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28)
제 111화
42화. 타이뮨 마리우스(2)
휴페스터 중부의 한 저택.
“……사흘 만에 나타나서는, 한다는 말이 고작 그것이냐? 덴을 놓치고, 웬 정체불명의 마검사에게 얼굴과 이름을 노출했다고?”
베리스와 쿠잔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델키의 추적을 피해 겨우 복귀한 참이었다. 베리스에겐 아직 역류의 여파가 남아 있었고, 쿠잔도 진에게 당한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면목 없습니다, 타이뮨 님.”
까득.
이를 갈며 그들을 내려다보는 타이뮨.
짧은 시간이지만 무언가 생각하는 듯, 그녀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가득하다.
“이 멍청한 것들… 꼴도 보기 싫으니 썩 꺼져라. 내가 두 번 다시 너희에게 지령을 내릴 일은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동공이 커졌다.
“저희에게 다시는 지령을 내릴 일이 없다니요……?”
“말 그대로다. 너흰 너무 큰 실수를 저질렀어.”
“타, 타이뮨 님. 설마 저흴 버리시겠다는 뜻입니까?”
“타이뮨 님!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쿠잔의 목소리가 떨렸고, 베리스는 곧장 눈물을 머금은 채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꼭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잘못을 빌듯이.
“용서? 사냥에 실패한 사냥개가… 감히 주인에게 그런 걸 요구한단 말이냐?”
“타이뮨 님, 타이뮨 님, 타이뮨 님. 제가 진짜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절대 실수하지 않을게요, 제발. 제발 우리 버리지 마요.”
이내 베리스가 타이뮨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통곡을 이어갔다.
퍽, 퍽!
그러나 타이뮨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에 발길질을 해댔고, 쿠잔마저도 무릎을 꿇고 눈물을 보였다.
“우리가 타이뮨 님 없이 어떻게 살아요! 더 때리셔도 좋고, 죽도록 고문하셔도 달게 받을 테니까… 버리지만 말아주세요, 제발…….”
달의 희생 생존자들을 죽일 때의 잔혹함은 온데간데없이, 베리스는 거의 이성을 잃은 채 두 손을 싹싹 비볐다.
“그래? 무엇이든 달게 받겠다면, 죽어. 당장 죽여주마.”
스릉!
타이뮨이 검을 뽑아도 베리스는 피할 생각이 없는지, 눈을 감은 채 흐느끼고만 있었다.
그리고 타이뮨이 검을 휘두른 순간, 쿠잔이 베리스를 감싸 안았다.
타이뮨은 쿠잔의 목덜미에서 검을 멈춘 채,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모습.
“……타이뮨 님. 아니, 어머니.”
서서히 몸을 일으킨 쿠잔이 타이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부디… 언제까지나 강녕하십시오.”
“다시는 나를 찾지 마라, 절대로.”
쿠잔이 혼절한 베리스를 안고 물러났다. 베리스와 쿠잔, 두 사람과 타이뮨의 인연은 오늘까지였다.
그들이 나간 뒷모습을 보며, 타이뮨이 쯧 혀를 찼다.
‘녀석들이 봤다는 마검사는 분명 진 도련님이다. 영기를 사용했다고 하니 확실해. 조만간 루나 아가씨와 진 도련님이 날 찾아올 테지. 그분께 진 도련님의 힘에 대한 이야길 듣지 못했다면 큰일 날 뻔했군.’
순간 루나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타이뮨 마리우스, 한때는 그녀의 꿈이나 다름없던 아가씨의 얼굴이.
‘어차피 아가씨는 날 죽일 수 없어.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군. 진 도련님이 솔더렛의 계약자인 것도 모자라, 마법 능력까지 갖추셨단 말이지? 이건 그분도 모르는 정보다……!’
타이뮨이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사냥개들이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며.
* * *
“그래, 그래. 요즘 불편한 건 없느냐?”
