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07
도마뱀의 왕이 사람들의 공포를 샀던 이유는 몇 가지 있다.
하나, 도마뱀의 왕은 생물체에게 자신의 아이를 잉태시킬 수 있다.
녀석은 존재자체로 생물체에게 공포를 가져왔다.
하나, 녀석은 리저드맨 계열에 속하는 모든 몬스터를 지배할 수 있다.
군세는 현대무기를 사용하는데 능했으며, 날렵한 몸을 특기로 도심이라는 밀림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일이 가능했다.
하나, 도마뱀의 왕은 제3
위계 오버랭크에 속하는 몬스터임에도 카모플라쥬 능력을 바탕으로 기척을 더듬는 일이 불가능했다.
당시 십이좌에서 세 번째 좌를 담당하던 백서진과 한창진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녀석을 감지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때는 페인트 통을 뒤집어썼었는데, 몸뚱이가 워낙에 커서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
도마뱀의 왕은 카모플라쥬 능력을 봉인 당했다.
회귀 전에는 플레이어들이 대량의 페인트 통을 옮겼던 작업이, 머리에 카레를 끼얹은 것만으로 무력화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겨우 이걸로 날 맞추겠다고?”
도마뱀의 왕은 패혈증을 일으키는 독을 사용했다. 녀석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상처부위에서부터 피가 썩기 시작하며, 마지막에는 온몸이 문드러져 죽고 말았다.
당시 플레이어들은 공중에 살포하는 독안개와 포탄처럼 발사하는 독액만으로도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십이좌 강현철이 불꽃으로 독을 태우고, 박혜림이 보호마법을 전개하지 않았더라면 녀석의 독에 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남훈이 도마뱀의 왕의 주의를 끈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어린 도마뱀의 왕이 내뿜는 독은 그때만한 공포를 주지 못했다.
녀석이 내쏘는 독은 가느다란 가시 정도의 크기로, 투사 속도가 빠른 것 외에는 위험을 주지 못했다.
맞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은하는 몸을 틀어 녀석이 내쏘는 독을 피해냈다.
천보
마나 크래셔
발바닥에 힘을 모았다. 중력을 부정하듯 나무기둥을 달려서는 녀석이 달라붙은 가지까지 뛰어올랐다.
마나가 실린 맹고슈가 놈의 허리를 내리쳤다.
키에에엑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뼈가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다른 한 손으로 쥐고 있던 맹고슈를 나무기둥에 꽂아 매달린 그는 바닥으로 추락한 도마뱀의 왕을 주시했다.
바닥을 기어 풀숲을 빠져나간 녀석이 꼬리에 힘을 주고 삼발이처럼 몸을 일으켜서 도망치고 있었다.
“고작 이것밖에 안 됐나.”
그날에 겪었던 무력감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은하는 뒤꽁무니를 빼며 달아나는 놈을 바라보며 허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성체가 아니라고 해도, 도마뱀의 왕은 날 때부터 도마뱀의 왕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천보
미침
마나 크래셔
나무기둥을 박찼다.
녀석에게 당도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맹고슈에 맺힌 마나를 가느다란 바늘로 만들어 도망치는 놈에게 분사했다.
가시처럼 뾰족하면서도 두꺼운 갑옷이 바늘 비를 튕겨냈다.
예상했던 바였다.
녀석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생각에 던진 게 전부였다.
마무리는 마나를 실은 일격으로 내려치는 마나 크래셔로 끝낼 생각이었으니까.
크으으
“잘 가라.”
뼈가 뭉개진 부위에 검을 내리쳤다. 다른 한 손으로 쥐고 있던 맹고슈로 같은 부위를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녀석은 꼬챙이에 찔린 도마뱀처럼 발버둥 치다, 마나로 흩어져 사라졌다.
☆
도마뱀에게는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자절이라는 특성이 존재한다.
멍청한 것.
도마뱀의 왕은 죽지 않았다.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수풀에 몸을 감추면서 스스로의 꼬리를 잘라냈다.
잘려나간 꼬리는 자신과 똑같은 형상으로 변해 다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꼬리는 다시금 재생했다. 그 동안 비축해둔 마나 중 상당량을 소모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강했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자신을 쫓아와서는, 자신을 조롱하듯 괴롭혀댔다.
마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상대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거리낌 없이 피해냈다.
이길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하지만 미래는 다르다.
자신은 왕이다. 수많은 인간의 양분을 먹고 태어난 자신은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존재였다.
두고 봐라.
내 너를 찾아 반드시 죽일─
“─어딜 가려고?”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도마뱀의 왕은 흠칫했다.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지면이 솟구쳐 오르는 충격을 주는 공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내가 네 분신을 몰라볼 줄 알았어?”
은하는 유리창을 깨고 온실 밖으로 날아간 도마뱀의 왕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맹고슈를 휘둘렀다. 자신이 지나갈 통로를 마련해서는 유리조각을 밟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실을 나왔다.
반면에 유리조각을 뒤집어쓴 녀석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직 재생 중인 꼬리를 몇 갈래로 갈라서는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날렸다.
