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ebol's Youngest son RAW - Chapter (193)
194화. 동업자 정신.
청와대.
이무룡은 담담한 시선으로 청와대를 바라보았다.
그 담담함 속에는 놀라움도 섞여 있었다.
‘이렇게 빨리 청와대를 방문하게 될 줄이야. 외환위기 때야 국가비상사태니 수시로 불려 다녔지만, 왜 불렀을까?’
왜 부르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었기에 이무룡은 만사를 제쳐두고 청와대로 달려온 것이다.
비서의 안내를 받은 그는 곧장 안의혁이 머무르고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이 회장. 그동안 격조했어요.”
“아닙니다.”
“자, 이리로 앉으세요.”
안의혁은 이무룡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맞은편에 앉은 후에 ‘사업은 잘 되냐?’, ‘가정은 행복하냐?’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냈다.
크게 친분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곧 그런 소재는 바닥이 났고, 안의혁은 곧장 마음에 담아두었던 걸 쏟아냈다.
“이걸 한번 봐주시고, 평가해주시오.”
안의혁이 손 끝으로 반도체 생태계 조성 방안을 밀었다.
메모리반도체 업계 1위인 미래전자를 이끄는 이무룡이었기에 제목을 보자 그의 눈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는 빠르게 내용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정부연구기관에서 만든 보고서 같지 않은데, 누가 만들었습니까?”
“괜찮소? 혹 특정 기업에서 파운드리를 쥐고 흔들 가능성은 없겠소?”
“상당히 잘 만들어진 제안서입니다.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고, 몇 가지를 추가해도 괜찮고요. 이대로 진행된다면 시스템반도체나 파운드리에서도 꽤 실적을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특정 기업이 파운드리를 장악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무룡은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산업은행과 시중은행과 참여하여 지분을 얻어갈 텐데, 이런 상황이면 특정 대기업이 지분을 틀어 쥐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만약 산업은행이나 시중은행이 보유한 지분을 특정기업에 넘긴다면 그 기업이 파운드리를 장악할 수 있겠지요.”
“그럴 일은 없어요.”
안의혁은 고개를 흔들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일을 한다면 임기 초반부터 구설수에 오를 테고, 야당의 집중공격을 받을 게 뻔했다.
“누가 보고했습니까?”
이무룡은 다시 조심스럽게 질문했고, 안의혁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백산. 백산의 한 회장이 보고했어요. 나도 처음에 이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무룡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전에 한도영이 그를 찾아와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대한 연합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방향을 틀어 정부에 제안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또한 제안서는 공공재 성격이 강했기에 더더욱 의아했다.
“다시 묻겠소. 괜찮소?”
백산을 알았는데 그래도 생각이 같으냐는 질문이었다.
“백산이라도 파운드리를 장악하긴 힘들죠. 물론 그들이 노력한다면 경영권을 쥘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영권도 백산을 대변한다기 보다는 여러 주주들의 의견을 받든다고 봐야 합니다. 주주구성상 어쩔 수 없지요.”
이무룡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안의혁을 보니 빤히 아는 눈치였기에, 굳이 다른 쪽으로 머릴 굴리지 않았다.
미래전자도 시스템이나 파운드리에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메모리반도체 절대 강자를 유지하는 게 더 급했다.
백산전자를 비롯한 경쟁자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기에 미래전자를 비롯한 메모리반도체 생산업체는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고맙소. 이 회장의 대답을 들으니 속이 시원해지는군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추진할 생각입니까?”
“못할 이유가 있나요. 반도체는 우리 한국의 미래 먹거리입니다. 메모리반도체 뿐만 아니라 관련한 여러 산업이 발달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니까요. 오늘 와주셔서 좋은 조언을 해주셔서 고맙소.”
“언제든 전화 주십시오.”
이무룡은 오늘 안의혁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것으로 만족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청와대를 방문했기에 뭔가를 얻어내면 더 좋았겠지만, 그는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경험상 다음에 좋은 제안이 올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무룡을 돌려보낸 안의혁은 곧바로 경제수석 조민영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지금도 생각에 변화가 없어요?”
