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82
482화. 아직 죽이면 안 돼요!
[반드시, 최대한 빨리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더 희생하더라도요.]꾸르르륵.
검제의 그 영파가 전해지는 순간, 저릭은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물속에서 공기를 내뱉고 말았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나야 좀 늙는 것 정도는 견딜 만하지만, 공작 당신은 안 괜찮을 것 같은데?]비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었다.
오크와는 다르게 기본적인 생명력 자체가 부족한 인간, 거기다 나이까지 든 검제. 그가 이미 상당량의 생명력을 끌어다 쓴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또 희생을 자청하다니.
[다음도 생각하시오, 공작. 우리에겐 당신이 필요해. 이번엔, 내가 좀 더 쓰지.]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닙니다. 적당히 할 상황도 아니고요. 내 수명을 전부 갈아 넣어서라도 칠죄종을 잡을 수 있다면, 그리해야지요.]수으으으으.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특별한 움직임이나 마나 파도도 없이 심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듯 물살을 가르는 검제의 모습을 보며 저릭이 슬쩍 웃었다.
[볼수록 은근히 마음에 든단 말이지, 당신.]차가운 지도자로만 보였던 공작의 열정 넘치는 모습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기에.
뽀그르르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오자, 상황도 잊고 웃음이 나왔다.
[크크크크크. 공작, 당신한테 이런 면도 있었나? 뭐, 좋아. 이번 전투 끝나고 살아만 있으시게. 내가 재혼 상대 알아봐 줄 테니까. 멋진 오크 여자로.] [어째 여기서 싸우다 죽으라는 말로 들립니다만?] [아니, 반은 농담이지만 반은 진담이지. 제국 황제의 장인인 당신이 오크 여자와 맺어진다면, 제국과 오크족 사이의 분쟁도 확연하게 줄어들 테니까.] [허……. 당신도 그냥 볼 때와는 다른 점이 많군요, 대전사.]결전을 앞둔 전사들 사이에 희미한 웃음과 함께 유대감이 형성되는데.
그 와중에 저릭은 새삼 의문이 들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음? 뭐요?] [당신, 왜 나에게 존대를 하지? 나는 솔직히 필요할 때만 대충 예의를 차리고 있는데.] [음?]그에 검제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우우우웅.
그들의 감각이 심해의 엄청난 유동을 감지했다.
이제까지 느껴지던 것보다 더 크고 치명적인 파동.
그리고 동시에 확 줄어들기 시작한 크라켄의 존재감도.
[이런…….] [일단 이 싸움을 끝내는 것만 생각합시다.]파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
두 사람은 거친 파도가 되어 몰려오는 심해의 격류를 헤치며, 그대로 그 파동의 진원지를 향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심해에서 벌어지는 괴수들의 싸움을 목격하게 되었다.
[마족, 인어……. 어미의 원수…….]왕관형 머리를 가진 거대한 문어, 크라켄이 다리가 4개쯤 잘려 나간 상태로도 연신 바닷물을 조종하며 자신보다는 훨씬 작은(?) 거대 벌레를 향해 남은 다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무의미하다. 하찮은……!]상대적으로 덩치는 작지만, 마나를 일으키는 파동만으로도 적의 공격을 모조리 파훼하고 밀어붙이는 거대 여왕벌의 움직임은 크라켄보다 확연하게 민첩했다.
200m에 이르는 체고에 비해 확연히 작은 날개가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지, 물살을 헤치고 움직이는 속도가 가히 바람과도 같은데.
[지능이 없는 거냐!? 계속 같은 소리만 하는 하등한 놈이!!]그럼에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짜증 가득한 영파를 토해 내고 있었다.
그에 비해.
[그리고 후셀의 원수…….]다리가 반이 잘린 크라켄은 여왕벌의 그 영파에도 말대답을 할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에 크라켄의 뒤쪽에 숨은 범고래가 꼬리와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면서 생존을 어필하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여왕벌은 크라켄이 범고래를 보호하느라 크게 움직이지 못하는 점을 공략하는 모양새였다.
크라켄의 주변을 맴도는 수만 마리에 가까운 까만 바다 벌레들과 함께.
그 양상 자체가 전장에 난입하려던 저릭을 놀라게 만들었다.
솔직히.
