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월드 보스가 처치되었습니다.]남서쪽으로 이동하던 와중.
우리는 뜬금없는 알림음을 들을 수 있었다.
고희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어?”
“나만 들린 거 아니지?”
“저도 들었어요.”
우리는 잠깐 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뜬금없는 내용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월드 보스의 처치 소식.
“뭐지? 누가 월드 보스를 사냥한 걸까요?”
“글쎄. 그랬다면 좋긴 하겠는데.”
현시점의 사냥꾼들은 월드 보스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
검성처럼 유별나게 강한 부류가 있기야 하지만.
지금 월드 보스를 사냥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아니었다.
‘최소한 병력이 필요할 텐데.’
일본의 상황을 생각하면, 병력을 모아 공략을 시도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애초에 현시점의 사냥꾼이 월드 보스를 사냥하는 건 불가능하다.
가능성은 둘.
“같은 괴물한테 죽었을 수도 있어.”
“괴물끼리 서로 죽이기도 한다는 건 들었어요. 그래도 월드 보스인데 죽일 수 있나?”
“월드 보스가 여럿 나타났으니까. 월드 보스끼리 싸웠다면 말이 되지.”
자연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막는 건 힘들다.
하지만 자연재해끼리 부딪쳤다면, 말이 됐다.
은혜는 뭔가 알아냈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아. 그렇다면 아까 지진도.”
“그 여파일 수도 있겠지.”
“가능성 있는 가설이야.”
하이람도 긍정했다.
그리고, 흘긋 설아를 쳐다봤다.
스기하라 신야라는 외부인이 있었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은 두 번째 가능성.
‘현시점의 사냥꾼이 월드 보스를 공략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다른 시점의 사냥꾼이라면.
그것도 최종 보스라고 불렸던, 지구를 멸망시킨 마녀라면.
‘설아라면 충분히 죽일 수 있겠지.’
아무리 존재가 불안정하더라도, 설아는 설아다.
내가 아자누스를 사냥할 때도 어린 설아의 도움을 받았었다.
미래의 설아가 얼음으로 이루어진 운석을 불러내기도 했던 걸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하지만, 월드 보스를 소환한 것도 설아일 텐데. 굳이 죽일 이유가 있나?’
이 가설에는 한 가지 의문점이 따라온다.
미래의 설아는 의식을 통해 월드 보스를 불러들여 혼란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렇다면 기껏 불러들인 월드 보스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는 게 이상했다.
강대호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가 보면 알겠지.”
“그래요. 다시 이동하겠습니다.”
* * *
“그쪽 산길로는 가면 안 됩니다.”
“네? 왜요?”
“지뢰가 설치되어 있거든요.”
산길을 가로지르려는데, 돌연 스기하라 신야가 우리를 저지했다.
지뢰가 설치되어 있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흙바닥을 자세히 살폈다.
인위적으로 흙을 덮어 놓았다면, 어느 정도 보인다.
“흔적은 안 보이는데요.”
“오래전에 설치했거든요. 아마 비가 오거나 하면서 흔적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스기하라 신야도 확실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산길을 지나면 곧장 남서쪽이고, 아니라면 돌아가야 하는 상황.
잠깐 고민하는 와중에, 은혜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서준아.”
은혜의 시선이 고정된 뒤쪽에는 망자 한 마리가 있었다.
다리 하나가 부러진 탓에 무리에서 뒤처진 놈 같았다.
망자는 천천히 이곳으로 걸어왔다.
사람들은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응?”
“뭐야. 그냥 지나가네?”
망자가 이동하는 방향은 약간 틀렸다.
산길, 즉 남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우리 쪽으로 굳이 발걸음을 돌리진 않는 것 같았다.
“남의 영혼보다 제 영혼이 우선이라는 거 아닐까?”
“망자들한테 공격성이 사라졌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좋겠지만요.”
망자는 절뚝거리며 산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무성한 수풀을 뚫고, 천천히 모습을 감췄다.
한참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대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은 것 같은데?”
그 순간.
산길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쾅!
갑작스러운 폭발에 놀란 은혜가 설아를 보호했다.
다행히 멀리서 터진 것이라 여기까지 폭발의 여파가 미치진 못했다.
강대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취소.”
“그럼 돌아가야겠네.”
“그나저나 스기하라 씨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신기하다는 듯한 은혜의 질문에, 스기하라 신야는 조금 씁쓸한 듯 대답했다.
“제가 지뢰를 설치했거든요.”
“여기는 학교랑은 거리가 좀 있지 않나요?”
“여기가 원래 제가 있던 안전지대 근처입니다. 세타가야요.”
하이람이 인상을 찡그렸다.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시부야 남서쪽. 세타가야가 맞네.”
“그렇습니다. 이쪽 지리는 잘 아니, 맡겨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괜히 동행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천궁으로써의 전력은 보여 주지 못하겠지만.
스기하라 신야가 없었더라면 지뢰를 밟았을 테니까.
“돌아서 가면 얼마나 걸릴까요?”
“에, 안전한 길로 가면 시간이 지체될 것 같긴 합니다. 한두 시간 정도 더 걸리겠군요.”
상당히 지체된다.
시간적 여유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강대호가 등을 팡 쳤다.
솔직히 아팠다.
“괜찮을 거야.”
“아야, 고마워요.”
그때였다.
에르제베트가 입고 있던 로브를 벗더니, 휙 내던졌다.
머리 위로 로브가 펼쳐졌다.
넓게 펼쳐진 로브는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스기하라 신야는 신기하다는 듯 그것을 올려다봤다.
“타고 가자.”
“맞다. 저거 날아지잖아. 진즉 타고 가면 편할걸.”
하이람은 왜 진즉 꺼내지 않았냐는 듯 에르제베트를 봤다.
