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408
408화. 통하였느냐?
교주의 생각은 알 수가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교주를 바라봤다.
어쩐지 교주가 그 입 닥치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전부 한꺼번에 덤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고. 혹은 내가 제안한 대로 천하제일을 가려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제안은 내가 했으나 선택은 교주의 몫이다.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생각은 이렇다.
내가 교주에게 비무에서 패할 가능성은 물론 크다. 하지만 사대악인이 참전하는 생사결로 갔을 때는 다르다. 어떻게든 화산에서 교주를 죽일 수 있다는 게 내 결론이다.
내 전신(全身) 일월광천은 인간의 육체가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됐을 때.
함께 불행해진다.
살아남는 자도 많지 않을뿐더러.
살아남았을 때의 우리 꼬락서니가 너무 처참하여, 우리는 아마도 요란이 앞에 나타날 수가 없을 터였다.
엉망진창이 된 사부들의 못난 모습을 어린 제자에게 보여줘서 마음을 또 다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은 모두가 불행해지는 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끝내 불행해지려고 내가 그동안에 이런 개고생을 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교주를 상대하고 나서도.
우리가 멀쩡한 모습으로 요란이를 만나면 얼마나 좋겠는가?
언젠가는 내가 한 번 요란이에게 계두국수를 말아줘서 요란이가 득수 형의 위대함을 느끼길 바란다.
전보다 훨씬 강해진 나조차도 생사결로 갔을 때는 멀쩡한 팔다리를 유지한 채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팔은 멀쩡해야 계두국수를 말아줄 텐데…….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죽여야 하는 자라면, 어떻게 해서든 죽일 테지만.
우리의 남은 인생과 국수까지 포기해가면서 죽여야 할 자라고 묻는다면 이제 잘 모르겠다.
그가 직접적으로 내 주변 인물을 죽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전생과 마찬가지로 정마대전을 일으킬 수 있는 단체의 수장이라는 점이 불안 요소이지만, 나는 그간 임소백과 백도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럴 가능성을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한 상태.
교주의 대답을 듣기 전.
우리의 시선은 매화장주에게 향했다.
처음으로 시비들과 함께 단체로 나오고 있었는데, 전부 손에 쟁반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도착한 매화장주가 교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 매화장주입니다. 날이 조금 무더워서 깊은 우물에서 퍼낸 물로 차를 만드느라 인사가 늦었습니다. 한겨울에 얼음을 잘라 먹는 것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시원할 겁니다. 저희끼리 가끔 마시는 차라 이름도 없는 냉차(冷茶)입니다.”
시비들이 쟁반에 있는 냉차를 탁자에 내려놓고,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냉차를 전했다.
싸움이고 나발이고, 일단 냉차는 마셔야 한다.
강호인들도 덥기 때문이다.
어색하게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서 위 좌사가 말했다.
“교주님, 제가 먼저 마셔보겠습니다.”
“…….”
독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태도였으나 교주는 별말 없이 먼저 냉차를 마셨다.
우리는 교주가 먼저 시음하고 난 다음에 냉차를 마셨다. 결국에 위 좌사가 냉차를 가장 뒤늦게 마셨다.
매화장주의 말대로 가슴이 시원해지는 냉차였는데 과일즙을 아주 살짝 섞은 모양인지 단맛이 느껴졌다.
큰 싸움을 앞두고 냉차 한 모금의 여유라니?
깔끔한 뒷맛에 진한 풍미까지…….
“음, 좋아.”
대체 우리는 매화장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싸움을 하고 있었을까? 화산에서 싸우다가 목이 마르면 산을 내려왔어야 했다는 뜻이다. 아니면 애초에 폭포 주변에서 싸우거나…….
이래서 유명한 문파는 황량한 사막에 있지 않고 산에 있다. 의식의 흐름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라는 말까지 닿았을 때 나는 냉차를 마시면서 정신을 차렸다.
냉차를 마신 교주가 매화장주에게 말했다.
“잘 마셨네. 바라는 게 있는 눈치인데 말하게.”
“예, 교주님. 시비들을 들여보내고 제가 여러 선배의 비무를 봐도 되겠습니까?”
“얻을 게 있다면 그렇게 해라. 다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집안에서 보도록.”
“배려 감사합니다. 교주님.”
“자네는 관윤자의 후인인가?”
“연관이 없지는 않으나 후인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후대 사람입니다. 관윤자께서 무공보단 학문에 뜻을 두셨기도 하고, 오래되어 전해지는 무공도 대부분 소실되어 후인이라 주장하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그 손은 검을 오래 익힌 것 같구나.”
“예, 저는 학문에 뜻이 없어 절반도 남아 있지 않은 서책, 구전되는 몇 마디 말을 붙잡고 홀로 수련했습니다.”
“문주와는 본래 아는 사이였나?”
“그것이 좀 저도 신기한데 그냥 다짜고짜 찾아와서 경치가 좋다는 이유로 비무 장소를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교주가 나를 쳐다봤다.
“경치가 좋아서?”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굳이 경치가 안 좋은 곳에서 싸워야 할 이유가 있나 싶다.
