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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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말[言]
“그래서 나는 너에게 선택을 강요하겠다. 너는 네 삶을 우리의 노예로 바칠 것인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인가?”
등편은 선택을 강요하는 갑작스러움에 살짝 당황한 듯하였으나 곧바로 생각을 다잡았다. 이미 앞서 대화 내용에서 이러한 선택은 피치 못한 것이라고 자신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대답은 쉬이 나왔다.
“죽지 않겠습니다.”
이소호칸은 등편의 대답에 애매모호한 점이 있어 다시 물었다.
“네 대답의 뜻은 우리의 노예가 되겠다는 뜻이냐?”
“살 수 있다면 그렇게 되더라도 생명을 택하겠습니다.”
이소호칸은 그런 등편의 대답을 듣고 혀를 끌끌 찼다.
호인들은 비굴하게 살아갈 바에야 죽는 것을 영예롭게 여겼다. 약하면 죽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들의 논리 아래 불명예스러운 삶은 그토록 치욕과도 같은 것이다.
이소호칸은 등편이 차라리 죽겠다고 대답하길 은근히 원하고 있었다.
“너처럼 강직한 아이가 인간으로서의 명예로운 죽음이 아닌 노예로서의 삶을 택하다니, 내 예상을 빗나갔구나.”
“당신이 원하는 대답과는 동떨어질진 모르나 이것이 제 선택입니다. 제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등편의 눈이 또렷하게 빛났다. 저 눈빛은 단지 노예의 삶을 선택한 자에게서 나올 만한 광채가 아니었다. 밝게 빛나는 그 두 눈은 욕망을 듬뿍 지닌 영롱함을 내비쳤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네가 삶을 살고자 하는 연유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인간으로서의 영예로운 죽음은 제겐 한낱 허명일 뿐입니다. 그런 가치 없는 것에 제 생명을 내던지기엔 저는 아직 피지 못한 꽃입니다. 아직 어리고 봉오리조차 피지 못한 자입니다. 그리고 어떤 꽃을 피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호인은 약하다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 하셨지만, 어린 호인들이 성인 호인보다 약하다고 하여 함부로 그들을 죽이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저는 아직 어리니 삶을 더 살아 더 강해지고자 합니다.”
등편에게 이것은 살짝 모험이었다. 어린 호인들이 성인 호인들에게 약하다고 죽임을 당하는지는 등편에게도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등편은 넌지시 넘겨짚었다. 만약 어린 호인들을 약하다고 함부로 죽인다면 성인 호인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소호칸의 이해심을 이끌어냈다.
등편의 말 그대로 어린 호인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성인들이 해코지하여 결단코 죽음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염이 용정으로부터 독립할 때 초창기에 생긴 일 때문이었다.
호인들의 괴팍한 습성상 자신들이 낳은 어린아이들까지 유약하고 약한 개체라면 물어 죽였다. 하지만 그런 습성은 호인의 개체를 늘리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개체 수가 적은데 아이들까지 죽이는 일이 빈번하자 종족 번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어릴 때 유약하다 할지라도 성인 나이가 되면 종족 특성상 강인한 근골과 정신력이 받쳐주어 범족의 일원으로서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어린 호인을 함부로 죽이는 것을 중죄로 만들었다.
약함이 강함으로 이르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범족과 이소호칸은 과거의 실수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아직 피지 못한 꽃이라……. 미개(未開)란 말인가?”
이소호칸은 어린 녀석에게 설득당했다는 것이 여간 놀라운 게 아니었다. 자신의 나이가 노년에 접어들어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이해심을 많이 수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런 것을 제외한다 쳐도 어린 녀석의 혜안이 아주 뛰어났다.
호인 중에서도 이렇게 말재간이 좋은 아이는 여간해서는 찾기 어려웠다.
그는 커다란 콧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등편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반면 등편은 이소호칸이 살짝 고민하고 있는 시간에 어찌나 목이 타는지 몰랐다.
본래 말이 거의 없는 아이라 늘 속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였는데 이소호칸과의 대화는 몇 년 치 말을 한 번에 한 듯했고, 그 주제도 자신의 생명과 관련된 내용이라 일상적인 대화에 비해 몇 갑절은 피곤하고 힘들었다.
계속해서 타들어가 마르는 입술을 혀로 적시자 이소호칸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목이 바짝바짝 타는 모양이로구나.”
