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147
“폐하.”
시종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황제를 알현했다.
목이 바짝바짝 마르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방금 전, 그는 황실의 근위 기사로부터 한 가지 보고를 받았는데 그 내용이 무척이나 절망스러워 이를 어찌 말을 꺼내야 하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하라.”
“그것이···. 이것을 한 번 보셔야 할 듯 하옵니다.”
결국 시종장은 자신의 입으로 사실을 알리기를 포기하고 근위 기사가 보낸 서신을 그대로 황제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황제는 밀서를 잠깐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곧 봉투 속의 내용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시종장은 와들와들 떨다가 무릎까지 꿇었다.
“죽여주십시오! 모두 소인의 불찰입니다, 폐하”
마침내 글을 다 읽은 것인지 서신을 테이블 위로 올린 황제. 타이밍을 기다리던 시종장이 황제의 발치에 연신 이마를 부딪치며 용서를 구했다.
“폐하, 죽여주십시오!”
하지만 황제의 얼굴에는 동요가 없었다.
그러자 시종장은 또 자신의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두려움이 왈칵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벌써 수십 년을 모신 황제였으나 여전히 그는 범인으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심연을 가진 이였다.
“황명을 충실히 이행했으니 오히려 상을 내려야지, 벌은 무슨.”
“죽여주십···”
툭 내뱉은 황제의 본심에 시종장도 당황하여 말을 멈추었다.
‘황자가 아편을 접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어찌 이리 태연하신가. 설마 처음 명을 내리실 때부터 일이 이렇게 되리란 것을 짐작이라도 하셨다는 거실까? 아니야, 아무리 부모자식간의 애정이 적은 폐하시라고 해도 이리 매정하실 리가···!’
시종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몇 달 전.
“귀족파가 드디어 선을 넘었구나. 이 나라가 감히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수도의 귀족파와 서부 영주들이 손을 잡고 제국의 땅에 해양 왕국을 끌어들이는 헛짓거리를 미리 안 황제는 크게 분노했다.
시종장을 비롯한 황제의 최측근들은 황제가 이참에 수도의 귀족파들을 완전히 뿌리 뽑을 생각이라고 여겼지만 결론은 예상보다는 어쩐지 조금 뜨뜻미지근하게 났다.
서부 영주들은 큰 타격을 입었으나 여전히 수도의 귀족파의 핵심인물들은 기가 조금 죽었을 뿐, 여전히 득세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이 정도면 되었다. 그들이 가진 금력을 무력화할 방법이 당장은 없으니 이 쯤 하는 게 좋아. 더 이상은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테니.”
황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황제를 가까이서 모셔왔던 시종장은 이것이 끝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냥 끝내실 분이 아니시지.’
아니나 다를까.
수도의 귀족파가 조금은 자중하고 있을 때.
황제가 내린 새로운 명령은 친 황제파의 핵심 인물들을 경악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폐, 폐하!”
황제가 직접 제국에 약을 풀라는 명을 내리다니!
처음 황제의 입으로 이야기를 들은 측근들은 모두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가능하겠나?”
“···가능은 하겠으나 진실로 이대로 실행할 생각이십니까? 만약 일이 어그러지기라도 한다면 제국이 뿌리째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뿌리가 왜 흔들린단 말이냐?”
“예?”
“아편을 전달하는 것은 이 땅의 민초들이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제국의 뿌리가 흔들릴 리 없지.”
“하지만 폐하. 어두운 곳에서 퍼지는 것들은 자칫 잘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지기도 하니 다시 재고해주십시오!”
“흥. 그 정도도 관리하지 못하는 능력들이라면 모두 관직을 벗고 초로에 묻혀야지, 감히 이 황궁 안에서 나의 수족 노릇을 하겠다고 덤빈 것은 만용이 아니더냐. 너희는 나를 도와 제국을 이끄는 인재들이냐, 아니면 실체 없는 적이 두려워 꼬리를 만 초개이냐.”
“······.”
황제의 짜증 섞인 질책이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측근 신하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제아무리 황제이자 주군의 명이라고는 해도 그런 일을 벌일 수는 없는 법이다.
