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204)
204화 축복 (4)
미샤가 납치됐다.
그것도 도시에서.
이 말만 들어서는 엄청나게 큰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침착하게 나머지 사정부터 확인했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아이나르가 방에서 태연히 자고 있던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납치됐다니? 제대로 설명해 봐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래, 벌어진 게 언제였는지부터.”
“어제 있었던 일이었다!”
사건 발생은 고작 하루 전.
아이나르와 미샤는 그날 밖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숙소에 와보니 이게 웬걸?
검은 옷을 입은 수인들이 미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들어 보니까 미샤의 본가에서 왔다는 듯했다!”
본가라면, 역시 가주가 보낸 놈들일 테고.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냐! 수인 녀석들이 미샤한테 뭐라고 속삭이더니 억지로 데려가 버렸다!”
음, 그걸 억지로 데려갔다고 할 수가 있나?
일단 확인차 물었다.
“미샤가 너에게 아무 말도 안 남겼나?”
“오늘 밤에는 돌아올 테니 하루만 혼자 잘 지내라고 그랬다. 아! 비요른 마중도 나가라고 했었는데…… 걱정돼서 잠을 설쳤더니 늦잠을 자버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늦잠을 잤단 뒷말이야 어쨌든, 떠나기 전에 말도 남겼는데 이게 왜 납치란 말인가.
그리 묻자 조금 인상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나한테 그 말을 하는 미샤는 한사코 가기 싫은 표정이었다! 근데 그게 납치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데려갔으니 납치라니, 흔한 바바리안식 논리다.
다만, 나 역시 한 사람의 바바리안.
“그래, 미샤는 납치당한 게 맞군.”
납치인지 아닌지로 바바리안과 말다툼을 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 어제 놀라서 아루루한테도 가봤는데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해서 속상했다!”
“레이븐이 뭐라고 했는데?”
“비요른, 네가 올 때까지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래서 치안청에 신고도 아직 못한 상황이다!”
오케이, 잘 대처했네.
바바리안은 바바리안에게 맡기는 게 베스트다.
그게 안 된다면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최선이고.
“그래서! 어떡할 건가 비요른! 당연히 그쪽에 쳐들어가야겠지? 미샤는 우리 동료 아니냐!!”
거기 쳐들어갔다가 무슨 사고가 날 줄 알고.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미샤도 전사다. 혼자 힘으로 해낼 때까지 시간을 줘야 한다.”
“그건……. 그렇군!”
“오늘 돌아온댔으니, 밤까지는 기다렸다가 오지 않으면 내일 나 혼자 찾으러 가보겠다.”
“알겠다!”
바바리안스럽게 잘 돌려서 말하자, 고집을 부리지 않고 쉽게 수긍한 아이나르.
“근데 아침인데 배는 안 고프나?”
“당연히 고프다!”
우선 아이나르를 데리고 아침 식사부터 했다.
그러면서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했다.
딱히 이렇다 할 건 없었다.
그냥 수련, 밥, 집으로 반복이 된 나날들.
레이븐과 곰아저씨까지 모여 주기적으로 행하던 정기 회담도 내가 나올 때까지 스킵하기로 했다는 모양이다.
“아, 그때 미샤가 역시 비요른은 대단하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아닌 거 같아도, 비요른이 팀의 중심이라 없으면 서로 뭉칠 수가 없다고!”
“어…… 그랬군.”
어딘지 모르게 몰려오는 부끄러움.
뭐, 뒤에서 험담을 한 것보다야 백배는 낫겠다마는…….
나는 화제를 돌렸다.
“미샤가 식비는 주고 갔나?”
“어, 근데 다 써버렸다.”
“……돈은 두고 갈 테니 이거로 밤까지 잘 챙겨 먹어라.”
“나가는 건가? 미샤를 기다리지 않고?”
“집에만 있어도 변하는 건 없지 않나. 나는 내 일을 해야지. 미샤도 그러기를 바랄 거다.”
이후 식사를 끝낸 뒤에 아이나르를 방에 집어넣고서 외출했다.
일단 첫 목적지는 마탑이었다.
“아, 나왔어요? 몸은 어때요?”
“모즐란에서 준 해독제 덕분인지 이상은 없는 거 같다.”
“잘 됐네요. 고생 많았어요. 아무튼, 칼스타인 씨 얘기는 들었죠?”
“그래. 오늘까지 안 오면 내가 확인하러 가 볼 생각이니, 너는 걱정하지 마라.”
