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37)
141화. 천중일검 남궁천승 (2)
와아아아!!
검과 검의 충돌과 함께 다시 한번 인파의 함성이 후끈 달아올랐다. 부르르, 검을 쥔 이벽의 팔이 작게 흔들렸다.
‘…단단하군.’
이벽은 침음했다.
말마따나 남궁천승의 검은 깊게 박힌 거목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내력의 깊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허, 모처럼 양보해준 선공을 이런 식으로 허비하다니. 그놈의 패기 하나는 정말로 못 당하겠구만!”
남궁천승이 껄껄 웃었다.
“자, 그럼 가겠네!”
채앵!
검과 검이 서로를 튕겨내었다.
그리고 그 즉시 남궁천승의 검이 거침없는 획을 긋기 시작했다. 종횡으로 전방위를 휩쓸며 이벽을 압박해 들어온다.
챙, 채앵!
그물처럼 넓게 펼쳐진 채 서서히 상대의 공간을 조여드는 그 검은 물론 대연검법이었다.
허나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남궁환의 그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다.
반면 검격의 촘촘함을 따지자면 숭무관주 남궁천수 쪽이 오히려 우위에 있었던 것 같았다.
허나.
청강검식으로 공간을 사수하는 한편,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분명히 남궁천수의 그물에 비하면 성기기 짝이 없다. 허나… 오히려 버티기 힘든 것은 그때가 아닌 지금이었다.
이유는 명백했다.
채앵!
한 획, 한 획.
그물을 이루는 밧줄의 무거움이 달랐다. 아니, 밧줄이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차라리.
‘…나무뿌리.’
제아무리 밧줄을 여러 겹으로 꼬아본들 얽히고설킨 나무뿌리의 질김에 비할 수는 없다.
일검에 일검을 쳐낼 수 없었다.
고로 자연히 이벽의 검은 더 바빠졌으며, 어깨에 가해지는 피로 역시 극심해졌다.
‘그렇군.’
이것이 대연검법.
남궁세가의 ‘뿌리’에 해당하는 검.
이벽은 이해했다. 본질을 따지자면 오히려 이쪽이 본래의 무리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남궁천수의 경우에는 그저 경지의 부족함에서 비롯한 가벼움을 촘촘함으로 메꾸었을 뿐이었다.
“핫, 이보게, 힘 좀 더 써보시게나! 설마 겨우 이 정도로 나와 맞서려 한 건 아니겠지?”
그때 남궁천승이 말했다.
말마따나 공간은 점점 조여들었다. 불과 십수 초 만에 이벽은 벌써 적지 않은 공간을 빼앗겼다.
그리고 그 기세를 멈출 수도 없었다.
청강검식의 어떤 초식이건, 이 전방위적인 압박 앞에서는 그 묘리를 제대로 풀어낼 수조차 없다.
“…….”
문득 이곳 안휘로 향하는 길목에서 월향이 말했던 ‘검의 상성’이 새삼스레 머리를 스쳤다.
다음 순간.
후욱, 이벽의 기세가 일변했다.
채앵!
“…허어?”
남궁천승의 눈매가 흔들렸다.
부딪히는 검격의 기세가 거칠어졌다. 뿐만이 아니었다. 남궁천승으로서도 퍽 놀랄만한 살기가 피부 위로 와닿았다.
전혀 다른 검.
그리고 전혀 다른 기운.
이벽의 검끝에서 무지렁이의 칼처럼 불규칙하고 조잡한 연격이 펼쳐졌다.
좀 전과 같은 정돈됨은 없다.
허나 그 거친 연격이 파죽지세로 조여들던 대연검법의 기세를 꺾어놓았다.
“하… 아주 좋네! 하마터면 실망할 뻔 하지 않았나!”
채앵, 챙!
이내 팽팽한 접전이 벌어졌다.
이벽은 도살지도의 일 초식 난과 륙을 펼쳤다. 월향과의 수련, 양호명과의 비무를 통해 그러한 연격에도 퍽 익숙해진 찰나였다.
허나.
겨우 동수를 이뤘을 뿐이었다.