여덟 개로 갈라진 꼬리 끝이 시퍼런 날로 변해 사방에서 쇄도했다.
“이래야지.”
바로 앞으로 날아든 꼬리를 맹고슈로 쳐냈다.
한 걸음을 내딛고, 몸을 돌렸다.
다른 한 손으로 쥐고 있던 맹고슈로 두 번째로 날아든 꼬리를 후려쳤다. 지면에 박혀 빠져나오려고 꿈틀거리는 꼬리를 그대로 지나쳤다.
세 번째 꼬리도, 네 번째 꼬리도.
다섯 번째 꼬리는 잘라냈다.
여섯 번째 꼬리는 꿰뚫었다. 맹고슈를 밀고 나갔더니 꼬리가 피를 흩뿌리며 찢어졌다.
천보
광무
일곱 번째 꼬리와 여덟 번째 꼬리가 사력을 다해 달려들었지만 마구잡이로 휘두른 칼이 꼬리를 척척 잘라냈다.
극침격자(棘針擊刺)
오른손에 쥔 맹고슈가 주홍빛을 발했다.
한 점으로 압축된 마나는 가시를 세운 녀석의 비늘을 뚫고, 뼈를 파괴하며, 살을 관통했다.
키에에에엑─!
어째서…냐…!
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냐!
칼에 꿰뚫린 녀석이 몸부림쳤다.
손톱을 세운 놈이 은하를 헤집으려 움직이고, 공격에 실패했던 꼬리가 돌아와 그를 베려 들었다.
“왜냐니.”
천보
일점돌파
원령
은하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녀석을 관통한 맹고슈에 힘을 주고 달려 나가자, 도마뱀의 왕이 바닥에서 붕 떠올랐다.
그를 노리며 달려들던 꼬리가 저희끼리 꼬이고, 손톱은 그가 두른 방벽이 막아냈다.
꿈틀거리는 마나가 도마뱀의 왕의 마나를 물어뜯었다.
마나가 뜯겨나가는 고통은 섬뜩했다. 체내에 침투한 마나를 밖으로 끌어내 저항을 해야 했지만, 이미 꼬리를 재생하느라 태반의 마나를 소모하고 말았다.
막을 수 없었다.
“널 죽이는데 이유가 필요해?”
커…커커커커…
도마뱀의 왕은 나무기둥에 처박힐 때까지 밀려나갔다.
그가 몸에 박힌 칼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살을 헤집는 고통에 울부짖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하.
은하는 어떻게든 칼을 뽑아내기 위해 두 손으로 칼날을 붙들고 있는 놈을 보고 실소했다.
그는 왼손에 쥐고 있던 맹고슈를 흙바닥에 내리꽂았다.
오른손에 쥔 맹고슈에는 손을 떼지 않고, 홀스터 주머니에 우겨넣었던 텀블러를 꺼냈다.
한 손으로도 텀블러를 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원령
키에에에─!!
그만, 제발… 그만…!
녀석이 남아 있는 꼬리를 움직여 등 뒤에서 공격하려는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고등제어기술에 속하는 원령을 사용해, 도마뱀의 왕의 마나제어를 교란시켰다.
커피우유를 들이켰다.
남김없이, 전부.
마나가 차올랐다.
손에 쥔 텀블러를 아무 짝에나 바닥에 던지고, 흙바닥에 꽂아두었던 맹고슈를 뽑아들었다.
그…마…키이이이이이─!!
이제는 여흥에 지나지 않았다.
도마뱀의 왕은 가용할 수 있는 마나가 얼마 남지 않았다.
회귀 전, 놈의 방어력을 대항하려 하던 플레이어들의 노력은 지금 이 순간 수포처럼 사라졌다.
찌르는 족족 관통했다.
비늘 사이의 틈을 노렸다.
자잘한 뼈를 짓이기고 가죽채로 살을 찔렀다.
왜… 왜… 왜…
나무기둥에 매달린 도마뱀의 왕이 어설프게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 의사를 전해왔다.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꼬리가 붙어있는 뿌리를 뜯어내고, 몸을 헤집고, 찢는 과정을 말없이 수행했다.
한참을 찌르던 중이었다.
은하는 개미를 삼등분으로 나누던 어린아이와 같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인간이 몬스터를 죽이는데 뭐가 어때서.” “인간과 몬스터는 공존할 수 없어. 세상이 멸망해도 그건 변하지 않아.
세상이 한 번 멸망했기에 더더욱.”
“인간과 몬스터는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야.” “하나밖에 없어.” “내가 죽느냐, 네가 죽느냐.”
극침격자
몇 번이나 쑤셔대던 맹고슈로 도마뱀의 왕이 왼팔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나무기둥에 못질했다.
가슴에 꽂힌 맹고슈를 뽑아들었다. 걸쭉한 피가 묻어나왔다. 칼날을 타고 피가 뚝뚝 떨어졌다.
녀석의 피는 극독이었다. 피가 떨어진 꽃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고, 재가 되어 날아갔다.