‘주인의 명령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충정이라고는 해도, 잘못된 길로 들어서심을 막지 않는 것 또한 불충이 아닌가!’
그런 고로 이들은 서슬 퍼런 황제의 분노를 받아내면서도 끝끝내 시행할 수 없는 계책이라 논하고 또 논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니 내가 그대들을 믿고 중용하는 것이지.”
황제가 빙긋 웃었다.
‘우리를 시험하신 것이로구나!’
황제는 이번 일로 자신의 측근들이 여전히 믿을 만 한 자들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간신 중 하나로 변해버린 것인지 또한 알고자 한 것이다.
시종장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자신의 주군은 여전히 영민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예리해지신 느낌이다. 최근 십 여 년 간 피를 보지 않으신 탓에 감각이 무뎌지셨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역시 나의 착각이나.’
오해는 다행히 불식되었으나 여전히 아편을 제국에 풀어 놓으라는 명령은 반대를 해야만 했다.
“넘치는 재물을 가지고도 쓸데없는 여흥이나 찾아대는 젊은 놈들은 결국 제국을 좀 먹게 될 암이니 이참에 솎아보자꾸나.”
황제는 이번 기회에 수도의 귀족파를 비롯해 열정과 재기는 사라지고 오만과 방만을 일삼는 귀족들을 한꺼번에 나락으로 떨어트릴 작정이었다.
정치적인 압박으로도 한계가 있었던 귀족파들을 제재하는 일.
정상적인 방법으로 쌓은 부가 아니니 황제 역시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하. 물건에는 눈이 달려있질 않습니다. 그러니 혹여 예상치 못한 곳으로 물건이 흘러들어간다면 어찌하겠습니까?”
툭-.
시종장의 말에 황제가 병 하나를 툭 던졌다.
“해양 왕국의 왕자가 귀족파의 움직임과 함께 보낸 해독제니라.”
“···!”
“효과를 확인해 오너라. 만약 해독제가 확실하다면 분수를 모르는 귀족 놈들의 목줄을 쥘 수 있지 않겠느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침음을 삼켰다.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아마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황제의 편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 말이다.
“하오나 폐하.”
그러나 조심성 많은 신하 하나가 조심히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귀족파들이 무너진다면 그들이 관리하고 있던 제국의 상당수의 상업이 무너질 것인데 혼란이 오지 않겠습니까? 방자하기는 하나 이들이 제국의 상권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야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런 자를 찾기가 쉽겠습니까?”
“황궁 안에서 듣자하니 최근 남부가 잘 좀 살아보려 애를 쓰기 시작했다던데.”
황제의 뜻은 명확했다.
기존에 득세하던 북부의 귀족파의 후계들을 망가뜨리고 그로 인해 공백이 생긴 자리는 남부의 영주들로 하여금 채우게 하겠다는 것.
“너무 우려하지 말게. 비정한 방법을 쓰는 것이나 멀쩡한 놈들까지 사지로 몰아넣지는 않을 것이다. 그 놈들도 역시 나의 제국민들이 아니냐.”
“예, 폐하.”
“제대로 된 생각이 박힌 놈들이라면 이딴 해괴한 술수에 걸려들지 않을 것이니 측은하게 바라보지도, 동정하지도 말라.”
***
다시 현재의 대전.
분명 몇 달 전, 황제는 걸려든 놈을 동정하지 말라 엄히 꾸짖었으나 하필이면 그 안에 황자가 있을 줄이야!
하도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것이었기에 일부러 황제의 측근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뒷골목이나 휘젓고 다니는 정보길드 몇 개를 거쳐 준비한 일이기에 걸려서는 안 되는 인물이 걸려들고 만 것이다.
“빨리 조치를 취하겠나이다.”
“무슨 조치?”
“그야···.”
시종장이 말끝을 흐렸다.
“두어라. 그 놈이 아편을 피우기 시작했음을 어디 우리만 알고 있을까.”
황제가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갑자기 중독에서 벗어난다면 의심 많은 여우들이 경계를 할 테니 당분간은 그냥 놓아 두어라.”
“···예, 폐하.”
