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15
216. 어울리지 않는(1)
나와 위령은 타오니어로 돌아왔다.
이셀의 로그 조작으로,암케나에게는 우리가 요일 던전에 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겠지.
자리를 하루 이틀 비웠던 게 아니라서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지만,증거가 없 으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암케나는 평소처럼 운영을 이어갔다. 유적에서의 자원 채취로 양적 향상
면에서는 문제가 없어졌다.
원한다면 하급 영웅들을 수백 명씩
뽑아낼 수 있었다. 격납고에서는 세 번째 비공정인 티아 호가 완성되었고, 지금은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비공정이 건조되는 중이었다.
그리고,어느 정도 전력이 늘어나자 암케나는 1파티를 46층에 출전시켰다.
임무 내용은 부유섬에 갇힌 프리아를 지상으로 데려가는 것. 예상대로의 임 무 내용이었다.
나는 부유섬 외곽에서 떠돌던 교단
군의 비공정을 탈취했고,무사히 프리 아를 지상으로 탈출시킬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다른 서브 스테이지처럼 무난했다.
적들이 몇몇 나타나기는 했지만 별 다른 어려움 없이 넘길 수 있는,무시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50층은 아니겠지.
아마 내가 타오니어 공략을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의 임무가 될 것이다.
구구콘의 밀데 의하면,내가 45층에서 마주쳤던 수왕이나 성녀 같은 네임드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올 가능 성이 높다고 한다.
그런 놈들은 물량으로 승부할 수 없다.
떨거지들을 잔뜩 보내봤자,몰살만 당할 것이다.
정예 영웅으로 부딪혀서 끝장을 내야 했다.
‘정예 영웅이라.’
타오니어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영 응들은 1파티와 2파티의 멤버들이었다.
모두 합쳐서 10명이었고, 이들은 다른 세대의 영응보다 확연히 높은 성장 수치를 갖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꼽자면 역시 1파티였다.
최상급 4성 키샤샤를 비롯해서 마 학자인 카티오,압도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제나와 투쟁심이 강한 벨키스트, 마지막으로 나까지. 웬만한 동 레벨 대 계정으로 옮긴다고 해도 1군에 갈 만한 영웅들만 모여 있었다.
‘문제는……:
타오니어의 난이도 수준이 평범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기본적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데다, 간섭력을 다룰 수 있는 황자가 꼬장을 부려놓았다.
흑룡혈을 얻으면서 강해지긴 했지만, 나 혼자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물론,시간만 충분하다면 파티원들도 나를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우리에겐
여유가 별로 없었다.
단기간에 전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빠른 시간 내에 영웅을 강화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각인의 단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고대종을 불러오자는 것이다.〉 훈련소 4층에 위치한 나의 개인실. 구구콘이 모이통을 부지런히 쪼아
먹고 있다.
이곳에 비둘기가 하도 많이 들이대 길래 키샤샤가 모이통과 물병을 설치 해주었다.
〈네가 나의 힘을 완전히 다룬다면
상관없겠지만,아직 너는 한참 모자라다. 쯧쯔,게으른 놈. 그만큼의 소질을 가졌 으면서, 고작 3단계밖에 못 쓰다니. 내가 네 몸을 썼다면 지금쯤어험!〉
내가 목을 움켜잡자 구구콘이 헛기 침을 했다.
〈하여튼,이걸 보아라.〉
구구콘은 날개로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연한 회색빛을 띤 작은 비늘 모양인 그것은,오래되어 다 헤진 각질이었다.
탐험 던전으로 나갔던 한 영웅이 주 워온 아이템으로,아이템 이름은 ‘정 체불명의 허물’이었다. 설명만으로는
어디에 쓰는지 알 수가 없어,암케나가 없애버리려고 했다가 내버려 둔 잡템 중 하나였다.
〈이건 그 까칠한 놈의 비늘이니라,〉 “까칠한 놈이라.”
〈백룡 아시니스다.〉
아시니스라면 타오니어 4대 가문의
시조 가운데 하나.
흑룡 할기온과 동급의 괴물이었다. 〈이걸 촉매로 쓰면,그놈을 강림
의식으로 불러올 수 있을 거 같군.〉 “비늘 하나로 S급 강림 몬스터를
불러온다?”
나는 혀를 찼다.
내가 이 녀석을 소환 가능했던 것은 최상급 강림석의 힘이었다.
물론,그 여분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배틀 로얄의 우승 경품으로 얻은 1개가 전부였으니.
