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혈면귀(1)
“진짜 중요한 거라니···.”
주건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녀석은 모르겠지만, 현우는 이 공간에 발을 들이자마자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말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 같구나. 혹시,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거니?”
주영미가 물었으나.
현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잠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곤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아직 확신까진 아니지만, 분명 여기 있는 상자가 전부는 아닐 겁니다. 이런 거대한 이벤트가 고작 이런 상자 몇 개 따위로 끝나진 않을 테니까요.”
“확실히 수지 타산이 안 맞긴 하지···.”
저 상자 내에서 어떤 보상이 튀어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신중하게 확인을 해봐서 손해 볼 것은 없으리라.
그리고···.
이 공간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리라 현우가 확신을 한 근거는, 단순한 직감 때문만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 세상에서 오직 현우만이 가진 최고의 이점인 ‘미래의 기억’ 때문이었다.
‘비슷한 방식이 기억에 있다.’
대균열은 공략된 적이 없기에.
당연하게도 그 보상부터 이미 현우가 처리한 보스인 불카누시온이란 마족까지. 어느 것 하나 알려져 있던 것이 없다.
그러나 딱 하나.
현우가 가진 미래의 기억과 이번 대균열을 연결 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과 흡사한 보상 과정이 있었던 한 가지 사건이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발생한 초대형 게이트.
이른바 ‘거조(巨鳥)의 창공둥지’로 불리는 게이트의 보스를 토벌한 이후. 공략에 참가한 헌터들이 전부 보상 구획으로 워프되었던 사건.
‘당시, 공략에 참여했던 헌터들은 모두 눈앞의 보상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모든 헌터가 앞다투어 각자 가치가 높아 보이는 보상을 선택했지.’
하지만 그들에겐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원수에 조금 모자란 보상을 챙겨. 다시 워프 게이트를 지나간 그들의 앞에, 더 가치 있는 보상이 널려 있는 ‘진짜’ 보상 구획이 나타났던 것.
‘기믹 때문에 이미 보상을 선택한 이들은 손가락을 빨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공략 기여도가 높았던 튀어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속 쓰린 상황이 되었지.’
현우는 이 경우도 ‘거조의 창공둥지’와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거라 추측하고 있었다.
공략 기여도에 따른 열쇠 분배.
그리고 보상 구획의 등장이라는 주요 요소가. 완전히 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흡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근데 뭔가 더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기라도 해야 하나? 그럼 꽤 오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는 걸.”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현우는 주건우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거조의 창공둥지’에서 헌터들이 첫 번째 보상 구획에서 성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그들이 진짜 보상 구획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며. 또한, 만약 알고 있었다고 해도. 당장 탐색하여 진입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다행히 지금 내게는 동물적인 감각과 기계적인 색적. 두 가지를 모두 해줄 덕춘이와 타나토스가 있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전 세계에서 오직 현우 하나만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다.
“덕춘아.”
“쉭···.”
그러나 덕춘이는 머리를 내저었다.
적어도 주변 대기에 흐르는 마나에서는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진 못한 듯했다.
한 번에 찾아낼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현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두 번째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타나토스.”
[예, 마스터.]“주위에 보고할 만한 특이점은 없어?”
[죄송하지만 주변 지형의 스캔이 제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엄밀히 따지면 보고할 만한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그렇다는 소리는···.
결국, 현우의 추측이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내진 못했다는 걸까.
그러나 그 또한.
현우에겐 미리 생각해둔 방법이 있었다.
“고모님.”
주영미, 조금 전에 그녀가 로이스 멘도자로부터 반쯤 강제로 양도받은 아티팩트.
“그걸 써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거라니?”
“케챨코아틀의 황금 비늘 말입니다.”
케챨코아틀의 황금 비늘.
사실 그걸 처음부터 사용했으면 시간을 조금 아낄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모자란 것도 아니므로 혹시 모를 변수를 차단하는 작업은 필요했다.
“자, 받거라.”
그리고 그녀는 무심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돌려줄 필요는 없다. 그냥 가지거라.”
“···제가 말입니까?”
“그래.”
뜬금 없는 양도 선언.
그 이유야 당장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우 입장에선 거절할 까닭은 없었다. 현우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케챨코아틀의 황금 비늘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원하는 대상을 떠올리자.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는 비늘.
이윽고···.
그건 조용히 움직여 상자가 늘어서 있는 공간이 아닌, 신전 한구석의 텅 비어 있는 벽면을 가리켰다.
‘여기인가.’
현우가 가만히 그 벽면에 손을 대자.
