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36)
536화 레인보우 (3)
우기가 시작된 지 5일 차.
우리는 자력으로 마을을 탈출해 뭍으로 올라왔다.
[그오오오오오-!] [끼예에에에엑!] [……커헝! 컹! 커컹!]예상대로 위는 난장판이라는 말로도 모자랐다.
주변에 몬스터들이 득실거렸고, 몬스터들끼리 싸워대며 피가 튀고 살점이 튀었다.
하지만 우기가 시작되던 첫날과는 명백히 다른 점이 있었다.
콰직-!
여전히 하늘에서 몬스터들이 떨어지는 건 변함없지만.
“……엄청나게 줄었군.”
사실 줄었단 말로도 부족하다.
첫날에 비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니까.
100mm 정도 되던 강수량이 1mm까지 내려간 정도의 차이.
“빌어먹을 촌장 새끼.”
그놈이 이걸 몰랐을 리는 없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도 내게는 말하지 않았던 거겠지.
‘우기가 위험해야, 계속 마을에 의지하게 될 테고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을 테니까.’
새삼 찝찝한 놈이라 생각하고, 제때 마을에서 잘 나왔다고 여기면서도 당장은 머리를 비웠다.
수십 명의 목숨을 책임지는 자리에 선 자로서.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따로 있을 테니까.
‘다행히… 촌장은 안 따라왔고.’
무슨 꿍꿍이를 더 숨긴 건진 몰라도 당장은 신경 쓸 게 크게 줄었다.
따라서…….
“이동 대형으로!”
신속하게 지시를 내린 뒤.
“지금부터 이 섬을 벗어난다!”
명확한 목표를 구성원들에게 제시하며 선두로 향한다.
그리고…….
“베헬—라아아아아아아!!”
방패로 몬스터의 이빨을 막아내고, 망치로 턱주가리를 후려치며 길을 뚫는다.
또한 그와 동시에.
“마법사들은 여유가 되는 만큼 마석을 챙겨라!”
새로운 지시를 하달한다.
그야 아깝잖아?
지천에 마석이 널렸는데, 그냥 두고 지나친다면 탐험가라 볼 수 없다. 뭐, 예전에야 촌장놈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없어졌고 말이지.’
새삼 느끼는 것인데, 역시 망치질은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된다.
어느 관계든 명확하게 바꿔준단 점에서 특히나.
솨아아아아아아-!
마법사들이 연신 루팅 마법을 쓰며 산처럼 쌓인 마석들을 수거한다. 그만큼 몬스터와의 전투에선 기여도가 줄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몬스터가 크게 줄어들었단 변수 덕분에 한결 여유가 있었으니까.
‘이대로면… 아무도 안 죽는 것도 가능할지도.’
최악을 염두에 뒀던 나로서는 몹시도 기쁜 상황.
이후로도 가장 위험한 선두에서 가장 위험한 몬스터와 레슬링을 하며 길을 뚫었다.
그렇게 한 10분쯤 흘렀을까.
「강철의 정령을 처치했습니다. EXP+6」
「바포메트를 처치했습니다.」
「아이니콘을 처치했습니다. EXP+6」
「머드골렘을 처치했습니다.」
「천계나무를 처치했습니다. EXP+5」
「다키온을 처치했……」
「…….」
무분별하게 등장하는 다양한 종의 몬스터들을 해치우고 있자니 아이나르에게서 희소식이 전해졌다.
“오오오!! 영혼이! 영혼이! 충만해진다!!”
슬슬 그 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던 아이나르가 마침내 레벨업을 한 것.
“이로써 나는 한 번 더 강해진 것이다!!”
강해졌다고 하기엔, 당장 영혼력이 상승한 게 끝일 테지만…….
그래도 꽤 유의미한 소식이었다.
히프라마전트의 정수를 먹으며 꽉 찬 정수 자리에 한 칸이 더 생긴 거니까.
‘헥츠 클랜이나 아르민 탐사단 쪽도 실시간으로 레벨업을 하는 거 같고 말이지.’
전체적으로 정수 칸이 +1에서 +2까지 상승한 상황.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저… 남작님! 4등급 정수가 나왔는데…….”
“지금부터 나오는 정수는 아무나 먹어라! 3등급 이하까지는 신경 쓰지 않겠다!”
기껏 정해둔 배분비는 아깝지만, 사실 생각하면 딱히 손해 볼 것도 없었다.
어차피 지금은 시험관에 담을 시간도 없으니까.
조금이라도 전력이 강해지는 건 환영해야 할 일인 것.
“와아아아아아!!”
이 조치는 탐험가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반쯤 남은 물 한 잔을 보고서도 관점이 나뉘듯.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뚫고 나아가는 이 상황을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여기기 시작한 건데…….
‘나쁘지 않아.’
분위기 자체는 긍정적으로 봐도 좋았다.
하지만, 분위기 하나만으로 모든 역경을 넘어설 수만은 없는 법.
[끼요오오오오오-!]저 멀리서 포효를 내지르며 거대한 새 한 마리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음, 새라고 하기엔 그런가?
쿠웅-!