“예, 루나 경께서 신경써주신 덕분에 더할 나위 없습니다. 동족들도 모두 일자리를 구했고, 드디어 저희 콜론인들도 사람답게 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영지로 돌아온 루나는 티카와 티타임을 갖고 있었다.
“다행이군. 어?”
“왜 그러세요, 루나 경?”
돌연 루나가 흠칫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티카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녀의 시선을 좇았다.
“갑자기 막내 녀석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뭐지? 여기 내 땅인데. 잘못 느낀 건가?”
“그런 게 느껴져요?”
“그 녀석의 기운은 좀 특이하거든. 내가 예민한 것도 있지만… 어어, 뭐야, 저거. 잘못 느낀 게 아니었잖아?”
창밖, 루나가 가리킨 자리에 로브를 둘러쓴 진이 서 있었다. 변장을 하긴 했지만, 백주대낮에 루나의 영지를 찾아와도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진은 문지기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담장 근처를 어슬렁거리고만 있었다.
“저 겁 없는 놈, 이젠 아주 대놓고 찾아오네? 다른 형제들이 알면 어쩌려고, 예비 기수라는 녀석이!”
투덜대듯 말했으나 루나는 이미 눈빛을 반짝이며 계단을 달리고 있었다.
“야!”
한 걸음에 담장을 뛰어넘은 루나가 대뜸 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쾅!
“미쳤구나, 막내야. 너 자꾸 이러다 큰일 난다.”
“으윽, 누님. 인사가 과격하십니다.”
“과격한 건 너지, 이 화상아. 내가 너 때문에 아마 제 명에 못 살지 싶구나. 일단 들어가자, 누가 보기 전에.”
정문을 통해 루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걸어 잠그자마자, 루나가 활짝 웃으며 진의 머리를 또 쥐어박았다.
쾅쾅! 퍽!
“자, 이번엔 우리 막내가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 찾아왔을까? 응? 아니면 이 누이가 보고 싶어서 온 것이냐?”
어느 쪽이든 만족스럽다는 듯, 루나는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요즘 들어 부쩍 막냇동생이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직접 본 게 함께 아버지를 찾아 본가를 뒤엎은 날이니, 잘 크고 있나 궁금했던 것이다.
‘타이뮨이 내 저주와 관련이 있더라도, 누님과 상관없는 단독 범죄가 분명해. 이런 분이 나를 해하려고 했을 리 없지.’
진은 이런 누이를 잠시나마 의심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누님. 누님이 아니었다면 콜론인들의 보금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콜론인들을 보냈을 때처럼 편지라도 쓰지 그랬느냐, 내가 일이 있었다면 못 만났을 텐데. 그나저나 보자마자 또 서운한 말을 할 것이냐?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더냐, 형제 중에 대가 없는 사랑도 하나는 있다고.”
편지는 타이뮨이 먼저 살펴볼 수도 있기에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예, 누님. 기억합니다…….”
“음? 막내, 너. 표정이 좋지 않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은 것이냐?”
감당하기 어려운 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누님은 룬칸델에서 아마 나 다음으로 타이뮨 유모를 아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더. 그런 누님께, 타이뮨이 나를 해하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군.’
오기 전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루나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층 더 가슴이 답답했다. 타이뮨 마리우스, 그녀는 분명 루나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누님.”
“말해라, 동생아.”
“제가 누님을 찾은 건, 타이뮨 유모에게 확인할 게 있기 때문입니다.”
“유모? 유모는 갑자기 왜?”
“누님께서 처음 폭풍성으로 저를 찾아오신 날, 제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누군가 널 암살하려고 했었다는 내용 말이냐?”
“예.”
루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자세히 이야기해보아라.”
“최근, 델키 출신의 마리우스라는 성을 쓰는 자들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델키에는 마리우스라는 성이 단 하나뿐이더군요…….”