매화장주는 약간 억울하다는 것처럼 말을 내뱉었다.
“……제가 이겼으면 돌려보냈을 것이나 패배했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매화장주는 이미 엉망진창이 된 장원 일부를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장원도 이렇게 되었고요.”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와서 혼자 낄낄댔다.
“미안하네.”
신기하게도 매화장주는 우리와도 대화가 통하고, 교주와도 대화가 통하는 사내였다. 그렇다고 딱히 위 좌사처럼 교주를 두려워하는 태도도 없었다. 사람이 스스로 부끄러워 할 일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게 되는 것일까? 어쨌든 내가 일전에 본대로 매화장주는 교주 앞에서도 화산제일검이었다.
예의가 가진 본연의 가치를 아는 사내라서 그렇다.
또한, 이런 예의는 겉과 속이 같을 때 빛을 발하는 법이라서 위 좌사의 예의와는 분위기가 제법 달랐다.
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알았다는 말이지만 이제 시비들을 데리고 물러나라는 축객령이기도 했다. 매화장주는 쟁반을 들고 있는 시비들과 함께 도로 장원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것이 최선일 터였다. 사실 무공 수위가 높지 않으면 이런 고수들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죽을 위험이 크다.
적어도 갑자기 날아오는 돌을 앞발로 쳐낼 수 있는 개구리여야 하는데, 매화장주는 내공이 부족한 개구리라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맞다.
냉차 한 모금의 여유가 끝나자…….
교주가 입을 열었다.
“위 좌사.”
“예, 교주님.”
“광성자의 무공은 많이 복원했느냐?”
위 좌사는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음, 그것이…….”
“대성한 다음에 내게 도전하려 했는데 시기가 너무 빨랐나?”
“아닙니다. 나름 깊이 연구하여 복원하려 했으나 옛 무공은 아예 방식이 달라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시건방지게 너희 가문이 일월을 품었으니 성과는 있었으리라 본다.”
교주가 우리를 둘러보다가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보고를 들어보니 문주는 예전부터 삼매진화(三昧眞火)를 다뤘다던데.”
염계를 말하는 것일까?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소.”
“삼매진화를 다루는 무공이 이제 강호에 십여 개도 채 남지 않았는데 네가 쓰는 삼매진화가 어떤 무공인지는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이것은 강호에 해박한 나조차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교주에게 물었다.
“어째서 십여 개밖에 안 남았소?”
“오래됐으니 잊혀질 수밖에.”
“잊히는 것엔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본래 안락함을 추구한다. 삼매진화는 여러 갈래가 있으나 본질은 강호인이 말하는 진기를 태우는 것이다. 쌓은 것보다 많이 태우면 진기가 훼손된다는 뜻이지. 훼손됨을 몸소 느낄수록 운기조식에 집착하게 되고. 이는 심마(心魔)와도 연관이 깊다. 불을 보유하는 것과 태우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지. 삼매진화를 다룰 수 있는 고수들 대부분이 주화입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 그렇겠느냐?”
“음, 결국에 이기려고 쌓고 있는 진기 이상의 진기를 태우다 보니…….”
“그것이 강호인의 본질이겠지.”
나는 내심 놀란 마음으로 교주를 바라봤다.
이 사람은 똥싸개가 색마라 불렸던 원인을 알고 있었는데, 심지어 내가 광마가 됐었던 일부 원인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무공에 해박하면 무공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대부분 예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교주는 대종사이기도 했다.
교주가 내게 말했다.
“마도가 보유하지 못한 삼매진화 무공은 더욱 적다. 문주는 아무래도 기성자의 후인이거나 잡부밀교의 후인 같은데 접점이 있었나?”
나는 잠시 서 있는 게 힘들어서 교주 근처에 앉은 다음에 대답했다.
“나는 사실 기성자의 무공을 익혔소.”
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케 미치지 않았구나.”
“절반은 미친 것 같소만.”
“그 정도면 잘 버틴 것이다.”
이제 보니까 다들 바닥에 앉아서 교주와 내 대화를 듣기만 했다. 딱히 바쁜 것도 없는 자들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다들 교주의 이야기를 궁금하는 모양새이기도 했다.
어디 가서 들을 수 없는 얘기라서 그렇다.
나는 교주에게 물었다.
“잡부밀교에도 삼매진화가 있소?”
“문주야, 오래된 종파에는 대부분 삼매진화 무공이 있다. 너희 대다수 백도가 말하는 마공(魔功)이 결국 그 부류다. 삼매진화에서 갈라진 무공이지.”
“삼매진화는 어째서 마공이라 불리게 된 거요.”
교주가 슬쩍 웃었다.
“대다수가 믿는 종교가 결국 정종이고. 소수가 믿으면 마교 취급을 받기 때문이지. 종교가 무엇 때문에 삼매진화 무공을 보유한다는 말이냐? 애초에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부 종파의 창시자들은 혁명가의 성향을 지닌 자가 많았다. 세상에 불만이 있든, 나라에 불만이 있든 간에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은 기존 체재를 뒤엎으려는 뜻일 테니 주류에 의해서는 마귀 취급을 받는 게 당연할 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기로 마교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황실의 기록이다.
