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Gaiden 42
41. 폭풍과 해일
* * *
그로부터 며칠 뒤.
[비공정 ‘캐피탈리즘 호’의 정비가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비공정을 임무에 출전시킬 수 있습니다. 단, 소환이 허가된 영역에서만 출전 가능합니다.]부우웅.
조립이 끝난 캐피탈리즘 호가 시운전을 하고 있다.
드러나 있던 내부는 단단한 철제 외판으로 덮였고, 연료관 확장 및 기타 시설의 개보수도 끝마쳤다.
‘이거 참.’
시공의 틈을 빙빙 돌고 있는 비공정을 보면서 나는 혀를 찼다.
32층을 클리어한 뒤, 암케나는 근 일주일 동안 등반을 진행하지 않았다.
‘써 보고 싶었나 본데.’
비공정을 획득했지만, 쓸 만한 구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때마침 33층에서 사용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새 차를 뽑으면 몰고 싶은 게 당연지사. 마음이 동하지 않을 리 없었다.
“부양력 문제없음. 연료 효율 좋고. 손상 구간도 안 보이고.”
정비복을 입은 라디가 비공정 점검표에 ‘O’를 빼곡히 채워나갔다.
“이 정도면 임무에 나갈 수 있을 거 같네요.”
“선내 시설이 아직 없고, 무기가 설치 안 됐어. 비행 점검도 안 했잖아?”
카티오가 조종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비공정이 원래 위치에서 정지했다.
“이번 장소가 바다라며? 어차피 날지도 못할 텐데.”
“그렇기는 한데…….”
“정비를 더 하고 싶다면 난 상관없어.”
“됐어! 여기서 끝내. 하루하루 죽을 거 같으니까.”
카티오가 질렸다는 듯이 말하고는 계단을 내려왔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새겨져 있었다. 일주일가량 이어진 새벽 야근의 결과였다.
“속았어. 완전 속았다고. 하르라보다 더 빡세잖아, 여긴! 젠장.”
카티오가 눈을 가렸다.
[‘카티오(★★★★)’가 불만을 표합니다!]카티오의 불만을 인지한 암케나가 조작창을 움직였다.
선물 상점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군마 조각상’을 ‘카티오(★★★★)’에게 선물합니다!]“몇 번째야, 대체? 이딴 거 필요 없다니까!”
허공에서 나타난 군마 조각상을 카티오는 질색을 하면서 내던졌다.
나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군마 조각상을 주워들었다.
주인 없는 물건.
진열장에 장식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넌 여기서 뭐 해?”
“있으면 안 되냐?”
나는 품 안에 조각상을 넣고는 말했다.
“비공정 수리가 끝난 것 같아서 보러 왔지.”
“결과는 보다시피야. 일단 운행 능력은 괜찮아. 항해도 가능하고. 단…….”
“선내 시설 및 무기가 없다, 이 말이냐.”
“이건 좀 더 시간이 필요해. 우리 둘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견만 정비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지금 캐피탈리즘 호의 선내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시설과 적재 무기 등이 설치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 여자 마법사는 왜 자꾸 옆에서 알짱거려? 파티 정원은 다섯 명일 텐데.”
카티오가 머리를 기울였다.
“네가 이해해줘라.”
나는 웃고는 말했다.
카티오를 포함한 훈련이 처음으로 시작되었을 때, 이올카도 그 옆에 있었다.
같이 훈련을 받겠답시고 외곽을 뺑뺑이 돌고, 체력 단련을 하고, 신설된 마법 훈련장에서 화염 및 바람 마법을 연습했다. 진형 훈련은 참가할 수 없었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별 진전은 없었나.’
카티오를 섞은 진형도 대충 정리가 끝났고 멤버의 역할도 정립됐지만, 이올카는 별로 바뀌는 게 없었다. 산들바람에서 건들바람이 된 정도.
원소술사는 기본적으로 한 가지 속성만을 다룬다.
두 가지 이상의 속성을 다루는 마법사는 희귀 계통으로, 등장 확률로 따지면 1할 미만. 이올카가 거기에 해당될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헛돌고 있군.’
이올카에게 필요한 것은 바람 마법이 아니다.
리스크를 감당하고 사용할 정도의 화력이었다.
현재 이올카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어차피 처음 소환됐을 때부터 리스크를 감안하고 쓴 것이다. 복귀를 위해서는 그 점을 알아야 했다. 헛고생을 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끼어들고 싶었지만,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 같아 침묵했다.
