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95)
595화 RPG (3)
대부분의 균열들은 챕터가 나뉘어져 있다.
1챕터, 2챕터, 3챕터, 4챕터…….
보통 4, 5챕터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으나, 간혹 7챕터 이상까지 가는 균열도 존재한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조금 전에 도시 디펜스가 1챕터였다 이거지.’
내가 용병 비요른 얀델로 눈 떠 마물들과 싸운 것도 1챕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도플갱어 숲이랑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나.’
4층 균열 도플갱어 숲.
당시 우리는 입장하자마자 철창에 갇혔고, 다른 두 개의 팀이 균열에 들어온 후에야 벗어나 1챕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세 개의 팀이 각자의 스타트 포인트에서 1챕터를 진행한 뒤 2챕터에서 합류하는 방식이었는데…….
지금 들어온 미궁이 딱 그런 타입에 속한다.
“저는 시골 마을 같은 곳에서 시작했어요. 한창 군대가 쳐들어오는 중이었죠.”
에르웬이 겪은 1챕터의 내용은 나와 달랐다.
시작하자마자 전장이었던 건 같지만, 나처럼 무쌍을 찍고 클리어 하는 챕터는 아니었다.
“평소 상태에서 10분의 1…….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약해졌을지도 몰라요.”
시작부터 미친 수준의 디버프를 달고 있던 에르웬은 주변 NPC의 도움을 받아 마을을 탈출하는 데 겨우 성공했다.
그리고…….
“뒷산을 무작정 막 오르고 있는데 마물들이 계속 나타나더라고요. 이상한 게 절 따라오던 병사들은 공격하는데, 저는 공격하지 않았어요.”
다행히도 무작정 디버프만 때려박힌 건 아닌 듯하다.
“아무튼, 그렇게 추적 속에서 산을 헤매던 중에 도착한 게 이 동굴이에요. 일단 들어와서 몸을 숨겼는데……. 결국 얼마 안 가 기사 한 명이 저를 발견했어요.”
“잠깐만, 혹시 기사나 병사들 가슴에 이런 문양이 새겨져 있었나?”
대화를 더 이어가기 전에 제국 문양을 그려서 보여 주니 에르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거였어요!”
하, 진짜 제국 이 새끼들은 안 끼는데가 없네.
“알았다. 그럼 계속 얘기해봐라. 기사가 널 발견했고 그다음엔?”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는데, 저를 해치러 온 게 아니니 안심하라고 하더라고요?”
기사는 스스로를 오빠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나침반 하나를 주며 이것을 갖고 동굴을 통과하면 오빠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본인이 같이 따라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며칠만 기다리면 사람을 구해다 주겠다고 말했어요.”
여기까지가 에르웬이 겪은 1챕터의 전부였다.
기사가 말을 끝마친 순간,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눈앞이 깜깜하게 변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죄, 죄송해요.”
“아니다. 뭔지 모르겠으면 일단 칼부터 쑤셔박는 게 맞지.”
“어… 그, 그런가요?”
“잘했다.”
그리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에르웬이 싱긋 웃었다. 무의식 중에 나온 행동이었는데, 저 어린 외모 때문인지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마치 어린애한테 못된 걸 알려 주는 바바리안 아저씨가 된 것만 같은 기분.
“…아무튼, 그럼 그 기사한테 받았다는 나침반을 한번 보여 주겠나?”
“여기요.”
이후로는 에르웬에게 나침반을 넘겨받았다.
‘이 방향으로 쭉 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출발을 하기 전에 에르웬의 상태부터 점검했다.
‘일단 장비는 싹 털린 상태고…….’
악마분쇄자와 아이기스의 장벽 등, 원래 보유한 아이템을 전부 갖고 온 나와 다르게 에르웬은 맨몸인 상태였다.
또한…….
“정수랑 정령은 그대로 쓸 수 있지만……. 평소와 같은 힘은 발휘하기 어려워요.”
MP가 턱없이 부족하고, 그 결과값도 보통 상태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기대해 볼 만한 게 [혼돈회로]였지만, 아직 에르웬도 확인은 해보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반동이 오면 큰일나겠다 싶어서요. 어떻게든 조절을 해가며 도망쳤어요.”
보유한 모든 자원을 소모 시 발동되는 [혼돈회로].
이게 활성화되면 1분간 MP 무한 상태로 변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집중사격]과 정령왕을 소환해 딜을 때려박으면 1분간은 엄청난 화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 봐야 풀차징 기준으로도 평소의 10%밖에 안 되겠지만.’
MP와 별개로 스탯이 낮으면 계수도 낮아져 같은 시간 차징을 해도 딜에서 차이가 나는 것.
물론 그래도 어지간한 원거리 딜러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이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아껴두는 게 맞을 거 같고…….’
이후로도 여러 실험을 해본 결과 ‘몬스터에게 선공을 받지 않는다’라는 특징 말고도 하나 더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으, 읏……!”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단순히 스탯이 떨어지며 자연 재생 수치도 함께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야 포션은 스탯과 전혀 다르게 적용되니까.