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실제로 가장 큰 종파가 작은 종파에 속한 자들을 학살하는 것은 대국이 소국을 학살하던 것처럼 종종 벌어진 일이지. 이것이 인간사에 벌어지는 본질인데 그런 학살의 기록 또한 자주 지워지곤 한다. 남은 것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마교라는 말이고.”
이래서 천마신교 사람들 앞에서 마교라는 말을 하면 별 이유 없이 싸우거나 맞아 죽게 된다. 물론 그곳의 수장이 직접 마교라는 말을 꺼낼 때는 다르다. 세상일이 본래 이렇기 때문이다.
잡부밀교는 사실 광승이 속한 종파인데.
광승이 광증에 시달린 것과 내가 광증에 시달린 것은 어느 정도 삼매진화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겠지.
광승은 사제의 죽음이 촉매가 되었을 테고, 나는 객잔이 불에 탔을 때 내 마음도 삼매진화에 휩싸였다.
교주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는 본래 불같은 성정이 있고. 만사를 귀찮게 여기는 차가운 성정도 있다. 음양지체라는 게 정말 타고나는 것인지 너처럼 후천적으로 무공에 따라 계발(啓發)될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후천적인 음양지체라는 말이오?”
“자세히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누가 무공도 없이 음양지체라는 것을 알아낸다는 말이냐? 그것은 돌팔이 의원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
돌팔이 의원이라는 말에 나는 모용백을 쳐다봤다. 모용백이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저 돌팔이 아닙니다.”
“알아.”
“근데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그냥. 의원이 너뿐이라 한 번 쳐다봤다. 미안하다.”
“예.”
나는 주변에 있는 자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전부 마공을 익혔네.”
교주의 표현에 따르면 전부 옛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이래서 전통이 무서운 것일까?
언뜻 지나가는 어조였지만, 뜻밖의 말을 교주가 꺼냈다.
“서생들이 학살을 당하고 나서야 했던 일을 우리는 더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많은 무공이 유실되었겠지. 예상치 못하게도 관윤자, 광성자, 기성자의 후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위 좌사.”
“예, 교주님.”
교주가 위 좌사를 바라보면서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너를 살려둬야 할 이유가 점점 희미해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
“수행하는 자를 적게 해서 최소의 인원만 참석하라고 했더니 살수가 웬 말이냐.”
“죄송합니다. 교주님.”
“한 번이라도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퍼내어 수하들의 도움 없이 싸울 생각은 못 해 봤단 말이냐? 네 가문의 전대 가주들이 돈을 벌려고 했던 것은 무공 때문이었지. 너처럼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무공을 익히진 않았다. 여기서 네 상대를 골라라. 일단 나는 다른 자들의 어떤 싸움보다도 네 끝을 먼저 확인해보고 싶구나. 정말 돈만 밝히는 쓰레기 같은 놈이었는지, 아니면 원로들의 말대로 저력이 있는 가문의 수장이었는지……확인해보겠다.”
생사결인지 비무인지는 알 수 없다.
교주의 명령에 위 좌사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교주가 내 의견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일까? 교주가 도착하고 나서의 개전(開戰)은 위 좌사가 맡았다. 다만 상대는 알 수가 없다.
위 좌사는 먼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 다음에 물었다.
“나?”
이놈도 미친 것일까? 감히 나를?
위 좌사의 시선이 움직이더니 색마를 바라봤다. 색마는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위 좌사를 쳐다봤다. 이미 일마조에게 맞아서 부상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똥싸개가 나를 따라 했다.
“나?”
위 좌사가 쩝 소리를 내더니 모용백을 바라봤다. 그러자 모용백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는 의원입니다.”
“알고 있네.”
공손심은 자신이 먼저 도전 의사를 밝혔다.
“위 좌사, 나는 어떤가?”
“누군지 몰라서 사양하겠소.”
그러고 보니까 교주가 오기 전에 이미 맏형에게 도전 의사를 밝혔던 놈이다.
위 좌사와 눈을 마주친 맏형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밖에 없는 것 같군.”
위 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하겠네.”
순간, 나는 위 좌사의 모든 행동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력이 좋은 사내였는데 시종일관 잔머리를 굴렸기 때문이다. 해남살성 일행을 죽인 속도를 가늠하면 분명 약한 사내가 아니다.
맏형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보기 드물게 감정적인 어조로 위 좌사를 비꼬았다.
“자네는 어째서 그렇게 끝까지 가식적인가?”
위 좌사도 슬쩍 웃었다.
“배운 게 이런 거라 양해하게.”
두 사람이 넓은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에 나는 갑자기 혈교주의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이봐, 검마.”
“왜 그러나.”
혈교주가 맏형에게 말했다.
“적어도 팔 하나는 잘라놓게.”
나는 고개를 홱 돌려서 혈교주를 바라봤다.
이 새끼는 도대체 누구 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