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58
058화
루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좋습니다.”
“내 의도를 납득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그걸로 저희 사이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야. 대인께서는 결국 제가 가장 비싼 값을 치루는 걸 보게 되실 겁니다.”
타타르는 루보가 아니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으나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루보는 리자드맨이 제도에 왔다는 걸 알리기 위해 타타르의 부하 전사를 데리고 제도를 한 바퀴 돌았고, 다음날 아스타시디안 부족장들이 루보의 섬에 나타났다.
부족장들은 물론 부족장을 보필하기 위해 따라온 심부름꾼들이 타타르와 전사들을 보고 술렁거렸다.
“저들이 용의 후손인가?”
“역시나 강인해 보이는군. 저 번들거리는 검은 비늘 좀 보게.”
“나는 저 비단 옷에 눈이 가는데.”
“차고 있는 칼 좀 봐. 우리 쇠붙이와는 색이 완전 다르다고.”
“번개는 언제 보여 주는 거지?”
“그건 보지 않는 쪽이 좋지.”
“왜?”
“그걸 본 이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으니까…”
타타르는 그럼 누가 그걸 보고 이야기를 퍼트린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 경우에는 풀어 나가야 할 타래가 너무 많아지기에 그만두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루보가 말했다.
“부족장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라. 누가 타타르 대인의 비단을 가장 비싸게 값을 치를지 이야기하자.”
루보를 제외한 네 명의 아스타시디안이 걸어 나왔고, 그중 타타르와 구면인 마랑도 있었다.
마랑은 반석 위에 올라선 타타르를 보고 무어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타타르가 마주 보고 있으니 결국 시선을 피했다.
부족장들은 처음엔 크지 않은 값어치로 값을 치르려고 했다.
그것만으로 비단을 사는 게 가능할 거라고 믿은 듯, 모임 자리에 보따리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나타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네 명의 부족장들이 적당한 가치를 말했을 때 루보가 말했다.
“겨우 그뿐인가? 우리 부족은 타타르 대인에게, 배 열 척을 줄 수 있다.”
그 말에 부족장들이 당혹스러워하며 더듬이를 떨었다.
루보가 우쭐해하며 타타르를 바라보았을 때, 마랑이 말했다.
“…우리 부족은 배 열 척에 더해 진주 꾸러미를 둘 더 줄 수 있다.”
또 이들이 웅성거렸다.
진주는 제도의 화폐로 쓰이고 있었다.
대륙에서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제도에서도 결코 작은 가치는 아니었다.
루보 덕분에 값이 한 번 솟아오르자 부족장들이 치열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결국엔 값을 치룰 수 없게 된 부족장들이 나오더니, 루보와 마랑의 대결로 이어졌다.
“우리 부족은 당장 타타르 대인에게 다섯 척의 배를 주고, 해가 바뀔 때마다 열 척의 배를 줄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럼 나는 거기에 더해 우리 섬 노천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 절반을 타타르 대인에게 드리겠다!”
마지막으로 말한 것은 루보였는데, 마랑은 집게발을 들어 올려 부들부들 떨다가 툭 떨구었다.
“…우리 섬에는 노천 광산이 없다.”
루보는 두 집게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다른 아스타시디안들이 집게발을 서로 두드려 소리를 냈다. 타타르에게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몸짓이었다.
루보가 타타르에게 말했다.
“저의 승리입니다.”
“…축하한다.”
타타르는 품에서 라크락의 도장이 찍힌 비단을 꺼내며 이 천 쪼가리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의아했지만 만족한다면 다행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적어도 라크락이 가르쳐 준 거래법은 충분히 그 쓸모를 증명한 것 같았다.
타타르는 계약 내용을 비단에 옮겨 적고, 계약 내용에 대해 루보에게 재차 확인을 받았다. 꽤 과한 가격인 것 같지만 다른 부족장들이 증인이 되어 줄 테고, 루보 자신도 그 정도는 낼 수 있다는 듯, 자신만만했다.
타타르가 도장 찍힌 비단을 루보에게 주려고 할 때, 마랑이 부들부들 떨다가 외쳤다.
“멈춰라!”
