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5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58화
대업(大業)을 그르칠 생각입니까 (1)
‘나한테 하면 어떻게 해 인마.’
강우는 초조한 표정으로 아이리스 쪽을 돌아봤다.
그의 계획에서 영웅과 황녀, 즉 김시훈과 아이리스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야 하이엘프가 너한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질 거 아냐.’
이전에 은신의 권능을 쓴 자신을 한 번에 꿰뚫어 봤다는 점에서 아이리스의 몸 안에 담긴 하이엘프의 축복이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이엘프의 입장에서도 당연히 자신의 축복을 지닌 아이리스를 신경 쓸 가능성이 컸다.
‘가이아처럼 자기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해주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보다는 신경 써 주지 않겠는가.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황녀-영웅의 구도가 조금씩 어그러지는 듯한 감각.
‘이거… 좀 강수를 둬야 할 수도 있겠는데.’
아이리스와 김시훈의 사이를 이어주기 위해 과감한 수를 던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김시훈만 협조해 준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아이리스는 이미 김시훈에 대해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 나도 보고 싶었다, 시훈아.”
잠시 생각을 접어두고, 자신을 끌어안은 김시훈의 어깨를 두들겼다.
사실 강우도 근 몇 주 만에 김시훈을 다시 만나서 기쁜 참이었다.
“제국민들 반응은 좀 어땠어?”
“엄청 열렬했습니다. 하하. 제가 아이돌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더군요.”
김시훈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강우는 픽 웃었다.
‘귀여운 새끼.’
그의 외모라면 어지간한 아이돌들은 감히 비빌 수도 없는 수준일 텐데 저렇게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퍽 귀엽게 느껴졌다.
강우는 김시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이리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훈아, 황녀님한테도 인사해야지.”
“아.”
김시훈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황녀와 좋은 관계를 쌓아야 한다고 했던 강우의 지시가 떠오른 모양.
“죄송합니다, 황녀님. 제가 정신이 팔려서 그만.”
“호호. 아, 아뇨, 괜찮아요! 두 분이 사이좋은 건 저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아이리스가 다급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김시훈에게 허리를 숙였다.
강우는 그런 아이리스의 모습에 낄낄 웃음을 흘렸다.
‘이거이거.’
질투하고 있었구만?
아이리스의 뚱한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김시훈이 바로 자신에게 온 것이 아닌 것에 서운함을 느낀 모양.
‘살짝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구만.’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특히 김시훈이 다른 여자도 아닌 자신의 형에게 먼저 신경을 쓴 걸 가지고 질투할 정도라면 더더욱.
그만큼 아이리스가 김시훈에게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니까.
‘어디 좀 더 자극해 볼까?’
강우는 시훈이에게 다가가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네가 없으니 내가 다 심심하더라, 시훈아.”
“혀, 형님.”
“중간에 몇 번 습격을 당했다고 들었는데, 괜찮지?”
“물론이죠.”
“하하! 그래. 어디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훈아.”
괜히 김시훈에게 다가가서 친분을 과시했다.
“읏….”
그렇지.
예상한 대로, 아이리스는 김시훈과 자신을 바라보며 분하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강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거 이러다 진짜 제수씨가 둘이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레이라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 둬야겠다.
“그나저나 시훈아. 돌아오자마자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긴 한데.”
어차피 그것은 나중의 일.
지금은 눈앞에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강우는 더글라스가 분류한 서류를 김시훈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는 놈들 좀 잡아 와줘야겠다.”
“제가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제국민들에게 있어서 귀족들의 인식은 악마 이하였다.
제국을 부흥시키면서 ‘영웅’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김시훈이 나서서 귀족들을 처단하는 게 좋다.
“이자들이 누구기에 그러십니까?”
“피델리오에게 붙은 귀족들.”
피델리오, 라는 말이 나오자 김시훈의 눈이 험악해졌다.
그가 제국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중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워낙 큰 사건인 탓에 그도 피델리오의 정체에 관한 얘기는 들었다.
악신 루시퍼의 하수인.
비록 그에게 붙었던 귀족들이 그가 악마라는 것을 알고 붙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그들이 한 짓은 악마나 다를 바 없는 일들이었다.
“…바로 또 나가야 하겠군요.”
김시훈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혹시 같이 가 줄 수 없냐는 듯한 눈빛.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는 다른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찮다.
너무, 몹시, 지나치게 귀찮다.
안 그래도 바빠서 임자와 있을 시간도 거의 없는데 이런 귀찮은 일까지 떠맡고 싶지 않았다.
‘원래 귀찮은 일은 동생이 다 하는 거야, 시훈아.’
꼬우면 나보다 나이 많이 먹던가.
“알겠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그들을 처단하고 오겠습니다.”
김시훈은 위협적인 살기를 뿜어내며 성검을 소환해 쥐었다.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죽이지 말고 잡아 와.”
“예?”
김시훈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놈들한테는 아이리스가 제국민들 앞에서 직접 사형 선고를 내려야 하니까. 뭐, 그때 귀족들의 죄목을 낱낱이 밝히면서 연설도 해야 하니 증거가 될 만한 거 있으면 영상 구슬로 찍어오고.”
“가, 강우 님?”
이번에 놀란 것은 아이리스.
그녀는 제국민들 앞에서 연설까지 한다는 말에 불안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주겠다고 말했잖아.”
강우는 불안에 떨고 있는 아이리스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이대로 시훈이에게 맡기기만 하면 전이랑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악녀의 이미지는 피델리오의 정체가 드러남과 동시에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악마의 하수인에게 놀아난 황녀를 사람들이 좋게 볼 리는 없었다.