‘뭐, 알아서 배우겠지.’
비공정을 정비하느라 진도가 느려졌다.
지금은 35층 공략을 준비할 때였다. 나는 그 뒤 카티오와 라디에게 비공정의 제반 사항을 듣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이튿날 저녁.
[1파티, 모여!]암케나가 1파티를 불러모았다.
오랜만에 불렸으나 다들 덤덤한 표정으로 시공의 틈에 들어갔다.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메인 던전, 현 도전 층수는 33층입니다.] [10초 뒤, 문이 열립니다. 준비하세요!] [임무 녹화 중입니다. 플레이 기록이 보존됩니다.] [비공정을 사용 가능합니다.]임무의 층수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추가로 알림이 하나 더.
“33층이네요.”
“배 위에서 이어지는 거겠지.”
시덥잖은 잡담을 나누며 우리는 임무의 필드로 소환되었다.
철썩.
귀를 때리는 파도 소리.
특유의 바다 내음이 코를 스친다.
“……왔구나.”
뱃머리에 앉아 있던 프리아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플로어 33.] [임무 유형 – 탐색] [목표 – 지정된 장소를 수색하라!]임무창이 떠올랐다.
32층에서 이어지는 탐색.
[띠링!] [분기 발생!] [서브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서브 퀘스트(분기형)] [목표 – 비공정을 소환하라!] [보상 – 히든 스테이지 개방]갑자기 서브 퀘스트라니.
목표는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누군가를 처리하거나 보호하는 등의 임무가 아니라, 단지 비공정을 불러들이는 것.
수많은 퀘스트를 보고 겪었지만 이런 수준은 흔치 않았다.
보상도 이상하고.
‘히든 스테이지.’
픽 미 업이 운빨겜이라 불리는 요소 중 하나였다.
보너스 스테이지라면 다음 층에 대한 힌트가 주어지지만, 히든 스테이지는 나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임무의 난이도가 큰 폭으로 변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브 퀘스트? 사막에서 했던 거 아니에요?”
허공을 보던 제나가 말했다.
“비공정을 소환하라…… 내용은 단순하네요.”
“수상하오만.”
벨키스트가 맞받았다.
프리아가 근처로 다가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냐? 나도 끼워다오.”
“잠깐만 기다려라. 우리 이야기야.”
“그런가…….”
프리아는 서운한 표정을 짓더니 물러났다.
[영웅의 의향을 물어보시겠습니까?] [Yes(선택) / No] [영웅의 의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 약간 부정적] [제나 – 중립] [벨키스트 – 약간 부정적] [네리사 – 중립] [카티오 – 중립]암케나의 조작창이 정지했다.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제안을 할 수 있겠지만.’
정답이라는 보장이 없다.
“프리아.”
“왜 그러느냐.”
“육지를 떠난 지 얼마 됐냐?”
“한 달이 넘었느니라.”
한 달.
육지에서 꽤 멀어진 것 같다.
내가 침묵하자, 암케나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
[마법사 꼬마!]머릿속에서 낯익은 음성이 울렸다.
이셀의 것이었다.
모두에게 들리는지, 1파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만 이어질 뿐.
[마스터가 비공정 소환을 명령했어.]“여기서?”
[그래, 거부하면 알지?]카티오가 나를 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1파티’의 리더, ‘한(★★★)’이 서브 퀘스트의 거절을 제안합니다.]공략을 운에 맡길 수는 없다.
서브 퀘스트라면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터.
성급하게 결정하다가 쪽박을 찰 수도 있다.
내 반대가 의외였는지, 암케나는 잠깐 조작을 멈추었다.
[제안을 수락하시겠습니까?] [Yes(선택) / No]한 번은 참아준 것 같다.
수상한 서브 퀘스트는 이것으로 끝.
“비공정, 정비 끝난 거 아니에요? 안 써도 되나.”
“잠깐만 참는 거야. 딱 봐도 수상하잖냐.”
“그렇긴 하네요.”
33층 초기의 해프닝은 일단락됐다.
우리는 배 위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임무라고 해도 별로 할 일은 없다.
머맨이나 상어 같은 소형종은 대형 범선에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거의 휴식이나 다름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탐색이라.’
나는 프리아에게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무한해라 일컬어지는, 대륙 바다의 끝에는 고대 용족의 신전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서 열쇠가 빛나고 있는 장면을 꿈에서 봤다는 것 같다.
‘그것참, 만능이네.’
