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46
745화 허락
몰래 창문에 붙어서 우리를 훔쳐보는 녀석.
눈이 마주쳤는데도 뻔뻔하게 계속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저건 또 무슨 변태 같은 괴이체일까.
종류가 참 다양하기도 하지.
“에휴.”
혀를 차며 검을 쥐었다.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잡아 죽여야 한다는 건 같다.
“하급 괴이체네요.”
“엿보는 남자로군.”
반응을 보니 이미 알고 있는 괴이체인 모양.
이름 한번 직관적이네.
“놔둬도 크게 문제 되는 녀석은 아니야. 그냥 기분이 나쁠 뿐이거든.”
“창문만 열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4번 탐사대장, 마일러와 레베카가 고개를 까딱인다.
괴이체라고 한들 전부 위험하고 공격성이 짙지는 않다.
저놈도 그런 케이스라고 볼 수 있었는데.
“열면 어떻게 되죠?”
“서로의 위치가 바뀌어요. 누군가는 훔쳐보고 있어야 하니까요.”
“창문 너머에 뭐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 몇몇 살아 돌아온 녀석들이 있긴 한데 다들 말이 다르더군. 대부분은 괴이체가 돼 버려.”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라.
살짝 호기심이 생기기는 했지만 굳이 확인할 생각은 없다.
예상외의 보물이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마주쳐서는 안 될 뭔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까딱 잘못하면 괴이체가 될 수도 있고.
“퇴치법은 간단하네. 그냥 방 안으로 들어가면 돼. 비교적 상대하기 편한 괴이체지.”
“훔쳐볼 게 없으면 사라지거든요. 가끔 방까지 따라오기도 하지만요.”
자연스럽게 자리를 치우고 계단에 출입 금지 팻말을 세운다.
마치 별거 아닌 일을 하는 것 같다.
이게 괴이체 전문가의 여유인가.
‘확실히 다르네.’
무작정 싸우려고 했던 나와는 달리 놈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을 역으로 이용한다.
싸우지 않고 넘길 수 있다면 넘기는 게 좋은 법.
괜히 치고받느라 힘 뺄 필요는 없었다.
나야 따로 할 게 없었기에 창문 너머에 있는 괴이체를 구경했다.
엿보는 남자라.
저 녀석의 개념은.
[엿보는 남자]-하급 괴이체입니다.
-후욱… 후욱… 눈을 뗄 수 없습니다!
-개념, 엿보기를 가지고 있죠!
별거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으니.
‘이 녀석은 아예 괴이체로 뜨네.’
5번 탐사대는 정보가 오염되어 깨졌고 피나에의 경우에는 나름 정상적인 정보창이 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NPC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 정도.
엿보는 남자는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괴이체라 말하고 있었다.
내가 사냥했던 동물 괴이체처럼.
하급 중에서도 그다지 대단치 않은 놈이라는 뜻이겠지.
구경은 이 정도면 됐다.
방으로 들어갈 생각.
“음?”
잠이나 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는데 레베카와 켈런, 마일러도 내 방으로 들어온다.
-털썩.
“그래. 처리반에 대해 설명해 주지. 편하게 앉아.”
당당히 침대에 걸터앉은 켈런이 손짓한다.
순간 너무 자연스러워서 바닥에 앉을 뻔했네.
“내 방인데 편히 있어야지, 이 자식아.”
“처리반 소속이면 가족이나 마찬가지.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내가 왜 처리반 소속인데!”
“음? 아하. 처리반에 들어오는 절차가 있긴 한데 나도 있고 여기 참관인도 있으니 그런 건 생략해도…….”
-빠악!
“아! 왜 때려!”
“좀 닥치고 있어요. 자기 할 말만 하지 말고요.”
레베카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켈런의 뒤통수를 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안을 하려고 해요. 99층까지 올라온 등반가라면 목표는 100층이겠죠?”
“그렇지.”
“올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켈런.”
“맞잖아. 위로 올라가려면 베드록 바알루제, 그 녀석을 뚫어야 한다고. 아니면 허락을 받거나.”
