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후 작업
첫 번째 결과물을 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등급을 뛰어넘는 사진을 찍었다는 문구는 나오지 않았지만 남 보기 부끄러운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만큼 셔터를 누를 때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죄송한데, 지금 화장품 종류가 뭐죠?”
“··네?”
“아무래도 화장품 광고니까 제품을 좀 더 부각시키려고요.”
스탭 중 한 명이 내게로 다가와 화장품 견본품을 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모델분이 파운데이션 들고 계십니다.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에 좋은 제품이에요.”
“특징은요? 사진에 나타났으면 하는 특징 같은 거 없나요?”
“아·· 진주 펄 입자가 포함되어 있어서 은은한 광채가 나고, 또 촉촉해서 피부에 가볍게 발려요.”
제품을 부각시키는 촬영은 선배들을 도우면서 많이 해봤다. 그리고 제품을 부각시키면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똑똑히 알고 있고 말이다.
다시 에브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인물 사진을 잘 찍으려면 여러 가지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피사체가 되는 모델과 인간관계를 만들어 내 소통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에브리아, 마지막에 포즈 생각나지. 맞아, 턱에 손을 대고·· 고개는 살짝 옆으로 돌리자. 속으로 ‘오늘 나 좀 예뻐 보여’라고 외치고 있어.”
선생님 말씀으로는 옛날에는 피사체가 되는 모델과 관계를 끊고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난 그 말을 듣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모델과 소통이 되면 내 감정을 담아 찍을 수도 있고 모델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증폭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 작업인데.
“자리에서 일어나서 살짝 위를 바라봐. 아, 표정 좋다.”
먼저 에브리아를 찍은 사진가의 잘못된 점은 모델을 매력적으로 봐주지 않고 있다는 거다. 역시 모델을 향한 사랑스러운 기분이 없으면 사진에는 절대 나오지를 않는다.
“이게 우리가 원했던 사진이에요. 아니, 그걸 뛰어넘었어요.”
회사에서 나온 것 같은 스탭 중 한 명이 사진을 보며 말을 했다. 다시 사진의 주위에는 마 실장님을 비롯해 회사에서 나온 최 부장님, 그리고 형편없는 사진가까지 모여들고 있다. 난 에브리아에게 이번 컨셉 촬영은 끝났으니 들어가라는 말을 전했다.
최 부장은 사진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사진, 지금 막 찍은 거 맞지?”
“네, 방금 찍은 겁니다. 보셨잖아요.”
“허허,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 이거 원 큰 손해를 볼 뻔했네. 이봐 홍 작가.”
그 말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사진가가 몸을 움찔거렸다.
“아까 한 말 좀 다시 해봐. 뭐라고? 쇼핑몰 사진은 보정이 많이 들어간 거고. 실제로는 당신보다 잘 찍기 힘들다고 했잖아.”
“저기, 그게··.”
“지금 현장 모델 눈이며 코건 안 건드리는 곳이 없다면서. 다 편집 기술이라며!!”
갑자기 소리치는 최 부장의 기세에 눌려 사진가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며 고개만 숙이고 있다.
쌤통이다.
“마케팅부 이리 와봐.”
그 말에 몇 명의 사람들이 최 부장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최 부장은 눈을 부릅뜨며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 이거 우리 회사에서 하는 제대로 된 첫 광고야. 모델 섭외, 컨셉, 세트장 까지 너희들이 수고한 거 알아. 근데 왜 사진을 제대로 된 사람에게 못 맡겼어?”
“··사진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변명은 하는구나. 이 새끼야! 회사 말아먹으려고 환장했어!”
뒤에 서 있는, 홍 씨 성을 가진 사진가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있다. 자기 욕은 아니지만 아마도 더 부끄러울 것 같다.
“이봐, 한 대리. 다음부터는 일 똑바로 하자. 오늘 내가 안 왔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홍 작가에게 끝까지 맡기고, 모델 탓을 하면서 우리 잠재 고객들은 형편없는 광고를 보게 되었겠지. 하아, 정말 여기서 몇 시간은 세워두고 한 소리 하고 싶은데 일이 먼저니까 참는다.”
최 부장은 조용한 세트장을 성큼성큼 이동했다. 목적지는 마 실장님이었다.
“매니저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소속 모델이 너무 이상하게 나와서 나선 겁니다.”
“아우, 근데 저 사진작가분 누구십니까? 정말 잘 찍네요.”
“길승우 작가님이십니다. 쇼핑몰 사진도 찍으셨지만, 우리 소속사의 러버걸스나 언루트의 사진이 더 유명하시죠.”
“··아. 들어봤습니다. 처음부터 함께 했으면 좋았을 것을.”
저 어색한 말투, 전혀 그쪽은 들어보지 못한 눈치다. 아마 두 그룹 이름을 처음 들으시는 것 같다.
“저희가 먼저 제안을 했는데 먼저 섭외한 사진가가 있다면서 거절하셨습니다.”
마케팅부 일동은 다시 몸을 움츠려야 했다.
“우리 직원들 실수군요.”
“제가 요청해서 길승우 작가님을 이곳으로 모신 건 맞지만 페이에 관해서는 좀 얘기를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만··.”
“뭐 얼마가 됐건 상관없습니다. 저 작가분 사진을 봤는데 다른 사람 구하기는 꺼려지네요. 회사에서 돈이 모자라면 우리 마케팅부에서 각출해서라도 지급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농담인 듯 진담처럼 들리는 말에 마케팅부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다시 촬영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뭘 발랐는지 얼굴이 번들번들해진 채 에브리아가 촬영장으로 나타났다. 난 카메라를 들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힘들지 않아?”
