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그걸 알게 된 것은 이튿날 받은 성우진의 목록을 본 이후였다.
“···사장님.”
“···예.”
“저희 단가 너무 후려쳤는데요?”
양길상이 말했다.
심히 공감하는 말이었다.
이수창 성우님이 데려온 성우들은 모두 업계 탑급을 찍는 스타 성우였다.
그러니까, 한 명 한 명 몸값이 경악이 나올 수준들이란 말이다.
내가 예상했던 범위는 기껏해야 숨은 실력자나 한 번쯤 들어본 목소리의 성우였고, 제시한 페이도 거기 맞춰져 있었다.
한데 데려온 분들이 그것을 아득히 상회하는 인선이었으니 참 곤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떡합니까?”
양길상의 질문은 중요했다.
이 업계에 있으며 여러 관련 직종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함은 당연한 사실이다.
우리 같은 신생 기업이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나, 혹여 외부 인사를 허투르게 대했다가 업계에 소문이 퍼지면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말이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지금 목록에 있는 이 스타 성우들, 앞으로 2~3년만 지나도 게임계의 온갖 메이저한 역할은 다 맡는 거물들이다.
리와인드가 계속해서 AAA급 게임을 노린다면 더빙은 필수불가결한 요소.
그때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삐걱거린다면 성우 쪽 사람을 수급해오는 일이 아주 어려워질 것 아닌가.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륵 흐른다.
평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모셔 오는 날이 언제였습니까?”
“다음 주 목요일이죠. 프롤로그랑 1챕터 녹음··· 그리고 대사 녹음까지.”
“계약서 다시 뽑아와 주세요. 단가는 제가 직접 협상해서 적당히 올리겠습니다.”
어떻게든 단가 협상은 제대로 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비즈니스니까.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했고, 그렇게 준비한 모든 수는 다 종이 쪼가리가 되었다.
“괜찮습니다! 도리어 감사하죠!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디렉터님 안녕하세요! 헬릭2 정말 재밌게 했어요!”
“?”
성우들은 금액 협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영문 모를 감사 인사를 보내올 뿐이었다.
의아한 와중이었다.
“디렉터님, 그럼 바로 녹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수창 성우님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리와인드의 녹음실은 좁았다.
여타 더빙 업체나 대기업 게임사들에 비하면 그랬고, 네 사람이 들어가기엔 딱 적당한 크기였다.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후배 중 가장 잘난 놈이 90도로 꺾어 인사했다.
이러지 말라고 해도 영 말을 안 들으니 곤란할 지경.
수창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됐다. 고개 들어. 너같이 잘난 놈 고개 숙이게 하면 누가 나보고 꼬장부린다고 욕한다.”
“세상에 누가···!”
“목 아껴, 곧 슛 들어가잖아.”
흡! 하고 후배가 숨을 들이켰다.
눈빛이 과하게 부담스러웠다.
수창은 어색하게 웃으며 다른 후배들에게도 말했다.
“오늘 잘 해보자. 무리한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
모자란 자신에 비해 너무 잘난 후배들이었다.
그럼에도 항상 존경을 표해주는 고마운 후배들이었다.
수창은 그런 것에 또 작아지려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러면 안 되지.’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생계가 어려워진 이후에도 딱 하나, 이 목관리 만큼은 꾸준히 신경을 써 왔기에 다행히 오늘도 잘 가동해주었다.
컨디션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분명 다른 것은 있었다.
수창은 대본을 바라봤다.
‘머리 비우자. 수창아.’
너무 오랜 시간을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목소리를 내는 즐거움.
수창은 그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랬던 순간의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창의 시선이 방음유리 너머의 연호를 향했다.
연호는 웬 초록색 저지를 입은 사운드 직원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호뿐만 아니었다.
저 어리게만 보이는 사운드 직원도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직전 일이 생각났다.
-그, 그거 해주실 수 있나요···! 나는 나보다···!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허억···!
심장을 부여잡으며 몸을 떨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역시, 저 직원 또한 자신의 연기를 보고 자랐다고 생각하니 뭉클함이 일었다.
그런 감정을 품었다.
꾹꾹 눌러 담았고, 정제하고 세공하여 마음 한켠에 놓아두었다.
[슈, 슛 들어갈게요···!]안내와 함께 녹음실 안쪽 모니터로 화면이 나왔다.
프롤로그 시네마틱.
그중 수창이 보는 것은 야만인이었다.
오늘이 오기까지 약 열흘, 대본리딩만 수십 번.
연호의 말대로 야만인은 10여 년 전 연기했던 블랙 워 티라노몬과 닮은 점이 있었다.
고뇌 속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
그리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다는 점.
하지만, 두 배역은 달랐다.
고뇌의 방향성이 달랐고, 살아온 생애가 달랐고, 가는 길이 달랐으며 그것을 연기하는 자신조차도 달라져 있었다.
수창은 그걸 겸허히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니 이 순간 수창의 머릿속에서 블랙 워 티라노몬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름 모를 야만인.
