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마무리!
“정말로 해냈군, 타이니 놈.”
파멸의 힘을 담은 노을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
차원 균열이 소멸한 오렌 평야의 중심에서, 얼핏 봐도 5~600m 깊이로 파여 버린 땅을 내려다보는 검제의 눈빛이 보기 드물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가 해낸 거겠지, 공작.”
그의 어깨를 툭 친 저릭이 이를 모두 드러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곳엔 초인이 아닌 이가 없었으니, 저 깊은 구덩이 아래에서 강력한 기세를 풍기던 마수왕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한 것을 모두가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탈진한 듯 주저앉아 있는 타이니의 모습 또한 보지 못한 이가 없었다.
“흐아아, 진짜 징글징글한 놈. 이 정도면 거의 협곡이라고 봐야겠네.”
아르곤이 그리 말하며 소란을 떨자, 옆에 있던 실버 팽이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킁. 또 지렸냐, 꼬마?”
“무, 무슨! 그, 그리고 그거 착각이라니까!? 비행 마법 한 번 쓴 거 가지고 뭘!”
“퍽이나…….”
실버 팽의 비웃음에 아르곤이 다시 울컥하려는 찰나.
검제의 시야에, 바람의 기운을 휘감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리는 에스티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보다 앞서 그림자를 통해 이미 타이니의 옆에 서 있는 루나의 모습 또한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면서도.
“제대로 웃고 떠드는 건 조금 미루자. 주인공 먼저 챙기고.”
“거참. 우리도 주인공이라니까, 공작.”
서로를 보며 피식 웃은 검제와 저릭이 그대로 그 협곡 아래로 몸을 던졌다.
흑강철 갑옷을 입은 육중한 검제의 몸이 마치 깃털처럼 부드럽게 통통 튀며 수십 미터 깊이의 협곡을 내려가고, 뒤이어 은빛 바람을 휘감은 저릭의 거체 역시 질풍처럼 사라지자.
사방에 웃음이 번지며 초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깊은 구덩이 아래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정말 여기까지 왔군.”
“내 직감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고.”
“……그렇다 칩시다.”
웨폰 마스터가 초월무구 아이언 페이스를 타고 날아오르듯 뛰어들자, 뒤이어 강철의 갑옷을 포탄처럼 날린 하이넨의 뒤로 제나스 역시 새하얀 바람을 휘감으며 사라졌다.
그에 갓 핸드가 멀리 구덩이 반대편에 서 있는 용사를 향해 눈길을 한번 주더니,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그 깊은 협곡 안으로 차분하게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까지 보고서야.
“냄새 안 나게 넌 좀 떨어져서 와라, 꼬맹이.”
아르곤을 보고 키득거린 실버 팽이 그대로 전신에 노란 번갯불을 휘감은 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젠장…….”
[神風(신풍)]한숨을 내쉰 아르곤도 결국 바람 속성의 오러와 마법을 동원해 몸에 두르고는 그 뒤를 따랐다.
거기다 약간의 불 속성을 첨가해서, 아무도 모르게 은근슬쩍 가랑이 사이를 말려 가면서.
휘이이이잉.
거의 10일 간격을 두고 같은 위치에 터진 타이니의 빅뱅은 거대한 크레이터 안에 그보다 더 깊고 넓은 구형의 공동 하나를 만들어 낸 탓에, 아르곤이 그 안쪽으로 떨어지는 데만 수 초가 걸렸다.
한 사람의 힘이 자연을 바꿔 놓은 풍경.
심지어 그 힘의 대부분은 반신급이라는 칠죄종을 처리하는 데 집중되었을 테니, 그러고도 남은 여파가 이 정도라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녹턴에는 재생 불가의 권능도 있다고 들었는데, 애초에 이 정도 파괴력을 낼 수 있다면 그런 게 필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굳이 그 권능이 서린 망치 머리에 직접 맞지 않아도, 여파에 휩쓸리는 것만으로도 소멸해 버릴 테니까.
‘저거 진짜 인간이 맞긴 한 건가.’
멀리 바닥에 쓰러져 있는 타이니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녀석이 한 말이 떠올랐다.
– 너 그 마기아에 의지해서 7가지 속성 다 쓰는 건 좋은데, 거기에 습관 들이면 오러익시더의 경지는 점점 멀어진다.
물론 무시했었다.
오러는 그럴지 몰라도, 마법은 반대였으니까.