허락을 받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마치 놈의 의지에 따라 100층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 같지 않은가.
“으음.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로군.”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하죠. 제가 대신 이야기할게요. 처리반에 들어오는 건 그쪽.”
“이블아이라고 불러 줘요.”
“네. 이블아이한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예요. 99층은 혼자서는 클리어가 불가능하거든요.”
“애초에 클리어된 적이 없지.”
켈런이 설명을 덧붙인다.
클리어된 적이 없다?
그게 가능한가.
통과했으니 100층에 도달한 사람이 있고 혼돈의 파편도 만들어졌지.
당장 내가 지금까지 만난 녀석들이 몇인데.
“100층으로 향하도록 눈을 감아 주었을 뿐, 클리어된 적은 없어.”
“놈의 허락으로 위로 올라간 이들은 모두 혼돈의 파편이 되었지. 예외는 없었네.”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위로 올려 보낸 거니까요. 모종의 조작이 있다고 봐야죠.”
“그게 탑으로 돌아온 자가 탑과 한 계약이지.”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혼돈의 파편 중에는 비교적 약한 객체도 있었으니까.
숭배자의 왕은 강하다.
하이덴 또한 녀석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으며 오필리아의 기록구를 통해 본 녀석은 가히 초월적인 힘을 보였다.
‘녀석이 의도를 가지고 위로 보낸 거였어.’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납득이 된다.
물론 그중에는 예외 케이스도 있기는 하다.
“외로움의 파히루. 그 녀석은 실패작인 건가. 반쪽짜리 혼돈의 파편이던데.”
“아, 파히루. 이미 만났었나 보네. 맞아. 걔는 실험용이야. 개념 하나만 가지고 100층에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려고 보냈다고 들었는데.”
자신의 부하를 실험용으로 사용한 건가.
대략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 거 같다.
“아무튼. 숭배자의 왕에게 허락을 받는 건 의미가 없지. 놈을 죽여야 해.”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대립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부터 채워야 하죠.”
“오필리아와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었지. 오랫동안 준비했으나 아직 부족하네.”
오필리아.
도대체 언제부터 무슨 계획을 짜고 있던 걸까.
심지어 99층에 있는 NPC와 함께.
“자세한 건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켈런이 손을 펼친다.
“놈을 잡기 위해서는 많은 영역을 차지해서 최소 왕국의 조건을 채워야 돼. 그것조차 이루지 못하면 전투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 녀석은 왕이거든.”
“왕을 끌어내리려면 반란이 일어나거나 다른 왕과의 전쟁이 필요해요.”
“숭배자들은 배신하지 않으니 우린 우리의 왕국을 만들어 승부를 봐야 하지.”
왕국의 조건을 채운다라.
그러고 보니 마을에서 만난 NPC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곳은 왕 없는 왕국의 마을이라고.
처음에는 그런 게 왜 있나 생각했었는데 이유가 있던 모양.
“쉽지는 않아. 이곳은 혼돈으로 뒤덮여 있고 베드록 바알루제는 이미 많은 영역을 차지했으니까.”
“숭배자와 괴이체로 이루어진 그들만의 왕국이 있어요.”
어쩐지 99층에 숭배자의 왕이 있는데 숭배자를 못 봤다 했더니 한곳에 모여 있던 건가.
나쁘지 않다.
사방에 흩어져 있으면 찾아 없애는 것도 일이니까.
중간에 온갖 방해를 하는 건 덤이고.
“그들이 차지한 영역을 빼앗는 동시에 우리의 영역을 빼앗기지 않는 것. 이게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서 탐사대와 처리반이 있는 거겠군요.”
“예. 놈들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계속해서 찾아내야 해요.”
반쯤 침대에 드러누운 켈런이 손가락을 까딱인다.
“문제는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거야. 기본적으로 혼돈이 받쳐 주지 않으면 상대가 안 되거든. 개념도 있어야 하고.”
