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성장
파아아앙!
갈색 머리 청년 기사가 휘두른 육중한 망치가 허공을 강타하며 작은 돌풍을 만들어 냈다.
우우우우웅.
옅은 푸른 빛 마나가 서린 작은 돌풍은 직전에 만들어진 또 다른 마나의 돌풍 여섯과 합류하더니, 이내 십수 미터 높이의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되어 맹렬한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
‘조금만, 조금만 더!’
그 회오리의 중심에 있는 청년, 타이니는 이를 악물며 마나를 컨트롤하기 위해 애썼다.
몸과 무기 밖으로 끄집어낸 마나가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끔 통제하려는 것이다.
검을 쓰는 이가 다수이기에 ‘블레이더(Blader)’라 칭하기는 하지만, 마나유저 4단계의 본질은 마나를 활용해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물리력을 부여하는 것.
마나 블레이드라 불리는 대중적인 기술은 그 본질의 파편일 뿐,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기사도 마법사처럼 이런 재주를 부리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문제라면, 지금 그가 온전한 블레이더급이 아니라 그 벽을 두드리고 있는 상태라는 것.
“으아아아아압!”
붉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핏줄까지 선명하게 튀어나온 타이니가 혼신의 힘을 짜내 한 발을 내디뎠다.
쿵.
‘이번엔…… 반드시, 넘는다!’
연무장 바닥이 쩌저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그 순간, 스탬프가 다시 한번 강력한 힘을 싣고 스스로 만들어 낸 폭풍의 한가운데를 향해 휘둘러졌다.
파아아아아앙.
안쪽에 푸른 마나가 더해진 회오리바람이 일순간에 두 배 크기로 불어났다.
“합!!!”
푸른 마나는 점차 붉은색을 띠기 시작했고, 이내 선명한 노을빛으로 물든 회오리바람이 망치가 두드린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돌로 된 연무장 바닥에 넓고 긴 고랑을 만들어 내며 돌조각들을 빨아올린 회오리바람은 이내 벽에 부딪혀 화려하게 폭발했다.
꽈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연무장의 벽에 쩌저적 금이 가며 사방으로 돌조각이 튀었다.
엄청난 폭음에 비해 자잘한 흔적만을 남긴 타격.
하지만 한쪽 벽만 해도 폭이 50m에 달하고 높이는 10m에 이르는 거대한 연무장 전체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결코 보통의 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성공했다! 크하하하하하!”
벼락 떨구기에 이은 괴력의 기사 두 번째 비기, 폭풍 휘두르기.
위력은 약하나 다수를 상대할 때 유용한 그 장대한 범위 타격 기술을 성공시킨 타이니는, 석양같이 아름다운 색의 마나를 뿜어내며 환희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곧이어.
우드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짜릿한 통증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관통했다.
“후읍!”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털어 낸 타이니는 심호흡을 하며 그 고통을 덜어 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강화된 염체, 마나 바디가 육체를 그 수준에 어울리게 변화시키는 거야.’
좀 더 질기고 단단하게, 그리고 탄력 있게 변해 가는 육체.
블레이더급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만 제대로 쓸 수 있는 기술을 억지로 성공시키니, 그의 육체 또한 영혼을 조금이라도 따라잡기 위해 변해 가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마나를 완벽하게 다루는 상위 기사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이 실감 났다.
그와 동시에.
꼬르르르르륵.
급격하게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육체의 허기인 동시에 마나바디의 허기이기도 했다. 더욱 강하고 압축된 육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영양분과 마나가 부족하다는 신호였으니까.
피식.
‘이거 또 한동안 미친 듯이 퍼먹어야겠군.’
황도에 들어서서 신분을 위장하기 시작한 뒤로, 혹여나 시선을 끌까 싶어 먹는 것을 자제했더랬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육체를 담금질하는 과정이니, 지금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못하면 오히려 마나가 몸을 좀먹어 두고두고 후환으로 남을 수도 있었으니까.
