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85)
85화 마르토앙 남작 (1)
하수도를 빠져나왔을 때.
날 반긴 것은 어느새 저문 하늘과 익숙한 두 명의 얼굴이었다.
“비요른 님! 무사하셨군요!”
“샤빈? 네가 왜 여기 있지?”
“왜 여기 있냐니요! 몇 시간이 지나도 의뢰 보고를 하러 오지 않으시니까 걱정돼서 왔죠!”
음, 그렇구나.
직접 찾으러 와 줬다니 고마운 마음도 든다.
근데…….
“둘이서?”
우리에게 정말 뭔가 일이 생긴 거라면, 날이 밝고서 다른 탐험가를 보내는 게 합리적인 판단 아닌가?
행정청 사무직과 도서관 사서로 이뤄진 파티를 직접 꾸릴 게 아니라.
“뭐예요! 그 눈빛은? 라그나가 얼마나 실력 있는 마법사인데요!”
그제야 나는 함께 온 사서의 면면을 확인했다.
확실히 도서관에서 봤던 모습과는 행색부터가 달랐다.
“흐음.”
광택이 나는 로브.
허리띠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스크롤과 물약.
그리고 손에는 상당히 비싸 보이는 마법봉을 쥐고 있다.
얼마나 실력이 좋은진 모르겠고, 일반적인 사서 월급으로는 엄두도 못 낼 장비임은 확실하다.
얘, 사실 부자였던 건가?
“비요른, 이분들은 누구냥?”
“샤빈 에무어. 이번 의뢰를 내게 맡긴 행정청 직원이다. 그리고 이쪽은… 라그나 리타니엘 페프로크.”
“리타니엘이 아니라 리타니옐이요!”
“아무튼 내가 다니던 도서관의 사서다.”
“헤엥, 그렇구낭.”
미샤를 필두로 나머지도 간략하게 소개를 해 준 뒤, 나는 형식적인 말을 뱉었다.
“이 밤에 여기까지 오게 하다니, 미안하게 됐군.”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맙다고 하지. 네가 여기까지 와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감사 인사는 샤빈에게 하세요. 저는 억지에 휘말렸을 뿐이니까.”
사서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휙 돌린다.
왜 오늘따라 더 쌀쌀맞은 거 같지?
기분 탓인가 싶던 차, 샤빈이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라그나, 억지에 휘말리긴요? 자기도 엄청 걱정했으면서.”
“거, 걱정?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하수도 길이 복잡하니 길을 잃은 걸지도 모른다고 했잖아요?”
“샤빈, 날조는 그만두세요. 그건 단지 가능성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별일 아닐 거라는 의미로요.”
“흐음, 그랬던가?”
곤란해하는 사서를 보며 샤빈이 씨익 미소 짓는다. 그것만으로도 이 둘이 어떤 관계인지 대충 알 거 같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겠지만.
“잡담은 이만하고, 의뢰 보고를 하겠다.”
오늘이 끝나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 쉬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
하수도 순찰 결과는 간단했다.
부랑자 1인 발견 및 사살, 그 외 이상 없음.
영상기록구가 박살 난 탓에 의뢰를 제대로 마쳤단 증거는 없지만…….
신분패를 챙겨 둔 게 도움이 되었다.
“한스 마르콤. 기억에 있습니다. 강도살인으로 수배되었다가 도주 중인 범죄자네요. 의뢰비에 추가 수당까지 해서 18만 스톤입니다. 내일 행정청에 방문해 주시면 바로 지급해 드릴게요.”
“영상기록구를 부순 건 물어내지 않아도 되는 건가?”
“그건… 제가 위에다 잘 말해서 해결해 보려고요. 아마 위에서도 괜찮다고 해 주실 거예요. 이번에 워낙 특수한 일을 겪으셨잖아요?”
“특수한 일이라…….”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런 부분까지 배려해 줄지는 몰랐다.