이전까진 아무것도 없었던 벽이 흔들리며, 사람 두 세 명은 통과할 수 있을 만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있었다.’
숨겨진 보상 구획.
현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
문 너머는 계단이었다.
한참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곧, 계단 저편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이내, 새로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신을 한 화려한 상자로 가득한 공간도 꽤 웅장했지만. 비밀 문을 통해 들어온 이곳은 직전의 공간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우와···!”
주건우가 눈을 빛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번 공간은 아까처럼 단순히 잠겨 있는 상자들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게 진짜 보상 구획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방 안은 수북이 쌓여 빛나는 고대 금화와 바닥에 밟힐 정도로 널브러진 각종 고급 아이템들로 빽빽했다.
“세, 세상에···.”
로이스 확신을 한 역시.
이런 광경을 눈앞에 두고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곤 하나.
직전, 천무그룹에 열쇠를 양도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축하해요.”
아쉽다는 표정의 로이스.
그러나 그녀에게 희소식이 한 가지 있다면. 현우가 이 보상을 완전히 독식할 생각까지는 없다는 점이었다.
“열쇠를 사용해 획득할 보상을 제외하고. 여기 바닥에 널려 있는 물건들은, 일부 멘도자 가문에게 양도해 드리죠.”
사실 독식에 큰 의미는 없다.
이곳에 널려있는 수많은 금화와 각종 아이템은, 분명 전부 하나같이 일반 헌터들의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닌 물건들이나.
현우의 입장에선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는 천무그룹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부를 등에 업고 있으며. 각종 희귀한 아이템이 존재하는 비고를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에 비하면 이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수준이다.
“10퍼센트, 그 정도면 적당하겠군요.”
“···진심인가요?”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 대균열 아래에서 불카누시온을 토벌한 것은 전적으로 현우의 공로다.
심지어 현우가 아니었다면.
이 공간을 찾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당장 지분을 주장할 명분도 없었다.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런 형편 좋은 제안을 해올 줄이야.
“이번 사태로 멘도자 가문도 꽤나 타격을 입었을 텐데. 피해를 수습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좋아요!”
그녀에겐 10퍼센트라는 조건을 거절할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그 호의를 거절하고 주제넘게 욕심을 부려댈 만큼, 뻔뻔한 철면피도 아니었고 말이다.
“10퍼센트나 떼어준다면 우리야 너무 고맙죠. 그쪽에서 전부 독식해도 솔직히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만, 멘도자 가문과 앞으로 관계를 생각해서 제안한 겁니다.”
그들이 빠르게 카르텔을 영향력 아래에 둔다면, 이미 시작된 블랙 가문과의 전쟁에서 본래는 적이 되었을 세력을 포섭하게 되는 거니.
현우로선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럼, 이제 상자를 골라봐야겠네.”
주건우가 슬쩍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진짜 보상을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참, 그 전에 멘도자 가문에서 양도한 열쇠 말입니다. 각자 나누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어··· 개수가 세 개인데. 한나 씨는 어떻게 하고?”
“저는 괜찮습니다.”
주건우의 물음에 류한나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는 이번에 동행만 했을 뿐. 특별한 공로를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보상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하지만···.”
“내걸 가져가요.”
주영미가 휙, 류한나에게 열쇠를 하나 던져주었다. 류한나는 엉겁결에 열쇠를 받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내 수중에 들어온 열쇠는 건우에게 줄 생각이었어요. 같은 공략팀에 소속된 한나 씨라면 나눠주기 아까운 상대는 아니죠.”
무슨 바람이라도 든 걸까.
오늘따라 베푸는 것이 많은 주영미였다.
***
그렇게···.
“오, 왠지 이 상자가 좋을 것 같은데!”
“음, 제가 보기엔 이쪽이 느낌이 좋습니다. 무게도 다른 상자들에 비해 묵직한 것 같지 않습니까?”
주건우와 류한나.
두 사람이 상자를 고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로이스 멘도자를 비롯한 멘도자 가문의 일원들은 주영미의 감독 아래. 방에 널린 아이템과 금화를 정리해 아공간 포켓 안으로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현우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유독 화려한 상자.
그리고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확실히 다른 상자들과는 겉모습부터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열쇠 구멍이 여러 개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충 봐도 이건, 이 상자를 개봉하는 데에 여러 개의 열쇠가 필요하단 소리.
그렇다면 많은 열쇠가 소모되는 만큼.
좋은 보상이 들어 있는 상자일 가능성 또한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으리라.
‘이게 진짜 보상인 모양인데.’
열쇠 구멍은 총 열한 개.
전체 열쇠 개수의 정확히 절반이자.