치이이이익-!
포션을 부었다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느릿하게 재생되는 피부.
‘이건 좀 곤란한데…….’
만약 이 상태에서 안 좋은 부위에 칼침을 맞거나 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에르웬, 너는 앞으로 전투는 절대 금지다. 알겠나?”
“…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줄 테니, 나만 믿고 얌전히 따라오기만 하라는 뜻이다.”
“아……! 네!”
자, 그럼 2챕터도 한번 시작해볼까.
***
터벅, 터벅.
결계로 틀어막힌 동굴 입구에서 벗어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동굴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동굴 입구에서부터 생각하던 것인데…….
“아저씨, 여기 아무래도…….”
“1층 수정동굴이랑 비슷하다는 말이냐?”
“네.”
물론, 차이점은 있다.
이 동굴에는 몬스터가 일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편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물론 몸만 그렇다 뿐이지, 마음은 이 순간에도 한없이 불편했지만 말이다.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불안해 미치겠네…….’
심지어 무자극한 시간이 이어지다보니 암만 방심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레 신경이 무뎌진다.
실제로 걸으면서도 계속 딴생각이 나는 중이고.
‘이상하단 말이지…….’
나는 로트밀러에게서 탐색꾼 수업을 받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스피드런에 진심이던 녀석이 가장 많이 연구한 곳은 1층 수정동굴이었고, 그런 지식을 넘겨받은 덕에 나도 수정동굴 관련해선 빠싹하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벽만 만져봐도 미세한 차이를 알아채며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미궁이랑은 지형이 좀 다른 건가?’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망자의 땅 근처로 추정이 된다.
하지만 에르웬은 말했다.
자신은 망자의 땅이 아니라 멀쩡한 마을에서 시작했다고.
하면, 이게 어디서 파생된 변화일까.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그 마을이 망자의 땅으로 변하는 건가?’
음, 아예 말도 안 되는 가설은 아닌 거 같다.
망자의 땅이 지닌 특징 중 하나가 질척거리는 흑색 대지에 파묻힌 석조 건축물 잔해였으니까.
“…고민이군.”
“네?”
“나침반이 가리키는 장소는 수정동굴 기준으로 서쪽, 바위사막이 있는 장소다.”
“네, 그런데요?”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에르웬.
필시 이게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 궁금해져서. 다른 곳은 어떨지.”
왠지 1챕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출구를 찾는 순간 다음 챕터로 넘어가게 될 것만 같다. 그렇게 되면 영영 2챕터의 구조는 확인할 수 없게 될 테고.
“저기… 다른 곳이라면?”
“중심부에 뭔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쪽 출구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도 궁금하고.”
“하긴… 아저씨는 원래 탐구심이 강하셨죠?”
탐구심이라기 보다는 탐욕에 가깝다.
거기에 무슨 보상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잖아?
1챕터에서도 정보 수집 목적이 아니었다면 온갖 장소를 수색하고 다녔을 거다.
“음, 그럼 그냥 가보면 되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거기에 아무것도 없으면 시간만 날린 게 될 거 아니냐.”
“탐사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어… 그건 그렇지.”
사실상 이미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린 상태였던 나는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동굴의 중심부로 향했다.
“여기가 거기라고요? 원래 기념비가 있어야 하는…….”
동굴의 최중심부.
원래는 가브릴리우스의 기념비가 있어야 하며, 순례자의 동굴에서는 마녀 제단이 위치했던 바로 그 장소.
“일단 지형을 보면 알맞게 찾아온 거 같은데, 아무것도 없군.”
쩝, 허탕이었나?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아쉬우니 조금만 수색을 해—.”
“저… 아저씨?”
그때 돌연 에르웬이 움찔하며 나를 불러세웠다.
“뭔가… 이상한 게 느껴져요.”
“느껴진다고?”
“다가오고 있어요……! 저기서!”
그리 말한 에르웬이 가리킨 곳은 벽이 있는 방향이었다.
다만 나는 정보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라. 어서!”
에르웬을 내 뒤로 보낸 뒤, 전투 태세를 갖춘 뒤 벽을 응시한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무언가 폭풍처럼 나타나지 않을까 싶던 내 예상과 다르게.
뾱-
벽면에서 반투명한 괴생명체가 찔끔 얼굴을 내밀더니 다소곳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이내 녀석과 눈이 마주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햄식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
검은 눈, 쫑긋거리는 귀.
적당히 삐죽 튀어나온 턱과 앞니.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베이지색 털과 오동통한 핑크색 뱃살.
그리고 앙증맞은 앞발까지.
겉모습은 누가 봐도 햄식이다.
하지만…….
말투나 목소리에서 풍겨져 나오는 위압감이 헷갈리게 만든다.
[그래, 필멸자들이 감히 나에게 그런 하찮은 이름을 붙인 것인가…….]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살기.
이를 감지한 즉시 나는 인정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햄식이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걸.
“…너는 누구지?”
