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79
079화
엘다르는 눈을 깜빡거렸다.
“저, 이런 수치는 처음 보는 것입니다마는…”
“그 정도는 아닌데.”
“그… 드문 경우는 맞지 않사옵니까?”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족마다, 그리고 해당 캐릭터의 나이나 문명 단계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현 단계의 카일은 덜 자란 청소년기이기 때문에 15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평균적인 능력치라고 할 만하다.
때문에 14의 힘은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보통의 능력을 의미하는데, 32의 사회성은 과거 문명이라면 왕의 재목, 현대 문명이라면 정치가나 연예인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엘다르가 말했다.
“지능이 60 정도만 되어도 해당 시대에 유별난 천재라고 할 텐데, 80을 넘어서 100을 넘다니요?”
“아마 향후 몇십 년 동안은 대륙 전체에서 보기 힘들겠지.”
사실, 지난 백여 년 동안 세계가 정체된 이유는 단순히 각 국가 내부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문명이 발전하려면 그에 걸맞은 기술과 발명품들이 나타나야 한다. 신들이 직접 발명품을 전해 내려 줄 수는 없어. 그건 인과율에 크게 위배되니까.’
다른 문제도 있었다.
‘기술과 발명품이 있더라도 그게 일회성의 사건이 되어서는 안 돼. 그 발명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어서, 그 발명이 다른 발명으로 연결되어야 해.’
하지만 지난 백여 년은 그런 사건이 거의 없었다.
가진 기술들이 퍼져 나가고 각 나라의 환경에 맞게 최적화되는 과정은 있었지만 그렇게 새롭다고 할 만한 것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성운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새로운 것, 새로운 기술, 새로운 발명품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들어 지더라도 지엽적으로 소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근대 문명으로 발전해 이른바 ‘세계화’가 되지 않는 이상, 많은 부분을 행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로스트 월드 플레이할 때야 이런 정체기는 짧으면 몇 분, 길어도 십 몇 분이면 지나가 버리지만.’
때문에 성운에게 카일의 존재가 ‘변화의 조짐’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 정도 지능이면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에 적합하고, 게다가 그 기술과 발명품을 흑린이라는 나라 각지에 전달할 만큼의 영향력도 가지고 있어.”
성운이 보기에 흑린은 다음 단계로 발전할 여력이 충분했다.
자원도 축적이 되었고 상인들도 대륙 각지를 오갔으며, 기초적인 수학과 과학 지식을 갖춘 학자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엘다르가 말했다.
“저, 하지만,”
“왜?”
“중요한 문제가 있는 듯하온데…”
성운은 엘다르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첫째가 아니라 셋째란 말이지.”
“예. 현재 첫째인 바센은 놀기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결격 사유를 가진 건 아닌 듯하옵니다. 게다가 바센은 이미 세자의 지위를 얻었으니,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카일이 왕이 되기는 힘들지 않을지요.”
성운은 잠깐 생각했다.
성운이 개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어전 회의에서 안평왕에게 특정한 징조를 내린다면 대신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야천께서 선택하셨으니 카일에게 왕의 자리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결정하는 건 좋지 않지.’
그 결과가 현재의 오라즌이었다.
지구에서의 환관이라고 할 만한 위치, 일종의 비서실인 좌수관은 여러 종족으로 채워져 있지만, 일명 우수관, 실질적으로 흑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정 관료들은 리자드맨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들은 당연히 왕권을 지지하므로 흑린에서 모반은 이제 와선 들어설 구석도 없었다.
각 행정 관료의 우두머리들이 모두 리자드맨인 셈이니까.
‘고인 물은 썩기 마련.’
실제로 이 리자드맨들이 썩었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흑린의 왕가에 다소 우둔한 왕은 있어도 암군은 없었다.
그러나 흑린의 종족 비율에서 리자드맨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은 반면, 행정 관료 비율은 압도적으로 리자드맨이 차지한다. 성운이 리자드맨에게 좋은 축복을 내렸으므로 비교적 능력이 좋을 수는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비율이 너무 높았다.
리자드맨 이외의 종족 중에도 좋은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도 성운은 이제 인간과 리자드맨만이 아니라 더 많은 종족을 자신의 영역으로 손에 넣었다. 초기에 효율을 위해 공격적으로 영역을 넓혔던 만큼 이제는 조화를 생각해야 할 때였다.
‘근대까지 가서 종족 갈등이 생긴다고? 그럼 정말 환장하는 일이 생기는 거지.’
그동안 성운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그리고 왕권 강화를 위해 흑린의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했지만 슬슬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식을 쓰려고.”
“예를 들면 어떤…?”
성운이 방법을 설명하자 엘다르가 걱정했다.
“저, 그게 생각대로 풀릴까요? 카일의 지능을 과신하시는 것 같은데…”
“난 잘 풀릴 것 같은데. 비슷한 방법은 다른 게임에서도 많이 써 봤어.”
