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60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60화
160. 레미엘
처음 레미엘은 인간을 죽일 생각까진 없었다.
죽일 생각이었으면 보자마자 ‘시살’로 머리를 터트려버렸을 것이다.
‘적어도 어떤 인간인지 대화는 해보고 죽일 생각이었지.’
역사상 두 번이나 신기록을 세우며 아카식 레코드에 오른 플레이어는 없었다.
충분히 흥미를 끌 만한 인간이었기에 대화나 좀 하면서 알아보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라도 들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류민을 노려보는 레미엘의 눈에서 파지직 스파크가 튀었다.
‘감히 내 앞에서 부하를 죽여?’
말도 없이 저런다는 건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동.
주제도 모르는 벌레가 대천사에게 도발을 건다는 게 어이없다 못해 화가 났다.
‘어차피 부하들을 죽인 이상 좌시할 수 없던 벌레다. 죽여 치우는 수밖에.’
얼굴에 묻은 금빛 피를 닦은 레미엘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인간을 노려볼 뿐.
[죽어라. 인간.]시살을 사용했다.
인간의 머리를 단숨에 터트릴 수 있는 천사의 권능.
그런데 어째서인지 반응이 없다.
‘뭐지? 왜?’
눈여겨보니 시살의 힘이 인간의 정신에 간섭을 불허하고 있다.
[이게 어찌 된…….]이유는 모르겠으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시살이 안 통하면 태워 죽이는 수밖에.’
인간을 향해 검지를 들었다.
파지지지직-!
고출력으로 응집된 번개가 손가락 끝에 모였다.
‘89레벨이라고 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아마 피하지도 못하고 개구리처럼 타 죽어버릴 거다.
그렇게 믿었다.
자신의 손가락이 잘리기 전까지는.
녀석의 낫이 채찍처럼 늘어나더니 찰나의 순간 거인의 손처럼 커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지 않았다면 아마 팔뚝이 날아갔을 거다.
‘무기가 늘어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크기까지 변형될 줄이야.’
고통을 떠나서 어이가 없었지만, 화를 낼 새는 없었다.
낫이 다시금 뱀처럼 휘어서 자신을 노려오고 있었으니까.
위력을 실감했지만 레미엘은 꼴사납게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날개를 접어 막을 뿐.
이 정도면 충분히 막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오만이자 오판이었다.
서거거걱-!
[……!]깃털이 휘날리며 날개가 잘려 나가자 레미엘의 눈이 부릅떠졌다.
막을 정도의 대미지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방어하는 대신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싸움은 흐름이고 기세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유리한 흐름을 놓칠 류민이 아니었다.
서걱- 서걱!
악착같이 따라붙으며 낫을 휘둘렀다.
레미엘은 뒤로 도망치며 날개로 막기에 급급했다.
‘대미지가 상상 이상이다.’
천사의 날개는 신성력을 부여하는 순간 견고한 방패가 된다.
신성력의 크기에 따라 방어도가 결정되고 당연히 89레벨의 공격쯤은 막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명백한 오판이었다.
‘이게 정말 89레벨의 실력이라고?’
대미지를 보나 움직임으로 보나 99레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투 천사 여럿을 죽였을 때부터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빌어먹을. 그 간단한 사실도 깨닫지 못해서 이런 꼴을 당하다니.’
방심했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89레벨이라는 이유로.
탁탁탁-
조금 전까지 목석처럼 굳어 있던 발은 어느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7인의 대천사가 한낱 인간의 낫질이 아파서 피해 다니는 꼴이라니.’
다른 대천사가 봤다면 비웃음을 살 일이었다.
파직파직-
[놀아주는 건 여기까지다.]뜀박질을 멈춘 레미엘의 전신에 전류가 감돌았다.
이대로 사방으로 방출하면 벌레 같은 인간은 통구이가 될 터.
달라붙는 적을 떼어내기엔 이만한 기술이 없다.
그것도 모르고 검은 낫이란 인간은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끝이다.]파지지지지지직-!
최대 출력으로 전류를 방출했다.
피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만한 공간도 없다.
그때였다.
두웅-
어둠이 한순간에 빛들을 집어삼켰다.
바람에 꺼진 촛불처럼 방출한 빛들이 일거에 소멸했다.
[무슨…….]놀랄 새는 없었다.
바람을 가르는 위협적인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으니까.
서걱-!
[큭!]몸을 뒤로 뺐지만 이미 늦었는지 날개 두 장이 잘려버렸다.