“처음부터 걱정한 적 없는데요? 아이나르 씨가 이상한 거지, 본가에 간 건데 왜 그렇게 유난을 떤데요?”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아꼈다.
레이븐과 달리 나는 미샤와 본가에 얽힌 사정을 알고 있다.
그러니 아무래도 걱정이 될 수밖에.
“그보다 내가 없어서 정산을 못했다면서? 내일 만나는 거로 하지.”
“칼스타인 씨가 늦으면요?”
“그때는 다시 와서 말해 주겠다.”
이후로는 짧게 근황을 물은 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서 헤어졌다.
그다음 향한 곳은 곰아저씨의 주점.
“오, 드디어 돌아왔군. 고생 많았다.”
“내가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나?”
“딱히 말할 만한 건 없다. 근데 그건 내 쪽에서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비프론에서 지내는 동안 괜찮았나?”
“나쁘지 않았다. 살기 편한 곳이더군.”
레이븐 때와 마찬가지로 곰아저씨와 간단히 근황 얘기를 나누고서 장소와 시간을 알려 주며 약속을 잡았다.
“이제야 그 돈을 나눠받겠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먼저 받아갔어도 됐을 텐데.”
“아니, 이런 건 확실하게 다 있는 자리에서 해야지 분란이 안 생긴다. 게다가 네가 놀겠다고 못 오던 것도 아니고.”
“이해해 줘서 고맙군. 그럼 난 가보겠다.”
주점에서 나온 뒤엔 조금 고민됐다.
저녁까지 시간은 꽤 남는데 이제 뭘 해야 하려나?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간 때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찾기 어려울뿐더러…….
생존 신고를 해야 할 사람도 있으니까.
“……비요른 얀델.”
이내 도서관에 도착하자 라그나가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흠칫 굳는다.
“오랜만이지?”
나는 씨익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20일 동안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라그나의 입이 열렸다.
“들었습니다. 도시에서 이능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통제를 어기고 미궁에 들어간 죄로 비프론에 유배됐다지요.”
어, 알고 있었구나.
하긴, 원탁에서 들어 보니 정치적인 징계였던 만큼 꽤 유명해진 이야기라고 하니까.
“무사히 돌아온 듯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니?”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사과.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라그나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혹시 도울 수 있을까 집사님에게 여쭤봤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만 해서…….”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
사과는 왜 하는 거고, 집사는 뭔데?
내가 이에 대해서 다시 묻자, 라그나는 말실수를 했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나도 깊이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이에 대해서 말해 줄 리가 없으니까.
‘……일단 자기네 집안 얘기를 하는 거 같긴 한데.’
라그나에 관해 식어가던 관심이 다시금 솟는다.
최소 5등급 이상인 20대의 마법사.
옷과 지팡이에서부터 티가 나는 부자의 향기.
거기에 방금 언급한 집사까지.
사서를 하고 있어서 긴가민가한 적도 있지만, 내가 봤을 때 얘는 영락없는 귀족이다.
하지만…….
‘그것도 좀 이상하단 말이지.’
예전에 호기심이 생겨 알아본 적 있다.
페프로크라는 성을 쓰는 귀족가는 없다.
그렇다면 얘는 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책은 읽고 가실 겁니까?”
“아, 그래. 그럴 생각이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라그나가 화제를 돌렸다.
따라서 나도 그냥 책이나 읽으러 들어갔다.
‘뭐, 기회가 되면 나중에 알게 되겠지.’
얘가 나한테 뭔가 피해를 준 것도 아니지 않나.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가정사를 타인인 내가 파헤치는 것도 좋지 않을 터.
얘가 뭐든 간에 지금 관계도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총해록 시리즈는 오늘도 못 찾았네.’
창문 너머가 어둑해질 때까지 한자리에 앉아 책을 읽던 나는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지난날, 우연히 이곳에서 총해록을 발견한 뒤 가끔 찾아봤지만 역시 이번에도 찾지 못했다.
“가십니까?”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군요.”
이후 여관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나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동안 뭘 했냐고 물었다.
“오늘? 낮잠 좀 자다가, 심심해서 성지에 다녀왔었다.”
“성지에?”
“어린 전사들을 가르치는 건 즐겁다.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 얘는 옛날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이지만…….
뭐, 전투력만은 엄청나게 상승했으니까.
“다음에는 같이 가자. 다들 널 보고 싶어 한다. 벌써 20일이나 안 가지 않았나.”
“그래, 다음에는 같이 가지.”