하, 어쩐지 뭔가 술술 풀리더라니.
‘……호락호락하게 보내주진 않겠다 이거지.’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안타깝게도 이전과 변한 건 없었다.
혹시나 내가 잘못 봤으면 좋았겠다 싶었건만.
새하얀 깃털과 활짝 펴진 날개.
드레이크를 연상시키는 몸체에 기린처럼 삐죽 솟아나온 기다란 목.
그리고 그 모가지 끝에 매달린.
사람과 비슷한 이목구비를 지닌 얼굴까지.
워낙 유명한 몬스터다 보니 그 기괴한 모양새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보다 공포가 먼저 앞섰다.
“이, 인면조다……!”
2등급 비행종, 인면조.
섬을 탈출하는 과정에 나타난 첫 번째 고비였다.
***
하늘에서 날아와 지면에 착지한 후.
무표정한 표정으로 우리를 쓱 둘러보던 녀석의 눈꼬리가 기이할 정도로 길게 휘어진다.
[끼히히히히히히.]하, 진짜 [던전 앤 스톤]엔 왜 이렇게 끔찍한 몰골의 몬스터가 많은 건지.
시체골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역겨움이다.
온갖 몬스터들과 실제로 만나고 피 튀기게 싸우며 내성을 쌓은 게 아니라면 저 면상데기를 본 순간 소름이 돋았겠지.
이렇게 곧장 지시도 내리지 못한 채.
“마법사! 보호 결계를 쳐라!”
2등급 이상의 몬스터와 전투 경험이 있는 탐험가는 이 도시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나 나는 저런 놈들을 수없이 잡아왔다.
비록 그게 게임 내의 이야기일지라도.
마주한 순간 곧장 판단을 내릴 경험은 되어주는 셈.
후우우웅-!
이내 마법사들이 반투명한 보호막을 우산처럼 머리 위에 편 순간.
인면조의 눈 흰자위 부분이 검게 물든다.
그리고…….
「인면조가 [종말의 노래]를 시전했습니다.」
하늘에서 샛노란 빛기둥이 떨어진다.
그것도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콰쾅! 콰콰콰아앙! 콰아아아앙-!
마치 하늘이 노해서 심판을 하듯, 10초가량 떨어져 내리며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빛기둥.
이펙트에 비해 대미지 자체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서 결계를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끼히히히히히-!]빛기둥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끼 인면조들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일종의 토큰형 소환 몬스터인데…….
“뭣들 하나! 저것들 먼저 해치워라!”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저 새끼 인면조들은 1분이 지나면 완전히 성장해 스킬을 써대거든.
이론상 무한 증식이 가능하다고 해야 하나?
저 새끼들이 [종말의 노래]를 써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진짜 답이 없어진—.
“얀델, 지시를 내려라!”
아, 그래 혼자 생각할 때가 아니지.
“에르웬…….”
습관처럼 에르웬부터 호출하려 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야 지금 얘는 리타이어 상태거든.
마을을 벗어나느라 MP를 전부 썼기에 지금 당장 전투에는 어떠한 개입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 에르웬한테만 의지했다고.’
잇몸이 없으면 턱뼈로라도 씹는 게 바바리안의 정신.
“에밀리, 미샤! 너희 둘은 나를 따라와라! 아이나르, 너는 본대를 지키고… 베르실! 후방 지원은 네가 전부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해라!”
그리 말하며 앞으로 대시하자 아멜리아와 미샤가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왔다.
아멜리아는 오른쪽, 미샤는 왼쪽이었다.
‘어, 잠깐만.’
이 위치는……?
“얀델, 미리 말해두마.”
“…응?”
“또 그짓을 하려 든다면… 기필코 죽이겠다.”
쩝,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럴 일 없다.”
“나는… 괜찮은데…….”
미샤의 허락이야 어쨌든, 한쪽이 저리 몸서리를 치며 거절하는 이상 강제로 합체를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얘는 히프라마전트처럼 무지막지하게 큰 사이즈도 아닌 터라 명분도 부족하고.
쿠웅-!
[초월]과 연계해 [거대화]를 한 상태를 기준으로, 딱 눈높이가 비슷하게 오는 사이즈.첫눈에 반한 것처럼 나만 빤히 보는 걸 보면 일단 어그로는 잘 잡힌 거 같으니…….
“베헬—라아아아아아아!”
그대로 달려가 실드 차지를 꽂아넣는다.
[키야아아아악-!]체중을 실은 몸통박치기에 휘청이는 인면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미샤와 아멜리아가 양옆으로 흩어져 산개하며 하체 위주로 공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번뜩-!
검게 물든 인면조의 눈에서 빛이 터져 나온다.
「인면조가 [파멸의 각인]을 시전했습니다.」
그래, 역시 나한테 박을 줄 알았지.
화르륵-!
이내 심장부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든다.
「캐릭터의 생명력이 초당 1%씩 감소합니다.」
자, 그럼 이론상 100초가 지나면 죽는 건가?
‘다시 생각해도 골때리는 스킬이란 말이지.’
