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habilitating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
악녀는 속이 좁다
마탑의 연회는 총 이틀에 걸쳐 열린다. 연회의 첫째 날이 바로 오늘이었으며, 연회는 방금 막 시작되었다.
연회장에는 척 보아도 고귀하게 보이는 사람들만이 있었다.
나와 샤엘은 쥐 죽은 듯이 구석에 있었다. 샤엘은 그저 만사가 귀찮기 때문이었고, 나는 어떻게든 샤엘과 여주인공의 갈등을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탑주, 아렌 제이거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마탑주에게 급히 다가가서 물었다.
샤엘이 마탑주에게 무어라 말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입에선 영 좋지 않은 단어들이 나올 테니까.
나를 보자마자 눈을 치켜뜰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탑주는 생각보다 평온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상했다. 어제의 그 성격 개판이던 마탑주는 어디 갔단 말인가.
그런 내가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였다.
쨍그랑ㅡ!!
불길한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바닥에는 와인잔이 깨져 있다.
여주인공 클리에는 바닥에 엎어져있었다. 샤엘의 옷은 와인에 붉어진 채였다.
“아, 그⋯!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
마탑주에게 다가간지 몇 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아니, 하필이면 이 순간에 그런다고? 말이 되는 것인가.
샤엘은 클리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일부러 그랬구나.”
“고, 고의는 아니었어요⋯! 바닥이 미끄러운 바람에⋯⋯. 의상실에서 새 옷 입으시는 걸 도와드릴게요⋯!”
아즈벨가의 샤엘과, 마탑주가 계속해서 관심을 보내던 클리에. 그 둘에게 연회장에 온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당연했다. 잔혹한 악녀로 소문 난 샤엘에게 와인을 쏟다니. 그 누구라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콜록ㅡ!
클리에가 기침한 것은 그때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끌렸을 때이기도 했다.
마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 이상했다. 클리에가 아무리 이기적인 면모를 가진 여주인공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이 실수를 해놓고는, 사람들의 이목이 끌린 상태에서 연신 기침을 한다니? 정상적인 사람이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자 내 앞에 서 있던 마탑주가 움직였다. 그는 클리에의 옆까지 걸어갔다.
샤엘은 마탑주를 차갑게 째려보았다.
그 누구라도, 둘은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일이 일어났다. 성격 더러운 마탑주가 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제가 바닥을 잘 관리해 두어야 했었는데. 죄송합니다.”
샤엘은 마탑주를 쳐다보았다. 나는 당황한 채로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성격 안 좋은 마탑주가, 고개를 숙인다고? 아무리 여주인공을 위한 것이라도 그것은 이상했다.
“고작 고개 숙이는 것으로 사과를요? 무릎이라도 꿇으세요.”
그러자 마탑주는 고민도 없이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은 허억, 숨을 들이마셨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마탑주가 무릎을 꿇다니?
그러나 그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당황하던 사람들은 샤엘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마탑주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력을 집중시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본다.
고작 옷이 더럽혀진 것으로 마탑주를 무릎까지 꿇게 만들다니, 라는 말이 들린다.
이어지는 것으로는 샤엘 아즈벨이 악독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은 사실이었구나, 라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것들은 마탑의 마법사들로부터 비롯된 말이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나는 샤엘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오시지요, 샤엘.”
다행히도 샤엘은 내 말을 따라주었다. 어쩌면,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안 보일 때까지, 샤엘과 나는 말없이 걸었다.
*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의외로 악녀는 평온해 보였다. 내게 절대로 지지 않으려 애를 쓰던 때와는 달랐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샤엘은 안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진짜로 괜찮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푸흣, 푸흐⋯.”
샤엘은 갑작스레 웃음을 내보였다. 아까의 일로 너무나도 많은 충격을 받은 것인가?
아무리 악녀라도 속이 상할 일이긴 했다. 연회가 시작하기 전에는 마탑주에게 시비를 걸리고, 연회 도중에는 옷에 와인을 묻히고, 사람들로부터 욕을 듣고.
더군다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연회를 왔었으니까.
그 누구라도 화가 날 상황이었다.
“아, 속이 너무 후련해요.”
나는 샤엘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속이 후련하다니? 오히려 당한 것은 본인이었는데.
악녀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하여도 그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황당한 채로 샤엘을 보고 있자,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걸 보세요.”
샤엘이 내게 내민 것은 구매 증서였다. 익숙한 것이었다.