다만, 행정청이 길드와 달리 유연한 단체라서 그랬다기보다는, 샤빈이 내게 호의를 베풀어 줬다고 보는 게 맞겠지.
“황혼에 뜬 별이 우릴 인도할지니…….”
잠시 기다리자 샤빈이 연락을 보낸 신전에서 사람이 왔다.
일반 신관은 아니고…….
무시무시한 대검을 등에 달고 다니는 성기사였다. 그는 우리가 보여 준 시신을 요목조목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변절자 엘리사 베헨크가 맞군요. 본 교단에서는 이 공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목소리는 오만한 기색 없이 친절하며, 우리에 대한 존중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잊지 않겠다니?
이건 좀 두루뭉술하지 않은가.
“공이라면, 포상금을 말하는 건가?”
가식을 모르는 바바리안답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성기사는 사람 좋게 웃을 뿐이었다.
“오해가 있으시군요. 현상금은 탐험가 길드에서 내건 것입니다.”
“너희에게 넘기면 돈은 받을 수 없단 뜻인가?”
“하하,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길드로 공문을 보낼 테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군.”
거, 사람 멋쩍어지게.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저기, 성기사님? 아까 그 여자랑 싸우다가 기억을 잃는 일이 있었는데… 혹시 다른 이상이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있을깡?”
“물론입니다.”
이후 성기사가 한 명 한 명에게 [상급 정화]를 써주고서 떠났다. 어서 이 시신을 신전으로 데려가야 한다던가?
“저희도 이만 가 볼게요. 내일 쓸 보고서가 많을 거 같은데, 일찍 자기라도 해야죠.”
샤빈과 사서도 매한가지였다.
시간이 늦은 만큼 용무가 끝나는 대로 발길을 돌려 사라졌다.
음, 그럼 이제 당장 할 일은 다 끝마친 건가?
“포상금 관련해서는 내일 다시 만나서 얘기하는 거로 하지.”
“으, 드디어 돌아가는 거냥!”
“미궁에 다녀왔을 때보다 더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거 같구먼! 하하핫!”
우리도 이만 해산하고 각자의 숙소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오후 열한 시 반.
당장에라도 쉬고 싶지만, 욕실부터 들어가 한참 동안 몸을 박박 문대며 오물을 씻어냈다.
그러고 나서야 침대에 누우니 실감이 났다.
‘힘든 하루였군.’
왜 15만 스톤짜리 의뢰를 하러 갔다 와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진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살아서 돌아왔다.
***
다음 날 아침, 모두 모여 포상금을 받으러 길드에 방문했다.
다행히 성기사 아저씨가 일을 빨리 처리해 줬는지, 신분패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수령할 수 있었다.
참고로 그 금액은 무려…….
“천만 스톤이라니, 믿기지 않는군. 하하핫!”
다섯으로 나눠도 200만 스톤이나 되는 거액.
아침에 만났을 때만 해도 아직 하수도 냄새가 안 빠졌다며 투덜대던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인제 보니 비요른, 자네가 복덩이였구먼? 왠지 자네를 만나고서부터 돈이 그냥 하늘에서 쏟아지는 느낌일세!”
그래, 넌 그런 기분이겠지.
사이코패스 년한테 머리통이 터졌던 건 나였으니까.
로트밀러마저 한마디를 덧붙였다.
“……미신은 믿지 않지만, 이쯤 되면 믿을 수밖에 없겠군. 비요른, 자네의 여정에는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는 게 분명하네.”
칭찬의 말이라는 건 알겠는데, 듣는 입장에선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내가 개처럼 구르며 고생해 쟁취한 것이 왜 본 적도 없는 여신님 덕분이 된단 말인가.
“그럼 나는 이만 가 보지.”
“응? 어딜 가나? 술이라도 한잔해야지?”
“행정청에도 다녀와야 한다.”
“아, 의뢰비를 받으러 오라 했었지. 우리끼리 마실 테니 그러면 잘 다녀오게나.”