루보가 돌아보았다.
“뭐냐, 마랑? 설마하니 이제 와서 더 높은 가격을 부르겠다는 건 아니겠지?”
“흥! 이건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은 싸움이었다.”
마랑이 청동 칼을 빼 들자, 가까이 있던 루보와 부족장들이 물러났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랑의 행동이 신호였는지, 해안 아래에 숨어 있던 푸른빛 아스타시디안들이 저벅저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부족장들과 그 호위들보다도 많은 숫자였다.
루보가 칼을 빼 들며 외쳤다.
“마랑 이 자식, 처음부터 불복할 생각이었나!”
“그렇다. 어차피 재물로는 너희 부족과 싸울 수 없다. 그래도 혹시나 이길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역시나였지. 그럼 두 번째 계획으로 전환할 수밖에. 이렇게 부족장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다니, 이게 어찌 기회가 아닐까!”
루보가 당황했다.
“역시 ‘꾀 보따리 마랑’이었나.”
“그래. ‘장사치 루보’. 이 싸움은 나의 승리다!”
타타르는 이들이 꽤나 별명 붙이길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루보는 등을 떨었다.
“멍청한 것.”
“모르겠나, 마랑? 나와 대인과의 ‘계약’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어차피 용의 후손이니, 번개를 쓴다느니 하는 것이 다 허세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후후, 그렇게 생각하나?”
타타르는 반석 위에서 작게 신음을 흘렸다.
‘더는 못 들어 주겠군.’
타타르는 반석 위에서 그대로 달려가 마랑을 힘껏 차올렸다.
-퍼석!
껍데기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마랑이 1미터 정도 떠올랐다가 바닥을 굴렀다.
마랑은 일어서려다 한 번 나자빠져서 뒤로 또 굴렀다.
타타르는 마랑의 배 부분이 움푹 패도록 금이 간 것을 확인했다.
타타르가 전사들을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단단하다. 관절 부위를 노려라.”
“알겠습니다.”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열 명의 전사들이 푸른빛 아스타시디안 부족을 향해 걸어갔다.
푸른빛 아스타시디안 부족은 검은 비늘 리자드맨들을 보고 당황했다.
마랑이 부하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났다.
“뭣들 하는 거냐! 저들을 죽여라! 그럼 우리가 제도의 주인이 된다!”
싸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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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는 마지막 마랑의 머리를 옆구리에 낀 다음 거세게 조였다.
이미 큰 집게 두 개를 잃은 마랑은 제대로 된 반항도 해 보지 못했다.
-와직!
마랑의 머리가 찌그러지자 몸이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타타르는 체액과 덩어리를 툭툭 털어 냈다.
“그리 대단할 건 없군.”
타타르는 전사들을 돌아보았다.
아주 쉬운 싸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스타시디안의 육체적 능력은 꽤 강한 데다, 무장을 하지 않아도 타고난 집게는 그 자체가 무기였다. 더불어 전사들의 숫자가 더 적기도 했다.
하지만 타타르도 아스타시디안을 만난 뒤 그저 구경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스타시디안과 싸우게 된다면 어떻게 싸울지, 약점은 무엇인지를 연구했고 그 정보를 전사들과 공유했다. 타타르는 신의 축복을 받은 힘으로 관절을 공략해 부수거나 꺾으면 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결과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사들은 가벼운 상처만 입고 승리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루보가 외쳤다.
“역시 용의 후손이다! 다들 보았나? 다들 이 승리를 축하하자!”
그 말에 아스타시디안들이 한 쌍의 큰 집게를 번쩍 들고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집게 부딪는 소리가 해변에 울려 퍼졌다.
타타르는 이제 와서 들어 보니 용의 후손 이야기도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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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락은 오라즌이 내려다보이는 천막 앞,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타타르가 올려 보낸 심부름꾼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일이 잘 해결되었다니 다행이군.”
타타르는 아스타시디안들에게 사실상의 공물을 받으면서도 그와 별개로 마가넨에 상인들이 온다면 거래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알려 왔다.