방벽을 전개하고 있던 그는 놈의 피에 묻지 않았다.
성체가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성체였다면 방벽으로도 어림없었으리라.
극침격자
크으으으으
가슴에 박힌 칼을 뽑아내자 축 늘어지려던 도마뱀의 왕은 왼팔이 고정된 채 늘어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상태로 오른쪽 팔도 못질했다.
홀스터를 뒤적였다.
가늘게 세로로 늘어진 둥근 눈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이미 삶을 포기했다.
그리고 녀석의 삶을 끝낼 권리는 자신에게 있었다.
베레타를 꺼냈다.
그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도마뱀의 왕의 미간에 총구를 겨눴다.
그래…, 너와 나는…, 공존할 수 없다.
총성.
베레타에서 발사된 탄환이 놈의 왼쪽 홍채를 터뜨렸다.
나는 졌다.
하지만 내가 끝이 아니다.
탕.
두 번째 총성이 놈의 오른쪽 홍채를 터뜨렸다.
이제는 놈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녀석의 두 눈이 있던 자리에 피가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가죽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적셨다.
네 놈도…, 언젠가…
나와 같은 일을 당할 것이다.
“뭐래.”
세 번째 총성이 녀석의 미간을 노렸다.
비늘을 꿰뚫지 못했다.
탄환은 아직 남아 있었다.
너와 나는, …포식자니까.
죽이고 죽이는…, 것밖에 못하는….
네 번째 탄환이 같은 부위를 공격했다.
비늘이 떨어져나갔다.
비늘이 덮고 있던 자잘한 뼈의 윤곽이 잡혔다.
그러니…, 너도 죽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란…,
그런 것일 테니까!
“옛날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
방아쇠를 당겼다.
뼈가 부서지고, 놈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인간과 몬스터는 죽고 죽이는 관계.
플레이어의 삶은 몬스터를 죽이다, 몬스터에게 죽는 인생.”
죽어라! 죽어라!
고통 속에서…, 너 역시 죽으리라!
“근데 아니더라고, 나는─.”
회귀 전에는 몬스터에게 죽어 모든 것이 끝나는 삶을 바랐었다.
하지만 두 번째 삶은 다르다.
이번 생에는 녀석들에게 죽는 삶은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몬스터에게 죽지 않을 힘이, 몬스터를 죽일 힘이 있었다.
그날의 무력감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삶과 이번 삶은 결단코 같지 않으리라.
“─나는 죽지 않아.”
는 죽기 위해 사는, 그러면서도 죽지 못해 사는 모순된 이름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는 죽지 않는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너나 죽어.”
탄환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어느덧 녀석의 미간에는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도마뱀의 왕을 구성하고 있던 마나가 입자가 되어 대기 중에 녹아들었다.
흉흉한 색으로 물든 풀밭에 무언가 떨어졌다.
마석이었다. 큼지막한 마석이 유리천장을 투과한 햇빛을 받아 푸른빛을 발했다.
“…두 개나 나왔네.”
제3위계 오버랭크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도마뱀의 왕은 도마뱀의 왕이었다.
마석 근처에는 은은한 노란빛을 발하는 보석이 두 개 떨어져 있었다.
스킬석이었다. 하나는 큼지막했고, 다른 하나는 손바닥으로 감출 수 있을 정도로 조그마했다.
“플레이어는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필요 없는 건 아니지.”
은하는 큼지막한 스킬석을 주워들어 마나를 불어넣었다.
스킬석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안 맞나 보네.”
아쉬워하면서도 덤덤했다.
플레이어였다면 대단히 아쉬워했겠지만.
이만큼 커다란 스킬석이라면 완벽히 재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이건 어떤지 볼까?”
큼지막한 스킬석과 마석을 홀스터에 구겨 넣고는 조그마한 스킬석을 쥐었다.
“오.”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마나를 불어넣자, 스킬석 내부에 광채가 맺혔다.
“이건 내가 먹고. 이거랑 마석의 처리는 다음에 생각해볼까.”
은하는 조그마한 스킬석을 손 안에 쥐고 식물원을 나섰다.
캠핑장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손 안에 있던 스킬석이 완전히 녹아내려 체내에 흘러든 뒤였다.
“…헐.”
과연 도마뱀의 왕이었다.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와 몸에 새겨진 감각을 느낀 은하는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박이었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 브루노 아저씨. 장비 고마워요.”
“흠. 저녁시간이다.”
“그러게요. 엄청 배고프네요.”
트렁크에 플레이어 디바이스를 실은 그가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허기가 졌다. 배에 손을 얹자, 때마침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얘들아, 저녁 먹자~!”
공을 차고 뛰어 놀던 아이들이 은하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캠핑장으로 달려왔다.
“우와~! 맛있겠다!” “브루노 아저씨, 많이많이 주세요!”
“아저씨, 저도요.”
“얼른 먹고 싶어요!”
브루노에게 매달려 성화를 부리는 아이들.
제일 먼저 카레를 받은 은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음식을 삼켰다.
“…맛있네.”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