그 배역만이 있을 뿐이었다.
[쿠구구궁―!] [으아아아아!!!]진동과 폭음, 그리고 비명.
사운드 디렉터가 직접 수집한 소리라는 말을 들었다.
현실감이 물씬 풍기는 울림에 수창의 사고는 침잠했다.
수창은 배역과의 깊은 일체감을 통해 몰입은 얻는 쪽이었다.
그런 이유로, 저 광경 한 가운데 서 있을 야만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봤다.
그렇게 야만인의 삶을 유추했다.
‘너는···.’
어느 부족의 지도자.
그럼에도 언제나 가장 앞에 서 있고, 부족의 전사들은 뒤를 따를 뿐이다.
‘광폭하구나.’
야만인은 적에게 자비가 없다.
그러지 않으면 등 뒤의 부족민들이 당할 것이기 때문일 터다.
‘또한 용감해.’
그러지 않으면 부족민들이 불안해 할 것이기 때문일 터다.
‘정이 많아.’
온몸으로 적들의 창칼을 막는다.
스스로 아픔으로 등 뒤에 남은 것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일 터다.
생존, 그리고 보호.
그는 약육강식의 섭리를 온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처절하고, 용감하고, 포악했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쿵!]부족민이 쓰러졌다.
그를 안아 든 야만인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잃기만 하며 그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감정의 이해가 깊어졌다.
수창은 이 지옥 속에서 그가 느꼈을 고뇌를 하나하나 되짚었다.
‘절망? 회의감? ···아니, 아니야.’
야만인은 단어 그대로 야만적이다.
날 것 그대로 생물로서의 본능에 충실하다.
그는 지도자다. 무리의 우두머리다.
살아남고 싶을 것이고, 살리고 싶을 것이다.
무리를 온존하고 싶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울타리 안이다.
한데 그 울타리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끊임없는 전쟁의 연쇄로, 누군가의 농간에 의해서.
그렇다면,
‘···분노.’
화가 나겠지.
속을 다 불살라버릴 정도의 절절한 분노겠지.
픽―
수창의 머릿속 스위치가 켜졌다.
배역과 수창을 잇는 전선이 연결된 것이었다.
씬이 시작됐다.
성우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후배가 낸 군인의 목소리가 참담했다.
끌리는 듯한 어조, 그럼에도 발성과 딕션은 훌륭했다.
수창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야만인의 곁에 저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테니까.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차례였다.
지금은 그때였다.
습, 호흡이 들어왔다.
허리가 바로 펴졌다.
시선은 대본을 바로 향했고 표정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리하여 들이쉰 숨에 진동이 섞였다.
‘분노.’
그것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수창은 지난 고민의 답을 성대에 발라냈다.
목을 긁어 만든 울림이 거칠게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토해진 것은 한 단어 속에 담긴 고민과 몰입, 그것으로 완성된 야만인의 들끓는 분노였다.
“···거기 당신.”
공간이 침묵했다.
너무나도 절절한 분노에, 마치 홀로 다른 세상 속에 있는 듯한 절망감에.
순간의 정적, 이윽고 다른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하늘이시여.”
오열하는 성기사의 목소리.
“이 끔찍한 자여.”
스파르탄의 증오 서린 목소리.
직후 그들의 호흡이 일치했다.
깔린 호흡은 정교하게 맞물린 시계태엽처럼, 풍차에 휘감기는 바람처럼 절묘하고 자연스러웠다.
네 사람은 눈짓을 나눴다.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음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광경은 진득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달리 말해, 순간에 가장 올바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성우.
그것은 스스로 목소리를 태어나지 못한 것들을 대변해 세상에 그들의 이야기를 부르짖어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다만 화면 너머에만 존재할 영상물에 비로소 감정을 실어주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온몸을 써서 타인을 연기하는 배우와는 달랐다.
성우가 연기하는 것에 연기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목소리 하나, 그 외의 모든 것을 지워 오로지 숨결만을 매체에 불어 넣어야 했다.
음성의 고저, 발음의 변화, 떨림과 악센트의 조절, 그리하여 완성되는 문장은 다만 세상 누구보다 특별할 이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야만 했다.
그런 사람들의 호흡이 아득한 악의를 실은 채 일제히 뻗어 나왔다.
““내가 왜 지옥에 떨어져야 하오?””
이 순간, 대변인들의 숨에 의해 비로소 네 명의 순례자는 생명을 입기 시작했다.
* * *
극이 끝나면 무대가 어두워진다.
커튼이 드리워지고, 그때쯤에야 배우들은 배역에서 빠져나온다.
성우들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진짜 최고였습니다! 압도되는 느낌이었어요! 하마터면 제 차례 때 실수할 뻔···!”
스타로 알려진 후배 성우들은 동경의 기색을 담아 수창에게 말했다.
하나 수창은 답하지 못했다.
아직 배역 속에 있던 것이었다.
‘얼마 만이지?’
이렇게 배역에 몰입해본 게 얼마 만이었을까.
시네마틱을 끝내고 프롤로그 챕터의 대본을 읽었다.
