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출시 – 데몬즈 렐릭 (1)
미소녀란 무엇인가.
그 오묘하고 심대한 탐구를 이어가는 이 시대의 구도자 정한수(4학년, 재수생, 한수 더 킹)는 말했다.
“우리 슬슬 사귈까?”
카페였다.
그의 앞엔 올해 과 신입생으로 들어온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가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한수는 지난 1학기를 돌이켰다.
‘무조건 성공이지.’
한수는 알았다.
고백은 ‘내가 너를 좋아해’의 표현이 아니라, ‘이만큼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이 있으니 확실해졌으니 슬슬 관계를 굳히자’의 표현이란 것을 말이다.
자신이 없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한수가 생각하기에 1학기의 자신은 너무 스윗했기 때문이다.
“어때?”
한수의 보챔에 여자아이가 흠칫 떨었다.
그리고 답했다.
“죄송해요.”
“역시 그럴… 응?”
“죄송해요. 선배님은 아닌 것 같아요.”
벌떡!
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황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째서…?”
이럴 리가 없을 텐데?
당황하는 그에게 답이 드리워졌다.
“말했어야 했는데, 저 사실 선배 부담스러웠어요. 매번 불러내시는 거 무서웠고, 이렇게 둘만 만나자고 한 것도 학과 선배니까 나온 거예요.”
한수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물론, 한수만 그리 느끼는 것이었다.
대학 신입생 박예지.
이쁘장하고 아기자기한 외모를 가진 이 어린 친구는 한수와의 일을 회상했다.
‘진짜 귀찮아….’
눈치가 없어도 적당히 없어야지 차마 면전에 싫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돌려 거절했더니 끝까지 들러붙는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그랬다.
[한수 : 예지야, 밥 먹으럭 갈래?ㅋ 아는 파스타집 있는데.] [예지 : ㅎㅎ… 저 그날 약속 있어서….] [한수 : 아직 언젠지 말 안 했는데?] [예지 : 그날 있을 것 같아요.] [한수 : 그럼 언제 시간 돼? 아, 그러고 보니까 방금 목요일 성 교수님 강의 휴강한단 말 들었어. 아직 소식 못 들었지? 그때 먹자.]막무가내였다.
게다가 하는 행동은 어떻던가.
만나서 한다는 얘기가 미소녀가 어쩌구 게임이 어쩌구.
보통 호감을 표현하려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만 하루 종일 하진 않을 터였다.
예지는 단언컨대 살아생전 이렇게까지 사회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처음 봤다.
‘아니, 어딘가엔 있겠지.’
예지가 생각기로, 그런 사람들은 한수가 즐긴다는 커뮤니티에 상주하느라 밖을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착각이다. 사실 한수만 그렇다).
여하튼, 정리해서.
“이런 거 그만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얼굴 보고 말하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예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떠나려 했다.
한수가 예지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잡혀주지 않았다.
“잠까….”
떠나는 발걸음이 바람과도 같아라.
이렇게 된 이상, 한수도 더 예지를 붙잡을 수 없었다.
한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괜히 먼 곳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질 뿐이었다.
하늘은 무심할 만큼 푸르다.
햇볕이 따가운지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한수는 속으로 말했다.
‘사랑했다….’
아니, 사랑하지 않았다.
정한수, 모태솔로 26세.
드리워진 또 한 번의 실패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아무 잘못 없는 신입생을 까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대학에 막 들어와 어리버리를 까던 이 친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친구를 잔뜩 만들어줬다(술자리에 맨날 불러냈다).
시험 기간이면 족보를 구해 밤늦은 시간까지 과방에서 가르쳐줬다(예지는 한사코 거절했다).
혹시 배고플까 싶어 간식도 가져다줬는데(강의가 끝날 시간에 맞춰 예지의 강의실 앞을 찾아가 어그로를 끌었다)!
“크윽!”
한수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 실연의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을까?
내 상처를 달래줄 것이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
내게 다시 사랑이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띠링!
알람이 왔다.
[데몬즈 렐릭 출시 이벤트!]한수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오잉?”
한수의 몸이 희열에 떨렸다.
있었다.
슬픔을 달래줄 것이.