최상급 강림석은 유적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쓸 만한 강림석이 없는데.”
〈그런 귀찮은 물건은 필요 없다. 던전 안에 나를 들여보내 주기만 하면 내가 놈을 불러보마.>
구구콘은 말하면서도 부지런히 모 이를 쪼아먹었다.
〈두 번째 각인은 열었느냐?〉
나는 미간을 좁혔다.
구구콘이 무엇을 말하는지 짐작이
갔다.
4성인 나는 보유 가능한 각인이 하나뿐이었다.
각인 슬롯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5성으로 승급해야만 했다.
즉,5성이 되어야만 두 가지의 각인 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55 레벨.’
5성의 승급 조건이었다.
49층까지 깬 뒤 합성을 잘만 쓴다
면 현재 층수로도 55레벨 달성이
어렵지만은 않다.
“백룡혈을 내 두 번째 각인에 쓰라고?”
〈그럼 네 부하한테 넘겨줄 셈이냐?〉
“효율상으로는 그게 맞지.”
지금의 내가 백룡혈까지 얻게 된다면,
양손에 무기를 들고 휘두르는 격이다.
주력 각인만 제대로 써도 전투 효율이 떨어지지 않으니,
백룡혈은 다른 애들한테 넘겨주는 것이 맞았다.
〈정녕 그 힘을,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어리석은 짓이야. 아무리 여신의 가호를 받았어도 그들의 그릇으로는 우리를 담을 수
없어. 억지로 구겨 넣어봤자 홀러넘치고 말 거다.〉
구구콘이 모이를 쪼던 부리를 멈추 고는 나를 보았다.
〈네가 쓰도록 해라. 우리의 힘은 초 월자에게만 허락된 권능이니라.〉
각인 등급이 높을수록,강림 던전의 난이도가 올라가고,영웅에게 부여할 때의 실패 확률도 늘어난다.
실패의 대가는 오염.
즉,영웅이 죽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걱정 말거라. 그놈과는 나처럼 시험 이니 뭐니 죽어라 투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자칫하면 각인식에서 영웅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정예급 영웅은 키우기 쉽지 않은 만큼, 공략조 멤버 중 하나가 죽기라도 한 다면 뼈아픈 손해였다.
‘각인 두 개를 같이 쓰라는 건가/
이것 또한 어려웠다.
흑룡혈은 하루 이틀로 대성할 만한 능력이 아니었다.
6성 만렙을 찍을 때까지 꾸준히 성 장시켜야만 하는 최상급 각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를 더 추가하라니.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두 개를 같이 써먹으려면 꽤
오래 걸리겠지.
이번 구간에서는 백룡혈을 익히려 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고민을 해봐야겠는데.’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
백룡혈을 활용하는 것은 도박성이
너무 짙다.
“실례하겠소.”
한창 고민하던 도중,문이 벌컥 열 렸다.
나와 구구콘이 동시에 입구를 돌아 보았다.
벨 키스트였다.
금방 훈련을 끝냈는지,전신이 땀으로 젖어 있다.
벨키스트는 구구콘과 마주 보고 있던 내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웬일이 냐?”
“지나치려 했는데 선배의 말소리가 들리더군. 방해했다면 사과드리겠소. 그것보다……:’
u 꾸엑!”
벨키스트가 구구콘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들어 올렸다.
〈이런 무례한 놈이!〉
“이 참새가 선배가 가진 힘의 근원
이었나.”
“…….”
“나를 바보라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모르는 척 해왔을 뿐이니.”
〈이 노오오옴! 당장 놓거라!〉 비둘기가 발버둥쳤으나 벨키스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벨키스트의 손끝에서 구구콘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무얼 하느냐,한! 이 건방진 자식을
당장 내쫓지 않고!〉
“…….”
나는 벨키스트를 가만히 보았다. 여느 때처럼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지만,눈 안쪽에서 무언가 엿보였다.
“벨 키스트.”
〈한!〉
“강해지고 싶냐?”
벨키스트가 피식 웃었다.
답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가.,
밖에서 내가 했던 말을 되짚은 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한 것 같다.
처음부터 듣고 있있겠지.
“어쩐지 이상하더군. 따라잡은 줄 알았더니,점점 멀어지고 있지 않나. 혼자만 특별한 힘을 쓰는 건 불공평
하잖소,선배.”
벨키스트가 자조했다.
“그 재능 없는 창술사도 일어났는데,
나는 엎드려서 뭘 하는지 모르겠군.” 〈분수를 모르는 인간이 날뛰는구나.