음, 빈말로라도 같이 가 준단 말은 안 하는구나.
“비요른! 내가 같이 가줄깡?”
“됐다, 어제 고생했는데 너는 쉬고 있어라.”
“으음, 알았당.”
포상금 분배를 마친 뒤, 그대로 행정청으로 향했다.
서울역 구청사를 연상시키는 5층 건물.
계단을 타고 올라가 3층 시설관리부로 향하니 어렵지 않게 샤빈을 만날 수 있었다.
“비요른 님! 오셨군요!”
늘 그랬듯 제복 형태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샤빈. 다만 다들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인지 딱히 튀는 느낌은 없다.
아니, 오히려 내가 튀려나?
“헤에, 저 사람이 그 작은 발칸?”
“그 이능을 쓰면 엄청나게 커진다던데…….”
“다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어머어머, 망측해라아…….”
여초 직장이었던 걸까?
시설관리부에 들어서자마자 호들갑스러운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흡사 철창 속 원숭이가 된 듯한 기분.
어서 용무만 마치고 떠나기로 했다.
“자, 여기 지급 확인서에 서명만 해주시면 돼요. 등록된 서명이 없으시면 그냥 이름만 써넣으셔도 되고요.”
“그러지.”
이내 돈을 지급받고 서류에 서명까지 마쳤다.
한데 등 돌려 떠나려는 차, 샤빈이 떠나려는 나를 붙잡고 한 가지 말을 해 온다.
“아! 맞다! 시간이 나시면 도서관에도 한번 들려주세요.”
“도서관?”
“라그나, 그 아이가 기특하게도 비요른 님을 위해 뭔가 준비했다지 뭐예요?”
걔가 그랬다고?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니, 어느 정도 걸러 들으면 될 듯싶지만…….
“알겠다. 시간이 나는 대로 들르지.”
“네! 꼭이에요 꼭!”
용건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이니 한번 들르긴 해야겠다.
***
행정청을 나선 뒤, 일행이 있는 술집으로 돌아왔다.
더 볼 것도 없이 개판이었다.
아직 대낮이니 조금은 자제할 줄 알았건만.
“아니, 사실이래도? 흐하하하하핫!”
“거짓말 마라, 난쟁이노망! 어떻게 사람 이름이 딕 존슨… 냐핫! 냐하하하하핫!”
난쟁이놈과 미샤는 잔뜩 취해 대화를 나누며 대소하고 있었고, 드왈키는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서 혼자 낄낄거리는 중이었다.
“크크, 나는, 위대한 마법사 리올 워브 드왈키…….”
그 꼴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로트밀러가 점잖게 나를 반겨 주었다.
“아, 자네도 왔나? 어때, 별일은 없었고?”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질문 같은데. 왜 벌써 이 모양인 거지?”
“이번에 쉽게 큰돈을 벌지 않았던가? 다들 기분이 좋았던 모양일세.”
“……그렇군.”
나는 그리 답하며 미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쥐고 있던 맥주잔을 뺏은 뒤,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다.
“아악! 누, 누구……! 비요른? 언제 왔냥?”
“방금 왔다. 그리고 그만 마셔라.”
“…이익! 네가 우리 아빠냥?”
질색하는 눈빛으로 날 보며 반항하는 미샤.
더 기어오르기 전에 뭐라 한마디 해주려는데 미샤가 대뜸 웃음을 터트린다.
“아! 맞다! 우리 아빠는 이런 거 신경도 안 쓰지? 냐하하하핫!”
……얘, 진짜 오늘 상태가 안 좋구나.
후, 오늘은 나도 그냥 좀 쉴라 그랬는데.
“됐고, 심심하면 이거나 마시고 있어라.”
“알았당.”
더 취하게 놔둘 순 없기에 토마토 주스를 주문해서 미샤의 입에 물려준 뒤 옆자리에 앉았다.