부족장이 되겠다는 선언을 한 뒤로, 틈틈이 성지에 들려 조기 교육을 행하던 나기에 큰 고민 없이 승낙했다.
부족 내 지지도는 미리 올려 둬야지.
“후후, 어린 전사들이 기뻐하겠군.”
피차 바바리안이었기에 그 정도 대화를 나눴을 땐 이미 식사가 끝나 있었다. 다만 우리는 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식당을 겸하는 1층에 대기했다.
아직 미샤가 돌아오지 않았거든.
‘정말로 뭔가 크게 문제가 생긴 건가?’
밤이 무르익어 갈수록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한 시간쯤 지나자 미샤가 나타났다. 화사한 색을 선호하던 평소와 달리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어? 비요른?”
“미샤다!! 미샤가 돌아왔다!!”
당장에 달려가 미샤를 끌어안는 아이나르.
“앗! 하지 마랑. 그럴 기분 아니니까!”
미샤가 한숨을 내쉬며 아이나르를 떼어냈다.
그리고 내 앞에 와서 앉았다.
“……미안하당. 원래는 앞에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됐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그보다 그쪽은 어떻게 됐나? 아이나르에게 들어 보니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이던데.”
“아, 그거…….”
말꼬리를 흐리며 아이나르를 힐긋 바라보는 미샤.
“아이나르, 너는 올라가서 자라.”
“엑? 어째서?”
“쓰읍.”
“알았다! 자러 가면 되지 않냐!!”
우선 아이나르를 올려보낸 후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본가에서 널 부른 이유는?
“그게…… 오빠 중 한 명이 죽어서 참석해야 했당. 일단 아직 그쪽 집안 사람이긴 하니까.”
“장례 때문이라는 거군.”
걱정과 달리 정말 강제로 데려가고 그런 건 아닌 듯했다.
하지만, 한 가지가 의문이었다.
“좀 이상하군. 이 시기에?”
미궁이 닫힌 직후가 아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장례라니?
도시에서 죽을 만한 사건이 생겼다는 뜻 아닌가.
“이상한 걱정은 하지 마랑. 그 사람, 원래 몸이 안 좋았거든. 맨날 신관을 불러서 치료를 해야 했던 사람이당.”
“계층군주 때 그놈은 아니란 소리군.”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럼 누구냐? 표정이 어두운 걸 보니, 평소에 잘 챙겨줬다는 그 큰 오빠?”
“……아마 너는 모르는 사람일 거당.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어서.”
“그래?”
얘기를 하지 않았단 걸 보면, 똑같이 미샤를 괴롭히고 무시했던 놈 중 하나일 것이다.
하면, 얘는 왜 이렇게 침울한 얼굴인 걸까.
“이제 보니 장례만이 아니라, 거기서 뭔가 또 일이 있었군.”
“……그건 어떻게 알았냥?”
뭘 새삼스럽게.
얼굴만 봐도 훤히 보인다고 하면 화를 낼 거 같아서 살짝 돌려 말했다.
“장례 때문인 거면 아이나르를 보낼 이유도 없지 않나.”
“너는 진짜 왜 이런 데만 눈치가 빠른 거냥?”
“……말이나 해봐라. 무슨 일이 있던 거냐?”
“그게…….”
미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 아니, 그 인간이 또 너를 데려오란당.”
왜 다들 나를 가만히 못 둬서 안달이지?
***
칼스타인의 가주가 나를 보고자 한다.
혹시 서리혼령가락지에 대해서 뭔가 새로운 단서를 얻어낸 건가도 싶지만…….
“아무튼, 그건 그거고. 네가 거기 갈 필요는 없당. 내가 이미 딱 잘라 거절해 뒀거든.”
이미 미샤 선에서 정리가 됐기에 이 문제는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만나고 싶으면 날 시키지 말고 직접 찾아오라 말했다던가?
소식이 없으면 별일 아니었다는 뜻일 터.
‘만약 정말 찾아오면……. 그건 그때 얘기를 듣고 생각해 보자. 괜히 갔다가 귀찮은 일만 생길 거 같으니.’
그럼 이걸로 이번 안건은 마무리.
“아악, 생각할수록 열받는당. 그 인간은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제 장례든 뭐든, 불러도 다시는 안 갈 거당.”
이후로는 다시금 독립에 대한 결의를 불태우는 미샤와 20일간 밀린 얘기나 좀 나누다가 방에 들어가서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정말 오랜만에 다 같이 모였네요. 다들 잘 지냈어요?”
팀 애플 나라크 전원이 한곳에 모였다.
