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38
나이가 있는 편이라 소속사에서는 거친 액션은 사리는 쪽을 원했으나, 그는 아직 액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연습했다. 적어도 ‘한물 간 배우’라는 평은 듣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유일이라는 재능 있는 신인배우 앞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72에 1에 1~!”
김혁진이 된 그는 주먹에 힘을 준 채 자세를 잡았다.
수일이 침입자의 공격을 팔로 막은 사이, 혁진은 재빨리 바닥에 놓인 삽을 집어들어서 명치를 찌른다.
빠르지만 허점이 많은 수일과 달리 혁진의 공격은 노련하고 정확하다.
수일이 재빠르게 뛰어서 침입자들의 머리를 내려칠 때, 혁진은 그들의 다리를 노린다. 그가 든 삽은 침입자들의 다리를 베어낼 듯 깔끔한 궤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다 마지막, 수일은 마지막으로 남은 침입자에게 목을 잡히고 만다.
혁진은 그를 바라본다. 여전히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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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구찬익의 목소리로 또 한 번의 테이크가 끝났다.
그들은 벌써 같은 장면을 몇 번째 찍고 있었다.
액션 씬은 다양한 컷을 사용할 수록 긴장감과 박진감을 살릴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후.”
황이원은 그 자리에 털썩 앉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슬슬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더는 안 되겠군.’
황이원은 매니저를 향해 손짓했다. 그 뜻을 눈치 챈 매니저가 조연출에게 뛰어갔다.
곧 구찬익과 대화를 나눈 조연출이 큰 소리로 외쳤다.
“···배우분들, 고생하셨습니다! 지금부터는 대역 배우분들 촬영 가겠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찍은 컷들만 해도 체력소모가 어마어마했으니까. 방금까지 대역 없이 찍은 것도 대단한 거였다.
그때였다.
한유일이 입을 연 것은.
“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유일의 말을 들은 황이원의 눈이 살짝 커졌다.
조연출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어, 유일 씨··· 괜찮겠어요? 너무 무리 안 하셔도 괜찮아요.”
“아니에요. 정말 괜찮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한유일을 보던 황이원이 별안간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는 목을 축인 뒤 다시 카메라 앞으로 걸어왔다.
“···어, 배우님?”
황이원은 그를 말리려는 듯한 스태프들에게 괜찮다는 제스처를 해보였다.
한유일은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일 씨.”
황이원은 한유일이 흥미로웠다.
더 정확히는, 그를 볼 때마다 예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젊고 힘도 좋았으며, 작품에 대한 열정도 넘쳤던 20대의 자신이.
“···유일 씨가 그렇게 나오면 제가 쉴 수 없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황이원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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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인 줄 알았는데
“···!”
유일은 놀란 얼굴로 황이원을 바라보았다.
황이원은 구찬익 감독을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직접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가까이 있던 이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배우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짧지만 굵은 답이었다.
‘···.’
구찬익은 답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황이원을 지켜볼 뿐이었다.
-유일 씨가 그렇게 나오면 제가 쉴 수 없지 않습니까.
황이원의 말은 진심일 터였다.
한유일과 황이원을 번갈아 보던 구찬익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조연출을 넌지시 불렀다.
“호연아.”
“네?”
“배우한테 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으냐?”
“어···.”
조연출은 머리를 긁적이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머리와 재능 아닐까요?”
“재능··· 중요하지. 똑똑한 것도 중요하고.”
조연출은 구찬익의 다음 말을 기다렸으나, 그는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한유일에게 가 있었다.
‘어리고, 경험도 적어.’
그러나 한유일은 놀랄만큼 유연한 배우였다. 이를 뒷받침할 의욕과 열정도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구찬익은 몸을 풀고 있는 황이원과 한유일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카메라 위치를 고려하며 액션의 합을 맞추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감독님?”
조연출의 질문에 구찬익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촬영은 곧 재개되었다.
*
한유일의 초가을은 온통 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위적이지 않은 가을 자체의 분위기를 담고 싶다는 구찬익의 말에 촬영일자는 처음 예상보다 더욱 빡빡해졌다.
“소품팀 최대한 빨리 82씬 세팅 부탁드립니다~”
“네!”
촉박한 촬영현장을 좋아하는 스태프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은, 의외로 생각보다 힘들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촬영 이후에 얼마나 남았죠?”