“뭐, 이제 결혼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 와서 조금 시선을 끈들 어떠랴.
그렇게 혼잣말을 뱉어 내며 돌아서는데, 언제 온 건지 뒤쪽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제나스가 보였다.
짝. 짝. 짝.
“경지가 상승했는데, 그걸 이 짧은 시간에 수습하다니요. 정말 당신의 재능은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르겠네요. 타…… 큼, 토렌 군.”
뒤늦게 손뼉을 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수련을 방해하지 않으려 기다려 준 것이리라.
스스로에게 집중하느라 그의 존재를 뒤늦게 인식한 타이니가 바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나스 경, 어찌 찾아오셨습니까?”
“각하께서 지켜보라 하셨습니다. 토……렌 군이 조만간 벽을 넘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아…….”
위장한 타이니의 가명이 아직 입에 붙지 않은 듯 약간 말을 더듬던 제나스는 이내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각하의 가르침이 최고인 것 같군요. 어때요? 온전하게 경지를 수습하는 데에는 대련이 최고인데……. 저랑 한번?”
제나스가 호의로 하는 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가르침’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타이니는 반사적으로 이를 뿌드득 갈았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그럴 만도 했다.
공작은 황제의 말을 들은 뒤로 무언가 마음가짐이 달라진 건지, 갑자기 자신을 미친 듯이 굴리기 시작했으니.
강자와의 전투를 통해 경험을 새겨 넣는다는 마나바디의 특성을 괜히 말해 줬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하곤 했었다.
– 나, 난 정석적으로 시간만 들이면 되는데 왜……!?
– 그래도 더 빨리 성장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당사자의 의견 따위는 단칼에 무시하는, 학대에 가까운 폭행 수련.
물론 그 결과로 확실히 경지 상승을 몇 달은 더 앞당긴 것 같긴 했지만, 결코 좋게 봐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가 X바, 언젠가 그 영감한테 한 방 먹이고 만다……!’
다만 타이니는, 그 내적 분노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됩니다만. 흠…… 좋고 싫음과 상관없이 기본적인 예의는 좀 갖춰 주세요, 토렌 군. 그게 도리랍니다.”
어깨를 두드리던 제나스가 실망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을 본 타이니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영…… 아니, 각하 생각이 나서……!”
하지만 그 변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각하 생각을 하는데 왜 살기를……?”
가늘어진 눈으로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제나스의 모습에 순간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타이니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아예 화제를 돌려 버렸다.
“아, 아. 하, 하하……. 배가 너무 고파서요. 그, 배가 고프면 화가 나지 않습니까?”
“……예?”
‘너 짐승이냐’ 하는 듯한 표정에, 타이니는 더욱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 하하하. 전 좀 그런 편이라서. 신경 써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는 지금 대련보다는 당장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지금 당장요?”
“제가 좀 특이 체질이라, 밥을 좀 많이 먹어야 하거든요.”
꾸르르르르르륵.
다행히 때맞춰 배에서 울린 우렁찬 소리가 제나스의 이목을 끌었다.
“흠. 뭐, 그럼 같이 식사나 하지요. 안 그래도 전할 말도 있었는데.”
“……예?”
“따라오세요. 저택 근처에 아주 훌륭한 레스토랑이 있답니다. 식사는 제가 사 드리지요.”
“아, 아니 그게…….”
“흠? 표정을 보니 싫은가 보네요? 허. 아까도 그렇고, 아무래도 제가 토렌 군에게 뭔가 크게 잘못한 게 있나 봐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좀…… 아니, 아주 많이 먹는 편이라서요. 그냥 저택의 식당으로 가면 안 될까요?”
타이니가 난처한 표정으로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어허, 사람 많은 곳에서 할 만한 말이 아니에요. 제가 말한 레스토랑은 고객에게 방을 따로 내주는 곳입니다. 그러니 그냥 따라오세요.”
꾸르르르르르륵.