[파멸의 각인].단일 타겟형 ‘저주’에 속하는 이 스킬은 회피와 방어가 불가능하다.
한데 지속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한번 맞으면 저놈이 뒈지거나 내가 뒈지거나 할 때까지 저주가 지속된다는 뜻인데…….
공략 방법은 몹시 간단하다.
“으아아아아아아!!”
자연 재생력과 신관의 케어를 받으며 그저 버텨내는 것.
“얀델! 괜찮나?”
“난 신경 쓰지 말고 칼이나 휘둘러라!”
애당초 인면조 자체가 장기전으로 가서는 이길 수가 없도록 설계가 된 몬스터.
따라서 어그로만 받아주며 딜러들이 공격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애썼고, 머지않아 근딜 라인만이 아니라 원거리 딜러들도 참전하며 집중 포격을 가했다.
[끼히히히히……!]이내 공방이 길어지자 인면조도 다른 스킬들을 연달아 사용했다.
「인면조가 [의태]를 시전했습니다.」
거대한 몸뚱이에 달린 거대한 사람 얼굴이, 순식간에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변한다.
원래 보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컸지만 그 얼굴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오! 에밀리다! 괴물이 에밀리가 됐다!”
[의태].반경 내에 위치한 캐릭터 중 한 명의 스킬을 무작위로 시전하는 그 스킬.
「인면조가 [자가복제]를 시전했습니다.」
이런 씹…….
‘하필 가져가도 저 스킬을 가져가냐.’
“오! 에밀리가 둘… 아니, 셋인가!!!”
어쩌다보니 보스몹이 둘로 늘어난 상황.
그 와중에 분신체가 새롭게 스킬을 시전했다.
「인면조가 [종말의 노래]를 시전했습니다.」
빛기둥이 한 번 더 떨어지고.
「인면조가 [파멸의 각인]을 시전했습니다.」
「캐릭터의 생명력이 초당 2%씩 감소합니다.」
후, 벌써 이것도 2중첩이네.
신관이 버텨주려나?
무의미한 고민이었다.
‘안 좋은 소식은 왜 항상 연달아 찾아오는 건지.’
「인면조가 [종말의 노래]를 시전했습니다.」
이내 기어코 성장한 새끼 인면조 하나가 스킬을 시전했다.
그리고 이로써.
「인면조가 [파멸의 각인]을 시전했습니다.」
「캐릭터의 생명력이 초당 3%씩 감소합니다.」
3중첩이 되었다.
하… 이 상태면 신관으로는 100% 커버가 안 될 텐데.
상황이 골치 아파졌다 싶지만, [파멸의 각인]에 걸린 이상 도주는 불가능하다.
결국 답은 하나뿐.
“뒈져라, 이제 좀!!”
자랑스러운 K-바바리안으로서 이순신 장군님의 신념을 본받으며 죽기 살기로 놈에게 달려든다.
「캐릭터의 생명력이 50% 이하입니다.」
「패시브 스킬 [영웅의 길]로 인해 모든 저항력 및 내성 수치가 상승합니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더욱더 격렬하게.
「인면조가 [길라잡이]를 시전했습니다.」
「인면조가 [수호령]을 시전했습니다.」
전투가 치열해질수록 인면조 역시 미친듯이 날뛰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캐릭터의 생명력이 20% 이하입니다.」
「패시브 스킬 [영웅의 길]로 인해 모든 저항력 및 내성 수치의 상승량이 최대치에 도달합니다.」
이제 어느 쪽이 이기든 승부가 나겠구나 직감한 그때.
쿠웅-!
네 가지 소식이 추가됐다.
결론만 말하자면 좋은 소식 두 가지와 나쁜 소식 두 가지였는데…….
일단 좋은 소식부터 정리하자면 아주 간결하다.
「인면조를 처치했습니다 +EXP 8」
하나, 마침내 인면조가 죽었다.
그리고…….
「No.9999 초심자의 행운이 발동했습니다.」
둘, 정수까지도 드롭이 됐다.
참고로 정수의 색은 하얀색.
‘[의태]네.’
[종말의 노래]처럼 코어 정수 삼아서 강화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범용성이 크다보니 나름 괜찮은 정수였다.다만 여기서 나쁜 소식은…….
“뭐, 뭐야!”
“창……? 갑자기 창이 왜…….”
인면조 막타를 친 게 우리가 아니라는 점일까.
쿠웅-!
이내 어둠 속에서 나타난 무언가가 인면조의 머리통을 꿰뚫고 바닥에 꽂힌 거대한 창을 쥐었다.
정체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약 3m 가량 되는 작은(?) 체구.
조각상처럼 매끈한 바위색의 피부를 가진 인간 모습의 외형.
“타이타누스……! 타이타누스다!”
이번에도 2등급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것.
그게 첫 번째 나쁜 소식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니미럴.’
타이타누스가 쥐고 있는 붉은색의 창이었다.
No.7 밀라옐의 신록거창.
‘저걸… 저 새끼가 들고 있다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래도 머리는 차분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였다.
「필멸자를 발견한 천계의 창지기, 밀라옐이 크게 분노합니다.」
균열 수호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