‘마법에는 여러 속성 다뤄 보는 게 더 좋거든?’
애초에 일찌감치 7가지 속성을 모두 다루는 데에 익숙해져서 전설의 9서클 대마법사가 되는 것이 초월무구 마기아가 만들어진 배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적을 일으킨 녀석을 보니 그 생각이 살짝 흔들렸다.
– 마법? 흥, 극도로 강화된 힘은 마법과 다를 바 없다. 어떤 면에서는 더 낫지.
녀석이 한 개소리가 그럴듯하게 들릴 정도로.
‘무슨 물리적 마법이냐, 미친놈.’
그렇게 헛웃음을 짓는 와중에 눈에 들어온 광경.
타이니가 저 예쁘고 야한 갑옷 입은 엘프 누님에게 반쯤 안긴 자세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니, 그 개소리에서 갑자기 굉장한 설득력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물리 마법…… 개발해 봐?’
부럽다는 생각이 아르곤의 머릿속을 살짝 스치는 순간.
“여어들, 나 해냈어.”
에스티나에게 안기듯 기댄 채 상반신만 일으켜진 타이니의 입에서 맥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가까이서나 간신히 들릴 만한 작은 소리였지만, 지금 그에게 다가서는 이들 중 보통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
그들은 그 작은 목소리와 타이니의 얼굴에 걸린 환한 미소만으로도 똑같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럼 헹가래다.”
히죽.
늦게 출발했지만 가장 먼저 도착한 실버 팽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타이니의 발목을 잡아챘다.
“뭐?”
힘 빠진 얼굴의 타이니가 어리둥절해하는 순간.
까드득.
“기쁨의, 표현! 이 새끼야!!”
“뭐, 뭐야!”
파지지직.
쿠우우웅.
송곳니를 드러낸 늑대인간이 타이니의 몸을 하늘 위로 힘껏 던졌다.
번개의 오러와 함께 한껏 부풀린 근육을 보니 분명 감정을 실어 최대한 세게 집어 던진 듯한데, 늘어진 타이니의 육체는 고작 이십여 미터(?)를 떠오르는 것에 그쳤고 오히려 그를 던진 실버 팽의 발목이 땅을 푹 파고 들어갔다.
“뭐 이따위로 무거워!!”
실버 팽이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 나 환잔데!!
허공에서 아련하게 퍼지는 타이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실버 팽의 얼굴에 미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아르곤의 눈빛 역시 번뜩이기 시작했다.
‘이건 기회다…….’
저 타이니 놈을 엿 먹일 합법적인 기회.
처음으로 들어 본 타이니의 비명 같은 목소리에 고무된 아르곤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마기아를 움직이며 마법을 발동했다.
“진쯔아! 너무 잘했다! 짜식아!!!”
콰콰콰콰콰콰.
아르곤의 위에서 시작된 돌개바람이 곧장 타이니에게로 향했고, 이내 기대했던 반응을 뽑아냈다.
– 아, 아르곤? 너 이색…… 우와아아아악!
녀석의 몸이 부피에 비해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무겁다는 것을 고려한, 확실한 마력 투자의 산물.
추락하려던 타이니의 몸이 다시금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움? 축하 행사인가? 그럼 나도.”
파아아아앙!
한발 늦게 다가온 저릭이 그대로 점프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허공에서 그대로 타이니의 발목을 잡아챘다.
– 너는 왜……!
– 참! 잘했다, 타이니! 으라라라라랍!
허공을 밟은 것처럼 공중에 서서 타이니의 몸을 빙글빙글 돌린 저릭이 온몸에 폭풍을 불러일으키더니, 다시 한번 그를 하늘 위로 집어 던졌다.
– 야아아아아악! 이 새끼들아! 나 아직 힘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그 고함은 또 다른 이의 얼굴에 미소를 만들었다.
“오 헹가래? 그래! 초인의 헹가래는 이 정도는 되어야지.”
슈우욱.
씨익 웃은 검제가 깃털처럼 두둥실 가볍게 상공으로 뛰어올라, 다시 타이니의 발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또다시 상공을 메우는 우렁찬 목소리들.
– 정말! 수고했다!
– 뭐, 뭐? 영감, 설마?!
– 그러니 오늘 한번 제대로 날아 봐라! 중력 역전(Reverse Gravity)!
– 미, 미친 영감탱이……!! 우와아아악!