“그, 그게……. 제가 지금 음식을 조절해서 먹을 상황이 아닌데요. 그런 레스토랑이라면 아무래도 금액이…….”
타이니는 진심을 담아 최후의 제안을 했지만, 제나스는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블루윙의 기사단장은 봉록도 꽤 많답니다. 한 끼 식사 정도야, 토렌 군 한 명이 아니라 백 명분이라도 사 줄 수 있지요.”
……정 그러시다면야.
꾸르르르르르르륵.
“가시죠, 빨리.”
뱃가죽 아래에서 맹렬하게 울려오는 소리는 더 이상 남의 지갑 사정을 봐줄 때가 아니라고 타이니를 재촉하고 있었다.
* * *
우걱우걱.
“쩝쩝. 와, 여기 진짜 맛있네요!”
촵촵.
“이 스테이크, 다섯 개만 더!”
와드득.
쩝쩝.
“마지막으로 이거 세 개만 더…….”
할짝할짝.
“이제 후식은……?”
2시간이 넘도록 배 속에 미친 듯이 음식을 쓸어 넣던 타이니가 후식을 찾는 순간.
콰드드득.
제나스의 손에 들려 있던 특제 은식기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그 소음에 가까스로 이성이 돌아온 타이니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안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 이제 배가 좀 차네요! 하하, 하…….”
하지만 이제 와서 눈치를 보기엔 늦은 것 같았다. 애써 고개를 돌려 봐도 옆얼굴이 따끔거렸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듯이 그를 노려보던 제나스는 잠시의 시간이 지나서야 긴 한숨과 함께 눈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자연스레 열린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어, 어떻게 사람이, 한자리에서 150인분을 넘게 처먹…… 흠. 머, 먹을 수가 있죠? 흐…….”
말을 하면서도 다시금 열이 오르는지, 제나스의 얼굴이 슬쩍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네가 괜찮다며!?’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제나스’가 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까지 내는 마당이니, 고개는 자연스레 아래로 꺾일 수밖에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둘이서 먹고 골드 단위로 결제해 본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겁니다. 세상에 무슨 이런 인간이……!”
제나스의 분노에 찬 불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타이니의 상념은 그의 내부로 파고들고 있었다.
우우웅.
강력하게 압축된 위장과 마나바디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음식을 분해했고, 그렇게 얻어 낸 영양분에 의해 몸이 올바르게 성장하고 안정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타이니의 입가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며칠만 더 먹으면 육체는 완비되겠어. 아마도…….’
익스퍼트가 될 때에 대비해 몸무게가 또 두 배가량 늘어나고, 그만큼 강력하게 압축되고 나서야 이 질적인 성장이 멈출 것이다.
‘키도 아직 조금 더 자랄 테고…….’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고 그 영양분을 완전히 분해했음에도 이제 키가 더디게 자라는 것 같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부풀린 덩치의 근력이 아니라 압축된 육체의 내구력과 탄성, 그리고 질량이라는 사실은 회귀 직후에 깨달았으니까.
이미 인간의 영역을 한참 초월한 몸무게이긴 하지만 그 또한 걱정은 없었다.
‘거기에 이젠 중력 속성도 16분의 1에서 16배까지 다룰 수 있겠어.’
기본적으로는 중력을 최대한 가볍게 유지하고 있으니, 아직 질량이 경지에 맞게 압축되지 않은 육체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가볍게만 느껴졌다.
누가 지금 그를 들어 올린다면 아마 평균적인 성인 여자 몸무게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었다.
육체가 완비되고 마나량이 좀 더 불어나기만 하면, 이제 초인만 아니라면 누구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고작 블레이더급인 내가……!’
그야말로 경이적인 성장.
그것도 회귀한 뒤 불과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이뤄 낸 성과였으니, 당연히 마음이 벅찰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때문에 지금 상황을 깨끗이 잊고 말았다.
“……웃어?”
알게 된 이래 내내 예의를 강조하고 존대를 사용하던 제나스가 반쯤 돌아간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