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자 (1)
“진짜 균열에서 괴물이 나오네요?”
“하하민 네가 지난 블랙데이에 몇 살이었다고?”
“여덟 살이요. 근데 성 안에 살아서 실제로 보지는 못했죠. 와……. 대따 신기하네.”
“팔자 좋네. 신기할 것도 많다.”
김강산이 투덜거리며 대도를 휘둘렀다. 달려들던 오크가 투명한 불길에 휩싸여 허공에서 찐득한 액체가 되어 녹아내렸다.
줄줄이 균열을 기어나오던 중급 괴물들을 향해 하하민이 얼음화살을 쏘아냈다.
곧 수십의 괴물들이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언제나와 같은 풍경이다. 눈앞에 있는 시커먼 균열만 제외한다면.
계룡외성 북쪽의 균열.
멀리 남쪽으로 계룡외성의 회색 성벽이 보였다. 방어선을 내성으로 옮긴 이후 몇 달 동안 방치된 외성벽은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다.
하하민이 갓 올라온 꼬리 여섯 개 달린 여우를 향해 빙창을 날렸다.
육미호가 아가리에서 불길을 쏟아내 빙창을 녹이는 사이, 서은창의 검이 벌린 아가리를 꿰뚫었다.
“니들 계룡에 놔두고 조용히 혼자 들어가려고 했는데. 왜 상황이 이딴 식이지?”
“형 아직도 포기 못했냐? 은근 쿨하지 못하다니깐.”
“림이가 조금 미련이 많은 성품이지.”
김강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지수 이놈까지? 내가 애들 버릇을 단단히 잘못 들였다.
“오? 이번 놈은 큰데?”
“서리거인이다. 집중해라.”
“야, 니들 벌써 그렇게 마력 펑펑 써대서 어쩌려고 그래? 속성 공격 작작하고 칼질로 직접 썰어.”
“옙! 알겠습니다!”
곧, 소용돌이치는 어둠의 중심에서 서리거인이 나타났다.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중력을 거스르며 균열의 위로 솟아올랐다.
느릿느릿 허공을 가로지른 녀석이 균열 바깥 세상에 발을 내딛은 순간.
파앗!
의혼검이 놈의 무릎을 찔렀다. 나를 잡기 위해 허리를 굽힌 서리거인의 등을 밟고 서은창이 솟구쳤다. 서은창의 화간일광이 녀석의 정수리를 가격하고,
“이거나 먹어라!”
김강산의 보도가 같은 위치를 내리치고,
마지막으로 최지수의 검이 상처 난 정수리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10미터짜리 거인이 쿠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제 들어가자.”
내가 발을 내디뎠다. 더 이상 미뤄 봐야 애들을 설득하기는 글렀다. 괜히 마력만 쓰는 꼴이다.
계룡성 방향에서 거센 폭음이 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뭐지? 상급 괴물인가?”
“오늘 여기서 나온 상급 괴물은 우리가 다 잡았는데?”
“계룡성 주변에 균열이 한둘이냐.”
“사형, 잠깐 돌아갔다가 올까요? 보통 전투가 아닌…….”
서은창이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었다.
수천 개의 화염탄이 동시에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붉고, 노랗고, 희고, 푸른 화염탄이 계룡성의 하늘 위에 커다란 문장을 그렸다.
“천룡, 검신, 사랑해요……?”
얼떨떨한 기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화염탄이 터진 연기가 흩어지며 얼음송곳이 솟아올랐다.
정점에 다다라 순간적으로 하늘에 멈춘 수만 개 송곳이 또다시 문장을 그렸다.
“……은영단, 파이팅?”
떠나는 거,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내 시선을 받은 최지수와 서은창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김강산이 강력하게 혐의를 부인했다. 마지막으로 하하민.
“저는 엄빠한테밖에 말 안했어요!”
“명칠이 형 아니야? 명칠이 형이 방위대장이잖아.”
“사형. 이제 와서 누가 말했는지가 무슨 상관입니까?”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가 이마를 짚었다.
“저런 쓰잘데기 없는 짓 하느라 마력 소모하다가는 나중에 고블린 못 잡아서 뒈진다고. 니들도 정신 차려. 마력이 땅 파면 나오냐? 소주천 돌려서 마력 회복하지도 못하는 놈들이. 아껴 쓰라고, 마력!”
“림아. 눈이 웃고 있구나.”
“……아닌데?”
“그래, 아닌 걸로 하자.”
이상하게도 입술이 자꾸만 실룩였다.
나는 스멀스멀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은 채 계룡성을 등지고 뒤돌아섰다.