“네. 물론입니다. 제가 중간에 계속 확인하면서 특정 기업이 파운드리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대통령님. 결심하셨습니까?”
“전권을 줄 테니, 시행해봐요.”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조민영은 힘차게 대답하고는 목례를 올린 후 물러났다.
**
백산그룹.
한도영은 갑작스럽게 방문한 이무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쩐 일이세요? 이리로 앉으시죠.”
한도영은 이무룡의 손을 잡고 그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
“청와대 다녀오는 길인데, 한 회장의 놀라운 제안을 보았소.”
“아, 그러셨군요.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이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 회장. 무슨 꿍꿍이요?”
이무룡은 요식행위를 생략하고 곧장 직진했다.
“꿍꿍이라뇨?”
“한가하게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소?”
“그럼 그 제안서에서 문제가 될만한 소지를 찾았습니까? 공적자금이 투입된 파운드리와 그 생태계를 백산이 쥐고 흔들 수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한도영은 웃으면서 반박했다.
이무룡은 확실한 물증 없이 심증만 갖고 있었기에 말문이 꽉 막혔다.
그가 생각해도 백산이 파운드리를 쥐고 흔들 순 없었다.
오랫동안 한도영을 지켜본 이무룡으로서는 분명 노림수가 있다고 확신했다.
다만 그 노림수가 무엇인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회장. 그럼 백산이 얻는 게 무엇이오? 적어도 얻는 게 있으니 제안한 게 아니겠어요? 난 한 회장이 자선사업가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입니다. 자선사업가 일리가 없죠. 제가 ARM의 대주주란 건 잘 아실 테고.”
“알고 있소.”
“한국 반도체 전체 파이를 키울 생각입니다. 한국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적어도 반도체를 설계-디자인-제조-검수하는 과정까지 한국에서 모두 이뤄진다면 그런 약점이 많이 보완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확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한도영이었기에 이무룡은 답답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미래전자에서 그 생태계에 뛰어들 수도 있소.”
“누구든 환영입니다. 그러면서 반도체 생태계는 더욱 강력해질 테니까요. 그러면 우리 백산전자나 미래전자도 얻는 게 많을 겁니다. 경쟁해야 더 뛰어난 제품이 만들어진다는 건 상식이니까요.”
“가만···. 혹시?”
이무룡은 번쩍하고 머릿속을 뭔가 스쳐 지나갔다.
“숨겨둔 페이퍼컴퍼니로 은밀하게 장악할 셈이오? 돈은 정부에서 모두 쓰게 만들고.”
“페이퍼컴퍼니를 정부에서 걸러내지 못하겠습니까?”
“한 회장이 외환위기를 이용해 만들었다면 그걸 어찌 찾아내겠소? 지금쯤 그 페이퍼머니가 거대 기업이 되었을 텐데.”
외환위기의 어수선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빠르게 대처하여 이익을 취한 한도영이었다.
그렇기에 이무룡은 그가 페이퍼컴퍼니를 비롯한 다양한 수법을 동원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물증은 없었다.
“글쎄요.”
한도영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회장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백산은 이번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진심이며, 장난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퀼컴을 비롯한 고객들로부터 시스템반도체 발주를 받으려면 파운드리는 독립적이어야하니까요. 물론 우리 백산전자도 생태계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겁니다.”
“그럽시다. 미래그룹도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적극 협력하겠소.”
이무룡은 생각을 바꿨다.
나이는 어리지만, 능구렁이나 다름없는 한도영을 추궁해봐야 얻는 게 없다고 판단했다.
하여 여기에 참여하여 일정 지분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미래와 백산이 힘을 합치면 반도체 생태계는 훌륭하게 조성될 겁니다. 그리고 한국-일본-대만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반도체 협조체계를 구축하면···.”
