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tycoon of all time RAW novel - Chapter 35
34화.
월드컵 지정 호텔 전초전.
이틀 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성현우는 미래호텔 레스토랑 룸에 마주 앉았다.
성현우는 장관을 향해 말했다.
“다른 곳에서 드셔도 되는데 저 때문에 호텔로 오신 겁니까?”
“사실은 와이프가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오늘도 여기서 묵기로 했거든요.”
“장관님께서 예약하신지 몰랐네요.”
“성 팀장이 과일바구니를 또 넣을까봐 와이프 이름으로 예약해놓았어요. 숙면을 위해서 자주 와야 하는데 매번 그렇게 챙겨주면 내가 부담스럽지요. 하하하!”
장관은 호탕하게 웃으며 디저트를 먹었다.
이후에도 장관이 호텔을 너무 자주 들락거려서 가명 사용을 고려 중이라는 둥, 프리미엄 리조트 회원 중 장관이 한 명 더 있는데 서로 모른 척 하는 중이라는 둥, 가족 회원 명단에 양가 어머니들만 넣었다는 등.
평소 그답지 않게 사적인 얘기를 했다.
성현우는 그에게 맞장구를 쳐주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순간 귀가 웅웅거리며 문장 하나가 들렸다.
‘호텔 재선정 필요’
성현우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며 더 여유롭게 시간을 즐겼다.
잠시 후, 커피를 마시던 장관이 슬슬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좀 오버했지요? 성 팀장과 자주 보게 되니 내 기분까지 드러내게 되는군요.”
“오늘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좋은 일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내 부담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
“성 팀장도 알겠지만, 월드컵 행사에 참여하는 호텔이 대강 정해졌어요. 그런데 나는 호텔을 다시 선정했으면 합니다.”
“제가 이런 걸 여쭈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님께서 따로 지시를 내리셨습니까?”
“반허락은 받은 상태인데 그 과정에는 성 팀장 역할이 컸어요.”
“혹시 프리미엄 리조트 때문인가요?”
성현우의 말을 들은 장관은 다시 장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입을 열었다.
“프리미엄 리조트 분양 때 정계의 여러 사람이 주목했어요. 아직 IMF가 종료되기 전이기도 하고 다른 콘도나 골프장에 비해 지나치게 고분양가이기도 해서요.”
“네.”
“사실 정부는 IMF 이후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예측하고 있었어요. 특히 문화와 레저 쪽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프리미엄 리조트가 정부의 고민을 앞당겨서 해결해준 격이에요.”
“저희도 분양 조기 마감에 놀라고 있던 차인데 정부는 그것을 재계와 다른 각도에서 보셨군요?”
장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지쳐있는 국민들이 마음을 회복하고 부자들에게 몰려있는 돈을 어떻게 사회 전반으로 퍼질 수 있게 할까를 연구 중이었죠. 프리미엄 리조트 분양이 실패로 끝났으면 정부는 다른 방향을 찾았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 정수리가 더 넓어졌을 거예요.”
장관은 서론을 아주 길게 풀었다.
그러나 서론이 길고 풍부할수록 본론이 더 가치 있는 법.
성현우는 차분하게 본론을 기다렸다.
장관은 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성 팀장, 미래호텔이 잘해줘야 월드컵 지정호텔 재선정이 명분을 얻을 수 있어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성 팀장과 미래호텔은 지금처럼만 하면 됩니다.”
“혹시 선정 방식을 완전히 바꾸십니까?”
“그래요. 나는 미래호텔이 바꾼 선정 방식을 무난히 통과할 거라고 믿어요.”
“마지막으로 당부하실 게 있으실 것 같은데요?”
성현우의 질문에 장관은 대답이 아닌 질문을 했다.
“성 팀장, 분양 관련 서류 혹시 성 팀장이 최종 체크했나요?”
“네.”
“역시 그랬군요. L레저에서 제출한 서류에 분양 가능한 공정률 시점이 완벽히 표기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월드컵 지정호텔 중에는 지정호텔에 어울리지 않은 호텔이 꽤 되더군요.”
장관은 그 말 이후 커피잔을 들었다.
성현우는 장관의 잔에 커피를 채우며 입을 열었다.
“장관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꼭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호텔은 묵묵히 지금 이 모습을 유지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우원호 회장에게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얼마 전, 장관실에 곤지암 프리미엄 리조트 분양이 법률에 저촉된다는 고발이 들어갔다.
민원의 내용은 콘도는 공정률 20%, 골프장은 공정률 30%를 넘긴 후 분양해야 하는데 그 이전에 분양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정부도 곤지암 프리미엄 리조트 분양을 눈여겨보고 있던 차인 만큼 문화체육관광부는 즉시 조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곤지암 프리미엄 리조트의 서류는 단 하나의 흠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에 멈추지 않고 현장 조사까지 실시했다.