“어차피 제가 말려도 뜻대로 하실 것 아닙니까?”
“응.”
성운이 말했다.
“혹시 일이 잘못된 건가 싶어서 훼방 놓지 말라고 미리 말해 주는 거야.”
엘다르는 한숨을 포옥 쉬고 말했다.
“알겠사옵니다.”
─┼
오라즌의 궁에는 많은 정원이 있다.
기본적으로 리자드맨들이 생각하는 사후 세계의 모습을 풍경화한 것으로, 발목까지 오는 얕은 초목으로 몇 그루 나무를 심거나 앉아 놀 수 있는 바위를 두는 둥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오라즌의 정원 문화는 흑린의 많은 귀족들 사이에서도 유행해서 큰 장원에 뜰을 두고 정원을 가꾸는 일을 귀족의 미덕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라즌에는 있지만 다른 지방에는 없는 것이 있었다.
갓 궁에 들어온 좌수관 엘프들이 귀를 쫑긋대며 나무 담 너머를 바라보았다.
“와, 저게 소문으로만 듣던…”
“쉿. 목소리 좀 줄여. 저놈이 우릴 보겠어.”
먼저 말을 꺼낸 엘프는 한일자로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저게 오라즌의 수호룡 마눈이구나.”
몸길이 25미터, 나이는 대략 150살, 종족 드레이크.
최초에 푸른 거죽이라는 리자드맨 부족의 족장이었던 뷰에가 기른 드레이크였으나, 이후 라크락이 그를 쓰러트리고 발아래 두었다는 거대한 도마뱀이었다.
드레이크는 늙어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실제로 마눈은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마눈은 궁 안쪽에 마련된 특별한 뜰 안에 자리했는데,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성장기가 끝나지 않아 궁의 기록을 들여다 보면 마눈을 키울 수 있는 뜰을 만들기 위해 몇 번이나 궁을 중축했다고 되어 있었다.
사실 오라즌에 있는 수많은 정원은 마눈 때문에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와선 궁 안의 대신들은 마눈을 골칫덩이로 보았다.
성장기가 끝났지만 워낙에 큰 덩치 때문에 밥값이 너무 많이 들고, 그에 비례해서 싸는 양도 어마어마했다.
돈이 많이 들고 사람 손도 많이 탄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마눈을 쉽게 치워 버릴 수도 없었다.
다른 왕도 아닌 건국 시조이자 뇌룡대왕 라크락이 부렸다는 드레이크.
마눈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왕권을 상징하고 있었기에 궁은 큰돈이 들고 많은 일손을 쓰더라도 마눈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백여 년은 긴 시간인지라, 대신들 중에는 마눈을 인적이 드문 산에 풀어놓거나, 그마저도 위험하니 야천에게 바치는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도 말했다.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왕권의 상징 중 하나라고 하나 상징은 상징.
진짜 왕이 있는 이상 그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마눈이 그동안 사람의 손을 많이 타긴 했어도, 지상에서 가장 두려운 생물 중 하나인 드레이크였다.
심지어 150살이나 되는 드레이크.
원하기만 한다면 하룻밤 사이에 궁을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었다.
왕권의 상징이 왕의 목숨을 위협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과 무관하게, 마눈은 리자드맨들이 만들어 준 자신의 자리에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잤다.
하지만 사람들이 마눈에 대해 잘 모르는 점이 있었다.
어린 성장기의 드레이크와 달리 나이가 제법 든 마눈과 같은 드레이크는 나름의 의식이 생긴다는 점이다.
당연히 마눈만큼 오래 살아온 사람이 없으니 아무도 모를 만했다.
사람의 말을 이해한다던가, 도구를 사용한다던가 하는 정도의 지능은 아니지만 마눈은 매일 먹이인 물소를 몰고 오는 사람이라던가, 자신의 대변을 치워 주는 사람이나, 자신이 잘 때 몸 위에 올라타 비늘을 닦는 사람 따위를 먹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분류할 정도의 지능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샘솟는 감정에 대해서도 어렴풋하게 느낄 줄 알았다.
마눈이 최근 화두로 삼은 감정이 있었다.
가장 깊게 느끼는 그 감정은 어딘가 답답하고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어찌해야 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지 마눈은 알 수 없었다.
마눈은 그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저 주는 대로 먹고 되는 대로 싸고 남는 시간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모든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니 마눈으로선 부족할 게 없었고, 감정에 대한 상념도 이 드레이크에겐 낯선 것이라 불편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눈은 밤중에 눈가에 어른거리는 푸른 빛 때문에 눈을 떴다.
그건 푸른 나비였다.
마눈은 불빛이 있거나 말거나 다시 잠들기 위해 앞발로 쾅 내리쳤는데. 오히려 푸른 나비는 배로 늘어나 버렸다.
