하는 이유는, 아마 설아 때문이다.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은 누리는 게 좋긴 하겠지만.’
이서준의 설명을 들어 보니, 뒷수습을 하고 있는 하이람도 곤란한 것 같았다.
만약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면, 의견에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하이람은 온갖 일들을 뒷수습해 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들키는 거 아니야?”
“하이람 씨는 들킬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했는데.”
이서준은 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하이람이 진행한 테스트 때문이었다.
심지어 마법사까지 초청해서 간파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만큼 체인저는 알아차리기 굉장히 어려운 물건이었다.
설령 알아차리더라도 아티팩트의 소유자인 이서준이 직접 해제하지 않는 이상, 파훼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설아는 눈치챘잖아. 심지어 돌려놓기까지 했고.”
“그건…… 그렇지.”
“그건 설아라서 가능했던 거야.”
다른 곳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목소리에, 이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책상 서랍이 드륵 열리더니, 에르제베트가 얼굴을 내밀었다.
애옹.
스승님이 반갑다는 듯 책상에 올라가 에르제베트의 볼에 얼굴을 문댔다.
이서준은 황당한 듯, 유은혜는 당황한 듯 에르제베트를 바라봤다.
그야 사람이 책상 서랍에서 튀어나오면 놀라는 게 당연했다.
“깜짝 놀랐네. 왜 서랍에서 튀어나오는 거야?”
“달리 연결할 만한 곳이 없더라고, 사역마랑 위치를 전환하는 것보다 이게 편하거든. 장거리 공간 이동은 마나를 너무 많이 잡아먹으니까.”
“아. 그 서랍 속에 있는 게 아니야?”
“아니야. 서랍 내부 공간과 다른 공간을 연결해 놓은 거지.”
“고양이 로봇이냐고.”
“실례네. 마녀야.”
에르제베트는 서랍 끝에 턱을 괴고 말했다.
서랍 아래가 텅 비어 있어서 조금 마술 같았다.
“아무튼, 그 아티팩트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안 걸릴 테니까.”
“설아는 바로 알아 버리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파훼해 버리던데요.”
“너희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설아는 천재야.”
이서준과 유은혜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봤다.
그야, 당연히 아는 사실이었다.
에르제베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나에 대한 재능만 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야. 학습 능력, 마법 습득 속도, 마나 컨트롤, 뭐 이런 부분을 총망라해서 천재라는 거지.”
“저희 애가 좀 똑똑한 건 맞는데…….”
“좀 똑똑한 수준이 아니라, 천재라니까. 마법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유은혜는 에르제베트가 과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이서준은 아직도 회귀 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마나에 재능이 있다고 구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요점은 설아가 천재라서 알아본 거고, 다른 마법사들은 못한다는 얘기지?”
“그렇지. 지금 지구 수준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너는 알아볼 수 있어?”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 돼?”
“……저렇게 빠르게는 못해.”
에르제베트는 거짓말은 하지 못하겠는지, 순순히 사실을 말했다.
설아를 보는 에르제베트의 눈에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하여튼 간에, 괜찮을 거야.”
“솔직히 내키진 않는데.”
“그래? 왜?”
“여장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느낌이라.”
이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미묘한 느낌이었다.
유은혜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즐기는 것 같던데.”
“어허. 오해야.”
“어허는 무슨. 근데…… 다시 변신해 봐.”
“변신?”
“그거, 아티팩트.”
“아. 뭐, 변신이라면 변신이지.”
이서준은 체인저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머리가 길어지고, 전반적인 신체 크기가 줄어든다.
이서윤의 모습으로 바뀌는 데에는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유은혜는 이서윤을 빤히 바라봤다.
“……왜 나보다 예쁜 것 같지?”
“무슨 소리야. 은혜 네가 훨씬 예쁘지.”
“말하지 말아 봐. 완전 연예인? 아이돌상이네.”
에르제베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돌이 뭔지는 모르지만, 예쁜 건 사실이었다.
“왜 근데 묘하게 서준이 같지?”
“폴리모프 계열 마법이니까.”
에르제베트가 설명했다.
하지만 둘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어리둥절한 얼굴과 마주한 에르제베트가 설명을 추가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서준이 여자로 태어났다면, 저렇게 생겼을 거란 거지.”
“아티팩트를 쓰면 무조건 이 모습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거지?”
“맞아. 고정된 모습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형상을 바꾸는 거야.”
“신기하네요. 서준아. 왜 남자로 태어났어. 아깝게.”
“너무하네. 정말.”
이서윤은 조금 억울한 듯 울상이 됐다.
하지만 부정하긴 어려웠다.
이 모습으로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꽤 주목을 모았다.
일관적으로 예쁘다는 반응을 겪었기에, 체감하고 있었다.
“잘생겼다는 소리는 별로 못 들었는데.”