이제는 거의 구름 높이까지 솟구치는 타이니의 모습에, 지상에서 그를 지켜보던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물론.
“어허, 에스가르드 놈까지? 쯧쯧, 뭐 하는 짓인지. 품위 없게.”
저 양반도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했지.
짐짓 혀를 차는 웨폰 마스터도 손을 움찔거리는 것을 보니, 이 갑작스러운 행사가 무척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타이니 녀석이 평소에 지은 죄가 많다는 것이 여기서 뚜렷이 드러났다.
‘쌤통이다, 새꺄!’
아르곤은 통쾌한 마음에 속으로 웃음을 짓다가, 헹가래(?)를 지켜보던 에스티나와 루나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지는 게 보이자 다시 표정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다른 분들은 그만하시죠. 타이니 경 몸도 생각해 줘야죠.”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신사적인 은발의 기사 제나스가 뒤늦게 나섰지만, 이미 저지를 만한 사람은 다 저지르고 난 후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하이넨은 끌끌대며 웃어 젖혔고, 표정을 알 수 없는 갓 핸드는 하늘 위로 고개를 들었다 내릴 뿐이었다.
그리고 곧.
– 이, 이게 무슨 축하냐아아아아!
다시 구름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타이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밑에 있던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돌았다.
“녀석, 이제야 생기가 돌아오는군.”
“옳다, 공작. 타이니한테 맥아리 빠진 목소리는 안 어울리지.”
검제와 저릭의 대화는 다소 무책임하게 들렸지만 모두가 공감하는지 미소를 짓고 있었고, 초인들은 그제야 서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이제 한고비 넘었군요.”
“확실히 칠죄종은 좀…….”
“앞으로는…….”
“이야아아아아!”
점차 떨어져 오는 타이니의 몸.
그의 비명 같은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모두가 훈훈한 덕담을 나누기 시작하니, 아르곤은 살짝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어? 왜 아무도 안 받아?’
내가 소심해서 그런가?
뭐지?
조금 당황스러워지는데.
“누가 좀……?”
힘을 꽤 소진한 듯한 창백한 얼굴의 에스티나가 타이니의 몸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행히 나만 이상한 건 아니구나 싶은데.
“동생, 튼튼.”
루나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에스티나에게 엄지를 치켜드는 순간에야, 아르곤은 무언가 확실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저 녀석 지금 탈진 상태 아닌가?’
사람이 저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살 수 있나?
더구나 몸무게가 보기보다 몇백 배는 더 나가는 저놈이?
근데 왜 아무도 반응을 안 하지?
아르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제야 묘한 분위기를 느낀 초인들이 대화를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 누가 받지?
– 네가? 네가?
– 누구든!
– 나?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눈빛이 수없이 교차하고, 모두가 동시에 움찔했다.
누군가 움직이려 하는 순간, 그것을 감지한 다른 초인이 멈칫하고.
원래 움직이려던 이가 그 동작을 감지해서 또 멈추고.
그것을 본 다른 이들이 동시에 움직이려다가 서로를 확인하고 멈칫하고…….
모두 초인이기에 가능한 기이한 눈치 싸움의 결과가 최악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동시에 인식한 그들의 머릿속에 한순간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 X 됐다.
“안……!”
“돼.”
에스티나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루나가 하품하는 순간.
‘이 X……!’
뒤늦게 X 됐음을 감지한 아르곤만이 간신히 바람의 마법을 발동했지만, 마도 검술도 아닌 의지로 발현된 마법은 끽해야 2서클 수준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야 이 X새끼들아아아!!!!!!”
타이니가 커다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으며 그대로 떨어지더니 지면에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릉.
“어…….”
솟구치는 흙먼지 속에서 누군가의 망연한 탄식이 흘러나오고.
창백하던 에스티나의 얼굴이 아예 파랗게 변하는 순간.
“개, X새끼들…….”
새로 생긴 구덩이 속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신음 같은 욕설이 모두의 귀를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저것들을, 내가, 동료라고……. 끙…….”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구, 구해!!”
“당장!”
“갓 핸드 경!”
그에 뒤늦게 소란스레 움직이기 시작한 초인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쪽에서.
“이게 대체 뭐 하는 짓……?”
– 최고 공훈자를 추락사시키는 게 요새 문화인가.
“절대 아닙니다, 펜릴.”
왜인지 뒤늦게 협곡 아래로 내려온 용사와 고대의 정령, 그리고 우란 누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초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