“탐사대와 처리반이 분리되어 있는 이유기도 하다네. 괴이체와 숭배자의 왕을 관측하는 건 가능하지만 놈들을 쓸어버리는 건 무리가 있어. 하급까지면 몰라도 중급부터는 무리지.”
그들이 말하는 건 간단했다.
개념으로 이루어진 세계.
그것이 99층이었으며 그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대응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나 처리하는 건 다른 이야기.
마치 혼돈이 부족하면 혼돈의 파편에 제대로 된 대미지를 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개념을 집어삼킨 괴물을 상대려면.
‘놈들을 잡아 죽이는 사람 또한 개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괴물을 사냥하려는 자, 괴물이 되어라.
헌터들 사이에서 유명한 교훈이다.
나 역시 혼돈의 파편을 상대하기 위해 혼돈을 모으다 이렇게 되었으니.
처리반이 극심한 인력난을 겪는 것도 이해됐다.
“개념을 구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아. 중급부터는 가끔 개념을 떨어트리니까. 제대로 된 괴이체라면 하급이어도 얻을 수는 있겠지. 방금 본 녀석을 잡아도 운 좋으면 나올 거야.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저런 저급한 개념은 가지고 있어 봤자 도움은 안 돼요.”
엿보기 남자.
그 녀석은 권능으로 살폈을 때도 괴이체라 했었다.
제대로 된 괴이체라는 게 그걸 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5번 탐사대를 따라 괴이체를 사냥할 때도 비슷한 메시지가 떴었지.’
괴이체의 수준이 떨어져 개념을 얻을 수 없다고.
중급 이상부터 유의미한 개념을 빼앗을 수 있는 건가.
“스스로 쌓아 온 개념이라면 모를까, 남의 개념을 삼켰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라.”
“대부분 괴이체가 되고 만다네.”
그렇겠지.
개념이란 스스로의 삶과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같으니.
나와 같이 계승자가 되어 얻는 게 아니라면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설명은 충분하다.
처리반을 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해했고.
처리반이 없으면 숭배자의 왕과 대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으니.
“선택지가 없군.”
“좋든 싫든 해야 돼. 안 그러면 답이 없어.”
후우.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놈들을 효율적으로 잡기 위해서라도 NPC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처리반 하도록 하지.”
“좋았어! 결국 할 거면서 왜 이렇게 튕겨 댄 거야.”
켈런이 낄낄거리더니 치덕인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올라갔지만 잽싸게 피한다.
이 자식, 개념이 얄미움은 아니겠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결국 할 일은 간단하다.
괴이체와 숭배자들을 없애고 숭배자의 왕을 꺾는다.
“숭배자의 왕이 만들어 주는 포탈을 넘어가긴 싫으니 잡는 수밖에.”
“음?”
“그건 무슨 소리인가?”
내 중얼거림에 세 사람이 고개를 갸웃한다.
뭔가 잘못 말했나?
그니까, 녀석이 만들어 준 포탈을 넘어간 이들은 모두 혼돈의 파편이 되었으니 잡아 없애야 한다는 거 아닌가.
잘못 이해한 부분은 없는 거 같은데.
나 역시 눈을 깜빡이자 레베카가 입을 연다.
“포탈은 이미 열려 있어요. 그 자리에 그들의 왕국이 있어서 문제인 거죠.”
“엥? 포탈이 왜 열려 있어요.”
일반적으로 포탈은 해당 층을 클리어해야 열린다.
그게 아니면 해당 층의 지배자가 포탈을 열어 주거나.
당연히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그야 포탈을 강제로 열어 버린 사람이 있으니까.”
“너라면 알 줄 알았는데. 왜 모르지?”
마일러와 켈런이 머리를 갸웃한다.
왜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켈런이 나를 가리킨다.
정확히는 내가 입고 있는 펠라인 세트를.
“그거. 펠라인이 입던 갑옷 아니야? 100층 포탈 열어 버린 녀석이 걔잖아.”
펠라인.
내가 착용한 갑옷의 주인이자 릴카, 킬더레스와 함께 혼돈의 파편을 사냥하던 인물의 이름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