“조심해서 따라와.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섣부르게 행동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면 신호할 테니까…….”
“대표님. 지금 완전 부대표님 같은 거 알아요?”
“림아. 아까 다 한 당부 아니더냐. 아무리 강산이라도 다 외웠겠구나.”
“그래, 니들 똥 굵다.”
옅은 한숨과 함께, 내가 소용돌이치는 어둠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오른발이 어둠에 닿자마자, 일렁이던 어둠이 기다렸다는 듯 내 발을 휘감았다.
어둠이 발목을 휘감고, 무릎을 휘감고, 뒤이어 온몸을 뒤덮었다. 어둠이 해파리처럼 내 몸에 들러붙었다. 부피와 질량이 존재하는, 실존하는 어둠.
어둠에 휩싸인 몸이 밧줄에 매인 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바닥이 단번에 꺼지고, 몸이 빙글 돌았다고 느낀 다음 순간.
내 몸이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앞과 뒤, 위와 아래가 구분되지 않는 공간. 공간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공간 사이로.
빛이 번쩍였다. 점멸한 시야가 다시 검게 물들었다.
낡은 간판처럼 나이 든 형광등처럼 빛이 점멸했다. 나는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눈을 크게 떴다.
시야에 잡힌 녹색의 새싹이, 순식간에 물 오른 나뭇잎이 되었다가, 이내 낙엽이 되어 바스러졌다.
‘아마 이건…….’
세계수.
수백, 수천, 수만 그루의 나무가 덩굴처럼 얽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새싹과, 통통한 이파리와, 말라붙은 낙엽이 한 가지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아래와 위, 앞과 뒤가 모서리에서 마주쳐 하나로 이어졌다. 이어지고, 이어져…….
퍼억!
갑작스럽게, 엉덩이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이곳은 아마, 초월의 탑의 1층.
주변은 깊은 숲속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기기묘묘한 나무가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연분홍빛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김강산!!!! 최지수!!!! 서은창!!!! 파천궁주님!!!! 야, 이 애새끼들아아아아—-!!!!!!!”
나는 목이 터져라 애들을 부르며 기감의 그물을 넓게 펼쳤다. 하지만 그물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조량에게 들은 그대로였다. 균열에 들어가면 일행과 헤어지게 된다. 그중 몇몇의 대원과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아마, 이 숲을 거닐던 괴물에게 당했겠지만…….
“우리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그럴 리가 없지.”
기감의 그물에 느껴지는 마기가 짙었다. 애들이 힘을 쓰기에 유리한 상황이라는 의미.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바닥을 걷어차려는 순간.
‘오자마자 괴물이 맞아 주네.’
느껴지는 마기의 크기가 상당했다. 중급 혹은 중상급의 괴물.
오우거 치고는 속도가 빠르다. 이 정도 마력과 속도라면, 오미호쯤 되려나.
곧, 두꺼운 나무 둥치 뒤에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 마기인데, 고작?”
쉑쉑거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한 것은, 두 마리의 작은 고블린이었다.
“쉐이크쉑!!!”
“쉬이잌! 쉬이익!”
놈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으며 덤벼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때려잡은 고블린을 트럭에 가득 실으면 연병장 열두 바퀴를 돌고도 남는다.
근데 감히 나한테 덤벼? 여기가 니들 홈그라운드인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상대는 봐가면서 덤벼야지.
탓.
내 발이 바닥을 걷어찼다. 벼락같은 속도로 공간이 좁아들고, 네 발로 짓쳐든 첫 번째 고블린이 나를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날카로웠다. 고블린의 공격이라고 믿을 수 없는 힘과 속도.
재빨리 어깨를 뒤틀자, 종이 한 장 차이로 단검이 어깨 옆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카앙!
의혼검이 놈의 목에 격중했다.
‘이게 안 들어가?!’
고블린을 상대할 때 어느 정도의 내력을 실어야 하는지는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다. 하지만 평소보다 두 배의 내력을 실었는데 놈의 가죽은 내 검을 튕겨냈다.
놀람을 삼킬 틈도 없이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두 번째 고블린의 단검이 내 무릎을 찔러 들어왔다.
“악! 아프잖아!”
호신강기를 한계치로 끌어올렸음에도 통증이 상당했다. 고블린에게 당해서 무릎 동강나면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
‘이놈들은 고블린이 아니다. 오우거다. 고블린의 탈을 쓴 오우거. 졸라리 빠른 오우거. 회복 못 하는 오우거.’
뇌에서 오류를 조절하는 중에도 놈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하여튼 매너 없는 놈들.