[공작, 솔직히 난 반대의 경우를 예상했었다. 칠죄종이 크라켄을 빨리 끝내지 못하는 건 무슨 약점이 있어서일 거라고. 그런데…….]너무 좋은 상황이라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함정 아닐까?]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저 칠죄종, 정말로 전투형이 아닐 수도 있겠어요. 그리고 상황은 비슷하네요. 마충 군주의 가운데 꼬리 부분을 보시죠.] [아……!]저릭은 검제의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인식했다.
여왕벌의 7개의 꼬리 중 하나의 끝에 하반신이 물고기인 한 인어가 매달려 있다는 것을.
다만 여왕벌의 빠른 움직임에도 흔들림 없이 붙어 있는 그 인어는 멍한 눈으로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인어는 초인급으로 보이는데, 저 범고래 수인은 오러유저도 아니군. 어찌 됐건 아무래도 크라켄이 불리해.] [아무튼 함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틈에 분노를 잡읍시다.] [오케이!]잠시 주춤하던 둘은 다시 그대로 전장에 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찮은 놈들이 감히 방해를!!]그들의 존재를 인식한 라스가 곧바로 꼬리에서 다시 대량의 바다 벌레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부그르르르르르르.
꿈틀거리는 새까만 무언가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웠지만.
저릭에게는 코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잡벌레들 따위로, 흥! 갑시다, 정령 양반.] [날 그냥 탈것 취급하지 말아 줬음 좋겠는데.]지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앙!
저릭이 타고 있던 검은 늑대가 입에서 붉은 레이저를 쏟아내는 순간.
그와 여왕벌 사이에 커다란 길이 뚫렸다.
그리고.
우우우웅.
저릭의 몸에서 시작된 은빛 늑대의 환영이 펜릴의 몸을 은회색으로 물들이는 순간.
둘은 물속의 바람이 되어, 뚫어 낸 길을 따라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투다다다다당.
저릭은 온몸에 부딪치는 바다 벌레 떼들을 그냥 무시했다.
오직 시야를 가리는 것들만 쳐 내며 빠르게 분노와의 거리를 좁히는데.
– 꾸어어어어엉!
콰콰콰콰콰콰콰.
갑자기 쩍 벌어진 크라켄의 입에서 격류가 쏟아져 나오며 전장의 흐름을 뒤틀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그 격류가 전장을 휩쓸기도 전에 여왕벌은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바다 벌레들은 그대로 짓이겨졌다.
문제라면 근처로 돌진하던 저릭과 검제까지 그 흐름에 휩쓸렸다는 것이었다.
‘큭!’
크라켄의 실수인가 싶었는데.
[방해. 싫다…….]‘이런 미친…….’
이어지는 영파는 그조차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도우러 왔다! 우리는 마족의 적이야! 적의 적은 친구라고!] [인간, 비켜라. 계약자와 후셀 아니면, 인간, 친구 아니다.]계약자?
‘무슨 소리지?’
저릭이 당황스러워하는 동안, 그들 사이로 벌레들의 군주의 비웃음이 날아들었다.
[멍청한 것들!]무식하거나 멍청하다는 소리야 하도 들어서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좀 타격감이 달랐다.
‘내가 지금 벌레한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가 다시 이를 갈게 만들 때.
콰아아아아앙!
여왕벌의 몸통 박치기가 다시금 크라켄의 거체를 휘청이게 만드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사이, 크라켄의 귀 즈음으로 보이는 위치에서 열심히 온몸으로 파닥거리고 있는 범고래의 움직임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
‘저건…….’
저릭이 인상을 쓸 때.
[크라켄에게 붙었다는 수인족입니다. 그가 우리를 도울 거예요.]검제의 말이 틀리지 않은 듯.
[인간 둘, 도움받는다.]그 순간, 크라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거대한 다리를 다시 여왕벌을 향해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다리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해류가 바뀔 정도의 막대한 힘.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만큼 느릴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으니.
그것을 단숨에 피해 낸 여왕벌은 다시금 꼬리에서 무수한 검은 벌레들을 양산해 냈다.
[하찮은 것들이 힘을 합친다고 뭐라도 될 것 같으냐!!]스가가가가각.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지만.
놈을 향해 돌진하던 저릭과 검제에게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정말 생산밖에 못 하나 본데?] [그런 거 같네요.] [고대에도 분노는 그랬었다. 다행히 변수는 없는 것 같다.]펜릴의 마지막 한마디가 더해지는 순간,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 꾸어어어어엉.
