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57)
건우가 신비술사 조윤아와 레버랜드 일정을 조율하고 있을 때.
아이스 프린스 박예준과 불의 꽃 박예란은 묵계리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일요일이라서 초등학교 운동장은 조용하기만 했다.
박예준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네가 먼저 해.”
그 말에 박예란이 눈을 치켜뜨면서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둘 사이에 커다란 불꽃이 타올랐다. 그것은 조금씩 축소되더니, 결국 구슬의 형태가 되었다. 황백색의 불꽃 구슬이었다.
그것을 본 박예란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호흡을 정돈했다.
“좋아, 덤벼.”
그에 박예준이 씨익 웃더니,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나타난 얼음 결정체들이 박예란의 불꽃 구슬을 순식간에 감싸 버렸다.
조금씩 불꽃 구슬을 조이기 시작하는 얼음 결정체들.
그에 반응한 불꽃 구슬의 색이 순간적으로 백색이 되면서, 불타오를 조짐을 보였다.
‘됐어!’
박예란은 그것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는 최근에 박예준처럼 시련을 이겨 내면서, 백색 불꽃을 다룰 수 있게 된 상태였다.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드러내면서 승리를 쉽게 가져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보다 시련 좀 빨리 이겨 냈다고 잘난 체했지? 어디 한번 당해 봐라.’
박예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오산이었다.
치이이익.
백색의 불꽃 구슬이 타오르면서 얼음 결정체에 잠시 대항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잠시일 뿐이었다.
타오르던 불꽃 구슬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얼음 결정체에 먹혀서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두 사람의 표정이 갈렸다.
박예준은 웃고 있었고 박예란은 당황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이럴 리가 없는데?’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박예준이 승자의 미소를 지은 채, 얼음 결정체를 없앴다.
“내가 말했잖아. 나한테 안 된다고…….”
“헛, 헛소리하지 마! 나는 원래 공격 특화야! 이번엔 내가 공격이야! 네가 수비해!”
“뭐, 그러든가.”
박예준은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이, 먼저 커다란 얼음 결정체를 만들어 냈다.
그것을 본 박예란이 이마에 힘줄이 불거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서 불꽃을 만들어 냈다.
“태워 버려!”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얼음 결정체 주변으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
박예란은 있는 기운, 없는 기운을 다 쏟아부어서 불꽃을 키웠다.
‘분명히 방금은 뭔가 잘못된 거야. 이번엔 확실하게 눌러 주겠어!’
각오에 알맞은 무서운 기세!
한동안 기운을 쏟아부은 그녀는 박예준의 얼음 결정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그녀의 오산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말, 말도 안 돼.’
불꽃이 사그라들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너무나 멀쩡한 얼음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이, 이럴 수가…….”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기운이 다 떨어져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드러난 결과에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그에 박예준은 얼음 결정체를 없애 버리면서 여유롭게 말했다.
“나한테 안 된다니까.”
그 순간이었다.
둘의 대결을 위해서 잠시 빠져 있었던 빙닭이 날아와서 그의 머리에 안착했다.
뺙!
빙닭은 수고했다면서 날개로 박예준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에 박예준이 씨익 웃었다.
“수고는 무슨…… 그냥 준비 운동한 거지.”
마치 누구한테 들으라는 듯한 말투였다.
박예란이 이를 꽉 깨물면서 박예준을 노려봤다.
“너,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네 실력, 이상할 정도로 높잖아.”
그 말에 박예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가 이상해? 시련 한 번 넘어서 업그레이드되고, 그 뒤로도 수련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그 말에 박예란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시련을 이겨 냈고, 수련까지 열심히 했어. 거기다가 너랑 다르게 실전까지 많이 치렀고! 그런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데?”
그 말에 박예준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너 시련 이겨 냈어?”
“그래! 그런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냐고!?”
박예란은 그렇게 말하면서, 분을 못 참고 씩씩-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박예준이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드디어 이해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어쩐지, 예상했던 것보다 실력이 좋더라니…… 그런데 왜 나한테 시련 넘긴 거, 숨겼냐?”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가족한테 경사가 생긴 건데…… 축하해 줘야지.”
박예준이 그렇게 말하자, 박예란이 흠칫 놀랐다.
그러면서 엉덩이를 질질 끌며 뒤로 물러났다.
“너, 너! 누구야!? 내 동생이 이렇게 친절할 리 없어!”
그 말에 박예준이 피식 웃어 버렸다.
“누가 철없는 빨간돼지 아니랄까 봐…… 헛소리하지 말고 일어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박예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 박예란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정말 박예준이야?”
“당연하지! 자꾸 헛소리할래?”
“그러니까 왜 헷갈리게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그녀는 그렇게 버럭 소리를 치면서 짜증을 부렸다.
그 모습을 본 박예준이 한심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말하는 본새하고는…… 철 좀 들어라, 돼지야.”
“누나한테 돼지라고 하는 네가 할 말이냐?”
“애칭이지, 애칭. 그게 철드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뭐? 이 생쥐 같은 게!?”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한동안 다퉜다.
그러다가 박예란이 물었다.
“아무튼, 진짜 실력이 높아진 이유가 뭐야? 거짓말하지 말고.”
그 물음에 박예준은 숨길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정말로 시련 넘은 거하고 수련한 것밖에 없어. 음, 굳이 하나 더 추가하자면 바위벌꿀차를 많이 마신 것 정도?”
그 말에 박예란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널 아는데…… 그걸 믿으라고?”
