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36
38화 사소한 깨달음
[개그우먼 주옥선이 역대급 미모를 사진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14일 주옥선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보정 안한 인생 사진”이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 주옥선은 젖은 머리에 샤워 가운을 입고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속 주옥선의 사진은 놀라울 정도의 미모를 자랑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사진이 나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17일 토크쇼 에서 나올 예정이다.
주옥선은 토크쇼 에서 보조 MC로 활약 중이다.]
– 사기 치지 마라! 무슨 보정을 안 했다는 거냐!
– 뽀샵한 거 같은데. 안 그러면 말이 안 되는데
– 아니 기사에 나온 이름 못 보면 주옥선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
– 나 사진만 보고 찾고 있던 이상형이라고 생각했어 ㅠ.ㅠ
– 아니 얼굴 자체가 딴 사람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보정을 안 했다고 하는 거야.
– 이거 할리우드 그래픽인가요?
– 화장빨, 조명빨, 각도빨이면 기적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 나도 설렜어 젠장! 젠장!! 젠장!!!
– 일단 나보다는 예쁨
– 주옥선 살 뺐어? 성형?
– 아니 저번 주 방송 봤는데 얼굴 그대로야.
– 이해가 안가네. 왜 윗 사진이 보정을 안 거쳤다고 하는 거지? 얼굴이야 그렇다 치고 몸매가 절대 주옥선이 아닌데.
– 방송을 안 볼 수 없게 만드네
“야, 반응 어때?”
“오랜만에 뜨겁죠. 옥선 씨 사진이 연예란 씹어 먹고 있어요.”
김 피디와 서브 피디는 편집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편집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진이 공개되는 장면이 나오자 김 피디는 입을 열었다.
“이거 볼 때마다 놀라게 되네.”
“그죠? 저도 이 사진 원본 옥선 씨한테 얻어서 가지고 있어요.”
“지금 작가들하고 긴급회의하고 왔는데 빠르면 다음부터 고정 코너 하나 만들어보려고. 코너명은 ‘당신의 인생샷’으로 갈 거야.”
“괜찮은데요? 요즘 코너 반응도 지지부진한데 이번 방송으로 화제 타면 시청자들이 몰릴 것 같습니다. 근데 섭외는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우은경 씨는 그대로 갈 거고, 사진작가분은 내가 따로 아는 분이 계셔서 일단은 그분으로 가려고. 뭐 어차피 분장에서 판가름 나는 건데 거기서 거기잖아.”
“그래도 방송 나가면 길승우 작가님 인지도가 엄청날 텐데 아깝지 않으세요?”
“그 인지도가 문제야. 개런티 세게 부를 거 아니야. 러버걸스 소속사에서 엄청 챙겨주더구먼. 어차피 방송에 1분도 나오기 힘든데 큰 돈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자기 홍보 목적으로 웃돈 주고 출연하고 싶은 사진작가들이 앞으로 줄을 설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
그 시각, 난 영효 선배의 촬영을 돕고 있었다. 영효 선배는 유명 호텔 카페 메뉴판 사진을 찍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효 선배가 찍은 음식 사진은 퀄리티가 높아 여러 업체에서 선호한다는 말을 미선 선배에게 들은 적이 있다.
“화보집 찍다가 이런 거 보니까 시시하지 않아?”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사진에 위아래가 어디에 있습니까. 부족한데 촬영 참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 음식 사진은 처음이지?”
“네, 패션소품 사진은 미선 선배가 찍는 거 봤는데 음식사진은 처음이네요.”
영효 선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좀 놀랄 거야. 음식 사진이란 게 보여주기 위한 거지 원재료가 아니거든. 다 맛있어 보이기 위한 설정 같은 거야.”
“그 옛날에 비슷한 작업 본 적이 있어요. 초밥 사진을 찍는데 거기다가 스프레이를 뿌리더라고요.”
“음, 그 비슷한 거로 생각하면 돼.”
현장에 온 호텔 관계자분과 영효 선배는 얘기를 나누더니 나를 호출했다. 뭐지? 시식이라도 하라는 건가? 영효 선배가 입을 열었다.
“조각 케이크 좀 같이 조립하자.”
“··네?”
“거기 앉아서 내가 하는 거 따라 해. 아, 호텔 베이커리 관계자분도 제가 말하면 데코 해주시고요.”