이소호칸의 목소리는 이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웠다. 목소리 톤은 여전이 카랑카랑하고 높았지만 등편을 대하는 어투가 변해있었다.
등편이 살짝 고개를 끄떡이자 이소호칸은 일어나 병풍 뒤에 손을 넣어 물 주전자와 잔 두 개를 꺼내왔다. 그리고 탁자 위의 촛대를 살짝 옆으로 물리고 잔 두 개를 놓고는 물을 채웠다.
“마셔라. 시원한 물이니 네 목을 축이기엔 충분할 것이다.”
이소호칸이 잔을 쥔 손을 등편에게 내밀었다.
등편은 자신의 손을 내밀어 잔을 받으려 했지만 잔을 쥔 이소호칸의 손이 너무 커서 잔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난감해했다.
그걸 본 이소호칸은 두 손가락만을 이용해 잔의 밑동을 드러나게 했고, 등편이 손을 받치자 그 위에 올려놓았다.
등편은 잔을 받자마자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아무리 밤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여름밤, 상당히 무더운 날씨였다. 그 와중에 시원한 물을 들이켜자 식도로 넘어 들어가는 상쾌함이 몸 곳곳으로 퍼지며 등편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등편이 금세 잔을 내려놓자 이소호칸은 껄껄 웃으며 잔에 물을 한 잔 더 채워주고는 자신의 잔에 채워져 있는 물을 등편과 함께 마셨다.
꼬르륵. 끄륵.
물을 마시다가 등편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연거푸 났다. 물을 마시며 팽팽하던 공기가 느슨하게 풀리자 배고픔이 찾아온 듯하다.
등편은 이소호칸을 앞에 두고도 지금까지 당당했던 태도가 꼬르륵 소리엔 꺾였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부끄러워했다.
그런 등편을 보고 이소호칸은 살며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일어났다.
“배가 고픈 듯하니 잠시 기다리거라.”
이소호칸은 그렇게 등편에게 말하고 문을 나섰다.
등편은 멀뚱멀뚱 이소호칸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가 어둠 속으로 완연히 사라지자 물 주전자를 들어 입안으로 가져가 벌컥벌컥 마셨다. 온몸을 달구었던 뜨거운 열기가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이소호칸은 존재감만으로도 거대한 압박을 가져오는 자로서 등편이 그런 그의 분위기를 견뎌낸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대견한 일이었다.
온몸에서 열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으니 다시 주린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배를 한 차례 쓰다듬고 있는데 밖에서 이소호칸이 손에 동그란 것을 들고 들어왔다. 그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둥그런 세 개의 쌀 뭉치였다.
고소한 향이 나는 것을 보니 간이 딱 잘된 듯했다. 그 냄새가 등편의 주림을 자극하여 입가에 침이 고이게 만들었다.
“여기 먹을거리 좀 가져왔다. 네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구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등편에게 커다란 쌀 뭉치를 건네는 이소호칸은 마치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 같았다.
등편은 제 얼굴만 한 밥 덩이를 받아 들고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등편이 마치 손님인 양 편하게 말하고는 밥을 쥐어 베어 물자 이소호칸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네 배짱이 호랑이 심줄 같구나.”
이소호칸이 먹고 있는 등편에게 말하면서 자리에 앉아 등편이 먹는 것을 계속 지켜보았다.
등편은 밥을 한 움큼 물고 목이 마르면 주전자를 집어 물을 마셨다.
게걸스럽게 밥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소호칸이 등편이 마지막 밥풀 한 개를 손바닥에서 떼어 먹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먹을 만했느냐?”
밥 덩이는 근래 들어 등편이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이었다. 설익은 주먹밥이나 보리밥은 소화가 더딜 뿐만 아니라 맛도 더럽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소호칸은 손에 들고 있는 다른 한 개의 쌀 뭉치를 내밀며 말했다. 등편이 얼마나 급하게 먹었으면 나머지 밥 덩이들은 식지도 않고 김을 내고 있었다.
“하나 더 먹을 테냐?”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거절하지 않는 모습에 이소호칸은 밥 한 덩이를 더 손에 얹어주며 말했다.
“넌 특히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할 것이다. 그 쌀은 너희 인간이 우리에게 경작하여 준 것이다.”
============================ 작품 후기 ============================
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