그런데 공사 현장도 서류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래서 고발 건을 ‘불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함’으로 처리하려는 중 장관이 추가 지시를 내렸다.
월드컵 지정호텔과 리조트에서 불법행위나 불미스러운 사건, 법에 저촉할만한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50% 이상 호텔에서 불법영업과 무단 시설 변경, 소비자보호원 고발, 직장 내 성추행, 고객과의 고소·고발 건 등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정 호텔들 중 처음 등급을 받았을 때 시설과 서비스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말만 특1급이 많다는 것이었다.
어떤 호텔은 가장 기본인 객실 수와 직원 수부터 기준에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호텔들은 이전 장관과 연관된 곳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미 월드컵 관련 자금이 투입된 곳도 있었다.
장관은 이 사실을 대통령께 보고했고 대통령은 장관령으로 상황을 정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우원호는 은밀하게 소식을 전하며 이 기회에 월드컵 지정호텔이 되라는 주문까지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미래호텔이 잘나가면 곤지암 프리미엄 리조트가 더 잘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프리미엄 리조트 경영자로 월드컵 지정호텔 선정을 끌어낸 사람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성현우는 성관규에게 월드컵 지정호텔 선정을 혼자 힘으로 하겠다고 했다.
프리미엄 리조트 분양과 분양 관련 서류 모두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것이니 혼자 한 것은 맞았다.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인물에게 도움을 받고 말았다.
프리미엄 리조트 분양이 법률에 저촉된다고 고발한, 바로 성민수 쪽 사람이었다.
우원호는 일부러 고발 당사자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민수의 최근 행보를 보면 답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성현우는 성민수에게 호텔 로고가 박힌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야 하나 고민하며 장관 케어를 마무리했다.
* * *
며칠 후, 서울의 각 호텔에 월드컵 지정호텔 재심사 공문이 내려왔다.
호텔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지정호텔로 선정된 곳은 물론이고 포기하고 있던 호텔도 상황을 알아보느라 정신없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또 공문이 날아왔다.
바로 지정호텔 선정 작업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본 호텔 관계자들은 입을 쩌억 벌렸다.
선정 기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암행 평가’이기 때문이다.
성현우는 공문을 보며 씨익 미소를 머금었다.
“장관님이 고민 좀 하셨네.”
전 삶, 호텔 등급이 무궁화에서 별로 바뀌며 등급심사 기준에 ‘암행 평가’ 제도가 생겼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은 생소한 제도다.
실제로 대부분 호텔 수뇌부들은 ‘암행 평가’라는 말 자체부터 거부감을 나타냈다.
“지금이 조선시대야? 문화부에서 무슨 근거로 암행 평가를 하는데?”
“맞습니다. 호텔 등급도 문화부가 아니라 호텔 협회에서 하는데 자기들이 무슨 권한으로 재평가를 한답니까?”
“그전에 이미 지정받은 호텔에 미안하다는 전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장관이 특정 호텔을 찍어놓고 재심사하는 것 아닐까요?”
이후 업계 관계자의 시선은 곤지암 프리미엄 리조트와 미래호텔로 향했다.
곤지암 프리미엄 리조트는 장관이 유일하게 회원권을 보유 중인 곳이다.
하지만 아직 건설 중이다.
스키장과 골프장까지 준공하려면 2년이나 남았다.
반면 미래호텔은 장관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
호텔을 이끌다시피 하는 성현우는 곤지암 프리미엄 리조트 회원권을 기획한 자이기도 했다.
수시로 모임을 가지며 월드컵 지정호텔을 따냈던 호텔 수뇌부들은 장관을 움직인 자로 성현우를 지목했다.
그리고 어떻게 골탕 먹일지를 연구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연구를 깊게 할 수 없었다.
서울 호텔 몇 곳에 문화부의 암행 평가가 다녀간 것 같다는 말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호텔 협회에서 등급 재심사를 준비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고? 호텔 협회가 임의대로 그럴 리는 없는데?”
“호텔 협회도 어쩔 수 없다고만 했답니다. 정부에서 작정하고 호텔들을 흔드는 것 같아요.”
“그럼 우리도 이렇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등급이 취소되기라도 하면 외국 단체부터 못 받아요!”
“나도 호텔로 빨리 가봐야겠어요.”
“저도요. 우리 회장님이 등급에 워낙 예민하셔서…….”
그렇게 문화체육관광부에 반기를 들려던 일부 호텔 수뇌부들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호텔부터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래호텔 사장 허태식은 여유 그 자체였다.
그는 비서에게 업계 소식을 들으며 콧방귀를 꼈다.
“나를 건설업자 출신이라고 끼워주지도 않더니 아주 그냥 샘통이네. 그래서 다른 호텔들은 직원부터 뽑고 있다고?”
“특1급 기준에 당직 지배인과 도어맨, 벨맨이 있어야 하는데 객실팀장이 당직 지배인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리고 또 뭘 하는데?”
