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57)
161화. 산동으로 (2)
저벅.
이벽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한나절 하고도 다시 반나절을 꼬박 전력 질주를 마친 몸은 내력과는 별개로 이미 한계에 다다라있었다.
충분한 휴식은커녕 호흡조차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그저 일어서는 것만으로 무릎이 잘게 떨렸다.
허나.
절대고수의 ‘훈수’는 기연이며, 아무 노력도 없이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약한 소릴 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철컥, 이벽은 검을 뽑아 들었다.
“준비되었소.”
“헐헐, 그런가?”
취풍신개가 웃음을 흘렸다.
문득 근처의 나무로 다가가 팔뚝만한 가지 하나를 뚝 꺾었다. 훅, 허공에다 대고 휘둘렀다.
“그럼 나는 요놈으로 하겠네. 너무 섭섭해하지는 말게. 내 몽둥이는 제자놈에게 있으니 말일세.”
“…….”
물론 섭섭할 이유는 없었다.
남궁세가주 남궁천승의 검을 맨손으로 붙잡아 부러뜨리고 뺨을 두드려 제압하는 것을 이미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슥.
문득 취풍신개의 가지 끝이 땅으로 향했다. 자신의 발치 앞에 길게 일 자를 그었다.
“일전의 훈수를 기억하나?”
“물론이오.”
숭산, 혜공선사의 암자가 자리한 절벽에서의 일전을 생각했다. 취풍신개는 막아섰고, 이벽은 올라섰다.
“그때와 다를 것 없다네. 나는 여기 서서 이 나뭇가지만으로 자네를 막아설 테니 자네는 재주껏 이 선을 넘어보시게나.”
“…알겠소.”
이야기는 간단했다. 허나.
우웅.
다음 순간, 당연하다는 듯이 취풍신개의 나뭇가지 위로 두터운 강기가 일어났다.
“…….”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헐헐, 거지가 능청스레 웃었다.
어쨌거나 강기는 강기로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내 이벽의 검에도 청강유엽공의 강기가 어른거렸다.
“가겠소.”
“헐헐, 좋을대로 하게!”
체력은 이미 한계다. 고로.
가진 것을 빠르게 쏟아붓는다.
탓, 이벽은 땅을 박찼다. 그대로 정면을 향해 쇄도한 뒤 청강검식을 펼쳤다.
쾅, 콰앙!
“헐헐헐, 푸헐!”
그리고.
이후 몇 번의 충돌만으로 이벽의 어깨에 충격이 쌓였다. 고작해야 나뭇가지임에도 흡사 쇠몽둥이를 상대하는 듯했다.
기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달린 것은 이벽 뿐만이 아니다. 하물며 이벽처럼 선천의 힘으로 보충되는 내력을 지닌 것도 아닐 터이다.
허나 충돌을 타고 전해져오는 취풍신개의 내력은 여전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콰앙, 쾅!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여섯 개의 묘리를 섞었다.
빈틈을 주지 않으며 상대의 빈틈을 연다. 유의 묘리로 검을 회수한 순간, 취풍신개의 가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벽의 눈이 빛났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일식(拔劍第一式).
직검(直劍).
그 틈을 타고 직검이 파고—
“헐헐, 그렇겐 안 되네!”
뻐어억.
“커억!”
다음 순간, 가지가 이벽의 옆구리를 두드렸다. 전신을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이벽의 몸이 튕겨 날아갔다.
치이익.
이벽의 발이 땅에 닿았다.
날아가는 몸을 멈추려 했다. 허나 그 순간, 혹사된 무릎이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꺾여졌다.
터엉, 텅. 퍼억.
“…컥!”
이벽의 몸이 땅을 굴렀다. 나뭇기둥에 등을 부딪치고 나서야 몸이 멈추었다.
충격에 몸이 새우처럼 휘어졌다.
허나 중요한 것은 등이 아닌 옆구리다. 이벽은 그 즉시 옆구리에 왼손을 가져다 댔다.
“……!”
그리고 이벽은 놀랐다.
강기가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실상 뼈라는 뼈는 모조리 으스러졌어도 이상하지 않다. 허나… 손끝에 와닿는 뼈는 모두 멀쩡했다.
“왜 그러나? 헐헐!”
툭, 취풍신개가 나뭇가지를 어깨에 얹었다. 어느새 강기가 사라진 보통의 나뭇가지가 되어있었다.