“응, 승우가 오니까 힘이 나.”
예쁜 말도 잘 한다, 정말. 난 씨익 웃으면서 그 말을 하는 에브리아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었다. 그리고 다음 촬영을 위해 그녀에게 말을 했다.
“오른 어깨에 왼쪽 손 올리자. 지금 조금은 부끄러운 상태야. 밥 먹고 배 두드리고 있는데 내가 갑자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걸 발견한다든지 그럴 때.”
에브리아의 미간이 좁혀지며 더 이상 하지 말라고 눈빛으로 말을 한다. 난 카메라를 들고 에브리아 주위를 돌아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진가들이 보통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정지된 위치에 있으면서 렌즈를 바꾸는데 그러면 좋은 사진을 건지기 힘들다고 말이다.
“화장품 냄새 좋다. 어? 움츠리지 말고 포즈는 그대로.”
선생은 모델 가까이서 사소한 말이라도 던지던지, 그게 안 되면 최소한 곁에서 숨이라고 크게 쉬라고 말씀하셨다. 영효 선배는 이게 되지 않아 풍경이나 사물을 찍는다며 웃으셨지. 처음부터 선생님은 그러셨다. 새파란 모델이 해변을 달릴 때 똑같이 뛰면서 셔터를 누르셨다.
“잠깐만, 눈 왜 그래?”
“뭐가 들어갔어.”
“비비지 마, 다시 메이크업해야 되잖아.”
카메라를 내려다 놓고 에브리아의 눈동자에게 입김을 세게 불어대니 얼굴이 새빨개진다. 눈을 계속 깜빡거리더니 이제 됐다며 날 밀치는데 그게 또 귀여워서 한 장 남겼다.
“저 사진가분은 다 저런 식입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모델하고 연애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우리 작가님이 사진 찍을 때, 모델에게 과하게 친절하게 구는 건 사실입니다. 제가 원래 러버걸스 매니저인데 촬영 현장에 가면 저런 행동 때문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죠.”
마 실장님, 다 들리고 있습니다. 난 촬영 현장에서의 행동을 떠올리며 살짝 반성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와 에브리아는 몇 시간 동안 함께 호흡하며 근사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작업 끝났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박수소리와 함께 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갑작스럽게 온 거 치고는 꽤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솔직히 오늘은 밤새 작업을 하고 싶을 정도의 마음이 들었다.
“사진 하나하나가 다 좋았습니다. 오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최 부장님과 마케팅부 직원들이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너무 정중한 인사라 나도 모르게 같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일인데요. 사진이 잘 찍혀서 저도 기쁘네요.”
말을 마치고 주위를 돌아봤다. 홍 씨 성을 가진 사진가가 어디에 있나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중간에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둘이 되면 몇 마디 해주고 싶었는데 아쉽다.
귀갓길은 에브리아와 함께였다. 그녀는 내 팔에 몸을 기댄 채 오늘 내가 오기 전 촬영 현장이 어땠는지, 사진은 어떻게 찍혔는지 얘기하며 툴툴대고 있다.
“소리 막지르고. 계속 화내고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어.”
“내가 올 때 기분이 어땠어?”
“너무 좋았지! 근데 어떻게 왔어?”
에브리아는 정말로 궁금한지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마 실장님이 연락 주셨거든. 우리 에브리아 고생하고 있으니 어서 와달라고.”
“나중에 승우가 고생할 때 나도 가줄게.”
난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이 너무 좋아 콧노래를 부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
며칠 뒤 난 선생님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난 여러 번 생각하고 작성한 기획서를 선생님께 내밀었다.
“이게 뭐냐?”
“이게, 선생님과 저의 협업 계획서입니다.”
“이런 거까지 만들어올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일단 뭘 찍을 예정인지 내게 설명을 해보아라.”
난 자리에 앉아 기획서를 책상 위에 올려다 놓았다.
“처음, 제가 선생님과 뭔가를 함께 했을 때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게 인물사진 쪽이었습니다.”
“그러니? 인물사진이라··.”
처음엔 인물사진이었지. 그런데 선생님의 인물사진을 다시 한번 보고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을 좀 아니까 선생님의 사진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깊게 반성했습니다. 전 아직 멀었다는 걸 말이에요. 아직 전 선생님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같은 인물로 여러 가지 면을 찍는 작업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네 인물사진엔 독특한 개성이 있어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만도 하다만··.”
아, 그러면 정말로 인물사진을 밀고 나갈 걸 그랬다.
“그래서 다음으로 생각한 건 컬러&흑백입니다.”
“흐음, 그건 또 뭘 말하는 걸까.”
“같은 피사체를 선생님은 흑백으로 저는 컬러로 표현을 하는 작업이죠.”
“왜 그런 작업을 해야 하지?”
“선생님이 흑과 백으로 찍은 사진에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담아서 컬러로 다시 찍어보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너에게 어떤 의미지?”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여러 가지를 보고 알게 되죠. 이건 가르침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서 새로운 사진을 찍는 작업은 제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협업이 아닐까요?”
선생님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기획서를 휙휙 넘기셨다.
어찌 보면 반칙일 수 있는 작업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협업으로 카운트될 것 같다. 난 선생님의 사진을 보면서 이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분석을 하고 새롭게 컬러로 사진을 남기는 거다. 일종의 오마주라고 해야 하나?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찍기보다는 하루 정도 뒤에 사진을 완성해라.”
“네! 알겠습니다!”
난 기획이 통과됐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지르며 선생님의 방을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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