에르제베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 인원을 전부 이동시키긴 힘들어. 천 쪼가리라 힘이 없거든.”
로브는 이 말에 화가 난 듯 쪼그라들더니, 에르제베트를 보고 팔짱을 꼈다.
팔은 없지만, 소매 부분이 있어서 대충 그런 자세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삐졌다는 표시 같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로브를 타고 한번 날아 본 적 있었다.
쟤도 자아가 있었지.
“삐지지 말고. 사람부터 나누자.”
간단하게 로브를 달랜 에르제베트가 조를 나눴다.
나, 유은혜, 설아, 에르제베트, 하이람, 고희연, 강대호, 스기하라 신야.
총 여덟 명이었기 때문에 네 명 씩 두 조로 나뉘기로 했다.
전투를 대비해 각 조에 헤드를 하나씩은 끼워야 했다.
결국 첫 번째 조는 나와 은혜, 설아, 에르제베트로 정해졌다.
스기하라 신야는 이에 대해 조금 걱정이 되는 듯 말했다.
“아이도 있는데, 여자끼리 가도 괜찮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남자가 인원수에 유별나게 적긴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스기하라 신야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괜찮아요.”
내가 남자라는 것.
이서윤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설명하진 않기로 했다.
* * *
우리는 로브를 타고 산길 위를 날아갔다.
중간에 폭발로 인해 나무가 부서진 곳이 보였다.
아마 사냥꾼이라고 할지라도 저런 폭발에 휘말렸다면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응.”
설아가 나를 불렀다.
잠깐 이서윤 상태라는 걸 깜빡했지만.
여기엔 스기하라 신야가 없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설아는 로브가 향하는 방향을 바라봤다.
“안 가면 안 돼요?”
“왜?”
“가기 싫어요.”
드문 일이었다.
설아는 웬만한 장소는 거리낌 없이 따라온다.
심지어 아이들이 그렇게 기겁한다는 병원도 잘만 간다.
그런 설아가 가기 싫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나에 민감해서 그래.”
에르제베트가 안심시키듯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아가 마나에 민감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마나?”
“세타가야 쪽에서 강한 마나가 느껴져서.”
“마나?”
“미래의 설아를 제외하면 여섯…… 이제는 다섯.”
에르제베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렸다.
[월드 보스가 처치되었습니다.]월드 보스 처치 알람음.
아까에 이어서 두 번째다.
“설마, 월드 보스 다섯이 세타가야에 몰려 있다는 말이야?”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겠지.”
“그런 일이.”
월드 보스가 연달아 도쿄에 소환됐다.
하지만, 같은 지역이라는 말은 없었다.
희망적인 관측은, 각기 다른 지역에 소환되는 것.
하나하나 각개격파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월드 보스를 사냥해 본 전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모두 같은 지역에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치만 벌써 둘이 줄었잖아. 자멸하고 있다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닐까?”
은혜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예상대로 월드 보스끼리 서로 싸우고 있다면, 그렇다.
실제로 괴물끼리 영역 싸움은 필드에서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월드 보스끼리 싸우고 있는 건 아닐 거야.”
“네?”
“싸울 이유가 없거든. 월드 보스 정도 되는 힘을 지녔으면, 어느 정도 지성을 지니고 있어. 아군과 적군은 구분할 거야.”
“그렇다면 왜…….”
“주술 의식에는 대가가 필요해.”
에르제베트는 키츠네 키쿄우의 부적을 잠시 무효화할 때 사용했던 꽃을 보여 줬다.
꽃을 대가로 사용한 주술.
그렇다면 미래의 설아가 하는 의식의 대가는 무엇인가.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대가는 희생. 살아 있는 무언가지.”
“산 제물?”
“맞아.”
역사에서도, 사람들은 의식을 치를 때면 산 제물을 바치곤 했다.
만약 미래의 설아가 산 제물을 바치고자 한다면.
“잠깐. 설마, 월드 보스를 산 제물로 바치고 있다고?”
“아마 맞을 거야.”
월드 보스.
한 국가를 파괴할 수 있는 자연재해와 같은 괴물.
그것을 산 제물 삼아 바치고 있다고 한다.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설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제물을 바쳐서 얻는 게 뭔데?”
“말했잖아. 괴물들의 왕이라고.”
“왕이 그렇게까지 강해?”
“왕 자체의 무력은, 글쎄. 강하기야 하겠지만 월드 보스 다섯을 합친 것보단 강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왜?”
“원래 강하다고 왕이 되는 건 아니잖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강하다고 왕이 되진 않는다.
왕의 자질이나 덕목은 예로부터 조금 다른 것이었다.
“왕은 미드하임과 지구 사이에 균열을 만든 괴물이야. 그 괴물이 깨어난다면.”
“……어떻게 되는데?”
“그냥 바위는 부수기 어렵겠지만, 균열이 간 바위는 쉽게 부서지겠지?”
“그렇겠지. 좀 뜬금없네. 그게 왜?”
“아마, 왕은 미드하임과 지구의 경계 자체를 부술 수도 있을 거야.”
괴물들은 균열을 통해 지구로 들어온다.
하지만 그 수의 한계는 명백하게 존재했다.
전 세계가 던전화된 지금에도 마찬가지였다.
던전 내부는 결국 괴물이 생존하기 편한 환경일 뿐.
균열을 통해 괴물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똑같았으니까.
‘여태까지 괴물들은 살짝 열린 문틈을 비집고 나왔다.’
하지만, 괴물들의 왕이 깨어난다면.
그 문틈을 열어젖히는 게 아니라, 문 자체를 부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숫자의 괴물들이 몰려들 것이다.
미래의 설아가 바라던 대혼란이었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