아니, ‘진짜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
“아, 여기였구나.”
내가 있을 곳은.
토도독!
한수는 곧장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한수 더 킹 : 아아, 그날이 왔다.
‘신’의 재림이다.
미래가안맑음 : 네 미래는 진짜 어둡네
퇴사마렵재희 : 아, 한동안 씹덕 새끼들 또 날뛰겠네…』
한수는 집으로 달려갔다.
* * *
데몬즈 렐릭은 기본적으로 IP 확장을 고려해 서브 컬쳐 전반에 친화적인 환경을 구성한 게임이었다.
그간 출시를 위해 해온 밑작업들이 그랬다.
웹툰과 소설, 그리고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어 올려놓은 설정집까지.
최초 기획대로 데몬즈 렐릭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캐릭터의 얼굴을 아는 잠재적 유저층이 어마어마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서브 컬쳐의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조리하기 좋은 캐릭터가 나오면 그것을 바탕으로 커뮤니티에 떡밥이 돈다. 그렇게 돈 떡밥이 심화할 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금손(일러스트레이터)들이 붙어 관련 팬아트를 찍어낸다.
그렇게 팬아트가 만들어지면 그것으로 떡밥이 재점화, 이어서 다른 일러스트와 동인지까지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쉽게 말해, 자본을 때려 박은 서브컬쳐 마케팅은 실패 확률이 아주 낮다는 것이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었다.
본판이 폐급이면 암만 마케팅을 열심히 해도 무용하다.
하지만 데몬즈 렐릭이 어떤 게임인가.
연호만 아는 지난 생에선 그 어떤 사전 작업도 없이 그저 게임의 완성품 하나로만 말도 안 되는 매출을 올린 서브 컬쳐 게임계의 이단아였다.
충분한 자본과 지원이 더해진 지금, 데몬즈 렐릭의 출시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야생의 숨조차 상대가 되지 않는다.
출시 시기를 일부러 다르게 잡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준비의 끝, 데몬즈 렐릭을 향한 기대감은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미 천장을 뚫고 나가고 있었다.
『국시나나요 : 2주 남았다!!!』
출시까지 2주, 앞선 3차에 걸친 데모 발매 때마다 확실한 기대감 충족과 피드백 반영이 있었다.
이것은 다만 개발사가 일을 잘한다는 지경을 넘어 ‘함께 게임을 만들어 간다’라는 인식을 유저들에게 심어주고 있었다.
그런 유저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역시 메인스토리였다.
데몬즈 렐릭은 서브 컬쳐 게임의 최중요 요소 중 하나인 메인 스토리를 철저하게 숨겨 왔었다.
기껏해야 발단이나 전개 부분을 슬쩍 보여준 정도.
웹툰이나 소설, 설정집 등의 장난감은 확실히 주인공이 개입하기 전의 과거나 아예 옆으로 빠지는 히로인 개별 사이드 스토리를 다룰 뿐이었으니 오죽 그 목마름이 컸겠나.
그 기다림의 끝이 온 것이다.
그리고, 갈증이 끝에서 사이다라도 터뜨려주겠다는 듯 정식 출시 이벤트가 기획되었다.
오늘은 그 발표, 2팀 개발진의 라이브 스트리밍이었다.
그렇게 유저들은 혼란에 빠졌다.
[니시무라 케이스케입니다.] [젤렌 콥슨입니다.]머슬핏 기능복, 몸 곳곳에 난 상처, 그리고 격투기에 최적화된 짧은 머리와 성난 실전 압축 근육의 향연.
[―???―???
―???]
당연히 씹덕일 줄 알았던 디렉터들과의 첫 만남은, 적어도 그들에겐 최악이었다.
* * *
라이브 스트리밍은 무사히 진행되고 있었다.
적어도 주먹이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무사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삐걱인단 말이다.
“의견이 갈릴 때는 스파링을 합니다. 서로에 대한 악감정을 주먹으로 푸는 거죠. 원시 시대부터 이 세계는 강자에게만 선택의 권한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깔끔하게 승복하는 법을 배웠죠.”
“하지만 그렇게 승부가 나지 않는다면 최고 의회를 소집합니다. 생각나는 것으로는 1차 데모로 공개했던 파이몬이 첫 최고 의회 소집이었죠.”