“아무튼 신분을 감출 생각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야. 누가 성별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겠어?”
가면이나 마스크를 뒤집어쓴다.
영화나 만화에서는 많이 사용하는 수법이다.
실제로는 전신을 가리고 목소리도 바꾸지 않는 이상, 들킬 가능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예 성별을 바꾼다면, 얘기가 다르다.
들킬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처신만 잘하면 들킬 걱정은 없지 않은가.
“적합한 보상이라고 준 게 그것 때문인가?”
“뭐?”
“아니야. 그보다.”
에르제베트는 이서윤의 옷을 봤다.
유은혜도 아까부터 이서윤의 옷을 보고 있었다.
얼굴을 막 쓴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옷은 좀 아니다 싶었다.
“옷 좀 잘 입히면 좋겠네.”
“제가 코디할게요.”
“……왜 얘기가 그쪽으로 새는 거지?”
이서윤은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 * *
“정말 서준 오빠라고요?”
“그렇다니까 그러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고희연은 이리저리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이서윤을 살폈다.
조금 부담스러운 듯, 이서윤은 몸을 움츠렸다.
고희연은 눈을 빛냈다.
“되게 예뻐졌네요! 언니라고 부를까요?”
“……설정상 스물네 살일 테니까, 그래.”
“설정도 있어요? 짱이다.”
이서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수치 플레이가 또 없었다.
하이람도 협조를 구하려면 스펙터의 길드원에게는 전부 알려야 할 거라고 했지만.
조금 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았다.
“은혜 언니. 근데 저, 옷 고르는 센스가 썩 좋진 않아요.”
고희연은 평소와 똑같은 도복 차림이었다.
실제로 고희연은 유은혜나 하이람보다 옷차림의 변화가 적은 편이었다.
꾸며 입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대체로 편한 도복 혹은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렇기에, 유은혜의 권유로 함께 옷 가게에 왔으면서도 조금 난색을 표했다.
유은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보단 낫잖아.”
“아.”
이서윤은 저번에 입었던 큰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조금 어벙해 보여서 귀여울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센스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서윤은 조금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뭐 어때서.”
“……어린애가 어른 옷 입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서윤은 짐짓 억울해 보였지만, 고희연의 평가는 냉철했다.
유은혜가 고희연을 데려온 이유도 이것이었다.
옷 고르는 데 분명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서윤은 유은혜의 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둘의 의견을 조율할 사람이 필요했다.
“자. 들어가자.”
“인터넷으로 사면 안 돼?”
“입어 보고 사는 편이 더 좋을 거야.”
이서윤은 거의 연행되는 느낌으로 옷 가게로 끌려 들어갔다.
고희연은 웃으며 둘의 뒤를 따라갔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뭔가 어색한 기류가 흘렀는데.
둘이 참 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어서 오세요.”
옷 가게에 들어서기 무섭게, 유은혜는 옷 한 벌을 골라 왔다.
이서윤은 유은혜가 골라 준 옷을 바라봤다.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무조건 어울릴 텐데.”
유은혜가 가져온 것은 하늘하늘한 원피스였다.
고희연마저 저건 좀 거부감이 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이서윤은 원래 남자였고, 원피스를 입어 본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서윤은 거의 울상이었고, 반대로 유은혜의 입가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놀리시는 건가?’
보통 반대의 상황을 많이 봤기에, 고희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고희연과 눈이 마주친 유은혜는 깜빡 한쪽 눈을 감아 윙크했다.
아무리 봐도 협력하라는 사인이었다.
“그래요. 일단 한번 입어 봐요.”
“희연이 너마저.”
“에이. 아니다 싶으면 다음부터 이런 쪽은 제외하면 되잖아요.”
만족스러운 표정의 유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윤은 한참 고민하더니,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원피스를 휙 낚아채고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저런 건 너무했어요.”
“그래도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사실 그럴 것 같긴 해요.”
머지않아 이서윤이 나왔다.
불안한 듯 자꾸 밑을 보며,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
이서윤은 탈의실 문 앞에서 굳어 있다가, 유은혜를 바라봤다.
“이건 아니야.”
“왜? 예쁘기만 한데. 희연이 네가 볼 땐 어때?”
“약간 배우 같아요.”
분명 칭찬임에도, 이서윤은 침묵했다.
그리고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이건 뭔가, 내가 힘들어. 갈아입고 올게.”
“아. 잠깐만.”
유은혜는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냈다.
찰칵.
이서윤을 찍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갈아입고 와.”
“죽고 싶다.”
그 이후로도, 이서윤은 이런저런 옷을 입어 봐야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서윤을 변호해 주던 고희연도, 나중에는 신나서 유은혜와 동화됐다.
이서윤이 초췌한 모습으로 옷 가게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것은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