크라켄의 움직임 역시 변했다.
여왕벌을 노리고 주기적으로 날려 대던 다리들이 갑자기 멈추는데.
그때부터 여왕벌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물결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까짓……!]물론 그것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그 물결은 적의 속도를 3할가량 감소시켰고, 반대로 저릭과 검제의 움직임에는 그만큼 가속을 붙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물결의 흐름에 힘없이 쓸려 나가는 바다 벌레들의 모습은 분노가 왜 여태까지 크라켄을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고.
그나마 전장에 합류한 벌레들도 일행, 특히 저릭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지장도 주지 못했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호재였다.
그리고 이내.
콰득.
저릭의 도끼가 꼬리 하나를 반쯤 끊어 내고.
‘응?’
검제의 붉은 검이 다른 꼬리에 상처를 입히는 순간.
[캬아아악!]여왕벌은 발작하듯 주변으로 진한 마기를 뿌려 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방에 떠오르는 검붉은 원형의 마법진들.
바닷물을 새까맣게 오염시키는 마기가 독기와 저주를 품고 사방으로 쏟아지는데.
[흥! 고대의 분노보다 못하다.]찌이이이잉!
펜릴의 브레스가 다시 한번 그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의 길을 만들어 내고.
[내가 묶겠소이다, 저릭 공!]그 사이로 먼저 뛰어든 검제가 예의 그 쏜살같은 움직임으로 다시 분노의 지척에 이르러 검을 휘둘렀다.
번쩍.
크라켄이 물의 속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제약을 걸었음에도 빠른 움직임을 유지하던 여왕벌의 거체가 그 순간 덜컥 굳어 버리는데.
뒤따라 뛰어들어 온 저릭의 도끼가 그대로 물속에서 반원을 그리며 여왕벌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캬아악!!]칠죄종이라는 타이틀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듯.
여왕벌이 입으로 쏘아 내는 녹색의 브레스가 저릭의 보름달을 깨트리며 그의 몸을 뒤덮었다.
‘흡!’
콰콰콰콰콰콰콰.
‘젠장!’
짜릿한 통증과 독기가 파고드는 듯한 따끔따끔한 느낌은 참을 만했지만, 그대로 쭉 밀려나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 있었으니.
콰아아아아앙!
몸에 쏟아진 기운을 억지로 털어 내는 순간, 저릭은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이놈 글러터니에 비해서도 약하다, 공작!!!]저릭은 어질어질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억지로 몸을 바로 세우며 사방으로 영파를 토해 냈다.
검제에게 정보를 전한다기보다는, 상대를 도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저릭의 실력이 발전했다곤 하나, 적의 비장의 수처럼 보이는 브레스가 그에게 치명타를 입히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도발은.
[감히 나를 그 짐승과 비교해!!?]이상할 정도로 제대로 먹혔다.
그대로 엄청난 격류를 뚫고 돌진해 오는 여왕벌.
아직은 어질어질 한 몸이었지만, 저릭은 도끼를 바로 세우면서 얼굴에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적의 뒤로 바로 따라붙는 검제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그런데.
[기다렸다.]그 순간 여왕벌은 방어하는 저릭을 무시하고 갑자기 목을 180도 뒤로 꺾어 버리더니, 뒤따르던 검제를 향해 그대로 브레스를 쏘아 냈다.
콰콰콰콰콰콰콰.
‘이런……!’
그에 저릭이 다시 기겁하며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려던 그 짧은 시간.
여왕벌의 머리를 향해 달려들 듯하던 검제는 그조차 예상했다는 급격히 하강하며, 머리가 아닌 꼬리를 치고 지나갔다.
정확히는 그 꼬리 부분에 멍한 눈으로 매달려 있던 인어를.
[이런!]그리고 그 순간, 라스의 당혹스러운 영파를 시작으로 전장이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쿵.
– !@#!!?
인어족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변하며 해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심해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빌어먹을!!]분노의 당혹스러운 영파가 퍼지는 순간.
저릭은 눈을 빛냈다.
‘뭔지는 몰라도, 호재다.’
[기회입니다, 저릭 공.]검제의 영파 역시 그 판단에 확신을 주는데.
[그 벌레 아직 죽이면 안 돼요!!]조금은 급하게 느껴지는 익숙한 영파가, 두 사람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