제도라고 말했지만 타타르가 며칠이 걸려도 배를 타고 섬을 다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척 넓은 땅이며, 발견되지 않은 광산이나 고대 유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타타르는 틈틈이 제도를 둘러보며 왕에게 진상할 보물이나 국고에 보탬이 될 자원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라크락은 타타르를 외무관으로, 루보는 도주(島主)로 임명했다.
도주는 라크락이 콧등을 긁으며 만든 명예직이지만, 외무관은 전사가 아닌 전사장을 소집할 권한이 있으므로 타타르에게 쓸모가 있으리라 판단했다.
“좋아. 다음 심부름꾼은 어디에서 왔지?”
라크락 옆에 있던 시중꾼이 말했다.
“멀리 ‘자린’에서 왔습니다.”
“엘프들이? 흠.”
자린은 녹안의 엘프들이 사는 북해안 끝의 마을이었다.
역시나 심부름꾼도 젊은 엘프였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라크락 님.”
“자린에서 무슨 일로 날 찾았지?”
엘프가 말했다.
“저희 정찰대가 흑린의 침입자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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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은 최근 아스타시디안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래서 이들이 서둘러 통일하지 못하도록 가벼운 장난을 쳤다.
강력한 부족이 배를 타고 이동하면 해수의 소영역으로 멀리 떠내려 보내거나, 늪의 소영역을 사용해 개흙에 발이 푹푹 빠지도록 해서 싸움에 불리하도록 만들었다.
타타르가 라크락의 도장이 찍힌 비단을 들고 내려갈 때까지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장난을 친 것이다.
제도가 빈 땅이란 걸 알아차린 시점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자원을 얻어 내야겠다고 성운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스트 월드에서 지형은 랜덤이 아니야. 제도에는 은 광산이 많이 있어. 당장은 화폐로 많이 쓰이지 않지만 지금 같이 세계 무역이 활발하다면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금과 은은 주요 화폐로 쓰이기 시작할 거야.’
이 중 은 광산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향후 제3 대륙의 경제 주도권을 흑린이 가져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수를 좀 써야 하긴 하지만, 어렵지는 않아. 환전 사기라던가. 아니, 사기는 아니지. 아직 그런 법은 없으니까.’
성운은 뜻하는 대로 제도의 광산 일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스타시디안은 물론 타타르와 라크락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미래의 수익이었다.
다만 성운은 은 광산을 손에 넣느라 다른 곳에 신경을 덜 쓴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처럼 흑린의 주요 거점 마을과 오라즌, 그리고 자동성과 자린을 둘러보고 상태창을 확인하던 성운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숫자가 줄었군.’
성운이 보고 있는 창은 ‘기적’ 창이었다.
정확히는 벌레의 소영역으로 만들어 낸 기적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태창으로, 이른바 ‘메뚜기 떼’였다.
그리고 창조물 중 하나가 급히 성운을 향해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숫자가 줄어든 메뚜기 떼를 통솔하는 창조물 ‘혼고’였다.
-나의 창조주여… 들리나이까?
“말해라.”
혼고는 대륙 중앙에서 활약 중이었고, 메뚜기 떼를 이끌면서 정주민들의 곡식과, 유목민들의 가축이 먹을 수풀을 착실하게 뜯어먹고 다녔다.
반도에서 워낙 멀리까지 이동한 메뚜기 떼라서 대륙 중앙의 플레이어들은 그게 몹쓸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에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돌아봐도 벌레의 소영역을 가진 사람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다른 플레이어들의 곡식을 소모시키면 자연히 인구도 줄고 문명의 발전 속도도 늦출 수 있다. 성운으로서는 가치 있는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런 메뚜기 떼 컨트롤은 신경을 써 줘야 한다는 점인데, 성운은 극초반 이후 혼고를 창조한 덕분에 이 메뚜기 떼를 직접 컨트롤하지 않아도 돼서 남는 시간 라크락을 지원하는데 쓸 수 있었다.
‘혼고에게는 별 다른 일이 없으면 내게 말을 걸지 말라고 일러 뒀다. 그런데 말을 걸어온다는 건…’
혼고가 말했다.
-저의 불찰로 인해 메뚜기 떼의 정체가 탄로 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