나는 그물 의자를 갑판으로 끌고 나와서 그 위에 앉았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언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제나가 옆에 누워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오빠?”
“임무에 대해서지.”
“하루종일 임무, 임무. 기계도 아니고, 조금은 쉬는 게 어때요? 서브 스테이지인데. 별거 없는데요, 뭘.”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우습게 보다가 객사하는 놈들이 여럿이야.”
“그렇지만…… 지금껏 27번 정도 했는데, 크게 위기는 없었잖아요.”
“지금껏 위기가 없었다고, 앞으로도 그렇단 보장은 없지.”
어차피 운빨 게임.
보스 스테이지보다 어려운 난이도가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천 분의 일 이하의 확률이지만.
나도 그렇게 높게 점치지는 않는다.
35층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을 뿐.
[‘1파티’가 특수 필드, ‘수신의 권역’에 들어섰습니다.]‘뭐지?’
나는 의자에서 등을 뗐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이 아닌데도 주위가 어두워져 있다.
하늘에는 검은 먹구름이 우중충하게 끼어 있었다.
“어라?”
제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시선을 돌렸다.
‘특수 필드.’
느낌이 좋지 않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선 뒤 선내로 들어갔다.
1층 복도의 첫 번째 방에 프리아의 방이 있었다.
노크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프리아, 미안하지만 배를 돌려야겠다. 정보를…….”
“우리의 영해를 흙발로 밟은 뒤 돌아가겠다고?”
프리아의 눈이 풀려 있었다.
쇠가 긁히는 듯한 불쾌한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건…… 정신 지배인가!’
“들어라, 거짓된 용사여.”
프리아의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우리는 다른 수호자들처럼 사냥당하지 않는다. 사냥하는 쪽이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법칙을 어긋나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할지니.”
“……넌 뭐냐.”
“사냥이 시작되었다.”
풀썩.
말을 마친 프리아시스가 허물어졌다.
나는 재빨리 다가가 부축했다.
“이런…….”
[Warning!]경고 메시지가 눈앞을 치고 지나갔다.
나는 프리아를 침대에 눕힌 후 즉각 갑판으로 나왔다.
쿵!
순간 갑판 위가 크게 흔들렸다.
“큭!”
“오, 오빠!”
“뭐냐?”
“몰라요! 갑자기……!”
퍼어엉!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기둥 같은 것이 일직선으로 치솟았다.
[크라켄 Lv.38]수 미터는 될 법한 다리가 선 채로 꿈틀거렸다.
콰강!
이어서 두 번째 다리가 솟아올랐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다리가 배를 사방에서 감쌌다.
다리마다 달린 수백 개의 빨판에는 칼날이 달려 있었다.
‘이런 미친.’
무게를 못 이긴 배가 휘청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물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다리를 조져! 배에 붙은 것부터 절단해라!”
나는 선내에서 뛰어나오는 멤버에게 외쳤다.
스릉!
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크라켄의 다리가 배의 중앙을 감싸고 있었다.
힘을 잔뜩 모아서 내려 베려는 찰나.
끄오오오오오오.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배를 감싼 다리가 물속으로 내려갔다.
“선배, 어떻게 된 거요!”
“나도 몰라!”
나는 난간 밑을 내려다보았다.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하늘에는 검은 먹구름.
바람이 강해졌다.
어느덧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완전 새 됐네.’
쿵! 쿠궁!
수면에서 강렬한 파도가 일었다.
한번 몰아칠 때마다 배가 가볍게 들썩거릴 정도였다.
“이, 이건 갑자기……!”
프리아도 정신을 차렸는지, 갑판으로 나왔다.
나는 조타를 가리키며 외쳤다.
“프리아, 운전대를 잡아. 배의 방향을 돌려라!”
“한, 이게…….”
“설명할 시간은 없어.”
“아, 알았다!”
프리아가 헐레벌떡 갑판 위의 조타로 달려갔다.
우측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끼이이익. 배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긁는 듯한 음성이 울렸다.
배의 옆쪽, 수 미터는 될 법한 물기둥이 치솟더니 검은 형체가 튀어나왔다.
다름 아닌 크라켄의 본체.
그러나 다리가 남김없이 찢어졌다.
쾅!
다시 한번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리고.
놈이 공중에 떠오른 크라켄을 한 입으로 씹었다.
[Danger!] [수신룡 크타아트 Lv.64]거대한 턱이 닫히자, 크라켄의 살점과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놈은 꿈틀거리는 크라켄을 문 채 입을 좌우로 흔들더니 집어던졌다.