샤엘이 괴팍한 물건을 많이 사던 경매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거짓의 알약? 이걸 또 사셨습니까? 아니, 이 돈을 주고요?”
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먹였죠.”
“⋯설마.”
그녀가 알약을 먹인 대상이 누구인지는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네, 마탑주한테 먹였어요.”
“⋯.”
⋯그렇다면, 마탑주가 샤엘에게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던 것이.. 샤엘을 욕하도록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어쩐지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이유가 있다지만, 마탑주가 무릎을 꿇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샤엘이 알약을 먹였었다니. 내가 침묵하고 있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마탑주라는 사람이, 당신조차도 가능한 것을 해독하지 못하면 어떡해요?”
“⋯마탑주는 전투 마법만을 사용합니다.”
그것이 마탑주의 독특한 설정이었다. 마탑주는 마탑을 세우기 위해 배운 대지 계열의 마법과 전투 마법을 제외하고는 관심이 없다.
거짓의 알약, 그것은 막 마력을 깨우친 이조차도 해독 마법을 사용할 줄만 안다면 풀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마탑주는 해독 마법을 전혀 모른다. 전투 마법만을 다루니까.
도대체 왜 있는 설정인지 이해가 되질 않겠지만, 그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속에서는 남주인공들의 매력을 어필해야만 한다.
그 설정 역시, 남주인공들 중 하나인 마탑주를 온갖 이상한 약들에 취하게끔 하여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마탑주가 전투 마법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설정이 지금, 이렇게 작용한 것이 분명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마탑주가 샤엘에게 무릎을 꿇을 때에는 그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싫은 일이었으니 그랬겠지.
⋯갑작스레 마탑주가 불쌍해진다.
역시 악녀는 사악했다.
“그러니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샤엘의 표정은 평온했다.
샤엘은 자신을 건드린 마탑주에게 복수를 성공했으니, 옷에 와인을 묻히거나 사람들에게 욕을 듣는 것쯤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되려 그것이, 나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느닷없이 아끼던 옷이 더럽혀지고 욕을 들었는데, 괜찮아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샤엘의 표정은 평온해보이더라도, 느낌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말과 표정과는 달리 그녀 역시 약간은 기분이 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안 괜찮습니다.”
“당신이 왜⋯⋯.”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내가 건넨 것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뭐죠?”
“선물입니다.”
내가 악녀에게 건네는 것은 인형이었다. 괴팍하게 생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형.
샤엘이 저번에 사격장에서 주었던 인형이기도 했다. 눈이 화살에 찢겨 샤엘이 내게 주었던 것이었다.
인형의 눈은 이상한 모양으로 꿰매어져 있었다. 내가 바느질에 솜씨가 없던 것이 그 이유였다.
샤엘이 잠시 의상실에 들렀을 때, 급하게 필요한 것들을 사서 꿰맸었다.
“⋯?”
“가지고 싶으셨던 인형이 이상하게 찢겨서 제게 주셨던 것 아닙니까.”
샤엘은 인형을 건네들고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엉성해요. 하찮게 생겼고.”
하여간, 악녀는 상식이 없다. 기껏 선물을 건넨 사람한테 그런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누구를 닮았네요.”
“⋯설마 저를 말하시는 겁니까?”
샤엘은 씨익,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네.”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스트레스를 풀 때 사용하기 좋겠어요.”
샤엘은 내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러고는 갑작스레 말했다.
“아, 제가 메기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그러셨던가요?”
“예?”
뜬금없는 말이었다.
-‘아, 예 좋겠습니다. 메기들한테 인기가 많으셔서요.’
물고기를 못 잡은 나를 비웃던 악녀에게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메기가 여기서 왜 나온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 보니 진짜로 그런 것 같네요.”
“⋯예?”
샤엘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메기한테 인기 많다는 것을 갑작스레 인정한다고?
“제 약혼자도 매기를 닮았거든요.”
“⋯.”
한 방 먹었다.
하여간, 악녀는 속이 좁다. 어제의 일을 여태까지도 곱씹고 있었던 것인가.
내게 그런 말을 건네고 걸어가는 샤엘은 기분이 풀어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대로 조용히 있을 리는 없었다.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지요.”
“⋯갑자기 무슨 헛소리를⋯?”
“당신도 메기 같다는 소리였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패배해 주는 일은 없었다. 나 역시 속이 좁았으니까.
⋯악녀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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