미술팀 스태프의 질문에 연출부 막내가 답했다.
“오늘 끝나면 이제 3회차 남았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구나.”
미술팀 스태프는 아쉬운 얼굴로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이 세트장 보는 것도 곧 끝이네.’
미술팀으로 일하며 수많은 영화 현장과 드라마 현장을 다녔던 그였다. 이 다른 현장에 비해 일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저, 이만큼 재미있던 촬영장이 없었다.
정신 없이 일하며 세트장과 의상을 체크하는 와중에도, 그는 한유일과 황이원이 연기를 하는 순간에는 할 일을 잊고 멍하니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공백 없이 자주 본 덕인지, 회차가 진행될 때마다 배우들 사이의 합도 좋아졌다.
미술팀 스태프는 반팔 티셔츠를 입은 채 땀을 쏟으며 마지막 액션씬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두 배우를 바라보았다.
‘와씨, 멋있다.’
또 다시 멍하니 한유일과 황이원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을 부르는 조연출과 미술감독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5시까지 세팅 완료 부탁드립니다~”
다음 씬은 클라이맥스 직후, 엔딩에 가까운 장면이었다.
미술팀은 색소와 올리고당을 섞어 만든 가짜 피를 굳지 않게 준비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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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은 액션씬을 준비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꽃집에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던 침입자 중 일부가 수일을 알아본 것이다.
“···도련님.”
그들이 수일을 부르는 호칭에 놀란 혁진은 잠시 집중을 잃고, 그 사이 혁진의 심장을 향해 칼이 날아온다.
그러나 다음 순간.
칼에 맞은 건 혁진이 아니었다.
“···아.”
수일이 혁진의 앞에 서 있었다.
“졸라 아프네···.”
등 뒤에 칼이 꽂힌 채로.
‘···!’
이에 분노한 혁진은 놀라운 속도와 힘으로 침입자들을 제압한다.
그와중에도 그는 한 가지 고민뿐이었다.
‘···대체 왜?’
김혁진은 몇 번이고 만들어본 박수일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박수일. 20살.
형제 자매 없음.
영재과학고등학교 졸업. 이후 국립과학대학교에 합격했으나 곧 자퇴.
미혼모인 어머니는 의류 매장 운영 중.
그 데이터 내에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가 깨달은 것은, 쓰러진 수일이 입을 열었을 때였다.
박수일은 입에서 피를 쏟아내면서도, 굳이 말을 꺼냈다.
“국정원에선··· 그렇게 싸우는 법도 가르쳐요?”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
혁진의 말에 수일은 미간을 찡그리며 웃는다.
웃음이라기보단 고통과 가까운 얼굴.
“이렇게 보여도 내가, 머리 하나는··· 좋거든요.”
꾸륵, 꾸륵···.
수일의 목에서 피가 넘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말하지 마.”
여전히 단단하고 차가운 목소리. 그러나 목소리와는 다르게 혁진의 눈가는 떨리고 있다.
그는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사장님··· 진짜 짜증나요. 그거 알아요?”
수일은 피에 젖은 얼굴로 미소 짓는다.
그리고 혁진은, 그 표정을 본 뒤에야 깨달았다.
왜 박수일을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말이다.
5년 전.
전직 국정원 요원이었던 그는, 대학로에서 퍼지기 시작한 마약 음료의 유통을 알아내기로 했다.
몇 달간의 합동 수사 끝에 그는 마약 음료의 제조를 담당하는 회사와 이를 지시하는 사장, 고현구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를 검거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고현구는 호락호락한 사내가 아니었다.
그를 지키는 경호인력들은 불법적인 경로로 구한 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김혁진 역시 총을 꺼냈다.
그리고···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한테 죽었는지··· 알고 싶었어요.”
박수일은 지금껏 그가 보였던 눈 중 가장 맑은 눈으로 말한다.
“내가 아빠를 좀··· 좋아했거든.”
수일에게 있어 아빠는 좋은 아빠이자 닮고 싶은 남자였다.
그 신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아빠가 죽고 4년이 흐른 뒤였다.
엄마가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아빠의 서재.
그곳에서 보면 안 될 것들을 보고 만 것이다.
수일은 자신이 아빠와 성이 다른 것도, 엄마가 아빠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제야 깨달았다.