“아아, 그때는 놀랐다고 콥슨.”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니시무라.”
니시무라와 젤렌은 낭만이 있는 사내들이었다.
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이란 게 그렇다.
뭘 대단한 걸 해놓으면 그걸 어떻게 했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남이 알아주길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스파링이란 주제로 대화를 튀게 만들었다.
유저들로선 의아할 일이지만, 일단 누가 싸우는 얘기가 재미가 없을 수가 없지 않던가?
하다하다 두 사람이 스파링 영상까지 공개하며 경기 해설을 해버리니 어느덧 라이브 스트리밍은 격투기 해설방이 되어버렸다.
“아, 이때는 아찔했지. 저는 저기서 원투를 예상했었거든요.”
“네 예상을 예상한 거다. 콥슨.”
[―와 존나 살벌하게 때리네―이 새끼들 진짜 선수 준비하나?
―그래서 파이몬은 보추임?
―둘 중 첩자가 하나 있는 건 확실하네]
마냥 게임 개발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공개된 영상의 상단에는, 이것이 무엇을 결정하기 위한 스파링인지 궁서체로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아, 니시무라야! 거기서 이겼으면 폭유로리미소녀가 나왔던 거잖아!!!!―고마워! 안드라스를 낳아줘서 고마워!!!]
집단의 광기였다.
이것을 끊어낼 방법은 오로지 하나, 외부의 개입 뿐이었고 마침 적절한 사람이 도착했다.
“저 인간들 뭐합니까?”
연호(황제)가 나타났다.
지난 은원을 되새기며 논검(스파링 해설)을 이어가던 사마의 일인자들은 그 순간 위기를 느꼈다.
“…자, 그럼 본격적인 정식 발매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니 시트리 빗치 결정전까지는 보여주고 하면 안 됨?]안타깝지만 어느 시청자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정식 발매로 선보일 것은 전체 맵, 신규 던전과 메인 스토리 해금, 거기에 36개의 새로운 캐릭터들이며….”
젤렌 콥슨과 니시무라 케이스케.
두 사람은 주먹질은 온종일 할 수 있지만, 시말서를 한 장만 써도 심마에 빠지는 극도의 무투파였다.
그렇게 몇몇 유저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어진 발표.
그 끝에서, 출시 이벤트 소식이 전면적으로 공개됐다.
“상품을 먼저 소개드려야겠죠! 바로 이 피규어입니다!”
빠밤!
효과음까지 동원하며 보여준 것은 데몬즈 렐릭의 3차 데모까지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세 히로인의 피규어였다.
사실상 메인 스토리의 중심에 있는 루시퍼, 메스가키 아가레스, 얀데레 안드라스까지.
사실상 1차 데모부터 팬덤을 쌓아온 히로인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은 당연하다.
하나 그런 아쉬움을 제외하고 봤을 때, 리와인드는 역시 한정 굿즈에서 실망감을 주지 않았다.
[―퀄 미쳤네ㅋㅋㅋㅋㅋㅋㅋ]리와인드는 공식 굿즈를 잘 풀지 않는다.
하나, 아예 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헬릭2 때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전통이 있었다.
하이엔드 퀄리티의 피규어.
하나를 제작하는 데만 몇십만은 우스울 돈을 때려 박아야 하는, 상품 가치를 극대화한 피규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부분에선 니시무라가 흥분했다.
“보라고! 여기 팬티랑 엉덩이 라인이 겹치는 부분까지 모두 구현…!”
침을 튀기며 말하는 그의 모습은 열정과 흥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직접 구상한 캐릭터가 실물로 나왔으니 오죽할까.
여하튼 그런 와중, 누군가가 물었다.
[―저런 것까지 구현해야 했나? 음;;;]피규어의 선정적임을 꼬집는 말.
그러니까, ‘비 씹덕’의 말이었고 니시무라는 그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피규어에 팬티가 구현되는 건 상식이 아닌가?”
마치 진리를 읊는 현자 같은 태도.
그에 유저들이 찬사를 보냈다.
[―씹덕 맞네―디렉터 근본력 상당한데?]
라이브 스트리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