마눈은 어지간한 것들은 제 발로 내려치면 박살이 나 버리는 걸 알았기에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마눈은 눈을 떴다.
다시 나비 떼를 내려치자 또 두 배로 늘었고, 다른 발로 또 내려치자 마눈의 몸을 뒤덮을 만큼 많아졌다.
푸른 나비 떼는 마눈의 몸을 휘감았다가, 마눈의 정원 위를 휘적휘적 날아다녔다.
마눈은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그 나비 떼를 쫓다가, 나비 떼가 속력을 내자 성큼성큼 달렸다.
정원 안을 몇 바퀴 돌던 푸른 나비 떼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나무로 만든 담을 통과해 버렸다.
이 담은 십 미터는 되는 촘촘한 나무 창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눈이 넘어가서는 안 되었다.
마눈은 앞발을 들고 쥐었다 폈다 하며 주저했다.
나무 창살을 부수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한 번 부수고 나가 버린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시끄러운 소리로 떠들고 긴 막대로 쿡쿡 쑤셔 대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내키지 않는다면 앞발로 전부 납작하게 눌러 버릴 수도 있지만, 마눈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것들은 마눈이 좋아했던 사람들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마눈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주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첫 번째 주인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이리해라 저리해라 시키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주인은 좋았다.
첫 만남에서 마눈의 주둥이를 쥐고 바닥에 내쳐 버렸지만, 힘으로 서열을 결정하는 드레이크의 특성상, 마눈에게 따르고 의지할 만한 우두머리로 각인된 사건이었다.
게다가 두 번째는 마눈에게 딱히 시키는 일도 없고 재깍재깍 먹을 것을 주둥이에 밀어 넣어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아서 퍽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데, 입에 매일 뭔가 들이밀어 주니 두 번째 주인을 잊어버리고 그냥 살고 있었다.
‘…!’
그제야 마눈은 자신의 마음속에 맺혀 있던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마눈은 푸른 나비들을 쫓으며 그 감정을 털어 낼 수 있었고, 또 과거에 두 번째 리자드맨이 먹이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 나비들처럼 함께 놀아 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마눈의 속에 답답하게 자리 잡은 감정은 바로 ‘지루함’이었다.
“이리 와라, 마눈.”
낯익은 목소리가 마눈에게 들려왔다.
마눈은 눈을 좁혀 뜨면서 창살 너머를 바라보았다.
두 번째 주인이 손을 까딱이고 있었다.
“신께서 또 괴이한 일을 시키나 싶었는데, 오랜만에 재미있겠구나.”
마눈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손을 까딱이는 것이 잡기 놀이의 신호라는 건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마눈은 어깨를 숙이고,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꼬리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마눈, 어디 한번 실력이 늘었는지 보자.”
25미터의 거체가 나무 창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
수렵대신 데아닌은 출근한 아침부터 부하에게서 황당한 보고를 받았다.
“새벽에 큰 폭발음이 들렸다는 거 아십니까?”
“별일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 아닙니다.”
“그럼?”
“새벽에 금군(禁軍)이 출동해 폭발음이 어디서 들렸는지 확인해 봤더니, 아니 글쎄 마눈이 선산으로 도망쳤다지 뭡니까?”
“그것 참 큰일이군.”
마눈이 오라즌의 수호룡이니, 왕권의 상징이니 말이 많지만 어찌되었든 괴수였다.
단순한 야수가 아니기 때문에 금군, 어쩌면 군대가 움직일 테고, 무작정 죽일 수도 없는 동물이니 그 거체를 살려서 데려오는 건 책임자에게 있어 악몽 같은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데아닌으로선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데아닌 님, 왜 자꾸 남의 일처럼 답하십니까?”
“어?”
“데아닌 님이 수렵대신이지 않습니까?”
“응?”
데아닌은 그 말에 의식이 정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데아닌이 수장으로 있는 ‘수렵대’는 말 그대로 사냥과 관련된 부서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사냥이란, 귀족의 유흥을 이야기한다.
오래전부터 활쏘기에 능통한 리자드맨들인 만큼 사냥하기를 즐기는데, 당연히 왕이 있는 궁 가까이에 위험한 동물을 둘 수는 없다.
그러니 사냥을 할 때만 산에다 사냥감을 풀어놓게 되는데 수렵대는 이런 유흥을 즐기기 위한 전담부서였다.
육체노동을 하는 일이 많고 다른 부서가 맡지 않는 잡다한 일을 하느라 정치적으로 힘이 생기기 어려운 부서라서 수렵대 소속이면 우수관이라 하더라도 천대했다.
그리고 이번 일 또한 그런 천대의 연장선상이었다.
“서둘러 준비하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아침 회의 전까지 마눈을 잡을 방법에 대해 준비하라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마눈 잡기를 다른 조직들로부터 짬 당한 것이다.
“이런 시팔.”