영효 선배는 자리에 앉았다. 책상에는 베이커리 관계자분이 조각 케이크를 분리한 듯한 빵들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빵 사이에 두꺼운 종이를 넣고 접착하는 거야.”
“네? 그럼 못 먹잖아요.”
“이건 사진 촬영용 케이크니까. 모양을 잡아주는 게 중요하거든.”
촬영용 케이크를 만드는 건 다음과 같다. 크림이 사이사이 들어가는 케이크의 경우 크림이 들어가는 자리에 두꺼운 종이를 껴 넣는다. 그리고 그 위에 크림을 발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메뉴판에 있는 조각 케이크 사진은 거의 이와 같은 작업을 거친다고 한다. 역시 눈으로 보는 이미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팬케이크 촬영 들어갑니다. 준비해주세요.”
겨우 케이크 촬영이 끝나고 팬케이크 촬영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맛있게 구워진 팬케이크를 하나하나씩 얹고 그 위에 과일을 세팅하고 접시에 담은 뒤 시럽을 뿌려야 하는데··
“영효 선배, 저게 뭐죠?”
“엔진 오일.”
“··제가 알고 있는 그 엔진 오일이요?”
“자동차 엔진 오일이야. 꿀이나 시럽을 직접 쓰면 아무래도 사진이 먹음직스럽게 안 나와.”
“먹지는 못 하겠네요.”
“먹으면 죽겠지.”
사람의 눈은 직접 꿀과 시럽을 쓴 사진보다 엔진 오일을 쓴 사진을 먹음직스럽게 인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팬케이크 좀 바꿔주세요. 이거 너무 눅눅해지는 속도가 빠르네.”
그렇게 말한 영효 선배가 엔진 오일 대신에 꺼내 든 것은 섬유보호제였다. 섬유보호제가 빵도 보호해주는 모양이다. 저것도 먹긴 글렀다. 겨우 호텔 관계자분이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왔다. 다음은 아이스크림·· 이제 뭐가 나올까 두렵기까지 하다.
“저거 아이스크림은 아니죠?”
“아이스크림은 너무 빨리 녹아서 장시간 촬영하기는 힘들지.”
“그럼 저건 뭔가요?”
“으깬 감자.”
··좀 나은 가? 그나마 먹을 수는 있으니까 낫겠지.
“저것도 색깔 있는 건 먹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먹을 수 없는 색소라서.”
그래 사진을 통해서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사소한 음식 사진에서까지 그걸 알게 해주는구나. 촬영이 마무리된 듯싶더니 호텔 관계자분이 재촬영을 요구하신다. 팬케이크에 놓인 과일이 싱싱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아니 실제로도 그리 싱싱해 보이지 않는데. 영효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오셨다. 외국어가 적힌 액체인데 저게 뭔지 묻기도 두렵다.
“저기 선배, 그게 뭐죠?”
“글리세롤이야. 팬케이크 조립하면 붓으로 과일 좀 칠해줘.”
이제는 음식점의 메뉴 사진을 볼 때 대체 음식에 무슨 짓을 했는지 궁금해질 것 같다.
***
그날 저녁 오랜만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1월에 또다시 해외로 훈련을 나가는 형을 위해 어머니는 매일 같이 진수성찬을 마련 중이시다. 일주일에 한 번을 보기 힘들었던 고기반찬이 매일 같이 나오고 있다. 덕분에 나도 영양보충을 제대로 하고 있다.
“조카요?”
“그래, 조카.”
“형, 나 없는 사이에 사고 쳤어?”
형이 눈을 치켜뜨며 날 노려봤다. 최근 여자 친구에게 차여서 기분이 영 좋지 못하시다. 어머니가 내 말에 눈이 치켜뜨시며 입을 여셨다.
“내 조카 말하는 거다. 승수 딸.”
“아, 그 늦둥이. 걔가 왜요? 나 보고 싶데? 하긴 요즘 못 보긴 했다.”
“아니 널 왜 보고 싶겠니. 승수 딸이 내일 재롱 잔치를 하는데 승수가 수술이 잡혔데. 그래서 대타가 필요한가 보더라. 유치원도 바로 근처야. 마실 나간다고 생각하고 갔다 오렴.”