‘…그렇군.’
충돌의 순간, 강기를 없앤다.
고통을 주되 부상을 주지 않는다.
“너무 걱정 말게나. 그렇게나 자넬 보고 싶어 안달이 난 황보혁이와 협상하러 가는 이 마당에 죽은 자네를 들쳐 업고 갈 순 없지 않겠나? 헐헐!”
“…별로 안 웃긴 농담이군.”
이벽은 다시 검을 잡았다.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 * *
콰앙, 쾅!
이벽은 재차 달려들었다. 강기를 두른 채 일검, 일검 신중하게 청강검식을 전개해나갔다.
“헐헐, 크헐헐!”
허나 그때와 같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첫 번째의 훈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승산 따윈 없었다.
쓰러뜨리기는커녕 취풍신개는 여지껏 제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제안을 해왔다는 것은 즉, 손속에 사정을 두겠노라는 뜻이다.
퍼억!
“…컥!”
이벽의 몸이 다시 튕겨 나갔다.
나뭇가지가 어깨를 두드린 것이다. 가까스로 쓰러지지는 않았으나 오만상이 찌푸려졌다.
부러지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이벽은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켜쥐었다.
“푸헐, 재미없구만!”
“…….”
결국 ‘손속’의 정도는 이렇게 몸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벽은 이해했다.
청강검식으로 빈틈을 벌리고 그 안으로 파고들었음에도 공격을 받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일순 움직임을 놓치고 만다.
‘그렇군.’
있을 수 없는 속도였다.
말인즉슨 ‘다른 시간’ 속에 있다.
“언제까지 맞고만 있을 텐가?”
“…….”
“하늘을 보았으면 두 눈 부릅뜨고 쳐다봐야지, 왜 아직도 땅에 붙어있으려고 하나? 응?”
손속은 퍽 엄해졌다.
목천의 영역을 요구받고 있다.
이벽은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육신은 진즉에 너덜너덜해졌고, 강기의 남발로 인해 내력의 흐름마저 흔들린다.
이 시점에서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다간 자칫 탈진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별 상관없겠군.’
핫, 이벽은 웃었다.
상대는 적이 아니었으며, 전력을 다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즉, 한계를 시험하기에 적합하다.
“진작 말로 해주면 좋지 않았소?”
“헐헐, 그럴 수는 없네.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내야지 어딜 날로 먹으려 드나?”
“…그렇군.”
우웅.
이벽은 선천의 힘을 찢었다.
그리고 한 갈래가 머리로 스며들며 곧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일순 시간이 느려졌다.
타앙.
그 즉시 이벽은 땅을 박찼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일식(拔劍第一式).
직검(直劍).
카앙!
“허헛!”
대뜸 직검을 뻗었다.
처음으로 가지가 튕겨나갔다.
허나 취풍신개의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늘어진 시간 속에서 가지가 뱀처럼 휘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정체를 확인했다. 그것은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추적을 멈추지 않는 타구봉법의 묘리였다.
그 순간 이벽은 고민했다.
회수하는 검의 종류를 선택한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회검제이식(回劍第二式).
변검(變劍).
퍼버버벅!
다음 순간, 이벽의 검이 변화를 품었다. 그리고 타구봉법과 변검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단숨에 십여 합이 오고갔다.
그것은 퍽 화려한 광경이었다.
강기와 강기가 부딪힐 때마다 마치 나뭇가지 위로 섬전과 같은 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크—”
허나 변화는 무한하지 않다.
이내 이벽의 변검이 잦아들었다.
그 즉시 가지가 파고들었다. 이벽은 회수된 검을 다시 직검으로 뻗었다.
청강검식이 아닌 청강유엽검식을 삼 검째 연달아 이어가려 했다.
우득.
“……!”
허나 그 순간, 어깨에 통증이 일었다. 내력의 운용은 가능하되, 신체가 검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주 잠깐의 빈틈이었다. 허나.
“푸헐! 아쉽구만!”
퍼어억!
가지의 끝이 망설임 없이 이벽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버젓이 눈에 보임에도 피할 수 없었다.
“커헉!”
그 즉시 이벽이 뒤로 날아갔다.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구른 뒤 엎드린 채 멈춰섰다.
“큭… 커헉, 우웩!”