이후 몇 가지 대사와 상호작용 음성을 읽었다.
하나, ‘읽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창은 그 순간 야만인의 목소리가 되어 스스로의 통제를 잃고 있었다.
진이 다 빠지는 기분, 등은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수창은 문득 가슴 속 응어리가 녹아내려 있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수창은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성우였고, 이 배역은 이제까지 해온 수많은 배역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한데도 무언가 달라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고, 이윽고 그것이 심경의 변화임을 깨달았다.
수창은 후배들을 격려하고 녹음실을 나왔다.
기다리던 연호가 말했다.
“최고였습니다. 역시 엄살이셨네요. 다른 성우 구하라는 말.”
“지, 진짜···! 와! 우리 직원들은 그런 목소리 못 내느··· 아얏!”
연호가 여자아이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수창은 그 순간 푸흐흐, 웃음을 흘려버렸다.
“수고는요. 아직 한참 남았는데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벌써 절반이나 하신 거죠.”
남은 챕터는 6개, 그 사이에 시네마틱이 얼마나 들어갈지는 연호도 모른다고 했다.
필요한 대사도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벌써 이렇게 진이 빠지니 수창은 오랜만에 집중에 의한 탈력감을 느꼈다.
하나 불쾌하지 않았다.
도리어 충만했다.
“사, 사장니임···!”
여자아이가 연호의 팔을 콩콩 두드렸다.
연호는 여자아이의 정수리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다음 일정이 잡히는 대로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도 무던하게 말하는 것은 신뢰였다.
과한 극찬은 없었으나, 달리 지적할 점이 전무 했다는 것은 성우로서 뿌듯한 일이었다.
감정이 요동쳤다.
수창은 이제야 마음 한켠에 두었던 뭉클함을 풀어헤치며, 한마디를 더했다.
“그 대사 있잖습니까. 블랙 워 티라노몬이 했던 것들.”
“예?”
“사실 저는 블랙 워 티라노몬의 대사를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보다 좋아하는 게 있었죠.”
조금은 두서없는 말이었다.
“블랙 워 티라노몬은 최후에 버그몬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거기에 버그몬은 답합니다.”
그 순간 연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수창은 말했다.
“사는 목적을 알고 싶다면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어.”
그것이 그제야 기억난 것이었다.
수창의 주름이 미소의 형태로 깊게 패였다.
“열심히 살아야죠. 밥벌이해야 하니까.”
그 이상의 의미는 영 낯 뜨거운지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케케묵은 열정이 당신 덕에 다시 빛나기 시작했음을 말하려던 것뿐이었으니.
“다음에 뵙겠습니다.”
수창은 깊이 고개를 숙인 후, 뒤따라 나온 후배들에게 말했다.
“가자, 내가 밥이라도 사게.”
그는 더 이상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았다.
* * *
게임에 목소리가 입혀졌다.
더 풀어 말하자면, ‘내’ 게임에 ‘처음으로’ 목소리가 입혀졌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목소리였다.
-거기 당신.
몇 번이고 프롤로그를 돌렸다.
다만 감상에 빠져있기보단 그것을 미학적으로 분석했다.
‘역시 잘 어울리네.’
딸깍딸깍 컴퓨터에 연결한 콘솔 패드를 움직였다.
프롤로그 챕터의 시연이었다.
-죽인다!!!
야만인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3페이즈.
대사가 꽤 찰지다.
외에 캐릭터의 모션도 부드러웠고 별다른 버그도 없었다.
여기는 이만하면 된 것 같다.
생각하는 중이었다.
띠링!
양길상에게 문자가 왔다.
[급함!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이젠 익숙해진 급보 전달 방식.
잠시 게임을 멈추고 양길상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러자 콰당탕! 양길상이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사장님! 큰일입니다!”
“예?”
“예? 가 아니잖아요! 잊었습니까? 오늘 헬릭2 콘솔 발매 1주차에요!”
아, 맞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습니까?”
어느덧 11월 말이다.
ps3의 마지막 모델인 슈퍼슬림이 출시됐고, 동시에 헬릭2의 콘솔판이 시장에 풀렸다.
사실 본 판매량에 큰 기대가 없어 신경을 끄고 있었다.
아무렴, 이미 예약 구매량으로 유의미한 지표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이미 PC로 풀렸던 게임이다.
고객을 빨아들이려 해도 더 가져올 파이가 없는 것이다.
아마 양길상이 이리 호들갑을 떠는 것도 본 판매량의 부진 때문이겠지.
그런 판단으로 양길상을 진정시키려 했다.
“예상한 부진입니다. 일단 진정···.”
“부진이 아닙니다!”
양길상이 내 어깨를 확! 붙잡았다.
부담스럽게 들이미는 얼굴, 거기 박힌 입꼬리는 귀까지 걸릴 지경이었다.
“팔렸다고요! 그것도 끝장나게 팔렸어요! 우리 대박 났다고!”
몸이 덜컥 멎었다.
“?”
이게 무슨 말이야.
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