풍덩!
곧 수면에 크라켄의 시체가 떠올랐다.
살점과 내장이 남김없이 파헤쳐진 처참한 모습이었다.
“여기 33층 아니에요? 왜 갑자기……!”
제나가 당황하면서 장궁을 꺼냈다.
나는 배 밑을 살폈다. 크라켄을 한순간에 고깃덩이로 만든 놈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 유영하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수면 위에서 팔자로 움직였다.
’33층인데 보스가 나타나다니.’
이변이었다.
나는 낭패감에 입술을 물었다.
공략을 위한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임무 유형이 변경되었습니다.] [임무 유형 – 탈출] [목표 – 위험 구역에서의 도망쳐라!] [특수 목표 – ‘프리아시스 알 라그나’의 생존]“……저런 녀석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벨키스트가 중얼거렸다.
나는 임무창을 바라보았다.
변경된 목표는 토벌이 아니다.
한 시름 덜었다.
“상대 안 해도 돼. 도망친다!”
“어떻게 도망치려구요?”
“배를…….”
쿵!
배가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엇……!”
주르르륵.
갑판의 온갖 물건들이 미끄러져 한쪽으로 쏠렸다.
돛을 조정하고 있던 선원이 발을 헛디뎌 배 밑으로 떨어졌다. 비명조차 없었다.
“젠장!”
나는 난간을 붙잡고 매달렸다.
콰당! 왼쪽으로 기울어지던 배가 균형을 찾았다.
쿵!
폭발음과 더불어 물기둥이 솟구쳤다.
몸길이만 수십 미터. 미꾸라지와 비슷한 유선형의 몸체였다.
푸른 비늘을 반짝이며 수신룡이 포효했다.
“쿠오오오오!”
[‘수신룡 크타아트’가 포효합니다.] [‘수신의 가호’가 적용되었습니다!]“안 좋은 상황인 것 같소만.”
벨키스트가 중얼거렸다.
“그래, 엿 됐어.”
하지만.
‘여기서 뒤질 수는 없지.’
나는 검을 뽑으며 외쳤다.
“이건 토벌이 아냐. 싸워줄 필요 없다!”
음산한 웃음과 함께 수신룡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옆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는 프리아에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여기서 튄다. 운전대 잡아.”
“가능하겠느냐? 풍향이 좋지 않다!”
나는 마스트를 올려보았다.
후우웅! 돛이 사정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러나 풍향은 제멋대로. 범선이 운항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제길…….’
쿵!
수룡이 배를 들이받았는지, 갑판이 격렬히 흔들렸다.
바닷물이 갑판 위에 쏟아졌다.
이대로라면 배가 침몰한다.
“오빠, 어떻게 반격하죠? 바닷속에서 공격하는 것 같은데!”
“……반격할 생각 마.”
막겠답시고 바닷속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상어밥이 될 것이다.
“그, 그럼.”
“튀어야지.”
터무니없이 불합리한 임무였지만, 공략이 존재하지 않을 리 없다.
나는 프리아를 바라보았다.
“이 배에 특수 장치 같은 게 있나?”
“그것은…….”
프리아가 미간을 좁혔다.
“있어. 내가 배를 뒤져봤거든.”
카티오가 조타 근처로 다가가더니 기둥을 만지작거렸다.
“퇴역한 비공정을 범선으로 개조한 것 같아. 잠깐이라면 가능해.”
“무, 무엇이 가능한가?”
“고속 항해.”
카티오는 운전대 위의 붉은 버튼을 눌렀다.
부우웅!
기묘한 부유감이 들더니, 배가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조타는 내가 잡을게. 호위 대상은…….”
“아니, 넌 비공정 소환 준비를 해.”
“뭐?”
“오래는 못 버틸 거 같다.”
쿠오오오오오!
수룡의 두 번째 포효가 이어졌다.
[‘수신룡 크타아트’가 포효합니다.] [기후가 급변합니다!] [몬스터 웨이브!] [머맨 Lv.33] X 32 [새끼 수룡 Lv.39] X 5배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 미터 높이의 물결이 해일을 이루며 몰려왔다.
콰아아아아!
물기둥을 흩뿌리며 수룡이 배를 쫓아왔다.
“운전대는 네가 잡아라!”
조타수를 겸하던 선원이 바다에 빠지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프리아에게 소리쳤다.
프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타를 잡았다.
쿵!