이전까지 수일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수일은 자신의 뿌리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때부터 수일은 아빠가 정리해 둔 서류 속 ‘형사-요원 리스트’를 살폈고, 용의자를 추려냈다.
우연으로 보였던 수일과 혁진의 만남은 모두 박수일의 설계 속에 있었던 것이었다.
“만나서··· 물어보고, 쿨럭, 싶었거든요.”
“말 하지 말라니까.”
“근데··· 이제 괜찮아요.”
혁진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린다. 그는 어찌할 바 모른 채 수일을 바라본다.
“···춥다.”
혁진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구급차를 기다리며 아이를 바라보는 일을 제외하고는.
“···.”
김혁진은 무릎을 꿇은 채 앉았다.
자신 앞에서 죽어가는 철없고 똑똑하며, 가엾은 아이의 곁에.
“···컷!”
구찬익은 모니터링을 꼼꼼히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여지없이 오케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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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 씨.”
쉬는 시간.
헐떡이며 유일에게 다가온 황이원은 바닥이 드러난 생수병을 들었다. 그는 새 물을 찾는 대신 유일의 곁에 주저앉았다.
“네, 선배님.”
“학원이나 학교에서 연기 공부해본 적 없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유일은 고개를 끄덕인 뒤 뚜껑을 따지 않은 자신의 생수병을 황이원에게 건넸다. 유일에게서 생수병을 건네받은 그는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아, 살 것 같네.”
황이원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긴 뒤 목을 뒤로 젖혔다.
지금까지 유일이 본 그의 모습 중 가장 편안해보이는 얼굴이었다.
“대학교는 거의 안 다녀서 할 말이 없고··· 한 8년 전 쯤인가, 미국에 간 적 있어요. 마이즈너 테크닉 연기 캠프에 참여하느라.”
【···관련 정보는 현재의 데이터베이스 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당 정보는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 판단됩니다.】
마이즈너 테크닉이라면 유일도 들어본 적 있었다.
【 ‘마이즈너 테크닉’은 샌포드 마이즈너(Sanford Meisne)가 만든 연기 교육법입니다. 그는 1905년도에 태어나 1997년에 타계한 인물로, 미국의 배우이자 연기 교육자입니다.】
황이원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연기에 한계를 느낄 무렵이었습니다. 한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아무도 모르게 가신 건가요?”
유일의 질문에 황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엔 소속사에도 안 알렸습니다. 일탈이 처음이라 다들 놀랐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아직도 가끔 본다며 당시 프로그램 당시 찍었던 사진 몇장을 유일에게 보여주었다.
네모난 안경을 쓰고 촌스러운 티를 입은 채 머리를 길게 기른 황이원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게 알아 볼 수 없을 모습이었다.
“거기서 제일 중요하다고 배운 게 뭔지 압니까?”
그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이어 말했다.
“Say what you mean, mean what you say.”
“느끼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느껴라?”
유일의 말에 황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느끼지 못하게.”
‘···!’
“그런데, 그게 제일 힘들더군요.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그게 되는 사람들이 있고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황이원은 한번 더 물을 들이킨 뒤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나는, 한유일 씨가 전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유일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황이원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낚시 좋아합니까?”
유일은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답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한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아쉽네요. 황이원은 가볍게 중얼거렸다.
“추워지기 전에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야 언제나 좋습니다. 선배님.”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황이원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 채 말을 이었다.
“이번 영화가 개봉하면 한유일 씨가 더 바빠질 것 같아서.”
한유일은 불쑥 말을 뱉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뭘 말입니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유일은 진지한 얼굴이었으나, 황이원은 피식 웃어버릴 뿐이었다.
“나야말로.”
머쓱한 미소를 짓던 한유일은 별안간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곧 그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나왔다.
“생각해보니까 저희가 한번도 사진을 같이 찍은 적 없는 것 같아서요.”
황이원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으나, 곧 재미있다는 얼굴로 그의 곁에 다가갔다.
“···진짜 못 찍으시는군요.”
“죄송합니다···.”
보다 못한 황이원이 대신 셔터를 눌렀다는 것을 제외하곤 완벽한 마무리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둘이 찍은 셀카는 순식간에 온갖 SNS로 퍼져나갔다.
-이거 봐
[(사진)]┗ 헐
┗ 황이원은 왜 안 늙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