시종장은 대전을 나가면서도 여전히 머리로는 이해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어찌 하나뿐인 아들, 그것도 이 나라를 물려주어야 할 유일한 황자를 이리 대한단 말인가.
‘설마 그 소문이···.’
시종장의 머릿속에 두 가지 풍문이 떠올랐다.
하나는 지금의 황자가 실은 황제의 씨가 아니라는 것.
또 하나는 이십 여 년 전. 황궁에서 사라진 한 여인이 아이를 품고 있었다던 것.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보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시종장은 자신의 생각에 자신이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곤 삿된 생각을 머리 속에서 털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
“또 연결 고리가 끊겼다?”
“···예, 시장님.”
“젠장.”
항구에 위치한 창고에서 정제되지 않은 아편이 발견되었지만 유통되었던 환의 형태는 아니었다.
창고를 임대한 상단과 하역장 창고 담당자는 물론 짐꾼 등을 모두 심문했지만 그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꼬리에 불과했다.
몇몇 사람들은 지금 저 동대륙 상인들이 거짓을 고하는 것이 아닌가 여겼지만 도미닉과 카림의 생각은 달랐다.
“정확하게 목표물을 지정하고 약을 퍼트리려고 한 놈들이야. 우리 제국의 정치에 밝지 못한 외국의 중소상단이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지. 일부러 저렇게 규모가 작은 상단을 이용한 것이겠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차하면 버리기도 쉬울 것이고, 의심을 사지도 않을 테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도미닉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첩보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했지만 세세한 건 안 나온다고!
‘아닌가? 나왔는데 내가 대충 봐서 모르는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화살표 눌러가며 볼 게 아니라 찬찬히 장면을 뜯어보면서 볼 걸 그랬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다 소용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정보가 중요하긴 하네. 제일 먼저 단서를 찾아놓고도 결국 진전이 없다니.”
“죄송합니다, 시장님.”
도미닉의 한숨에 카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 네 잘못이 아닌데.
“아무 일에나 사과를 하지는 마. 이건 누가 카림, 그대가 아니라 누가 와도 안 되는 거였어. 정보 조직이나 첩보 조직은 능력 있는 한 두 사람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란 걸 알잖아?”
007의 제임스 본드가 독고다이로 돌아다니는 것 같아 보여도 그 뒤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파악하고 정리하는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그게 가능한 거라고.
“싱클레어 백작님에게 넘겨. 명색이 남부의 대영주 가문이니 운용하는 정보 조직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은근히 정보를 넘겨주기를 바라는 듯 했으니 타진해보겠습니다.”
“그래.”
도미닉이 잠시 탁자를 톡, 톡 두드리더니 나가려는 카림을 불러세웠다.
“그런데 말이야, 카림. 나는 앞으로 우리 에버그린에서 다시 한 번 이따위 일이 벌어졌을 때, 지금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손을 놓고 있는 건 싫거든.”
이건 자존심 문제 이전에 간단한 산수였다.
‘내 땅에서 헛짓거리를 하려는 놈들이 늘어나는 건 막아야 해.’
어느 정신 나간 관광객들이 치안이 불안한 동네에 돈 쓰러 오겠냔 말이지.
“병영? 경비대? 그런 걸로는 안 돼. 이번 기회에 우리도 정보 조직을 하나 만들지.”
“정보 조직, 말입니까?”
도미닉의 말에 카림의 얼굴에 은은한 열감이 돌기 시작했다.
“좋은 제안이기는 하나, 지휘할 자가 없지 않나.”
그러나 바로 옆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이안이 태클을 걸어왔다.
에버그린의 고질적인 문제.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을 걸고 넘어진 것이다.
수많은 미래의 인재들이 열심히 수련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일을 맡기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니 어쩌랴.
게다가 조직원도 아니고 조직의 장 정도 되는 이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도미닉은 어깨를 으쓱했다.
“첩보 경험 있고, 남들 눈 속이기도 좋고, 여차하면 현장에서 뛸 수도 있는 인물,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있나?”
이안이 되물었다.
“여기요.”
도미닉이 한 쪽을 가리켰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싫다.”
“에이, 그 때 보니까 재능 있으시던데.”
이안으로서는 뒷목을 잡을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