한 차례 심호흡한 진이 그간 겪은 모든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테싱을 괴멸시킬 때 알루에게 들은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그를 조사하며 얻게 된 모든 정보와 쿠잔과 베리스에 대한 내용까지.
이야기가 끝나자 루나는 떨리는 몸을 겨우 주체하며 식은땀을 쏟고 있었다.
지금처럼 불길한 두근거림이 가슴 속에 가득한 것은, 그녀의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막냇동생의 말이 사실이라면, 암살과 관련이 있든 없든. 자신의 유모는 대역죄를 저지른 것이다. 인과관계가 어떻건, 타이뮨의 수족이 이미 순혈 룬칸델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하여, 누님의 유모를 만나 직접 진상을 확인해보고자 찾아왔습니다.”
“유모가… 델키 출신의 고아 암살자들을 데리고 있었다고? 그, 그럴 리 없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야. 뭔가 오해가 있을 것이다, 막내야.”
누님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될까봐.
진은 그냥 타이뮨을 따로 찾아갈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타이뮨이 저주의 범인, 혹은 공모자라면. 결코 살려둘 수 없을 터.
타이뮨이 범인이라 할지라도. 루나에게 그녀와 이야기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개인 병력을 누님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타이뮨 마리우스, 대체 그녀는 뭐지? 뭘 원하고 있는 거지?’
덜덜덜.
제 어깨를 붙잡은 루나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유모는, 지금 휴가 중이야. 휴페스터 중부에 다녀올 일이 있다고 했었지. 돌아올 때까지 기다… 아니, 아니야. 당장 유모를 만나봐야겠다.”
“죄송합니다, 누님.”
“네가 무엇이 죄송하다는 말이냐? 유모는 아무 관련이 없을 것이다. 그 암살자들의 모함일 거야, 행여 관련이 있다면. 분명 유모에게도…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진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루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돌아보면, 유모가 델키를 자주 찾긴 했어. 휴가를 정말 많이 나가기도 했고, 돈이 생길 때마다 고아들을 후원했다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었지.’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0대 때는 만류하는 유모를 따라 함께 고아원을 찾아 봉사한 적도 있었지만, 모두 달의 희생이 아니라 다른 평범한 고아원이었다.
-유모, 좋은 일인 건 아는데. 고아들을 이렇게까지 챙기는 이유가 뭐야?
-저도 고아 출신이거든요. 아, 아가씨께 말씀 드린 적이 없군요. 호호, 아가씨 사춘기가 조금 덜 화려했다면 기회가 있었을 텐데요. 그때 한 번쯤은 이 유모와도 술을 마셔주시지 그랬어요.
-아, 어… 미안. 그런 줄 몰랐어. 내가 너무 나빴다.
-미안하긴요, 아가씨! 룬칸델의 다른 유모들은 이런 호사를 꿈도 꾸지 못한답니다. 아가씨께서 제 개인 시간을 워낙 넉넉하게 주시니, 이런 봉사도 가능한 거라고요.
-어. 음. 혹시 휴가 더 필요해?
-그럼 하루만 더 받아볼까요?
언젠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루나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돌아보니 유모의 삶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네. 유모가 고아였던 것도 20대가 돼서야 알았고, 휴가 때는 그저 봉사만 다니는 줄 알고 있었잖아.’
타이뮨이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술,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옷.
하다못해 그런 사소한 것조차 곧장 떠오르지가 않는 마당에. 8성급 암살자들을 수하로 부리고 있던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루나는 분명 타이뮨을 사랑했지만, 그녀에게 많은 호기심을 갖지는 않았다.
한 살 때부터 서른다섯이 된 지금까지 늘 함께했으니, 익숙하기만 했던 것이다.
“가자, 진. 네 말이 사실이라면, 유모는… 내 손으로 직접… 아니, 잠깐. 잠깐만, 막내야… 잠깐만 있다가 가자…….”
루나가 주저앉아 몸을 웅크린 동안.
진은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어, 참담한 심정으로 누이의 등을 토닥여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