남궁천승의 나무뿌리는 집요하여 잘라내는 족족 다시 자라나기를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의 공간을 빼앗기는 것은 멈추었으나, 이미 빼앗긴 공간을 되찾지도 못하고 있다.
“…….”
이벽은 생각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다.
목적은 승리가 아닌 시간을 버는 것이므로 이대로 교착상태에 빠져드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궁천승에게는 전혀 힘에 부치는 기색이 없었다. 아직도 지나칠 만큼의 여력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상태에서 남궁천승이 갑작스레 새로운 한 수를 꺼내들 경우, 자칫 당해버릴 수도 있다.
‘파고든다.’
이벽은 생각을 마쳤다.
한 순간 통제의 끈을 놓았다.
후욱, 그 즉시 적파심공의 혈기가 이벽의 몸 안에서 들불처럼 들끓어올랐다.
파앗.
“크핫!”
이벽은 웃음을 뱉었다.
한 순간 가속화된 이벽의 검이 전방위를 둘러싸고 있던 대연검법을 가닥가닥 끊어놓았다.
“헛, 이게 무슨……?!”
허를 찔린 남궁천승의 검이 주춤했다. 이벽은 물론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삼 초식, 참(斬).
콰앙—!!
일도양단의 기세. 허나.
남궁천승의 수비는 여전히 무거웠다. 잔뿌리를 쳐낼 수 있을지언정 그 기둥은 베어지지 않았다.
“허 참. 자꾸 새로운 게 나오는군? 이러니 우리 숭무관주가 당할 수밖에 없었겠구만.”
부르르.
교차한 두 검이 중간에서 흔들렸다. 결국은 다시 맨 처음의 충돌과 똑같은 상태가 되었다.
“…….”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초식이 가로막히자 적파심공의 기세가 주춤하며 피의 맛이 느껴졌다. 허나 애써 삼켰다.
“그래, 대연검법은 동수라고 치고 넘어가세. 그러니 지금은 아직 강기를 꺼내지는 말게나.”
핫, 남궁천승이 가볍게 웃었다.
“…어째서 그런 소릴 하는 거요?”
“그야 모처럼 재미를 보는 중인데 내력싸움으로 끝나버리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끝이 아닌가?”
“…….”
내력으로는 이벽을 압도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력이란 대개 세월과 비례하는 것이므로 크게 그릇된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이벽의 내력은 이미 그러한 궤에서 벗어나 있으며, 또한 이벽이 그 사실을 굳이 적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다.
“좋소. 그러도록 하지.”
“핫, 말이 잘 통해서 좋구만!”
타앙.
두 검이 다시 서로를 밀쳐내었다.
이벽의 몸이 두어 발 뒤로 튕겨 나갔다. 반면 남궁천승은 제자리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
우열은 나뉘어졌다.
허나 격차는 크지 않았다.
와… 와아아아!!
어느 순간부터 숨을 죽인 채 공방을 지켜보던 주변의 청중들이 그제서야 다시 환호성을 내질렀다.
기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이벽의 승리를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었으며, 모두가 안휘에 군림하는 남궁세가주의 검을 견식하러 왔을 뿐이다.
헌데.
일방적으로 꺾이리라 예상했던 이벽이 예상외의 선전을 보여주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고무되었다.
양민들은 정사를 양분하는 무림의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조금씩이지만 이벽을 환호하는 목소리들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다음은 창궁무애검법이라 했나?”
물론 남궁천승이 그러한 것에 신경 쓸 이유는 없다. 흠, 턱을 쓸며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렇소.”
“허헛, 퍽 오랜만이라 잘 될지 모르겠군. 실수로 손속이 과해지더라도 이해해주게!”
“…….”
훅, 이벽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세가 주춤한 적파심공을 다시 자극했다. 혈기의 기세를 끌어올린다.
저벅.
그리고 남궁천승이 발을 뗐다.
비무가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는 듯하던 신형이 다음 순간, 훅 표홀하게 뛰어올랐다.
중(重)이란 경(輕)을 겸한다.
무거움을 터득한 이는 곧 가벼워질 수도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순식간에 한 마리 매가 되었다.
“자, 받아보게! 이것이 진정한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이네!”
쐐애액, 채앵!
“…크.”