난쟁이놈이야 알 바 아니지만, 얘가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하면 내가 데려다줘야 한다.
같은 방향이 나밖에 없거든.
“흐하핫! 자네 둘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 뭔가 있어! 뭔가 있단 말일세!!”
“헛소리 말고 취했으면 물이나 마셔라.”
“크하핫, 자네도 아직 어리긴 어리군. 자네한텐 이게 맥주로 보이나? 내겐 그냥 물일세! 물!”
“……알아서 해라.”
난쟁이놈에게선 신경을 끄기로 하며, 음식을 몇 가지 시켜 허기부터 채웠다.
그러고 있자니 술이 좀 깼는지 미샤가 옆에서 꼼지락거리며 날 빤히 바라본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있당!”
기다렸다는 듯 돌아오는 대답.
뭔가 불안해졌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봐라.”
미샤가 취기로 달아오른 뺨을 두어번 치더니 호흡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너를 한번 데려오—”
“오! 이게 누구신가! 얀델의 아들 비요른이 아닌가!”
“응? 저 사람은 누구냥?”
미샤의 말을 끊으며 큰 목소리로 날 불러온 사내.
기억에 있는 자였다.
“넌…….”
“그새 이름을 까먹었나? 한스일세! 한스 호지!”
“……그랬지.”
이름은 바로 떠올랐는데, 순서가 헷갈렸다.
마른 멸치 몸매에 주근깨가 특징인 이 녀석의 한스 코드는 B.
참고로 아이나르가 파티를 떠났을 때 술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동료를 구하려면 길드에 가보라고 조언도 해 줬었지.
‘근데, 이 새끼가 나한테 무슨 용무지?’
그때 이후로 많은 한스들과 조우해서 그럴까?
이놈이 말을 걸어오자마자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왠지, 좆같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달까.
“앉아도 되나?”
“아니, 너와는 할 말이 없다.”
“흠,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
“금방 일어날 거다. 그러니 이만 가라.”
“그, 그렇군. 나는 그냥 반가워서 그랬던 건데…….”
얽히지 않으려 철벽을 치고 있자니, 한스B가 시무룩해하며 등 돌려 떠난다.
근거는 없지만 한 번의 고비를 넘긴 듯한 기분.
그런 기분이 들던 순간이었다.
벌컥-!
1층 문이 열리며 동일한 가문의 문장을 가슴에 새긴 기사 무리가 술집에 들어선다.
“모즐란이다!”
모즐란.
귀족 출신의 ‘기사’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이 도시의 최고 무력 단체 중 하나.
“저들이 이런 구석 술집에 대체 왜……?”
모즐란에게 잡혀가면 피와 죽음밖에 남지 않는단 악명답게, 그들이 들어서자마자 모든 이의 이목이 쏠린다.
어느샌가 정적으로 가득 찬 술집.
“저쪽이다.”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한곳으로 이동한다.
애석하게도, 내가 있는 방향이었다.
‘니미럴.’
이번엔 또 뭐지?
혹여나 실수했던 게 있는지 최근 행적을 하나씩 되돌아보던 차.
[언제 어디서든 한이 많은 자를 경계해라.]부족의 주술사가 점을 봐주며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또한, 본래 자리로 돌아가던 중에 길을 내주며 복도에 바짝 붙은 한스B가 보인다.
‘잠깐만, 한이 많은 자라면…….’
설마, 한스Hans를 말했던 건가?
확실히 얘네랑 얽혀서 잘 풀렸던 적이 없기는 한데…….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진 때였다.
철컥.
기사 무리가 우리 테이블 앞에 멈춰선다.
그리고 중후하고도 위압적인 목소리로 우리를 보며 말한다.
나는 포크를 쥔 그대로 흠칫 굳었다.
“리올 워브 드왈키, 너를 귀족 모욕죄로 체포한다.”
놀랍게도, 이번엔 내가 아니었다.
Any updates? I know it’s on a break but still some more chapters r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