뱃머리 앞에서 꼬리가 솟아올랐다.
배가 우측으로 틀어졌다. 빗물이 섞인 강풍이 뺨을 거세게 때렸다.
철저히 바닷속에서 공격해온다.
준비가 안 된 지금으로써는 효과적인 대응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시스템은 생존을 임무 목표로 제시했던 것이다.
“인간! 인가아안! 캬아아아! 죽이…….”
배의 난간을 타고 올라오던 머맨의 이마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드디어 할 일이 생겼군.”
벨키스트가 물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더니 검을 뽑았다.
그리고 난간으로 달려나갔다. 뒤에서 제나가 화살을 장전하며 말했다.
“안 떨어지게 조심해요.”
“말이라고 하나.”
머맨의 머리가 비스듬히 잘려나갔다.
“조타를 배웠던 게 여기서…… 윽!”
휘청거리는 프리아를 붙잡았다.
“고, 고맙구나.”
‘못 따돌리겠는데.’
범선보다 수룡의 속도가 빠르다.
선내에 있던 선원이 프리아에게 달려왔다.
“배 밑에 구멍이 났습니다. 물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어, 10분은…….”
“한! 어찌해야…….”
‘처음부터 함정 임무였나.’
특수 필드가 뜨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배를 돌려야 했다.
다음 도전부터 암케나는 이를 활용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다음은 없어.’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1파티’의 리더, ‘한(★★★)’이 비공정 소환을 제안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선택) / No]허가는 떨어졌다.
“카티오!”
카티오의 눈이 파랗게 반짝였다.
손이 교차하더니 마력의 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차원문을 구성하는 중…….] [현 진행도 – 03%]수면에서 커다란 미꾸라지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수룡의 새끼.
등에 머맨이 타고 있다.
날치처럼 수십 미터를 뛰어오른 수룡은 완전무장한 머맨을 갑판에 내려놓은 뒤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자세를 낮추며 뛰었다.
1초도 안 되어 10m의 거리를 좁혔다.
검을 뽑아 휘두르자 머맨의 상체가 통째로 썰려 나갔다.
“차원문을 지켜! 건들지 못하게 해라!”
“알았어요!”
놈들은 차원문을 소환하고 있는 카티오에게 몰려들고 있다.
우리는 카티오를 감싼 채 원진을 펼쳤다.
“키엑!”
재차 머맨을 싣고 날아오르던 수룡에게 화살이 정확히 박혀 들었다.
이어서 갑판이 머맨의 푸른 피로 잔뜩 물들었을 때.
쿠릉!
다른 종류의 진동이 배를 흔들었다.
수 미터의 꼬리가 치솟더니 배 위를 수평으로 쓸고 지나갔다.
꼬리에 걸린 돛과 마스트가 나무젓가락처럼 부러져 박살 났다.
[Danger!] [‘노틸러스 호’의 침수가 심각합니다!]‘진행도는…….’
마력의 실이 반원형의 문을 짜올리고 있다.
“더 이상은 버티기…… 으헉!”
수룡의 꼬리가 선원의 상체를 휘감았다.
선원은 그대로 물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노틸러스 호’의 고속 항해 장치가 정지합니다.]배가 멈췄다.
범선의 갑판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마스트와 돛은 전부 부러졌다.
선내로부터 물이 새고 있었다.
범선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더니,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프리아는 조타에서 손을 놓았다.
“또 이렇게 되는 것인가.”
“이 정도 일에는 익숙해져라. 나와 같이 지내려면.”
“그것도 그렇구나.”
프리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열려라, 차원의 문!】
카티오가 양손을 모았다.
범선 뒤편에서, 반원형의 차원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원문이 생성되었습니다!] [차원문을 통해 탈것 및 장비와 소모품을 전장으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암케나의 조작창이 움직였다.
[비공정 ‘캐피탈리즘 호’를 선택하셨습니다. 소환하시겠습니까?] [Yes(선택) / No]【접근 허가. 나와라!】
번쩍.
캐피탈리즘 호의 뱃머리가 나타났다.
“먼저 가 있을게.”
순간이동.
카티오는 나를 돌아보더니 빛이 되어 사라졌다.
범선은 앞쪽부터 잠기고 있었다.
나는 프리아를 부축한 채 배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1파티의 멤버가 근처의 머맨을 처리하며 쫓아왔다.
“이렇게 싸우면 목숨이 몇 개나 있어도 부족하겠습니다만.”