지금 당장은 악녀의 이미지가 무능한 황녀로 바뀌었을 뿐.
‘아이리스가 직접 귀족들을 처단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
그래야 사람들은 열광하며 그녀를 따를 것이다.
“여, 열심히 해볼게요!”
“열심히만 해선 안 되지.”
잘해야 한다.
노력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우으.”
아이리스가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강우는 픽 웃었다.
“걱정하지 마. 연설문 쓸 때나 연설 방법 같은 건 내가 알려줄 테니까.”
이미 지옥에서 마왕으로 군림하던 시절 몇 번이나 해왔던 일이다.
어떻게 해야 호응을 끌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네!”
아이리스는 힘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부탁할 게 시훈아.”
“알겠습니다, 형님.”
김시훈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렸다.
강우는 돌아오자마자 다시 일을 받고 나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도 오늘 하루 정도는 쉬고 가.”
“아닙니다. 이놈들 중에서도 루시퍼와 연관된 자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니니 바로 가겠습니다.”
“어, 음. 그래, 알았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
죄책감이 더 심해졌다.
‘끄응.’
뭐 어쩌겠는가.
자기가 쉬지 않겠다는데.
‘절대 내가 강요한 게 아니라고.’
음음.
“그럼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죠.”
강우는 남은 서류 뭉치를 들어 올려 더글라스에게 내밀었다.
피델리오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귀족들의 명단이었다.
“이 중에서 피델리오와 무관하게 악행을 일삼았던 귀족들을 뽑아주시면 됩니다.”
“으음. 이건 좀 더 복잡하군. 알겠네.”
더글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족들의 분류를 시작했다.
“베로카 후작. 제국 북동부에 큰 노예시장을 운영하는 귀족일세. 워낙 변방에 있는 탓에 피델리오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악명이 자자한 놈이지.”
“아, 그자는 괜찮습니다. 이미 죽었거든요.”
“죽었다고? 아아… 이번 파티장 사건 때 말인가?”
“예.”
더글라스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분류를 이어갔다.
“으음. 근데 피델리오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귀족들은 대부분 죄목이 애매하긴 하군. 애초에 청렴결백한 놈들이 별로 없으니.”
끄응, 하고 침음을 흘리며 몇 명을 더 분류했다.
강우는 더글라스가 분류한 서류를 들어 아이리스에게 내밀었다.
“아이리스님.”
존칭을 사용해 그녀를 불렀다.
“아, 네!”
“이 귀족들은 아이리스님이 직접 읽어보시고 적절한 판결을 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사형, 사형, 사형.”
탕탕탕.
황권을 상징하는 황금색 옥쇄를 들고는 가차 없이 도장을 찍었다.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아니.’
읽어보고 적절한 판결을 하라고요, 이 아가씨야.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리스를 저렇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인데 무슨 말을 하랴.
“헛….”
그때, 더글라스의 입에서 억눌린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가 아니라면 듣지 못했을 정도로 작은 숨소리.
그는 서류 한 장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이내 슬쩍 뒤로 빼내며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탁.
“잠깐.”
밑장빼기냐?
강우는 더글라스의 손목을 잡으며 가늘게 눈을 떴다.
“방금 뭐였습니까, 더글라스 씨?”
“아, 그, 그게 말일세.”
더글라스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귀족이라 봐준다, 뭐 이런 건 아니겠죠?”
“아, 아닐세! 이 귀족은 제국민들에게 악행을 저질렀다고 보기엔 굉장히 애매해서 따로 분류했을 뿐일세!!”
더글라스가 다급히 외쳤다.
“그렇다면 왜 주머니 속에 넣은 겁니까.”
“그, 그건….”
더글라스의 눈빛이 떨린다.
강우는 그가 주머니 속에 넣은 서류를 뺏었다.
“리사나기 남작.”
더글라스의 말대로 적당히 기득권을 유지 중인 귀족이었다.
아니, 영지가 워낙 작은 탓에 권력 자체가 크지 않은 귀족.
확실히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이자를 따로 분류한 이유가 뭡니까, 더글라스 씨.”
강우는 살기까지 섞으며 더글라스를 노려보았다.
정면에서 마왕의 살기를 마주한 더글라스가 벌벌 몸을 떨었다.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리, 리사나기 남작은….”
꿀꺽, 침을 삼켰다.
“추, 춘화를… 잘 그리네.”
“…예?”
뭘 잘 그린다고요?
“아주 끝내주는 춘화를 그리는… 이, 이쪽 업계에서는 신과 같은 분일세! 사, 사형을 당하게 해서는 안 돼!”
“…….”
강우의 입이 굳게 닫혔다.
눈동자에 벼락이 튄다.
“지금 고작 그런 이유로.”
그딴 아무래도 좋을 하찮은 이유로.
우드득.
강우가 딛고 있는 황성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달렸다.
“대업(大業)을 그르칠 생각입니까!”
콰앙!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분노를 토해냈다.
“더글라스 씨는 생각이 있으신 분입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춘화? 하!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미, 미안하네.”
더글라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강우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 거야?’
설마 믿고 있던 더글라스에게 이렇게 뒤통수를 얻어맞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진짜 예전에 도움받은 것만 아니었어도.’
더글라스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강우는 끓어오르는 불씨를 삭히며 몸을 돌렸다.
“잠시 물 좀 마시고 오겠습니다.”
계속 여기에 있다가는 열이 뻗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강우는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강우 님.”
그때, 아이리스가 다가왔다.
강우의 왼쪽 가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어느새 그 안에 곱게 접힌 채 들어있던 한 장의 서류를 꺼냈다.
리사나기 남작의 신상이 적힌 서류.
아이리스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서류, 두고 가셔야죠.”
“…….”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