한쪽 날개를 잃으니 휘청이며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분노한 레미엘은 정말로 장난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깟 어둠은 그에게 문제 되지 않는다.
파직- 파직- 파지지지직-!
어둠에 저항하듯 스파크가 격렬하게 튀었다.
빛이 어둠에 약하다지만 지금 펼쳐진 어둠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결계.
대천사의 스파크가 이까짓 잡기에 잡아먹힐 리 없다.
[죽어라! 인간!]파지지지지지직-!
사방으로 전류를 방출하며 인간을 죽이려 들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도 낫질해대던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자식이 어딜…….’
레미엘이 두리번거리는 순간, 저 끝에서 붉은 안광이 보였다.
“너 방금 자신이 무슨 말 한 줄도 모르지?”
키이이이잉-
“그거 사망 플래그야 인마.”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던 인간이 순간 발광했다.
아니, 놈이 휘두른 섬광이 레미엘을 덮쳤다.
‘아.’
그 응집된 에너지에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건 막을 수 없다.
막는 순간 골로 간다.
피해야 한다.
짧은 순간 판단을 끝낸 뒤 날개를 움직이려던 레미엘이 휘청거렸다.
‘이런 개 같은. 그러고 보니 날개가…….’
욕지거리를 삼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섬광은 그마저도 예측했는지 조금 위로 날아왔다.
서걱-!
날개 한 장이 잘려 나갔다.
가까스로 몸을 뒤틀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머리가 잘릴 뻔했다.
욕할 틈도 없이 두 번째 섬광이 날아들었다.
한쪽 팔과 날개가 동시에 떨어졌다.
휘청거리는 틈에 재차 소리가 들린다.
키이이잉-
서걱-!
키이이잉-
서걱-!
키이이이잉-
5연속으로 날아온 섬광은 레미엘의 사지를 잘라놓았다.
[끄으윽…….]한쪽 날개는 완전히 잃었고 팔뚝과 허벅지 아래가 모조리 잘리고 몸통만 남았다.
꿈틀꿈틀.
벌레처럼 꿈틀거리기만 할 뿐 움직일 수도 없었다.
타오르는 고통으로 미칠 것 같았지만 전류로 자신을 자극해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때 눈앞에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인간이 다가왔다.
“7인의 대천사도 별거 아니군.”
[…….]“번개의 권능, 7인의 대천사 중 가장 서열이 낮은 말단, 레미엘. 맞지?”
자신의 정체를 안다는 사실이 놀랍다기보단 분노가 치밀었다.
하찮은 인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찮은 인간 따위에게 지고 말았다.
하찮은 인간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 사실이 레미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파직파직파직-
“자폭하려고?”
저의를 읽히자 레미엘의 출력이 순간 낮아졌다.
“내 말대로 하면 살려주려고 했는데 알아서 죽겠다니. 아쉽군.”
[살려준다고?]“그래. 내 제안대로만 한다면.”
레미엘의 전류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목숨을 구걸할 바엔 인간 놈과 같이 죽겠다는 심정이었는데 알아서 제안을 꺼낼 줄이야.
[들어는 보겠다.]“다른 천사들을 불러. 많이는 필요 없어. 50명만 더 불러오면 돼. 기왕이면 3품 이상의 전투 천사들이었으면 좋겠군.”
[불러서 뭐 하려고?]“뭐하긴, 죽여야지.”
[미친놈이구나.]레미엘이 콧방귀를 뀌었다.
“대신 널 죽이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흥,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으냐?]“못 믿으면 지금 죽어야지, 뭐.”
미련 없다는 투로 말하는 인간을 보며 레미엘은 고심했다.
자신은 패배했다.
스파크를 이용해 더 이상의 피가 흐르는 건 막았지만 그렇다고 위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눈앞의 인간이 낫으로 머리를 찍어버리기만 하면 자신은 그대로 죽어버릴 테니까.
‘빌어먹을. 어떡한다? 제안을 받아들여?’
자존심이 상했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대로 병사들을 팔아넘기고 자신은 목숨을 건진다면?
회복한 뒤 훗날을 도모할 수도 있다.
자신의 목숨도 살리고 복수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제안을 받지 않는다면?
자신은 이대로 죽는다.
‘자폭하든 뭘 하든, 놈에게 피해는 줄 수야 있겠지만…….’
자신은 어떻게든 죽는다.
인간과 싸우다가 죽다니.