“알았어요. 근데 스튜디오에 일 있으면 못 갈지도 몰라.”
외삼촌은 꽤 규모가 큰 동물병원을 운영하시는 수의사시다. 양심적으로 운영을 하셔서 사람들이 몰렸고 그래서 규모가 커진 케이스다. 어렸을 때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려고 일부러 외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놀러 가기도 했었다.
다음 날, 저녁 스튜디오에 별일은 없었고 난 외삼촌 딸 하온이가 있는 유치원으로 향했다. 외숙모가 날 반갑게 맞아주셨다.
“소식 들었어. 요즘 잘하고 있나 보더라. 네가 나온 기사 많이 봤어.”
“운이 많이 따랐어요.”
“형님이 엄청 자랑스러워하셔. 네가 뭐 할 때마다 전화하셔서 알려주시거든.”
난 쑥스러워 그냥 말없이 머리만 긁었다. 재롱잔치는 신세계였다. 1부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게임, 2부가 재롱잔치였다. 다행히 난 젊은 데다가 체력도 괜찮은 편이라 내가 출전한 모든 게임에서 활약했고 외사촌 동생의 뽀뽀까지 받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이어진 재롱잔치. 아이들이 노래를 하는데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보지 않고 있다. 객석의 모든 부모가 캠코더나 카메라의 LCD만 쳐다보고 있다. 혹은 핸드폰 화면이나.
“얘, 민서야 웃어. 왜 표정이 안 좋니?”
한 학부모가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애들의 마음도 알 것 같다. 부모님들이 눈을 마주치면서 좀 웃어줘야 하는데 모두 기기화면만 바라보고 있으니 저런 표정이 나오겠지. 지금 저 애들은 어떤 기분일지 걱정스러웠다.
과연 저렇게 찍은 사진을 아이들은 좋아할까? 아이들의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기기의 화면만 보고 있는 엄마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무심함 그 자체겠지.
“맑게 내다보는 렌즈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은 조작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다는 행위에서 심미적인 목적으로 꾸준한 변형을 이루는 것이다.”
난 며칠 전 읽었던 책에서 나온 유명 사진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어렴풋하지만 내가 찍고 싶은 사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의 기준이 잡힐 것 같았다. 피사체에 애정을 담아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말도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얘 무슨 소리 하는 거니?”
외숙모가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묻는다. 난 외숙모를 보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외숙모, 하온이 나올 때 사진 찍으실 거에요?”
“응? 그럼 찍어야지. 우리 딸이 주연인데.”
“그럼 그거 제게 주세요. 그리고 외숙모는 하온이랑 눈 마주치면서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외숙모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다.
“아깝잖아요. 하온이가 처음으로 연극을 하는 장면을 작은 화면으로 보는 건. 그러기엔 너무 좋은 모습이에요.”
그날 재롱잔치에서 하온이는 실수 하나 없이 씩씩하게 웃으면서 연극을 마칠 수 있었다.
***
자정을 앞두고, 제이필터 뮤직의 홍보팀 자리엔 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 자리엔 대표 유수민이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김훈철 뒤에 초초하게 서 있었다. 김훈철 홍보팀장은 대표를 보며 말했다.
“대표님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 앨범 잘 빠졌잖아요. 저번보다 성적 더 좋을 겁니다.”
“넌 인마, 홍보팀장이 너무 낙천적이야. 잘빠진 앨범도 실패할 수 있다는 여러 사례가 있잖아. 그냥 타이틀 하나만 밀 걸 그랬나. 괜히 두 개 밀어서 10위 안에도 못 드는 거 아니야?”
“에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세요. 노래도 잘 빠지고 컨셉도 좋습니다. 사전 공개했을 때 댓글 반응 말씀드렸잖아요.”
“예고편이 좋아도 본편이 이상하면 망하는 거지.”
“거 참 진짜. 이번 앨범 화보재킷 누가 찍었습니까? 길승우 작가님이 찍었어요. 대표님이 믿는 길승우 작가님!”
그제야 유수민 대표는 표정이 풀리며 얇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 맞아. 길승우 작가님. 길승우 작가님이 직접 사진을 찍었지. 그게 앨범 화보야. 괜찮을 거야. 괜찮겠지.”
드디어 시간이 자정이 됐을 때, 언루트의 정규앨범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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