이벽의 신형이 대번에 흔들렸다. 내력의 무게에 몸의 무게까지 더해져 이벽을 압박한다.
챙, 후욱.
그리고 충돌의 반동으로 말미암아 남궁천승은 다시 날아올랐다. 몸은 깃털과 같되, 검은 발톱과 같다.
챙, 채앵!
이벽은 다시 수세에 몰렸다.
한 합 한 합 쳐내며 후퇴했다.
곳곳에 자잘한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통 속에서 적파심공이 들끓었으나 이벽은 잠자코 숨을 죽였다.
“허헛! 그래, 잘 버티는군!”
남궁천승이 외쳤다.
목소리는 퍽 흥에 겨워 있었다.
“자, 주의하게! 이번 초식은 강기를 쓰겠네! 부디 나를 더 놀래켜 줬으면 좋겠군!”
후욱, 말마따나 남궁천승의 검에 강기가 일어났다. 그 순간, 이벽의 눈이 붉게 번뜩였다.
기다리고 있던 한 수였다. 그 순간, 이벽은 화영지정의 곡조를 떠올렸다.
적파심공의 기세가 가라앉았다.
훅.
그 즉시 이벽은 만월무변심공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호흡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벽의 검 위로 은은한 강기가 서렸다.
쐐애액.
“하하하핫! 그 기운은 또 뭔가?! 어떻게 생겨 먹은 단전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구만!”
그리고 남궁천승의 검이 경쾌하게 휘둘러졌다. 깃털과 같은 강기들이 이벽을 향해 쇄도했다.
그것은 앞서 숭무관주 남궁천수가 제자들을 희생하여 이벽을 상처 입힌 바로 그 초식이었다.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도박이지만, 승산은 없지 않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이벽의 검이 원을 그렸다.
그 순간, 대낮의 연무대 위에 달이 떠올랐다. 강기의 깃털들이 달의 안쪽으로 우수수 빨려들어 갔다.
“뭐, 뭣?!”
콰아앙—!!
다음 순간, 한 점으로 모여든 깃털들이 서로 충돌했다. 거센 폭발이 일었다.
후두둑.
기의 여파는 칼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만월의 강기로도 그 여파를 전부 감당할 수는 없었다.
슥, 서걱.
“…….”
자잘한 상처들이 몸을 스쳐 가는 와중에도 이벽은 남궁천승의 자취를 놓치지 않았다.
검과 검의 충돌이 없었으므로 다시 날아오르지 못한 매가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그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삭월(朔月).
그 순간, 이벽의 검이 움직였다.
검신이 사라지고, 검이 맺힌 강기도 사라졌다. 아니,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검도, 그리고 강기도.
“…하!”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강기.
남궁천승은 직감으로 그 기괴한 힘의 존재를 알아챘다.
위기를 느낀 순간, 그의 몸이 급강하하는 매의 날갯짓처럼 측면으로 뒤틀렸다.
채애앵!
가까스로 검과 검을 부딪쳤다.
예상 경로를 막아낸 것이다. 허나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이벽의 검이 한 번 더 휘어졌다.
“…크으!”
남궁천승은 황급히 몸부림쳤다.
타악, 그리고 땅 위로 착지함과 동시에 뒤로 몸을 빼내었다. 달아나듯 한껏 거리를 벌린다.
“…….”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남궁천승도, 청중들도 침묵했다.
욱신.
문득 남궁천승은 고통을 느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벌어진 어깨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다.
허나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다면 근맥이 손상되어 검을 쥘 힘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떻소? 이번에도 동수라고 치고 넘어갈 생각인가?”
이벽이 말했다.
남궁천승은 그제서야 이벽을 확인했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도 놈의 눈빛은 전혀 죽지 않았다.
‘…낙검신룡이라.’
문득 남궁천승은 생각했다.
검을 떨어뜨리는 신룡. 사파무림 내에서는 놈에게 그런 별호를 붙여주었노라 했다.
그리고 놈에게 그런 별호를 안겨다 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들 남궁환이었다.
남궁세가의 치욕이었다.
“…으허헛.”
남궁천승이 웃음을 흘렸다.
“으허헛, 허헛, 으하하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