죽어서도 천계 대대로 놀림 받을 게 뻔했다.
“어떻게 할 거야. 빨리 결정해. 죽을지, 살지.”
[조, 좋다. 제안을 받아들이지.]“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면서 아닌 척하기는. 하여간 이 꼴이 됐는데도 자존심은 높아요. 쯧.”
인간의 비아냥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레미엘은 잠자코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은 패배했기에.
달리 선택지가 없었기에.
“뭐 하고 있어? 얼른 불러.”
[나, 날 보내주는 게 먼저 아닌가?]“내가 네놈의 뭘 믿고? 이대로 보내줬다가 약속을 어기면 어떡하라고?”
류민은 레미엘의 목에 낫을 대며 협박했다.
도망가는 낌새를 보였다간 죽일 기세였다.
“일단 불러. 부르고 나면 약속대로 부하들한테 얌전히 보내줄 테니까.”
[나야말로 묻지. 내가 너의 뭘 믿고 부른단 말이냐?]“뭐가 됐든 믿어야지. 살고 싶으면.”
[…….]틀린 말은 아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처지에서 레미엘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이지.”
레미엘은 구호 신호를 보내 천사들을 불렀다.
그러자 몇 초 안 지나 빛과 함께 나타난 천사들이 공동을 가득 채웠다.
[대천사님, 어디 계십니까?] [급히 부르셔서 왔는데…….] [앗! 저, 저기!]천사들은 깜짝 놀랐다.
웬 팔다리 없는 몸뚱이가 레미엘을 닮아 있었으니.
[난 여기 있다.] [헉! 대, 대천사님!] [이게 어찌 된…….] [설마 저것이 그런 겁니까?]뒤늦게 천사들은 인지할 수 있었다.
레미엘의 목에 낫을 들이밀고 있는 검은 형상을.
레미엘이 수치심을 참으며 류민에게 말했다.
[대기 중이던 3품 천사들이다. 약속 지켜라.]“급이 더 높은 천사는 없어?”
[1, 2품 천사들은 일이 있어서 부를 수 없었다. 현재 가용할 수 있는 건 3품 천사까지만이다.]“그럼 어쩔 수 없지.”
“좋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류민은 낫을 치우며 전투 천사들에게 손짓했다.
“야. 아무나 와서 너희 상관 좀 데려가라. 발이 없어서 혼자 움직일 수 없다네?”
전투 천사들이 놀란 눈으로 다가왔다.
대천사가 인간에게 당하다니?
가까이서 보니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대천사님. 실례하겠습니다.]한 천사가 레미엘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얼굴이랑 몸통만 있어서인지 마치 아기를 안듯 가벼웠다.
‘젠장. 부하들의 도움을 받고 도망가야 하는 신세라니.’
치욕적이었지만 레미엘은 훗날을 위해 참았다.
‘내가 팔다리와 날개를 재생시키고 힘을 완전히 회복하는 날, 네놈은 지옥을 구경할 것이다.’
다른 대천사들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직속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심지어는 악마와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검은 낫이라는 플레이어를 죽여 버리리라.
레미엘은 그렇게 다짐했다.
[가자.] [예! 대천사님!]레미엘을 안아 든 전투 천사가 속으로 귀환을 위한 주문을 외웠다.
다른 천사들도 당연히 대천사를 따라 귀환하려고 준비했다.
그때 레미엘이 다른 천사들을 제지했다.
[너희들은 여기 남아라. 남아서 저 인간을 상대해라.] [예? 저, 저희가요?] [그래. 귀환은 나와 나를 든 천사만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천사들은 대천사의 명령에 복종했다.
레미엘이 검은 낫을 힐끔 봤다가 자신을 안은 전투 천사를 보았다.
[우리는 이만 가…….]퍼석-!
후두둑-
금빛 피를 뒤집어쓴 레미엘이 바닥에 떨어졌다.
촤르르- 탁!
동시에 던졌던 낫을 회수하고 있는 검은 낫의 모습이 보인다.
쿵-
뒤이어 머리를 잃은 시체가 바닥에 뉘었다.
조금 전까지 레미엘을 안고 있던 천사였다.
레미엘의 고운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인간 세상에 이런 말이 있지.”
류민은 뻔뻔하게 중얼거렸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라는.”
[뭐?]“내가 진짜로 보내줄 줄 알았어?”
사신화가 초기화된 류민이 낫을 들고서 다가왔다.
“너흰 이 자리에서 살아나가지 못해. 단 한 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