[너 따위에게는 질문이 허락되지 않았노라.]내 질문을 받은 햄식이는 차갑게 쳐내더니 에르웬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인간 소녀야, 너는 네가 가진 운명을 아느냐?]“저기… 누구세요?”
에르웬의 질문을 받은 햄식이는 내가 물었던 것과 다르게 좀 더 친절히 답해줬다.
[나는 너를 도울 수도, 해할 수도 있는 존재다.]“……?”
[가여운 것.]에르웬을 내려보던 햄식이가 완전히 벽에서 빠져나와 걸어왔다.
위엄에 찬 눈빛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나, 뚜벅거리는 폼이 영락없는 햄식이었다.
생체 구조의 한계인가?
나도 모르게 열심히 고민해보던 그때, 햄식이가 중후한 목소리로 중요한 정보를 뱉었다.
[인간 소녀야, 네가 추격자들에게 붙잡히는 순간 끔찍한 재앙이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하지만요?”
[이곳에서 내게 죽는다면 세계는 유지되겠지.]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는 듯 말했으나, 지금 햄식이의 눈을 본다면 어느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녀석이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인지.
‘니미럴.’
뭐라도 얻을 게 없나 해서 왔더니 히든 보스가 툭 튀어나올 줄이야.
[네게는 죄가 없다. 나를 원망하여도 좋—.]뭐라 중얼거리는 햄식이의 말은 중간에 끊었다.
더 들을 이유가 없었다.
저 녀석이 기억을 잃기 전의 햄식이인지, 아니면 햄식이의 엄마아빠 중 하나인지도 중요치 않다.
휘이익-!
나는 망치를 휙휙 돌리며 앞을 가로막았다.
“거, 귀여운 얼굴로 폼 좀 그만 잡지?”
[귀, 귀여워… 내가?]햄식이는 모멸감을 느낀 듯 부들부들 떨었다.
[삐이-!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무엄하도다—!]그렇게 히든보스전이 시작됐다.
***
결론만 말하자면, 햄식이는 강했다.
한 3등급 몬스터 정도로.
아마 3등급 중에서도 중위권은 충분히 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삐이—! 놓아라! 놓으란 말이다……!]햄식이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내구도와 재생력은 높지만 캐스팅 시간이 길고, 스킬 하나하나가 넓은 범위를 지닌 대신 단일 딜은 낮았다.
소위 말하는 ‘양학’에 특화된 스킬셋을 갖고 있었던 것인데…….
‘방패바바였으면 딜이 부족했을지도.’
용병으로 전직하며 망치바바가 된 덕분에 놈의 방어기제를 전부 다 뚫고서 제압하는 게 가능했다.
아, 물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엔 에르웬의 활약이 가장 컸다.
저 미친 디버프를 받은 상태에서도 [혼돈회로]를 활용하면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
‘어찌 된 게 저 상태에서도 나보다 딜이 더 잘 나오는 건지…….’
“…아저씨! 괜찮으세요!”
성공적으로 제압이 끝나자 에르웬이 헐레벌떡 내게 뛰어온다.
방어 수치가 낮아진 탓에 몸이 말이 아니었다.
하나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싸운 덕분에 알아낼 수 있던 게 있었다.
“괜찮다. 심각한 상처는 없으니.”
자세히 말하자면, 심각한 상처는 벌써 어느 정도 아물었다. 어찌 된 게 어느 정도 아물자마자 회복 속도가 확 낮아지긴 했지만.
‘다치면 다칠수록 재생 수치가 증가하는 매커니즘인가.’
아무래도 내가 걸린 상태 이상은 단지 공격력이 올라가고 방어력만 내려가는 게 아닌 듯하다.
‘이런 매커니즘이면 [영웅의 길]이랑도 궁합이 잘 맞네.’
아무튼, 당장 신경 쓸 건 자가 피드백이 아니다.
“햄식아.”
“햄식아.”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거냐, 필멸자여!]“이건 뭐냐?”
내가 자그마한 구슬 하나를 꺼내자 햄식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 그걸 네가 어떻게—!]어떻게 갖기는.
아까 잠깐 기절했을 때 뱃주머니를 뒤져보니까 바로 나오던데.
“됐고, 묻는 말에나 답해라. 이게 뭐냐?”
[…….]거, 나는 미란다의 원칙 같은 거 고지한 적이 없는데.
“계속 말 안 할 거면, 이건 그냥 내가 갖는다?”
신사적으로 동의를 구했으나, 이번에도 햄식이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아끼는 물건이었던 건가?
“대답.”
[…….]“안 해?”
억울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원래 주려고 했는데…….]너무나도 억울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시험을 해본 뒤, 헛되이 죽을 거 같지는 않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 주려고 했던 건데……!]뭐야 이거.
산전수전을 모두 겪어본 게이머로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대체 내가 왜 이런 치욕을……!]…설마 그냥 때려 잡는 게 아니었던 건가?
Any updates? I know it’s on a break but still some more chapters r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