장소는 첫 미팅부터 계속 모임을 해왔던 예의 그 3층짜리 주점.
목표는 아직까지 하지 못한 최종 정산이다.
“그때 듣기는 했지만, 한 번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총 소득이 얼마지?”
“며칠 전에 판매된 ‘여우불꽃 매듭’까지 합쳐서 1억 5천 900만 스톤이에요.”
“놈들에게 받았던 수고비까지 합친 금액인 건가?”
“네. 생각해 봤는데, 결국 그쪽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렸잖아요? 이제 와서 그 전에 수고비로 받은 걸 제몫이라 주장하는 것도 웃기더라고요. 그래서 시험관 값만 제 몫으로 미리 빼뒀어요.”
하긴, 그게 아니었어도 전투 후에 우리 손에 들어왔을 전리품이니까.
‘그래도 의외네. 솔직히 자기 몫이라고 주장할 줄 알았는데.’
얘도 좀 유해진 거 같다.
적어도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아무튼, 여기 최종 결산 내역을 정리해 왔어요. 다들 이걸 보면서 얘기하면 편할 거예요.”
레이븐이 영수증까지 첨부해 만들어 온 서류를 보며 본격적으로 정산을 시작했다.
마석 소득은 균등 분배.
탐험가와 전투 소득도 균등 분배.
다만 도플갱어 숲에서 캤던 약초는 특수 전리품으로 분류해서 레이븐이 40%.
포션은 판매하지 않고 공용 물품으로 구분.
서류로 보기 쉽게 정리된 만큼, 복잡한 정산이 시원시원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3천만 스톤이라…….”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인당 3천만 스톤이라는 거액이 손에 쥐어졌다.
가히 역대급이라 해도 될 만한 소득.
다만 지금부터는 토해낼 시간이었다.
“자, 그럼 개인 획득 전리품 정산만 남았네요. 사실 요즘 시간이 남아서 이것도 대강 정리해 왔어요. 관례대로 평균 시세의 70% 정도로 책정했으니, 사는 것보단 훨씬 저렴할 거예요.”
레이븐이 한 명씩 순차대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칼스타인 씨부터. ‘가속’에 ‘치수 조절’ 마법이 부여된 하프트롤 가죽 장화가 210만. ‘냉기 강화’가 각인된 라이티늄제 목걸이가 270만. 합쳐서 480만이네요. 근데 여기서 칼스타인 씨 몫은 빼야 하니……. 384만 스톤만 내시면 돼요.”
“으으…….”
“아이나르 씨는 확장형 배낭이 150만……. 이게 끝이네요. 120만 스톤만 내세요.”
“크윽.”
“우리크프리트 씨는 아공간 화살통이 210만. 강철제 대형 흉갑이 55만……. 근데 흉갑은 왜 챙긴 거예요?”
“……치수 조절 마법을 부여해서 철웅에게 입혀 줄 거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매번 소환을 할 때마다 입혀 주려면 귀찮을 거 같긴 하지만. 아무튼, 212만 스톤을 내시면 돼요.”
따로 개인 전리품을 택하지 않은 레이븐을 제외한 모두가 군말 없이 정해진 돈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대망의 내 차례가 왔다.
“드디어 얀델 씨네요.”
과연 나는 대체 얼마를 토해내게 될 것인가.
“우선 아이디움제 각반 310만 스톤. No. 8667 황야의 무법자가 330만 스톤.”
“잠깐만, 황야의 무법자는 빼라. 이건 내 개인 전리품이 아니라 팀 공용 물품으로 남겨 둘 생각이니.”
“……팀 공용 물품요?”
“5층의 그놈을 만났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건 아니냐. 그때를 위해서 갖고 있는 게 나을 거 같다.”
“흐음.”
레이븐은 탈세자 보는 국세청 직원처럼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YES’.
“납득할 만한 얘기긴 하네요. 왠지 뭔가 당하는 기분이지만.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죠.”
돈을 굳혔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레이븐이 마지막 내용으로 넘어갔다.
이번 정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그것.
“만티코어의 정수. 그리고 No.2988 수호병단의 징표.”
“······.”
“일단 만티코어 정수의 거래소 평균가는 5천만 스톤 정도지만, 이미 시험관 값은 뺐고 값도 길드 공시가로 계산을 했어요.”
“그래서, 공시가가 얼마지?”
“3,200만 스톤이요.”
니미럴.
그럼 여기서 관례대로 70% 할인을 붙이고, 또 어차피 돈을 낸 다음 내 몫으로 20%를 돌려받을 거니까 5분의 1을 빼면…….