네리사의 농담을 흘려넘기며 난간으로 다가갔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캐피탈리즘 호가 침몰하는 배로 접근하고 있었다.
콰릉!
꼬리가 배의 한쪽을 후려쳤다.
나뭇조각이 비산하더니 범선의 반절이 산산조각 났다.
“다른 선원들은…….”
나는 머리를 저었다.
프리아는 말없이 내 옷깃을 잡았다.
최후로 내가 올라타자 범선은 맥없이 침몰했다.
쿵!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10m 가까이 몸을 드러낸 수룡이 눈을 번뜩였다.
“배가 아니라 비공정이다. 멸치 새끼야.”
나는 놈에게 중지를 들어 올렸다.
[‘캐피탈리즘 호’의 초고속 항행 장치가 기동합니다!]부웅!
비공정이 수면에서 살짝 떠올랐다.
그리고 호버크래프트마냥 물결을 헤치며 쏘아져 나갔다.
‘비행은 불가능하지만…….’
역시 비공정은 비공정.
단순한 배와는 기본 스펙부터 다르다.
강철로 덮인 외관은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금도 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비공정은 기본적으로 초고속 항행 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비공정을 소환하라!] [서브 퀘스트를 달성하셨습니다.] [히든 스테이지, ‘수신의 사냥’이 개방됩니다.] [제한 – 1회 한정]수룡의 포효를 뒤로 한 채, 캐피탈리즘 호는 빠르게 바다를 달려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면이 잔잔해졌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못 이기듯 제나가 말을 꺼냈다.
“방금 길쭉한 괴물, 뭐였어요?”
“용 같은데. 20층에서 싸운 것과 종류는 달라 보인다만.”
“들어본 적 있습니다. 수신이라 불리는 심해의 고대종이라고 하더군요. 제국의 건국 초기에…….”
제나와 벨키스트, 네리사가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검의 피를 헝겊으로 닦아내고는 칼집에 넣었다.
그리고 비공정의 철제 갑판 위에 앉았다.
‘비공정이 없었으면 힘들 뻔했다.’
전멸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전을 면치 못했겠지.
‘정말 엿 같은 임무들만 모아놨네.’
픽 미 업이 어려운 난이도를 강점으로 내세운다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내가 마스터였다면 이미 고객 센터에 항의했다.
사실 니플헤임을 운영하면서 몇 번 문의를 하긴 했었지.
왜 내 계정만 난이도가 왜 이따구냐고.
당연 돌아오는 대답은.
‘꼬우면 접어라.’
그때 접었어야 했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나는 중얼거리며 시야 우측을 보았다.
서브 퀘스트의 달성을 알리는 메시지가 표시되어 있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달성하게 된 것이다.
‘히든 스테이지라니.’
[스테이지 클리어!] [‘한(★★★)’, ‘제나(★★★)’,’ 네리사(★★★)’, 레벨업!] [보상 – 150,000G] [MVP – ‘제나(★★★)’]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일단 35층의 보스는 확정.
이번에는 엿을 먹었지만, 수확이 없지는 않다.
보스의 기본 스펙과 패턴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마스터에게 시간을 달라고 한 다음 천천히 공략을 준비하기로 했다.
‘일주일 이상은 필요한데.’
아직 1파티 멤버들은 수영도 배우지 못했다.
여기에 수중전까지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일단 수영장부터…….
[‘수신룡 크타아트’가 사냥감을 요구합니다.] [히든 스테이지 개방!]갑자기 암케나의 화면이 바뀌었다.
[오늘 밤, 사냥을 나선다!] [★수신의 사냥★] [S T A R T!]조악하기 짝이 없는 도트 그래픽.
바다에서 수룡의 그림자가 울부짖고 있다.
[대기실로의 복귀가 불가능합니다.] [수신의 권역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 [비공정 ‘캐피탈리즘 호’가 임시 거점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임무가 자동으로 시작됩니다.] [플로어 34.] [임무 유형 – ???] [사냥할 것인가. 사냥당할 것인가.] [ 1. 수룡이 마스터의 영웅을 찾고 있습니다.] [ 2. 수룡의 감지 영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집니다.] [ 3. 추격을 피하면서 필드 내의 자원을 수집하세요!] [ 4. 준비가 되셨다면, ‘수신 사냥’을 시작하시면 됩니다.] [더욱 자세한 매뉴얼을 알고 싶다면 ‘도움말’ 탭을 터치!]‘……무슨.’
이런 X망겜이 다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