“한 회장. 적어도 일본과는 쉽지 않을 거요. 올해부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고 있고 경쟁은 심화되고 있소. 이게 장기화되면 결국에는 치킨게임이 될 거고 그때는 우리가 죽든 일본이 죽든, 독일이 죽든 대형사고 터질 거요.”
이무룡은 독기를 드러냈다.
미래그룹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며 고생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간신히 일본을 따라잡으면, 일본은 가격을 후려치며 미래전자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다.
미래그룹은 그때마다 돈을 쏟아부으며 이를 악물고 일본을 이기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얼마나 메모리반도체 업계가 치열한 전쟁터인지 경험으로 잘 아는 이무룡이었기에, 그는 곧 다가올 전쟁을 직감할 수 있었다.
“수동적인 입장입니까?”
다른 업체에서 치킨게임을 진행하면 마지못해 따라갈 거냔 뜻이었다.
이무룡은 고개를 흔들었다.
“한 회장도 단단히 각오하시오. 그동안 당했던 거 이번에 싹 풀어낼 셈이니까. 지금 미래그룹은 그때를 대비해 자금을 비축하고 있소.”
“알겠습니다. 백산전자도 준비해야겠군요.”
전생에서 벌어졌던 피 비린내 나는 치킨게임을 이번 생에서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최대한 적은 돈으로 버텨야 할 텐데. 모기지프라임사태가 벌어졌을 때, AIG나 메릴린치 등 대형금융사를 인수하려면 자금이 넉넉해야 해. 치킨게임을 통해 꽤 많은 자금을 쏟아부어야겠군. 일단 살아남아야 하니까.’
한도영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순히 미래를 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란 걸 또 깨달았다.
다행이 미국정부가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시중금리가 낮아졌고, 저축으로 몰렸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 오면서 나스닥 주가가 우상향하고 있었다.
“한 회장. 더 큰 걸 보고 계시는구려.”
이무룡의 말에 한도영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독심술까지 연마하셨습니까? 치킨게임의 결말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보았습니다.”
“결말이 어떠리라 생각하시오?”
“미래와 백산이 살아남고, 일본과 독일기업은 파산하겠죠. 회장님께서 칼을 뽑아 들었다면 대충 끝내지는 않을 테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이무룡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에 메모리반도체는 우리 미래와 백산이 세계시장을 장악합시다.”
“좋죠. 저야 적극 찬성입니다.”
이무룡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한 회장의 칼날이 우리 미래그룹을 겨냥한다면 그때는 둘 다 죽는 거요.”
“절대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시지요.”
이무룡은 자금력과 기술력을 모두 갖고 있으며, 예측능력마저 뛰어난 한도영이 부담스럽고 두려웠다.
그렇기에 이렇게 걱정을 드러낸 것이다.
“백산과 미래는 파트너입니다. 세계로 뻗어나가야지 집안 싸움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한도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며 이무룡을 안심시켰다.
세계로 뻗어나가며 역대 최고의 기업을 만들고 있는 중인데, 한가하게 국내에서 미래그룹과 전쟁을 벌이며 힘을 빼는 건 바보짓이었다.
한도영은 그런 바보짓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이무룡과 반도체 생태계 조성이 미래에 백산과 미래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성능이 몰라보게 향상되면서 시스템반도체가 발전하고, 그로 인해 전자기기의 발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헛참. 마치 꿈을 꾸는 것 같군요.”
“꿈을 이루는 게 기업이 해야 할 일이죠. 회장님.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오십시오. 조금이라도 늦으면 바로 뒤처집니다.”
이무룡은 한도영의 눈빛이 참 맑다고 생각했다.
“휴우, 이거야 원. 여우에게 홀린 기분이로군.”
백산그룹 본사를 나온 이무룡은 잠시 멈춰 서서 한도영 사무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각할수록 한도영의 무서운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일등은 어렵겠어.”
미래제일주의를 강조했던 이무룡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이무룡은 자신이 내뱉고도 흠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