“만티코어 값으로는 1,792만 스톤을 내시면 되겠네요.”
그럼에도 여전히 비싸다.
“……수호병단의 증표는?”
“거래소 평균가로 5천 200만 스톤이요.”
이건 게임 시세랑 크게 달라진 게 없구나.
마찬가지로 할인을 붙이면 최종적으로 2,912만 스톤이라는 값이 나온다.
“그럼 여기에 아이디움제 각반까지 합치면, 총 4,877만 6천 스톤이 되겠네요.”
레이븐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평소에 돈은 좀 모아 두셨어요?”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아이나르를 바라보았다.
“응? 왜 갑자기 나를 보나?”
“아이나르, 내게 빌렸던 돈이 얼마였지……?”
“빼, 뺏어가는 거냐……!!”
아니, 돌려 받는 건데.
***
실로 기록적인 소득을 올린 이번 탐사.
다만, 낼 걸 다 내고 나니 오히려 지금까지 모은 돈을 다 털어내고도 부족했다.
아이나르에게 빌려준 돈을 합쳐도 전부 내기엔 금액이 너무 컸으니까.
물론, 문제는 없었다.
“아이나르, 돈 갚는 김에 좀 더 빌려줘 봐라.”
“으, 응……? 동료끼리는 돈 거래는 하는 게—”
“아, 갚는다고.”
“아, 알았다…!”
“미샤, 너도 좀 빌려주면 좋겠는데.”
“으이구, 얼마나 모자란뎅?”
부족했던 1,300만 스톤은 아이나르와 미샤에게 받은 신용대출로 메웠다.
결과적으로 빚쟁이가 되어 버린 셈.
이거, 대체 언제 갚지?
미궁에서 약탈자라도 만나기를 바라야 하나?
“나는 이제 부자다!!!!”
내게 돈을 빌려주며 의기소침하기도 잠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활비도 없어서 미샤와 내 케어를 받았던 아이나르는 정말이지 돈을 펑펑 쓰면서 다니기 시작했다.
음, 펑펑이라고 하긴 좀 그런가?
아낌없이 군것질을 사먹긴 했지만, 값이 워낙 저렴하기에 아무리 먹어도 눈에 띌 만큼 소비하긴 어려웠다.
“비요른, 이 돈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일단 갖고 있어라. 다음에 돌아와서 장비를 새로 맞출 거니.”
“응.”
“어! 나도! 나도 장비를 새로 맞출 거다!”
“이번 달은 참아라. 몇 개는 제작을 할 건데, 어차피 미궁이 열리기 전까지는 완성이 안 될 거다.”
정산이 늦어진 만큼, 본격적으로 돈을 쓰는 건 다음 달로 미루기로 했다.
모처럼 거금이 들어왔으니, 파츠 한두 개를 맞추더라도 7층까지는 쓸 수 있는 거로 구할 계획이었다.
물론, 거기에만 다 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이 벌었으니 너무 아끼지 말고 하고 싶은 곳에도 써라. 그러려고 번 돈 아니냐.”
“응? 그래도 되, 되는 거냥?”
얘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성장이 중요하긴 하지만 일상 전체를 포기하게 만들 생각은 없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던 모양이군?”
“으응.”
“왜 눈치를 보냐? 네 돈을 네가 쓰는 건데.”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
“……?”
내가 의문의 시선을 보내자 미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이참에 이사 가면 안 되냥?”
“……뭐?”
“이제 돈도 잘 벌겠다, 좀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여기는 요리도 못 하지 않냥. ”
흐음, 어쩐지 우리 눈치를 보더라니.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그러자고 했다.
안 그래도 이 여관이 슬슬 좁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참이었으니까.
게다가, 미샤 밥이 식당 밥보다 훨씬 맛있다.
건강하기도 하고.
“그럼 이사 갈 곳은 차차 알아보기로 하지. 당장은 미궁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
“응!!”
그 이후로는 오래간만의 일상이 이어졌다.
모여서 탐사 계획을 세우고, 다시 로트밀러를 찾아가 중단됐던 길잡이 수업을 받고, 가끔 상업 지구에 들러 구매할 물건이 있는지 체크를 하는 등의 평화로운 시간.
늘 그랬듯 그러한 나날은 쏜살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다들 모였으면 슬슬 출발하지.”
우리는 지난번처럼 곰아저씨의 주점에서 모였다.
「1층 수정동굴에 입장했습니다.」
미궁에 들어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