지금 현우가 수중에 가지고 있는 열쇠 전부를 소모해야만 열 수 있는 상자였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은 시간만 잡아먹고 판단을 흐리기 마련.
현우는 바로 이 상자를 선택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열쇠가 열한 개나 들어가는데. 아무리 못해도 최소 유일 등급의 아티팩트나. 운이 좋을 경우에는 신화 등급의 아티팩트 정도는 나와주겠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다.
대붕괴, 그리고 대균열과 대지 모신의 신전. 이 모든 것이 현우가 알고 있는 미래엔 공략된 적이 없었으니.
여기서 나올 보상 역시.
전생에선 등장조차 하지 않았을, 완전한 미지의 아티팩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현우는 차례대로 구멍에 열쇠를 꼽았다.
철컥─!
그러자 내부의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듯한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구멍에 꽂아넣은 열한 개의 열쇠가 동시에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했다.
찰각─!
이윽고 잠금이 풀린 건지 상자가 흔들렸고.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저절로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건···.”
그리고 상자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주먹 크기의 녹색 보석.
아티팩트에 손을 뻗어 접촉함과 동시에, 현우의 머릿속으로 해당 아이템의 정보가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
대지 모신의 심장.
신화 등급의 아티팩트였다.
‘마나를 사용해 주변에 대지 모신의 신역을 선포한다. 단순한 효과를 가진 일종의 토템 기능을 가진 아티팩트군.’
신역 내의 아군에게 각종 이로운 효과를 제공하며, 반대로 적에겐 각종 부정적 효과를 전이시키는 아이템.
심지어 신화 등급이니.
지금까지 세상에 등장한 어떤 토템 기능의 아티팩트보다 그 효과는 뛰어날 수밖에 없으리라.
“···이게 내 손에 들어온 게 다행이군.”
보통 이처럼 단순하고 유용한 기능을 지닌 아티팩트는, 단점 역시도 명확하기 마련이었다.
바로 ‘마나’라는 한계.
효과가 뛰어난 만큼, 사용되는 마나의 효율이 높을 리가 만무하다. 이 아티팩트의 토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선, 못해도 수십에 달하는 인원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내겐 아니다.’
그 단점은, 인피니티 코어로 마나 소모를 상쇄할 수 있는 현우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국, 이건···.
이제부터 다른 상자에서 나올 보상들을, 모조리 ‘꽝’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앞으로의 진행될 전쟁에 있어 높은 활용 가치를 지닌 보상이었다.
***
한편···.
스위스 베른.
천무그룹 유럽지부가 위치한 그곳엔, 평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세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이들이 모조리 싸늘한 주검이 되어 이리저리 뒤섞여 있는 광경.
“후우···.”
그 끔찍한 풍경 속에서 홀로 서 있는 한 여인이 달뜬 한숨을 내뱉었다.
“한 가지 묻겠느니라.”
고개를 천천히 기울이는 그녀.
그녀의 발아래엔 검은 양복을 입은 천무그룹 소속의 헌터 하나가 비참한 모습으로 깔려 있었다.
“주진석 부회장은 어디에 있느냐.”
이미 치사량에 가까운 피를 흘린 것으로 보이는 헌터에게 그녀는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큿, 죽여라···!”
“천무그룹 소속 헌터들의 충성심 하나는 알아줄 만 하구나. 하나, 본좌는 그저 질문을 던졌을 뿐. 네 녀석의 목숨을 거두어갈 생각까지는 없느니라.”
그건 얼핏 듣기에 살려주겠다는 소리처럼 들렸으나. 이미 여인의 정체를 알고 있는 헌터에겐 그게 더 두려운 선언이었다.
“주, 죽여! 그냥, 죽이라고!”
“좋은 소재를 아깝게 죽일 까닭이 있더냐. 본좌의 손길을 거친다면 네 녀석도 아주 훌륭한 혈령수라가 될 수 있을 게야.”
블러드 서커.
흔히 동아시아에선 블랙 가문의 ‘혈면귀(血面鬼)’로 불리는 이가 바로 그녀였으니.
그런데.
공포에 질린 헌터의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천천히 그를 향해 손을 뻗던 블러드 서커의 움직임이 일순 멈추었다.
이곳에 있으리라 생각지 못한.
어떤 존재감이 그녀의 기감에 미약하게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네크로맨서···.”
붉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뒤섞인 시쳇더미 사이에서 그녀는 정확히 숨을 죽이고 있는 한 구의 백골을 발견했고. 이내 그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 다가갔다.
“여태껏 구차하게 살아 있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