고대종의 힘은 평범한 자가 쓸 수 있 는 게 아니다. 그릇이 아닌 자가 다룬 다면 부서지고 말 거다!〉
벨키스트는 나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요?”
“분수를 모르는 놈이 그 힘을 쓴다면,
부서질 거라는데.”
“나도 좀 알아봐달라고 해주시오.
나는 특별한가?”
비둘기가 거칠게 날개를 펄떡거렸다. 구구콘의 반응을 보면 벨키스트에
게 특별한 무언가는 없는 듯했다. 그저 우수한 재능을 타고난,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하긴.’
처음부터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 었지.
그 힘을 감당할지 말지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아닌 것 같군. 실망이구려.”
“다시 말하지만……
“위험하다는 말은 할 필요도 없소.” 벨키스트는 이미 각인을 갖고 있다.
정신계 스킬인 야성에 관련된 각인 으로,높은 등급은 아니었지만,범용 성이 우수하고 안전한 능력이었다.
만약 벨키스트가 백룡혈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있는 각인부터 지워야 할 것이다.
〈아시니스가 이놈을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는 보장할 수 없어. 그럼 죽는 것이니라!〉
벨키스트가 비둘기를 손에서 놓았다.
목줄이 풀린 비둘기라 괴성을 지르 며 날개를 펼쳤다.
〈이 건방진 천둥벌거숭이가! 본신의 힘이 돌아오면 토막 내주고 말겠다!〉
“아까부터 무어라 꽥꽥대는군.”
“신경 쓰지 마.”
“그러지.”
어디 보자.
나는 백룡혈을 S급 각인으로 가정 하고,현재 벨키스트의 등급과 능력을 고려해서 강림 던전을 클리어하고 각 인이 부여될 확률을 계산해보았다.
‘약 2퍼센트.’
50번 시도해야 1번 성공할까 말까.
내가 마스터였다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무리수였다.
성공한 다음도 마찬가지였다.
영웅의 수준에 걸맞지 않은 능력은
때때로 폭주를 일으킨다.
내가 용성락을 썼을 때 오염 상태가
발동했던 것처럼. 그때 나는 구구콘의 힘을 이용해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 었지만,벨키스트는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염 상태라는 것은 궁사한테 들어서 알고 있소. 만약 그 오염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면 선배가 날 처리해주시오.”
“그래서,허락해주실 생각인가.” 〈이놈,설마…… 우리의 위대한 힘을
한낱 하찮은 인간에게……!>
나는 버둥거리는 구구콘 앞에 모이
통을 가져다 놓았다.
“오늘은 많이 먹어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준비해줄 테니까 말하고.” “구구구국!”
나는 구구콘의 부리를 모이통에 파 묻었다,
그리고 구구콘에게만 들리게끔,아주 작게 속삭였다.
“내 생각엔 이게 맞는 거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네 부하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
“알아. 그런데,무조건 재가 하겠다 는데 어떻게 말려.”
벨키스트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죽도록 훈련하면서,
땀이 넘치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멈추 지 않는다.
아마 다른 계정에 갔다면 1인자 대 접을 받으면서 톡톡히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수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지 않 았다.
‘재능도, 노력도, 정신력도 충분하다면, 결국 계기가 있어야 한다 이거지.’
예전이었다면 단칼에 거절했을 것 이다.
실패라도 했다간 크나큰 손해일 테
니까.
그러나 업을 터득한 아론을 보면서, 조금 마음이 바뀌었다.
헛된 기대일지 모르지만,거기에 걸 어보기로 했다.
‘언제까지 혼자 싸울 수는 없어.’ 내게는 뒤처리를 해줄 부하가 필요한 게
아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내 옆에서 어깨를 맞대고 싸워줄 만한 동료였다.
〈범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힘이야.〉 “그런 게 어딨냐? 도와주기나 해.” 구구콘의 머리를 누르고 있던 손을
풀었다.
모이통에서 부리를 뺀 비둘기가 벨 키스트를 노려보았다.
〈흥,쉽게 강해진다는 환상을 품은 놈들이 어떤 결말을 맞는진 수천 번 이나…….〉
벨키스트의 눈을 응시하던 구구콘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놈은 미쳤군.〉
“…….”
〈흥,어떻게 되어도 나는 책임 안 지니라. 네가 알아서 해라.〉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구구콘이 날개로 백룡의 허물을 집더니,밖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