그래봤자 고블린. 마력만 늘어났을 뿐 놈들의 뇌 용량은 그대로였다.
정직하기 그지없는 공격이 내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다. 빙글 돌아 공격을 회피하며 회전력을 이용해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스팟!
희게 빛나는 의혼검의 검날이 고블린 한 마리의 목을 베어냈다. 내력 풀충전한 공격.
“쉑! 쉑!”
흥분이 극에 달한 나머지 놈의 단검이 내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었다. 허리를 굽혀 단검을 회피하고, 의혼검을 내질렀다.
검날을 비틀어 뽑아내자, 찐득한 녹색의 피가 구멍을 통해 흘러내렸다.
쿠당!
숨이 끊긴 두 번째 고블린이 첫 번째 녀석의 옆에 나란히 엎어졌다.
두 마리 고블린 시체가 새로 생겨났을 뿐 숲은 여전히 깊고 고요했다.
나는 빠르게 나무를 타고 올랐다. 두꺼운 나뭇가지를 몇 번 걷어차 나뭇잎의 지붕을 통과하자, 빽빽한 나뭇잎에 가려져 있던 하늘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연분홍빛 하늘이다. 예전에 현무의 둥지를 열었을 때 보았던 것처럼-.
……이거, 다른 나라 재앙들도 여기 어디 둥지 틀고 사는 건가?
고블린이 그 정도였는데, 여기서 재앙이라도 마주치면 진짜 재앙인데 말이지.
그러기 전에.
결(結)로 형성한 흰 빛줄기가 하늘을 수직으로 갈랐다. 혜성의 꼬리 같은 빛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느릿느릿 소멸했다.
***
“드디어 문으로 들어왔군! 듣보 저놈의 촉급한 성격대로라면 금방 탑을 오르겠어. 탑 오르는 건 듣보에게 어렵지 않을 테니 곧 다시 초월자가 되겠지?”
만취한 주정뱅이의 목소리가 열기에 들떠 있었다. 흰 수염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주정뱅이의 취향을 존중해 인간형으로 형태를 바꾼 방울은 주정뱅이가 권하는 대로 술을 홀짝이며 눈앞의 거울에 나타난 장면을 바라보았다.
천룡검신은 고블린 시체 옆 나무 둥치에 기대어 하품을 하는 중이었다. 균열 속 아공간을 흐르고 있는 짙은 마기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데 마치 한가로이 소풍 나온 사람처럼 여유 있는 태도였다.
초월자로서의 기억을 잊었어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건가-.
천룡검신이라면 확실히 초월의 탑을 오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각성자라면 15층을 통과하기도 힘들겠지만, 홀로 오롯한 힘을 지니고 있는 그에게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초월의 탑은 바로 천룡검신과 같은 존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하지만 방울은 천룡검신이 탑을 찾아 오르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글쎄요. 듣보께서 그걸 원하실까요?”
“세계수를 잘라내기는 이미 글렀잖아. 저렇게 커졌는데 듣보 녀석이 가진 생명력을 다 뽑아내도 절대 안 되지. 지금 저놈이 지 세계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는데, 초월자가 된다는 방법 외에 시도해볼 만한 게 있나?”
주정뱅이가 흥겹게 말하며 또다시 술을 권했다. 그가 손을 젓자 공중에 뜬 흰 호리병의 입구에서 투명한 술이 또로록 떨어졌다.
작은 술잔의 70%를 정확하게 채운 채 일렁이는 맑은 술을 홀짝이며 방울이 대꾸했다.
“초월자가 되면 오히려 세계수에 더욱 종속된다는 것을 모를 테니까요.”
“종속이라니! 그만큼 세계수와 가까워지는 거야.”
“초월자의 규칙을 밥 먹듯이 어기는 주정뱅이께서 그리 말하니 우습군요.”
“크흠……. 이거 맛있지?”
“아주 맛있습니다.”
“듣보 녀석이 가장 좋아하던 술이야. 이야, 저 녀석 돌아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내가 그동안 저놈 없이 혼자서 얼마나 심심했는데!”
거울 속 천룡검신은 다시 나무를 올라 하늘을 향해 신호를 쏘아내고 있었다. 그 경쾌한 걸음을 바라보며, 방울은 몇 십 년 전의 그날을 떠올렸다.
만취한 주정뱅이와 함께, 밥 먹듯이 초월자 규약을 어기기로 이름이 높았던 듣보가 그를 찾아온 날.
-내 세계, 필멸계로 건너갈 거야. 너는 방법을 알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