그리고 이벽을 피를 토했다.
눈앞이 컴컴해지는 고통 속에서 이벽은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었다. 죽은 피를 토해낸 뒤, 호흡을 몰아쉬었다.
“…이번 건 좀 너무했소.”
이벽이 인상을 찌푸린 채 취풍신개를 향했다. 피를 토하는 것은 명백한 내상의 징조였다.
“이런이런, 미안하네, 헐헐! 마냥 만만한 속도는 아니라서 실수로 조금 깊게 들어갔나보이!”
“…….”
거지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고통 속에서 이벽은 생각했다.
신체는 이미 한계였고, 강기를 남발한 내력도 슬슬 한계를 보이며, 마침내 내상까지 입고 말았다.
찌잉.
그리고 현기증이 일었다.
목천의 영역이 풀리고 말았다.
가진 모든 게 한계였다. 허나.
저벅.
아직 의식을 잃지는 않았으므로 이벽은 다시 일어섰다. 몸은 비틀거렸고 고통스러웠지만, 문득 웃음이 나왔다.
“핫, 왜 웃나? 정 들게시리.”
“허억, 후… 실례 좀 하겠소.”
뒷일을 걱정할 필요 없이,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이와의 싸움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콰콰콰콰.
이벽은 해방감을 느꼈다.
이내 진흙탕과 같은 탁한 내력이 이벽의 혈로 안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적파심공이었다.
우웅.
이내 붉은 강기가 피어났다.
찌지직.
그와 동시에 이벽은 다시 선천의 힘을 찢었다. 목천의 영역 속에서 이성과 광기가 공존하는 기묘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실례? 갑자기 그게 무슨—”
“크핫!”
이벽이 다시 쇄도했다.
콰앙, 쾅!
그리고 도살지도를 펼쳤다. 일 초식 난과 이 초식 륙이 꼬리를 물며 연달아 펼쳐졌다.
양호명과의 비무, 그리고 남궁세가에서의 싸움을 거쳐 도살지도에 대한 이해는 더욱 높아졌다.
총 네 개의 초식 중 전반 이 초식인 난과 륙은 서로 맞물려 끝없는 연계를 이룬다.
난자하고 돌려깎는다.
상대를 고깃덩어리로 만든다.
“크하핫, 쿨럭, 으하하핫!”
“…헐, 이 무공은 좀 깨는구먼.”
퍼억!
가지가 다시 이벽의 옆구리를 두드렸다. 비틀, 이벽의 몸이 잠시 흔들렸다.
“크핫!”
허나 밀려나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다리가 어떻게든 충격을 버텨내었다. 들끓는 피 속에서는 고통조차 대수롭지 않다.
쾅, 콰앙!
“크하핫, 크하하핫!”
그리고 다시 검을 뻗었다.
“…자네, 제정신인 건 맞지?”
검을 쳐내며 취풍신개가 물었다.
“이 무공은 어째 꼭 혈교 놈들의 기운을 닮았는데…? 자네,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겐가?”
“크하핫, 쓸데없는 걱정마시오! 통제할 수 없다면 크흐, 꺼내들지도 않았소!”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네…….”
쾅, 콰앙, 퍼억!
“……!”
그 순간, 이벽은 또 다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나뭇가지가 가슴께를 두드리자 끔찍한 고통이 피어났다.
허나 고통보다도, 도살지도를 꺼냈음에도 여전히 나뭇가지를 꺾을 수 없다는 사실에 퍽 기분이 상했다.
“…뭐, 아슬아슬해보이긴 하네만 일단은 계속해보지.”
쾅, 콰앙!
이후 몇 번의 충돌이 이어졌다.
비틀, 다음 순간 이벽의 몸이 흔들리며 빈틈을 보였다. 그 순간, 여지없이 가지가 머리 위로 내리찍어졌다.
허나 노리던 바였다.
이벽의 검이 마주 올려쳐졌다.
채애앵.
충돌의 순간, 적파심공의 강기가 산산조각으로 으깨어졌다. 취풍신개를 향해 우수수 쏟아진다.
와락, 거지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래, 입으론 아니라곤 하지만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 이런 검은 수양에 좋지 않네. 미안하게 됐네만—”
화악.
다음 순간 꽃이 피었다.
“각오하게. 우선은 패서라도 제정신을… 에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