“그럼 믿어야지. 정말로 그랬으니까. 그렇지, 빙닭아?”
뺙!
빙닭은 박예준의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빙닭까지 그렇게 나서자, 박예란은 박예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물었다.
“진짜로 시련하고 수련뿐? 천 년 된 산삼을 먹었다든가…… 그런 거 없이?”
“응. 진짜로.”
“걸고?”
박예란이 그렇게 묻자, 박예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애도 아니고…… 그래, 걸고!”
뭘 건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건다는 박예준의 말에 박예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예준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순수한 재능의 문제인가? 박예준이 그렇게 재능이 좋았던가? 분명히 나랑 비슷할 텐데…….’
박예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간을 좁혔다.
둘은 남매이자, 라이벌이자, 오랫동안 같이 수련한 동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서로의 재능이 비슷하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이상해. 이해가 안 가.”
그녀가 계속해서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박예준이 문뜩 한 가지 떠올린 것이 있는지, 그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나는 이 동네가 유독 체질에 맞는 것 같기도 해.”
“체질?”
“응. 이 동네에서 수련하면, 다른 곳에서 수련하는 것보다 성과가 좋은 것 같거든.”
그 말에 박예란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장소에 따라 수련 성과가 다를 수 있기는 해도 그 차이가 크지 않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예준이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을 이었다.
“정 못 미더우면, 한동안 여기 머물면서 수련해 보든가. 방 하나 내주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 말에 그녀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돼. 할 일이 있어.”
“할 일?”
“그래. 여기서 놀고 있는 너랑은 다르게 엄마, 아빠 도와야지.”
그 말에 박예준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곳에서 철든 척하고 있네.”
“뭐!?”
“돼지야. 너, 이제 스무 살이야. 부모님은 아직 쉰도 안 넘으셨고…… 도와드리는 것보다는 도움을 받아서 크게 될 생각을 해야지.”
그 말에 박예란이 기도 안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스무 살 먹은 어른이 할 말이냐?”
“그래. 스무 살 먹은 어른이가 할 말이다, 멍청한 돼지야.”
둘은 그렇게 한동안 더 티격태격했다.
그러는 사이, 둘의 싸움을 말리는 벨 소리가 들렸다.
박예준이 잠시 싸움을 멈추고서 발신인을 확인해 보더니,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건우 형님! 어쩐 일이십니까? 네? 아, 네. 당연히 가능하죠. 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럼 고생하십시오, 형님.”
그는 용건만 간단하게 하고서 전화를 마쳤다.
그 모습을 본 박예란이 물었다.
“이건우 선배님 전화야?”
“그래. 건우 형님이 이틀 후에 놀이동산에 놀러 갈 수 있냐고 물어봤다.”
“놀이동산?”
“응, 레버랜드.”
그 말에 박예란이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레버랜드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박예준에게 물었다.
“나도 같이 갈 수…….”
“어, 안 돼. 길드 도우러 가. 철든 돼지야.”
박예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말꼬리를 잘라 버리는 박예준.
박예란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웃기지 말고 가서 부모님이나 도와. 실력도 안 되는 게, 어딜 놀 생각부터 하고 있어?”
“뭐!? 이게 진짜!”
둘은 그렇게 한동안 더 티격태격하면서 싸웠다.
뺘악-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빙닭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 * *
“오케이. 예준이까지 완료.”
건우는 박예준과의 통화를 마치고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비술사 조윤아와 일정을 조율한 후, 같이 갈 사람들을 전부 모집한 것이다.
‘수찬 씨, 서린 씨, 예준이…… 예란이는 올 수 있으려나? 지난번에 들어 보니까, 곧 있으면 다시 길드 일선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가능하면 예준이가 데려오겠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멈췄던 밭일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건우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성장이 빨라.’
분명히 들깨 순을 쳐 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많이 자라서 순을 더 쳐 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분명 소아의 힘이겠지.’
건우는 소아가 매일같이 따라와서, 농작물들의 성장을 빠르게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농작물들의 성장이 빠를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지난번에 소아가 보여 준 것처럼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보통보다는 거의 두 배는 빠른 것 같은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농작물의 성장이 빨라진 만큼, 지금까지 세워 두었던 농사 계획도 조금 손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성장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 거라면, 지을 농사를 다 두 번씩 지으면 되는 건가? 그럼 수확량도 두 배고?’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괜히 시시덕거렸다.
하지만 곧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성장 속도가 빠르면 문제는 없을까?’
그가 그러면서 생각한 것은 바로 지력에 관한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농작물들은 흙과 물, 햇빛만 있다고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충분한 영양분이 토양에 녹아들어 있어야만 잘 자라는 것이다.
즉, 휴지기 없이 계속해서 농사를 짓게 되면 자연스레 지력도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비료를 많이 뿌린다고 해도 결국 한계는 있겠지. 비료가 땅에 녹아들 시간도 필요하니까…….’
건우는 그렇게 고민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지 계획을 하나씩 세워 나갔다.
그렇게 잠시 후.
“하와!”
하와가 생각에 빠져 있는 건우의 손가락을 잡고 흔들었다.
“응? 무슨 일이야?”
“하와!”
“뭐? 벌써 일 끝났어?”
건우는 하와의 말에 재빨리 밭을 둘러봤다.
정령들은 할 일을 마치고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건우가 그 모습을 보면서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쩌다 보니까 나만 놀고 있었네.’
그는 그러면서, 다음 일과를 위해서 던전 농지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