“침구류부터 바꾸는 곳도 있고 객실 더블락을 교체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호텔은 편의점으로 쓰던 곳을 다시 레스토랑으로 돌려놓는다고 합니다.”
“편의점?”
“장사가 안 되어서 카페테리아를 편의점으로 바꿨답니다.”
“하! 이건 뭐 동네 장사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런 곳이 지정호텔이 되었다는 거지?”
“네.”
“우리 호텔은 어때?”
“평소와 같습니다.”
“예약률도 그대로고?”
허태식은 전산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물었다.
비서는 갈수록 불룩해지는 그의 배를 한심스럽게 본 후 입을 열었다.
“샘플객실과 부대시설 쪽 대기가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분양도 끝났는데 아직도 샘플객실을 원한다는 말이야? 거기는 다른 객실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며?”
“회원권을 구입한 분도 다시 묵고 싶어 하는데요. 회원권을 구입하지 못한 분들도 예약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왜?”
“샘플객실에서 잠을 자면 숙면을 취한다는 소문 때문인 것 같은데요. 비싼 리조트를 체험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비서는 허태식의 눈치를 보며 꼬박꼬박 대답했다.
허태식은 비서에게 나가보라는 손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대리만족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건데……, 프리미엄 리조트가 그렇게 대단한 곳인가? 아니면 분양가가 비싸서 더 그럴싸하게 보이는 건가? 하여튼, 성 팀장 능력은 알아줘야 해. 아무리 대기업 간판을 걸어도 성 팀장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히트하진 못했지. 암!”
이후 그는 예약실에 전화했다.
그리고 샘플객실 중 가장 비싼 곳에 대기를 걸었다.
옛날 같았으면 자기가 필요할 때 키만 달라고 했을 거다.
요금은 당연히 COMP(무료)로 처리했을 거고.
그런데 이제는 취소가 나면 바로 알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카드번호를 미리 불러주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이후 전화를 끊은 그의 얼굴에는 성현우에게 잘 보여서 따로 빼놓은 회원권이라도 구입해볼까 하는 꿍꿍이가 들어있었다.
* * *
보름 후, 성현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문을 보고 있었다.
월드컵 지정호텔 선정 1차에 통과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암행 평가라고 하더니 정말로 나도 모르게 다녀갔네.”
성현우는 그 말 이후 월드컵 지정호텔 선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서류 심사 후 프리젠테이션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호텔 매출을 더 끌어당겨야 할 시기였다.
성현우는 지원팀장에게 전화했다.
“저번에 말씀드린 것 알아보셨나요?”
[호텔 매트리스를 말하는 거죠? 우리에게 납품한 곳에 주문을 넣어둔 상태에요. 그런데 우리 객실은 아직 교체하지 않아도 되잖아요?]“우리 객실 말고 다른 곳에도 쓸 겁니다.”
[다른 곳 어디요?]“그건 나중에 알려드리죠. 팀장님, 업체에서 대량 제작이 힘들다고 하면 150개 정도만 확보해도 됩니다. 대신 다음 달 초에는 들어와야 해요.”
[그렇게 준비시키죠. 그럼 침구류와 커튼도 그렇게 맞추면 되겠죠?]“네. 그렇게 해주세요.”
이후 성현우는 예약파트장을 불렀다.
“9월 10일 이후 외국인 예약건은 전액 선입급 처리하게 하세요.”
“전액을 다요? 그렇게 하면 취소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럼 취소시키고 룸을 국내 고객에게 돌리세요.”
“네.”
예약파트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호텔 투숙객 중 외국인 고객은 40% 선이다.
주로 관광이나 비즈니스 차 들어온 사람들이고 장기 투숙이 많았다.
그래서 객실 중 일정 비율은 외국인을 위해 배정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성현우는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또 내렸다.
“샘플객실 대기가 어느 정도 되죠?”
“각 객실마다 스무 명 이상은 받지 않으려고 해요.”
“취소가 거의 없나요?”
“네. 그래서 더 받아놨다가는 컴플레인만 생겨요.”
“9월 이후에는 한 객실당 백 명 정도는 받으세요.”
“네?”
“고객들에게 욕먹을까 봐 불안한가요?”
“……네.”
“그렇지 않을 테니 예약받으세요. 이상 상황이 생기면 내가 책임집니다.”
성현우는 자세한 설명 없이 지시를 마쳤다.
예약파트장에게 2001년 9월 전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생겨서 외국인 투숙객이 급감할 거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였다.
이후 성현우는 다음 주에 예약되어있는 연회 명단을 보았다.
모든 연회장이 풀로 찰 정도로 꽉 차 있었는데 그 중 딱 2개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외국계 금융권 국내 지사들의 정기 모임, 나머지 하나는 서울 탑 회원권거래소 팀장급 이상 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